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38화 (38/185)

<-- 38 회: 2권 - 기적의 마이더스 -->

플루토 투자신탁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

모처럼 정장을 빼입은 성진은 거울 앞에서 옷차림을 세심하게 맞췄다.

단정한 감청색 양복에 붉은색 넥타이.

커프스에 넥타이 핀 같은 자잘한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흠. 이만하면 괜찮으려나.”

이렇게까지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아직 성진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나이를 가지고 위아래를 재는 풍조가 강한 한국사회다.

편하게 캐주얼을 입고 갈까 했지만 어딜 가든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금융업계 사람들이 좋게 볼 리가 만무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여기까지는 예의를 차려줘야겠지.”

옷차림이 곧 예의인 사람들이다.

그 업종의 문화에 대해서 성진도 아는 게 있는 만큼 기본적인 건 지켜줄 생각이었다.

“성진아. 오늘 어디, 가는 거니?”

아침부터 양복을 빼입은 성진을 보고 어머니가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예. 제가 일 때문에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있어서요.”

“일?”

“잠간 알바 같은 거 해볼까 해서요.”

“무슨 알바인데 양복을 빼입고 가?”

“갔다 와서 말씀드릴게요.”

성진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아 이 녀석이 이제 다 컸는데 제 할 일이야 알아서 하겠지. 당신 너무 캐묻지 마.”

아침 일찍 일어나 수저를 드시는 아버지가 성진을 편드셨다.

“어머 당신은? 내가 못 할 말 했어요?”

어머니도 섭섭한 척 말씀하셨지만 부부간에 가벼운 사랑싸움일 뿐이었다.

이미 아들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신뢰를 보이는 성진의 부모님들은 성진이 뭘 하든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셨다.

“뭘 하든 일은 똑 부러지게 해야 한다. 남자 놈이 밖에 나가서 제 할 몫 못하면 쪽팔린 거야.”

아버지의 말씀에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버지.”

“아유, 네 아버지 말만 듣지 말고 어서 밥이나 먹어라. 나가서 일하려면 뱃속이 든든해야지.”

“그럼요, 어머니.”

성진은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일을 가볍게 마무리 지은 성진은 집으로 들어와서 부모님의 일을 가끔 돕고 있는 중이었다.

“일찍 들어올게요.”

“그래. 잘 갔다 와라 우리 아들.”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차를 출발시킨 성진은 곧 여의도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달려서 곧 여의도로 들어오자 여러 금융기관과 증권사, 은행들이 즐비했다.

성진의 차는 그 한 복판을 지나서 플루토 투자신탁이 들어서 있는 빌딩 정문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 안내 창구 여직원이 환히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고객님?”

“전 고객이 아니라 초대를 받아서 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누구한테 연락드릴까요.”

“예 담당자가…… 펀드매니저 최원기님이라고 하던데요. 한성진이라는 사람이 왔다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아! 최 부장님이요. 예, 알겠습니다.”

여주인공이 서둘러 전화를 걸고 곧 성진을 안내하러 창구로 내려오는 직원이 있었다.

젊은 남자직원은 성진을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성진씨 맞으십니까?”

“예. 제가 한성진입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따라오시죠.”

남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탄 성진은 곧 최고층인 20층에 내렸다.

“미팅 장소는 저기 복도 끝에 있는 대회의실입니다. 그럼.”

“예. 수고하셨습니다.”

마주 인사한 성진은 회의실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어. 이제 오시나?”

중년 남자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성진을 맞았다.

‘아니, 저 사람은…….’

즉시 인공지능 팔찌가 관련 인물의 프로필을 출력했다.

<플루토 투자신탁 박천중 회장>

‘회장이 여기 있을 줄이야.’

살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은 성진은 목례하고 맞은편에 있는 가까운 좌석에 앉았다.

박천중 회장 말고도 양 옆으로 다섯 명이 있었다.

왼쪽에 중년 초반쯤 되는 남자가 셋, 오른쪽에 젊은 여성과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이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자네가 요즘에 증권가에 소문이 자자한 그 신성인가?”

뜬금없는 칭찬에 성진은 일단 겸손부터 비쳤다.

“신성이라니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최근에야 자신의 명성이 주식판에 퍼졌다는 걸 알게 된 상황이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게 제법 조심했는데 좁은 주식 세계에서 고수익을 꾸준히 올리는 개미의 존재는 의외로 쉽게 눈에 띄는 존재인 모양이었다.

“겸손인가? 하하. 뭐가 어쨌든 간에 자네 생각보다 내가 자네를 오래 지켜봤어.”

“아, 예.”

“자네 실력은 말 할 나위가 없더구만. 레귤러 펀드매니저도 올리기 힘든 고수익률을 항상 유지하고 말이야.”

박천중 회장의 칭찬은 계속 이어졌다.

성진은 적당히 겸손을 떨까 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제 투자 실적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성진의 질문에 박천중 회장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아…….”

그렇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여러 증권사에서 성진을 스카웃하려 했다는 건, 어떤 경로로든 성진의 투자 실적이 이미 여러 군데 노출이 됐다는 거다.

그게 설사 불법적인 경로로 노출이 됐다 한들, 이미 성진의 존재는 주식판에 알려졌다.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기분 나빠하진 말게. 이 주식판에 개인 거래 내역 쉽게 나도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니까. 심지어는 재벌 가족들 거래 내역도 나다니는 판국이야.”

“음, 예.”

“그나저나 우리 좀 더 건설적인 얘기를 하지. 여기 모인 다른 사람들, 전부 우리 회사 중역들일세.”

좌중을 둘러본 성진은 다시 한 번 가볍게 목례 했다.

“실력 있는 젊은 친구라서 기대가 크다네. 박찬기일세.”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사람 좋은 인상을 하며 허허 웃는 표정이 푸근해 보였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마저 인사하는데 젊은 여성이 나섰다.

얇은 검정 뿔테안경, 머리를 뒤로 땋아서 짧게 기른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희디 흰 피부가 검은색 안경과 대비되는 뚜렷한 이목구비가 제법 미인상이었다.

“박찬기 전무님은 방금 들으셨고, 저는 부장 박혜영입니다. 옆에 계신 이 분은 서연국 실장님이십니다,”

여성의 옆에 앉아 있던 젊은 남성이 인사했다.

“서연국입니다.”

“그리고 맞은 편에 계신 분들은 한신영 상무님, 박해도 이사님이십니다.”

“한신영일세.”

“박해도일세.”

“예.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회장인 박천중이 직접 성진을 만나고 있기 때문인지 성진의 영입은 거의 기정사실이 된 모양이었다.

플루토 투자신탁 본사의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진은 담담하게 마주 인사했다.

‘허허, 이 놈 봐라.’

박천중 사장은 그 모습이 이채로웠다.

나이도 한참 어린 녀석이 이 나라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는 증권사 최고 간부들을 겨우 외부에서 스카웃 해 온 개미 출신 앞에 우르르 끌고 오는 법은 없다.

그것이 과례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것은 성진의 뛰어난 투자 실적을 보고 마음이 크게 동했기 때문이었다.

전체 액수는 몇 천 억을 주무른다는 슈퍼 개미들에 비해서 적다면 적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더없이 실하다.

천부적인 투자 감각의 정수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놈은 난 놈인가, 아닌가.’

박천중 회장은 대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질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그건 확인했다.

나머지는 머리통 속에 혼이 제대로 들어있는 가다.

심장이 쇠심줄처럼 질기고 단단해야 한다.

흔들림이 없는 놈.

최악의, 최악까지 몰려도 끝내 판을 뚫고 살아남는 놈.

성진이 그런 놈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오늘, 회사 최고 간부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단 한 점 떨림 없이 느긋하게 앉아있는 성진을 봤다.

“하핫!”

웃음을 터트린 박천중 회장은 양 손으로 탁상을 내리쳤다.

“좋아!”

자리에서 일어선 박천중 회장의 행동에 다른 간부들이 영문을 몰라 눈치를 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천중 회장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성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질구레한 거 다 됐어. 내가 봐야 할 건 다 봤구만. 일단, 간단한 고용계약서 하나 쓰고, 자네 구좌로 100억 넣어주지. 불릴 수 있는 데까지 불려봐. 수익의 3할은 자네 줄 테니까.”

갑자기 벌어지는 회장의 파격.

하지만 다른 간부들은 눈치만 보며 말이 없었다.

익숙한 눈치가 이미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음. 좋습니다.”

성진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거기에 조건 하나를 달죠.”

“조건?”

박천중 회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제가 한달 내에 그 100억을 10배로 불리면 어떻겠습니까.”

“오호.”

박천중 회장은 성진을 노려봤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 나랑 내기를 하자고?”

“예. 만약에 제가 그 10배 수익을 못 미치면 제가 평생 회장님 수족 노릇을 하겠습니다.

“자네같은 수족을 평생 부릴만한 가치가 있나?”

“없을 거 같으십니까?”

성진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호오.”

박천중 회장도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성진이 이렇게까지 과감한 제안을 하는 것도, 자신에게 급격한 호감을 표시하는 박천중 회장의 심리 상태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걸 인연으로 만들어볼까.’

박천중 회장의 프로필을 통해서 평소 좋아하는 인간관계나 추구하는 경영방식을 분석한 성진은 그가 좋아할만한 성향을 일부러 드러냈다.

“좋아! 그렇다면 자네가 이기면 어쩔 건가? 나를 평생 자네 수족으로 부릴 건가?”

“설마요. 회장님께는 그저 제가 자그마한 소원을 빌고 싶습니다.”

“소원을 빈다.”

박천중 회장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좋아! 자네 뜻대로 해보게. 하지만, 내기에 대해서는 계약서로 남겨야겠지? 구좌에 100억 넣어줄 테니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게. 계약서로 작성하고 받아가라고.”

“예. 그러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게.”

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하고 다시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전무 박찬기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저 친구 뭘 보고 그런 제안을 하신 겁니까.”

“음…… 저 놈은 나를 제법 아는 거 같더군.”

박천중 회장은 껄껄 웃으며 재차 말했다.

“그리고 나도 저 놈을 알 거 같구만. 저 놈 크게 될 놈이야.”

다른 간부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두고 보면 알아. 허허허허.”

박천중 회장은 껄껄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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