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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40화 (40/185)
  • <-- 40 회: 2권 - 기적의 마이더스 -->

    이틀이 걸린 싸움이었다.

    적들은 성진을 알고, 성진은 그들을 알았다.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더더군다나 이번 일은 성진이 차명계좌를 얻어서 행했기 때문에 그들은 성진의 존재를 알 수가 없었다.

    “후훗.”

    상황이 종료되고 성진의 계좌에 새로 들어온 돈은 무려 5800억 원.

    “후…….”

    곧바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해외 계좌를 통해 인출하고, 여러 번을 이체와 해지 요청을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다시 성진의 계좌로 이체.

    이렇게 하는 데 대략 일주일이 소요될 것이다.

    이제 성진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됐어. 완벽해.”

    이틀이 걸린 싸움 끝에 거둔 수확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번 작전세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몇몇 있을까 찜찜하기도 했다.

    ‘흠. 그래도 최대한 피해가 줄도록 노력했으니.’

    되도록 피해를 적게 끼치도록 일부러 과감한 공세를 취했다.

    성진이 알음알음 다른 사람들의 희생 속에서 조그마한 이익을 건지려 했다면 차명계좌를 만드는 불필요한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조심스럽게 숨어서 흐름 속에 묻힐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죄다 구해줄 수는 없으니까.”

    금감원에 신고를 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즉시 처리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 전에 이런 제보가 접수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성진은 자신의 이익을 취하면서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적게 가도록 하는 구도를 택했다.

    지금은 그저 성과에 만족할 차례였다.

    “그나저나 한 방에 수 천 억 원이라…….”

    경마에서 몇 억을 벌어 들였을 때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떴다.

    차츰차츰 재산이 늘어가고 주식을 알아갔지만 이렇게 인공지능 팔찌의 능력으로 엄청난 대박을 노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얻게 된 수 천 억 원이라는 액수가 성진에게는 막상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다가왔다.

    “후우…….”

    지금껏 금전적인 욕심에 크게 구애된 적은 없는 성진이었다.

    처음 돈을 벌고자 간절히 원했던 것도 그저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였고, 나중에는 아버지가 맘 편히 일하실 가게를 얻어드리는 선에서 만족했다.

    그런데 이렇게 막대한 돈을, 비록 여건을 이용한 것이지만 손쉽게 얻어내다니.

    “이건 정말 막강하다.”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뚜렷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수 천 억원이라는 액수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를 매만지며 뚫어져라 바라봤다.

    인공지능 팔찌의 능력은 차라리 신의 권능에 가까웠다.

    성진은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깨달고 있었다.

                     *      *      *

    한 달 기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성진은 플루토 투자 신탁으로 찾아갔다.

    미리 연락을 받은 박천중 회장은 기대감 어린 눈을 빛냈다.

    “어서 오라고. 내기 조건은 충족시켰나?‘

    “예. 이미 입금을 시켰습니다.”

    “그래?”

    박천중 회장은 옆에 있던 박혜영 부장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확인해봐.‘

    “예. 회장님.”

    혜영은 즉시 노트북을 펼쳤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천 억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허!”

    박천중 회장은 절로 감탄을 터트렸다.

    “기가 막히는구만. 이건 뭐, 투자의 신이구만. 마이더스의 손이야.”

    “과찬이십니다. 아무렴 개미 출신으로 이런 거대한 증권사를 세우신 회장님만 하겠습니까.”

    성진은 애써 겸손을 드러내면서 박천중 회장을 칭찬하자 껄껄 웃음소리가 나왔다.

    “허헛. 아부하는 재주도 제법이구만. 나는 뭐 운이 좋았던 거지. 그런데 자네는 정말 실력이구만. 3개월 만에 10배 수익이라.”

    박천중 회장은 웃으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혹시 확실한 소스를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던 거 아닌가?”

    성진은 미소를 지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흠. 그렇구만.”

    박천중 회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좋아. 내가 졌어. 내기는 깔끔해야지. 그래, 자네 소원이 뭔가?”

    “제 소원이라면…….”

    성진은 잠시 말을 끊었다.

    “제 소원은 박 회장님과 개인적인 교분을 맺고 싶습니다.”

    “친구라!”

    박천중 회장은 재차 물었다.

    “왜 나인가? 자네한테 이만한 능력이 있다면 내 도움은 없어도 될 거 같은데.”

    “박 회장님이 살아오신 인생에 감명을 받았다고 할까요.”

    실제로 성진은 박천중 회장의 내력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개미 출신으로 시작해서 굴지의 대형 증권사 회장까지.

    드라마틱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그것보다 박천중 회장의 배경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입지를 상승시킬 생각이었다.

    ‘갑작스럽게 성공하면 의심의 눈길이 생기지만 박천중 회장과 교분을 맺고 활동하면 가릴 수 있겠지.’

    성진 혼자 툭 튀어나와서 커다란 성공을 누리면 세상은 의혹을 보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박천중 회장 같은 사람이 그 옆에 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히려 처음에는 성진이 박천중 회장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흠. 좋아. 입에 발린 뻔한 아부 같지만 믿어주지.”

    박천중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자네 그럼 나하고 같이 일해보지 않겠나?”

    “일이요?”

    “그래. 우리 플루토 투자신탁 말일세. 자네가 원한다면, 바로 전무 자리라도 맡기고 싶군.”

    “음…….”

    역시 파격적이다.

    도리어 성진이 망설이게 될 만한 파격적 제안이었다.

    범상치 않은 행동력을 보인 박천중 회장이었지만 설마 21살밖에 안 되는 자신에게 대형 증권사의 전무 자리를 제안해 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투자를 잘하는 것과 전무직을 수행하는 건 다를 텐데요.”

    “아니. 100억을 한 달도 안 돼서 1000억원으로 만들어 온 사람한테 증권사 전무 자리를 못 맡기면 누구한테 맡기겠나?”

    박천중 회장은 이미 성진에게 확고한 믿음을 쏟고 있었다.

    “하하.”

    성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박천중 회장이 물었다.

    “왜? 싫은가?”

    “싫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하죠.”

    “그런데 왜?”

    “한참 어린 제가 맡기에는 엄청난 자리라서요. 아직 저는 한창 배워야 할 학생입니다.”

    “학생? 자네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러나?”

    박천중 회장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옆에 있던 박헤영 부장도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성진을 다시 봤다.

    “올 해 스물 한 살입니다.”

    “스물 한 살!”

    “하.”

    두 사람 모두 경악 섞인 감탄을 했다.

    “기가 막히는구만.”

    “젊은 나이에…… 대단하시군요.”

    젊다기보다는 사회적 기준으로는 어린 나이였다.

    스물 한 살의 나이로 대형 증권사의 최고 경영자를 감탄시키는 재주라니.

    박천중 회장은 더욱 더 욕심이 났다.

    “그러지 말고 우리 회사에 들어와 보게.”

    “죄송합니다.”

    거듭 사양하는 성진을 보고 박천중 회장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허허, 거 참.”

    하지만 곧 표정을 풀며 말했다.

    “자네하고는 친구가 되기로 했으니 늘 또 볼 수 있겠지. 좋아. 일단은 그렇게 해두자고.”

    “하핫.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맘에도 없는 소릴.”

    짐짓 심통을 부린 박천중 회장이 문득 박혜영 부장에게 시선이 닿았다.

    “참. 박 부장. 앞으로 이 한성진군하고 자주 연락하고 지내. 아무래도 젊은 사람끼리 통하는 게 있지 않겠어?”

    그 말에 박혜영 부장이 그 특유의 미소로 씨익 웃어 보였다.

    “저야 좋은데요. 그런데 성진 씨가 연상을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혜영의 말에 성진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핫. 박 부장님같은 미인이라면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어머, 정말이죠?”

    혜영은 그 말에 오히려 반색했다.

    “그럼 우리 종종 또 만나도록 해요. 기대할게요?”

    “네? 아 예. 하핫.”

    말을 받는 성진은 왠지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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