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41화 (41/185)

<-- 41 회: 2권 - 마각 -->

영식이 입원한 병원 안.

드디어 오늘이 퇴원이기 때문인지 영식은 들뜬 표정이었다.

“이제 좀 괜찮니?”

“예. 그럼요 형. 아주 가뿐한데요.”

영식이 너스레를 떨면서 팔다리를 움직였다.

성진은 자신을 생각해서 건강한 모습을 강조하려는 영식의 마음이 고마웠다.

“무리하지 말고. 당분간 몸조리 하면서 쉬어.”

“에이. 출근해야죠.”

“유난은. 손가락도 아직 다 안 나았는데 무슨 출근이야. 쉬는 동안 검정고시 준비해. 필요하면 학원도 다니고. 모르는 건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에? 검정고시요?”

영식의 얼굴색이 샛노래졌다.

“왜? 싫으니?”

“아니, 그게 좀…….”

갑자기 공부를 시작하라고 하니 유년기의 대부분을 경마장에서 노숙하며 지낸 영식은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영식아.”

성진은 봐줄 마음이 없었다.

“네가 나중에 대학을 가고 그런 건 강요하지 않을게. 사실 꼭 대학을 가야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검정고시는…….”

성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무.조.건.이다.”

“예, 예에…….”

떨떠름해 하는 표정의 영식을 다독인 성진은 병원비를 정산하고 와서 짐을 들었다.

“에이 형. 작은 건 내가 들게요.”

“이제 퇴원하는 환자가 짐은 무슨.”

환자인 영식에게 짐을 들게 할 수는 없었다.

성진 혼자 짐을 다 챙겨들고 병실을 나섰다.

실은 영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끝내 영식을 완전히 믿지 않았던 성진이다.

자신은 잘 몰랐지만, 실은 성진은 남을 쉽게 믿거나 마음을 완전히 주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영식아.’

차를 탄 성진이 시동을 걸면서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이따가 휴게실에서 맛있는 거 먹자.”

“예 형.”

영식은 퇴원이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    *    *

영식은 성진의 자취방에서 혼자 쉬기로 했다.

다만 성진은 집으로 돌아와서 여전히 부모님의 가게 일을 도왔다.

“성진아. 너 지난번에 양복 입고 일하러 갔던 거 어떻게 된 거니?”

어머니는 성진이 양복까지 차려 입고 집을 나갔던 일이 궁금하신 눈치셨다.

“아 그거요. 잘 됐어요. 거기 사장님도 제가 일 잘했다고 칭찬하시던데요.”

“아이고, 그래? 하긴 우리 아들이 어딜 가도 안 빠지지.”

아들이 칭찬받았다는 말에 어머니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헤헷. 그럼요.”

성진은 조용히 서빙 일을 도우면서 손님들이 먹고 남은 접시들을 모아 주방에 전해줬다.

그런데 진동으로 해놓은 전화벨이 울렸다.

“응?”

발신자는 바로 얼마 전에 만났던 플루토 투자신탁의 여직원. 박혜영 부장이었다.

“예. 한성진입니다.”

- 성진씨? 저에요. 우리 만날 수 있을까요?

때아닌 데이트 신청인가 싶어 성진은 당황스러웠다.

“어, 저기…… 저는 지금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 급해요. 급한 일이에요 성진씨.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급한 일이요?”

- 예.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꼭 좀 부탁드려요.

“음…….”

성진은 일전에 만났던 박혜영 부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얀 피부에 얇은 검정색 안경.

밝은 표정이었지만 어딘가 고집스러운 자존심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런 장난을 칠 여자는 아닌 거 같은데.’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만나죠.”

- 네. 정말 고마워요, 성진씨. 우리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 엠로스 아시죠?

“아, 예. 근처 건너편에 있죠. 기억합니다.”

- 거기에서 만나요.

“예. 그러죠.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 기다릴게요.

“예.”

전화를 끊은 성진은 부모님한테 양해를 구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요.”

“응 그래? 어여 갔다와.”

“급하면 빨리 가라 아들. 너 없어도 잘 굴러가 인석아.”

“에이 어머니도 참. 알았어요.”

성진은 웃으면서 앞치마를 벗었다.

“갔다 올게요.”

바로 가게 뒤에 주차시켜 놓은 차에 올라탄 성진은 시가지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속도를 높였다.

십 여분을 달리자 드디어 여의도로 들어섰다.

“저기군.”

카페 엠로스가 보이자 성진은 방향을 틀어 주차장에 차를 댔다.

여의도 증권가 한복판에 위치한 엠로스 카페는 금융업체가 즐비하게 들어선 증권가 한복판의 카페답게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박혜영씨?”

엷은 화장에 도회적인 직장인의 옷차림. 정돈된 인상의 미인으로 기억하는 혜영이었다.

하지만 오늘 혜영의 표정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아, 성진씨. 오셨군요.”

맞은편 의자에 앉은 성진은 본론부터 꺼냈다.

“무슨 일입니까?”

“훗. 역시 거침이 없으시네요.”

혜영은 애써 여유로운 척 보이려 애썼지만 그 와중에도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걱정이 큰 거 같은데 어서 말씀하세요. 무슨 일입니까.”

“그건…….”

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 드라이브나 할까요?”

“드라이브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성진은 반문했다.

하지만 곧 혜영의 표정에 담긴 간절함을 읽고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그러죠.”

“한강 쪽으로 잠깐 돌아요.”

혜영은 성진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성진의 한쪽 팔까지 자신의 가슴으로 바짝 붙였다.

“혜영씨?”

혜영의 봉긋한 가슴이 팔의 감촉으로 느껴진 성진은 살짝 당황했다.

“미안해요, 성진씨. 보는 눈이 있는 거 같아서요.”

혜영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하자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시가 있다는 소리였다.

성진은 감각을 바로 확장시켰다.

그러자 귓가를 스쳐 지나가던 카페의 모든 소음과 빛,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미세한 열기조차 모두 성진에게 선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우리 지점장이 아주 싸이코야.

- 도대체 회사 경영 방식이.

- 야 지난번에 옆 동네 펀드매니저 또 자살한 거 아냐?

- 나 참…….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 속에서 유독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성진은 살짝 눈동자를 돌려 그 쪽을 바라봤다.

두 명이었다.

정장을 차려입었지만 딱 붙는 정장 아래 근육의 형상이 얼핏 비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빛이 달랐다.

독하기로 소문난 증권가의 인간이라고 해도 눈빛이 지나치게 독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살벌함이 담겨 있었다.

‘저 놈들이군.’

감각 확장을 정지시킨 성진은 혜영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잘 알겠습니다. 차로 가죠.”

“네.”

누가 봐도 연인처럼 보일 만큼 밀착한 그들은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그러자 성진이 의식했던 두 사람들도 천천히 가게 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타요.”

반대쪽 문을 열어준 성진은 혜영이 차에 오르자마자 바로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엑셀을 밟으면서 바로 속도를 올렸다.

여의도 시가를 벗어나기 시작하자마자 성진은 오디오에 손을 올렸다.

“음악 좀 들을게요.”

가장 시끄러운 최신 댄스음악이 차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성진은 볼륨을 올리면서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지금 혜영씨 한테 혹시 도청 장치 같은 거 있을까?’

- 조사를 시작 하겠습니다 마스터.

곧 인공지능 팔찌는 답을 말했다.

- 발견했습니다.

인공지능 팔찌는 혜영의 가방 구석 쪽에 도청 장치 위치를 표시했다.

성진은 한쪽 팔로 핸드를 잡고 혜영의 가방 뒤편에 손을 댔다.

“왜, 왜 이러세요…… 성진 씨?”

“이거 때문에요.”

성진의 손에 플라스틱의 이물감이 잡혔다.

곧 성진의 손바닥에 올려진 물건을 본 혜영은 놀라 눈을 치켜떴다.

“이게 무슨…….”

혜영은 뒷말을 아꼈다.

영리한 여자였다.

도청 장치라는 것쯤은 한눈에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성진은 역으로 도청 주파수를 추적하게 했다.

‘놈들이 따라오고 있어?’

- 5m 뒤의 남색 4륜 구동 suv 차량입니다.

성진이 백미러로 확인하자 과연 따라오는 차가 작게나마 보였다.

‘그 놈들이군.’

성진은 재차 지시했다.

‘놈들의 차를 정지시켜.’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곧 놈들의 남색 suv는 도로 변으로 돌진하더니 가로수를 들이박고 멈춰 섰다.

놈들이 차에서 한 놈은 택시를 잡으려 애썼지만 그 사이에 성진은 더욱 차의 속도를 올렸다.

한참이 지나서 놈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성진은 손 안에 쥐고 있던 도청기에 힘을 줬다.

검은 가루가 흩날리고 부품이 떨어져 내렸다.

“훗.”

혜영은 미소를 지었다.

“터프하신데요?”

“그래요?”

“네. 지나치게.”

“평소에는 이런 짓 안 합니다.”

“그런데 이거 도청기를 부숴도 될까요? 저 쪽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우리가 알아차린 거 눈치 챌 거 같아요.”

혜영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글쎄요? 도청기는 생각보다 고장이 잘 나는 편이라서요. 아마 고장 났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성진이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혜영도 따라 웃었지만 아직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경호원이라도 고용하세요. 어차피 도청기를 숨겼다는 건 대놓고 위협하는 겁니다. 모르는 척 해도 이미 알아차렸다는 걸 눈치 챘을지도 모릅니다.”

성진은 몰래 맞설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증권사 회장의 비서에게 도청기를 심었다는 것 자체가 적당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어떤 놈들인지는 압니까?”

“몰라요. 전혀. 다만…….”

혜영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부에 협력자가 있는 거 같아요. 그 도청기를 보니 확신이 드네요.”

“좋습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누군지 알아봐 드리죠. 그럼 회장님은 무사하신 거겠죠, 지금?”

“네. 아직까지는요.”

걱정스러워하는 혜영의 말속에 염려가 묻어났다.

“제가 비서라서 항상 가까이 있으니까요. 회장님 안위에 미치는 위협이 느껴져요.”

‘흠. 이거 비싼 인연이 되겠는데.’

박천중 회장과 인연을 맺으면 성진 자신이 득이 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만한 수고를 해줘야 할 모양이었다.

“목적이 뭔지, 누구인지. 꼭 알려주세요. 부탁드려요.”

“걱정 마시고 회장님 잘 지키세요. 혜영씨도 몸 조심하시구요.”

“네. 성진씨.”

한강 변을 달리는 차속에서 혜영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성진은 혜영의 팔을 잡았다.

“힘내요. 그리고 제가 잘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회장님과 교분을 맺기로 했는데 이런 일쯤,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런데 회장님이 저한테 도움을 청하신 건가요. 아니면 혜영씨가?”

“회장님이 보내셨어요.”

“회장님이요? 조금 의문인데요. 제가 무슨 재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저한테 일을 맡기신 거죠?”

“회장님이 그러셨어요. 성진 씨는 분명히 물건이라고. 맡은 일, 반드시 해낼 거 같다구요.”

“흐음…….”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천중 회장이 자신의 무엇을 보고 믿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을 믿었다면, 그건 박천중 회장의 복이다.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성진은 마치 점쟁이가 손님을 대하는 말투로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훗.”

혜영도 따라 웃었다.

“그럼 이제 자세한 얘기를 들어볼까요?”

“네.”

곧 혜영의 입에서 심각한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회사의 자금흐름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회장 자신의 지시들이 이행되지 않은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박천중 회장은 노해서 간부들을 소집해 닦달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막상 파헤쳐보면 책임 소지도 애매하게 꼬여 있었다.

“흐음.”

“거기에 문제가 또 하나 더 생겼어요.”

오히려 이제는 외부에서 자신의 회사를 향한 협잡의 흔적까지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자중지란에, 외부의 위협까지. 진퇴양난이군요.”

“그래요. 아마도 목표는 단 하나겠죠.”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천중 회장의 경영권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좋습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죠.”

“네. 저는 근처에 내려주세요. 좀 쉬다 들어 가려구요.”

“네, 그럼.”

성진은 차를 멈춰 세우고 혜영을 내려줬다.

“조심하세요.”

“걱정 말아요. 그런데 나보다 나이 어린 남자한테 이런 걱정 듣는 거, 처음인 거 알아요?”

혜영의 눈이 성진을 바라보며 빛을 냈다.

“그런가요?”

“네.”

고개를 끄덕인 혜영은 예의 그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럼 기다릴게요, 흑기사님.”

“하핫.”

성진은 마주 손을 흔들고 다시 차를 몰았다.

“박천중 회장이 위험하다라…….”

성진은 왠지 모르게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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