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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44화 (44/185)

<-- 44 회: 2권 - 집들이 -->

모처럼 가족이 다 모이게 되는 날이었다.

성희도 고2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의 중반이라 기숙사 보수관리 기간이 되면서 당분간 집에 묵을 예정이었다.

차를 몰고 학교로 간 성진은 이것저것 침을 챙겨들고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성희를 발견하고 그 앞에 차를 댔다.

“오빠!”

두툼한 잠바를 입은 성희가 양 팔을 뻗고 달려왔다.

“그래. 오빠 왔다.”

“오셨구만, 나의 짐꾼.”

“뭐? 이 녀석이 또 까분다.”

“헤헤.”

트렁크에 짐을 실은 성진은 성희를 태우고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집으로 가는 길이 심심했는지 성희는 그 사이를 못 참고 말을 걸어왔다.

“오빠는 이 사랑스러운 동생이 안 보고 싶었나?”

“외국 갔냐? 때 맞추면 보는데 보고 싶기는 뭐가.”

“에이, 왜에~ 그러지 말고 오빠, 이 사랑스러운 동생한테 용돈 좀 줘어어엉요옹.”

“허얼. 만나자마자 용돈 타령이구만 또.”

여동생의 눈에 오빠는 저금통으로 보이는걸까.

성희는 성진을 보자마자 손바닥부터 내밀었다.

“아휴, 이거 언제쯤 철이 들려는지.”

성진은 한탄하면서도 지갑을 꺼냈다.

“알아서 집어 가라. 양.심.껏.”

“오빠. 나 이제 낭랑 18세인 거 알지?  5만원짜리 좀 부탁해용.”

“어째 말 끝마디가 좀 코맹맹이 소리가 섞였다? 귀여운 척 해도 소용 없으니까 양심껏 집어가. 양.심.껏.”

그러면서도 성진은 성희가 집어가는 액수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갑에 큰 액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희도 오빠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몇 장만 꺼내고 도로 지갑을 돌려줬다.

“기숙사에 계속 있으면서 돈 필요한 데가 어딨길래 그래?”

“에이, 오빠. 사랑스러운 여동생한테 너무 눈치 좀 주지 마. 그리고 여고생이 돈 필요한 데가 왜 없어? 오빠 기초화장품만 해도 값이 얼만지 알아? 스타킹도 얼마나 비싼데.”

성희가 맘먹고 따지고 들면 남자인 성진은 져줄 수밖에 없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남자인 성진이 뭘 알겠는가.

성진은 바로 항복했다.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다 보니 차는 어느새 집으로 가까워졌다.

마을 입구를 지나서 집에 도착하고 나니 성희가 차에서 내려 폴짝 뛰었다.

“와아! 집이다. 우리집.”

“짐부터 챙겨서 들어가.”

성진은 바로 트렁크 짐을 열고 가벼운 건 성희에게 들려줬다.

“응. 오빠.”

남은 무거운 짐은 몽땅 성진의 차지였다.

“읏차.”

집으로 들어가자 부모님이 바로 나오시며 환히 웃으셨다.

“아이고 우리 딸 왔구나.”

“헤헤. 아빠 귀염둥이 딸내미 왔어.”

“애 공부하느라 얼굴색이 말이 아니네. 너 보약 좀 먹을래 성희야?”

“에이, 보약은 뭘. 됐어요, 엄마. 엄마나 드셔.”

“그래. 맛있는 거 많이 했으니까 빨리 들어가서 먹자.”

성희를 잡아끌고 들어간 어머니는 바로 부엌에 푸짐한 반찬을 차리셨다.

평소에도 살림이 나아지니까 요리가 취미인 어머니는 부쩍 실력발휘를 하셨다.

오늘은 성희가 와서인지 더욱 다양한 요리가 식탁에 그득했다.

“와우. 우리 엄마 솜씨는 하여튼 대단하셔.”

성희가 싱글벙글하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많이 먹어라. 우리 딸.”

“네에~”

그렇게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인 식사가 끝나고 부모님은 방 안에 들어가셨다.

남은 설거지는 성희가 자원해서 성진도 돕기 위해 부엌에 남았다.

성진이 그릇을 가져다 싱크대에 놓는데 성희가 말을 걸었다.

“오빠 덕에 우리 집 잘 풀려서 다행이야.”

“다행까지야. 이게 내 덕인가. 아버지 어머니가 열심히 사셨으니까 우리가 잘 큰 거지.”

“그래. 울 부모님 참 고생 많이 하셨어. 오빠 혹시 이 집도 엄마가 엄청 이사 오기 싫어하셨다는 거 알아?”

“그랬어?”

성진으로서는 금시초문인 얘기였다.

“그러엄. 저거 봐. 담벼락에 구멍 다 뚫리고. 대문은 우리 올 때부터 반쯤 망가져서 끼릭거리잖아. 어떤 여자가 이런 데서 살고 싶겠어.”

“아…… 그런가.”

“나도 이모한테 들었는데…… 아버지 직장 근처에 가장 가까운 집이 여기였대. 뭐 아버지 눈치 줘서 기 꺾기도 싫고, 여건이 안 되니까 엄마가 그냥 별말 없이 사신 거지.”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던 성진은 마음이 아릿해졌다.

“그럼 이제라도 집 고칠까?”

“에이. 몇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이런 낡고 좁은 집을 뭐하러 수리해. 그냥 계속 사는 거지 뭐. 나중에 이사를 가면 몰라.”

성희의 말에 성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리고 뒤이어 말했다.

“그럼 우리 이사 가자, 성희야.”

“응?”

성희는 설거지를 멈추고 성진을 돌아봤다.

“이사를 간다고?”

                  *      *      *

성진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이사를 갈 것을 말씀드린 성진은 곧장 통장을 건네 드렸다.

통장에 담긴 액수는 부모님이 느끼시기에 정말 막대한 액수였다.

부모님은 놀라셨지만 성진은 아예 증권회사에 취업을 했다고 둘러댔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런데도 부모님은 성진의 돈을 쓰기가 망설여지시는 모양이었다.

“이걸로 꼭 집을 살 필요가 있겠니?”

“그래. 이 집도 살 만 하다.”

성진은 두 분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걱정 마시구요. 절대 부담 갖지 마시고 두 분이 사시고 싶은 집을 구하세요.”

“얘는 그래도…….”

“으흠.”

그러자 옆에 있던 성희가 나섰다.

“엄마. 신혼 때부터 늘 남의 집에 얹혀 살았잖아. 이 집도 나쁜 건 아닌데, 오빠가 좋은 집으로 이사하자는 거니까 그렇게 하자. 응?”

“아니 얘가 그런데…….”

어머니는 성희를 바라보다 아버지 쪽을 바라보셨다.

“당신은 어때요?”

“나야 뭐…….”

아버지는 눈을 잠깐 깜빡했다가 말씀하셨다.

“당신만 좋다면야 나는 다 좋아.”

“그래요 그러면 뭐…….”

부모님의 승낙을 받은 성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성희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아싸! 이사 간다.”

“얘는. 이사가는 게 그렇게 좋아?”

어머니의 핀잔에 성희는 방실방실 웃었다.

“당연히 좋지. 라랄라~”

“어이구 저 철없는 것.”

어머니가 혀를 차셨지만 그래도 좋으신 모양이었다.

그걸 보시던 아버지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셨다.

성진도 밖으로 따라 나섰다.

“아버지.”

“음. 아들.”

“아버지, 이사하는 거 혹시 싫으세요?”

“아니다. 오히려 기쁘다. 네 엄마가 나 때문에 좀 고생을 했어야지.”

아버지의 눈가에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성진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이사가 결정되고 나니 집을 구하는 건 생각보다 빨랐다.

성진이 직접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며 매물을 살펴보니 부모님은 다니는 집마다 마냥 흡족해 하셨다.

결국 집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동네보다는 비교적 치안이 괜찮고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집을 구매했다.

물론 가게에 출근하기 편한 가까운 거리여야 했다.

“이 정도면 딱 좋네.”

어머니는 더없이 마음에 드시는 눈치였다.

“네 엄마 좋다면 여기로 하자.”

아버지의 전적인 지지에 성진은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예. 그렇게 할게요.”

그 날 바로 대금을 치루고 잔금까지 모두 결재한 성진은 명의를 아버지와 어머니 공동명의로 해놓았다.

3층짜리 적갈색의 벽돌집.

창고에, 벽난로, 널찍한 부엌에 주차장이 따로 구비된 집이었다.

어머니 생전에 평생 동안 이런 곳에서 살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바로 그런 집이다.

이사 전에 집 이모저모를 살피시는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아 이 사람 참…….”

아버지가 어머니를 감싸셨다.

“이 좋은 날에 왜 눈물을 보이세요.”

성진의 말에 어머니는 애써 눈물을 닦으셨다.

“그래. 고맙다 우리 아들. 엄마가 고마워.”

“고맙기는요.”

어머니의 눈물에 성진도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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