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39화 (39/185)

<-- 39 회: 2권 - 기적의 마이더스 -->

               *     *      *

“계약 내용은 확인 하셨나요?”

박혜영 부장이 직접 계약서 내용을 타이핑해서 출력했다.

“예. 문제없네요.”

성진은 바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내기에 직접 계약까지 하시다니. 회장님이 독특하시죠?”

웃으며 말하는 박혜영 부장이었다.

“아니요. 오히려 이런 내기를 감히 제안한 제가 특이한 녀석이죠.”

“흐응. 솔직히 한성진씨가 그런 내기를 제안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더더군다나 우리 회사 중역 분들까지 있으신 자리에서는요.”

“그런데 저를 만나는 자리에 회장님과 중역 분들이 자리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한성진 씨를 높이 사는 거겠죠.”

“그러시다면 감사한 일입니다만.”

“아무튼 좋은 결과 기대할게요.”

파이팅 포즈를 살짝 취해보이는 박혜영 부장이 흰 치아가 드러나도록 웃어 보였다.

아직 나이 20대 중반쯤 될까.

천박하지 않은 엷은 화장에 안경이 주는 지적 매력, 은근한 요염함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네. 저도 열심히 해야죠.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성진이 박헤영을 일별하고 뒤돌아서서 사무실을 나갔다.

그런 뒷모습을 보며 혜영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남자네?’

묘한 호감이 드는 남자였다.

당당한 태도, 호기로운 배짱까지.

“흐응…….”

그녀에게 성진이라는 존재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    *    *

“지금부터 주요 항목은 체크해서 바로 보고해 줘.”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정보능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 달 안에 100억 원을 열배로 만든다.

이 세상에서 주식만큼 알 수 없는 분야가 없다.

주식판에서 오래도록 높은 고수익을 올린 펀드매니저라도 과연 이런 호언장담을 할 수 있을까.

성진에게는 가능했다.

“지금부터 바로 바로 올라오는 변동 상황도 모두 체크해주고.”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출력하는 정보가 대량으로 물밀 듯이 들어왔다.

해외 경제 이슈와 국내 정치적 상황 등 얼핏 주식 시장과는 직접 관련이 없을 만한 이슈까지 예측되는 관계가 정밀하게 분석되어 나왔다.

전문 투자기관의 전문가들이 무더기로 달라붙어도 한참 걸릴 만한 성과가 척척 쏟아져 나왔다.

“음. 이건 이렇게 하고.”

인공지능 팔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면서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이익을 쌓아갔다.

100억을 10배로.

한달 안에 이런 성취를 내는 것이 성진에게는 전혀 불가능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성진의 눈에 이상 변동 상황이 들어왔다.

“응? 이거 묘하네.”

인공지능 팔찌가 바로 보고해 온 사항이었다.

“이건…….”

인공지능 팔찌가 보고해 온 회사 경영 상황과 재무구조, 실적과 전혀 반대되는 주가 곡선이었다.

잘 나가면서 나름대로 수익구조가 월등히 개선되고 있는 회사는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전혀 실속 없는 폐업 직전의 회사가 주가가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게다가 이건 마치 어서 사라고 광고하는 꼴인데.”

분기를 두고 올라갔다, 내려 갔다를 조금씩 반복했다.

하지만 주가는 결과적으로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남들이 눈치 챌까 두려워하면서도 남들을 꾀어내기 위해 애쓰는 인상.

성진은 눈이 커졌다.

“작전이구나!”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기존 작업을 유지하면서 이 종목들에 대해 모든 상황을 조사 지시했다.

“이거 결과적으로 작전세력을 감별하도록 한 셈이었군.”

투자 분석을 확대하도록 하면서 인공지능 팔찌에게 여러 가지 투자 지침을 추가로 내렸다.

그러면서도 확연히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성진에게 직접 따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거기에 필터링 된 물건들이 모두 이 작전 세력이 의심되는 품목들이었다.

작전 세력은 비정상적 상황을 유도한다.

완벽하게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면, 작전세력의 동향은 한 눈에 보이기 마련이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초반이었다면 인공지능 팔찌도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이미 물건은 홍시처럼 무르익어서 곧 터지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고.”

성진은 눈에 띄는 물건들을 눈 여겨 보았다.

생각보다 목표한 액수를 빨리 채울 수 있을 듯 했다.

                     *      *      *

일주일 후.

경제번영을 찬양하지만 그만한 그림자도 있는 시대다.

누군가가 성공하면,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았다.

노숙자라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성진은 역 근처에 널린 노숙자들 사이로 다가가 구석에 있는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요. 앉아서 돈 벌어볼 생각 있습니까?”

반쯤 빈 소주병을 아껴가며 핥던 중년의 노숙자가 성진을 돌아봤다.

“무슨 일인데 그러슈?”

“돈을 드리죠.”

성진의 지갑에서 꺼내진 두툼한 현금뭉치.

전부 5만권이다.

척 봐도 수 백 만원은 되어 보였다.

꾀죄한 몰골의 노숙자는 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무, 무슨 일입니까.”

“간단한 일입니다.”

성진은 얼굴을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

“당신 명의로 된 통장이 필요합니다.”

성진은 차명계좌를 준비하기로 했다.

‘보나마나 질 나쁜 인간들일 텐데. 귀찮은 일은 사절이야.’

경마로 인해 노출된 성진 자신 때문에 영식이 일을 당했다.

작전세력들이 결코 질이 좋은 인간일 리가 없고, 쉽게 떠도는 개인 거래 내역에 성진이 노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때문에 일을 실행하기 직전, 노숙자들 몇 명의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성진에게 매수된 노숙자들은 전부 은행으로 가서 계좌를 개설했다.

반대급부로 떨어지는 돈이 그만큼 이들에게 컸다.

동시에 성진은 이들에게 나노 로봇을 심어서 성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고, 며칠간 새로이 개설한 계좌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제약을 걸었다.

완전히 인격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일정 부분 제약을 걸 수 있는 나노 로봇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차명계좌는 5개.

“흠…….”

불법적 수단이었지만 성진은 이런 정도의 범법은 이제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데 노력을 아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결전만이 남아 있었다.

                  *     *     *

결국 작전세력이 의심되는 종목들 중 상당수는 성진의 흔들기로 순식간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상황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던 종목들은 성진의 자금이 들어가자마자 천정부지로 급등,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자금 흐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지간히 당황한 눈치군.”

차트만 봐도 작전세력의 번민이 눈에 보였다.

처음에 판이 흔들린다.

그 즉시 나서서 어떻게든 버텨볼 것인가, 아니면 판을 포기할 것인가.

후자는 죽어도 못한다.

이런 경우 대개는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믿기 마련.

설마 성진처럼 힘과 실력이 넘치도록 충만한 상대가 제대로 짚고 쳐들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공 들인 탑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려야 피해가 적을 텐데 어떻게 그러겠는가.

“미안하지만 잘 가라고.”

차트가 정점까지 상승하고, 요리가 완전히 끓어서 먹기 좋게 되었을 때.

성진은 묻어놨던 지분을 한꺼번에 매도해버렸다.

곧 무너져 내리는 그래프가 끝 갈 데를 모르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 마스터. 나머지 종목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결정하시겠습니까.

인공지능 팔찌의 물음에 성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방금처럼 최고조로 올린 다음, 가장 끝까지 올라간 순간에 모두 한꺼번에 매도해버려.”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어서 연달아 작전세력이 의심되는 종목들에 성진의 손길이 담기기 시작했다.

먹기 좋게 오름세를 보이면 또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올라갔다.

물론 반응이 시원찮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 성진은 아예 인공지능 팔찌를 이용해서 증권가에 관련 루머를 퍼트리기도 했다.

아예 아무것도 없다면 헛수고겠지만, 막상 찾아보면 분명히 징후가 있다.

결국 작전세력의 통제를 벗어난 종목은 성진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중간에 방해가 있었지만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결국 성진의 절묘한 파상 공세는 견딜 수 없었다.

“끝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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