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37화 (37/185)
  • <-- 37 회: 2권 - 토벌 -->

                      *    *    *

    “으음.”

    옆구리에 스친 상처를 매만진 성진은 신음을 흘렸다.

    갑자기 날아든 총탄이었다.

    급소는 피했지만 그것조차 천만다행이었다.

    완전히는 피할 수 없었다.

    총을 뺐어서 확인해 보니 미군용 콜트 권총이었다.

    영화에 많이 나오는 바로 그 총이다.

    “노인네가 쓰기에는 큰데.”

    반동이 큰 45구경이라 최형배가 쓰기에는 맞지 않는 총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살았다.

    조금이라도 조준이 정확하거나 능숙한 총잡이였다면 무사했을지 자신이 없다.

    “설마 총을 쓸 줄이야.”

    한국이 총기 청정구역이라고 하지만 불법과 폭력으로 밥벌이를 하는 놈들이다.

    한 두 명쯤이라도 총을 쓸 걸 생각했다면 방탄복이라도 입었을 텐데 실력을 너무 과신했다.

    “역시 경험 부족은 어쩔 수 없구만.”

    뼈저린 배움이다.

    하지만 고비는 다 끝났고 성진의 눈앞에 무력하게 사로잡힌 최형배는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먼저 물어볼게, 얼마 전에 경마하고 관련이 돼서 사람을 납치한 적 있지?”

    “납치?”

    최형배는 눈살을 찌푸리다 낮게 비웃음을 흘렸다.

    “이봐. 일선에서 하는 일을 내가 일일이 다 알 것 같나?”

    시치미를 뗐지만 성진은 최형배의 머리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 기억나시면서 시치미 떼서 뭐하게요? 아무튼 그때 왜 그렇게 엄한 사람을 납치까지 한 거지? 좀 더 신사적으로 정중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았나?”

    성진이 다 아는 눈치로 말하자 최형배는 돌연 표정을 바꿨다.

    “네 놈이 관련이라도 있냐? 근데 신사적? 우리가 왜?”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최형배의 태도에 성진은 어이가 없었다.

    “왜라니?”

    “비즈니스야.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를…… 그래, 신사적으로 접근한다고? 고작 경마 도박꾼 놈한테?”

    건달이 고개 숙이는 놈은 권력을 가진 놈뿐이다.

    최형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읽은 성진은 구역질이 치밀었다.

    이놈들은 본질적으로 약자 앞에 강하고, 강자 앞에 약한 놈들이었다.

    권력이 있는 자.

    혹은 그 권력의 후광을 업은 자가 아니면 무조건 밟고 때리고 짓밟는다.

    그게 이들한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진리였다.

    “진짜 인간쓰레기 놈들이구나.”

    지금까지 왜 이 놈들이 굳이 영식을 납치해서 성진에게 협박을 날렸는지 궁금했다.

    사업제안을 하자면 좀 더 정중하게 제안을 건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 굳이 폭력을 행사한 것일까.

    그것이 큰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고작 경마 도박꾼한테 예의를 차리는 행위 자체가 굴욕이었던 것이다.

    무조건 힘으로 굴복시키려 했다.

    그게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니까.

    “하…….”

    최형배는 분노한 성진 앞에서 혀를 찼다.

    “그게 그렇게 궁금했었나? 고작 그게?”

    최형배는 눈치를 차리지 못하고 계속 입을 놀렸다.

    “그러지 말고 이건 어떤가.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해. 내가 있는 대로 한 재산 털어서 보상해 주지. 대신 자네 나하고 손을 잡는 게 어때? 경마꾼 놈이야 그렇다 쳐도, 자네 주먹 솜씨가 마음에 드는구만.”

    “입 닥쳐.”

    “어허. 이거 참 젊은 사람이 말귀를..”

    듣다 못한 성진은 최형배의 하물을 움켜잡고 목소리를 깔았다.

    “노년에 배변주머니 달고 살지 않으려면 입 닥치라고.”

    “흡…….”

    협박이 제대로 먹혔는지 자신만만하던 최형배의 목소리가 가느다래졌다.

    “이, 이봐…… 날 건드리면 후회할 거야. 나한테도 뒷배가 있어.”

    “입 닥쳐!”

    성진의 서슬이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흐읏…….”

    최형배는 유들유들한 뻔뻔함을 잃고 그대로 오그라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다른 잘못에 대해 묻기 전에…….”

    성진의 손이 최형배의 어깨를 짚었다.

    “약간의 고통을 경험하라고.”

    그리고 진기를 불어넣었다.

                           *   *   *

    중앙 경찰청 정문 앞에 어느 날 넋이 나간 노인이 나타났다.

    다만 특이한 것은 a4용지 몇 권에 달하는 서류뭉치가 같이 놓여 있었던 점이다.

    정문을 지키는 의경들이 발견하고 상황을 보고하자 형사들이 뛰어 내려왔다.

    같이 놓여 있던 서류들은 모두 중대한 범죄 사실에 대한 고발장이었다.

    뒤이어서 노인이 제대로 정신을 차렸고, 서류가 모두 노인의 범죄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에 그 자리에서 현장 체포 되었다.

    체포된 노인의 이름은 최형배였다.

    흑돼지파의 우두머리로 밝혀진 최형배는 확실한 증거에 정식으로 기소당했고, 핵심 조직 간부들까지 줄줄이 체포당해서 곧 본격적인 검찰 심문을 앞두고 있었다.

    일간 신문에서 짤막하게 다뤄진 기사 내용이었다.

    기사를 확인한 성진은 신문을 접었다.

    “이걸로 완전히 끝난 건가.”

    최형배에게 고통을 가해서 흑돼지파의 모든 범죄에 관련된 증거와 서류들을 손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최형배의 두뇌 피질에 나노 로봇을 주입했다.

    직접 지시한 범죄 사실에 대해 시인하지 않으면 거짓을 나타내는 두뇌 반응을 판별, 신경 계통에 엄청난 고통이 가해질 것이다.

    심문이 시작되면 최형배로서는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다보면 도저히 실토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잘 한 거겠지. 증거도 완벽하고, 본인이 진술도 할 테니.”

    직접 놈들에게 보복을 가하기보다 공권력에 맡기길 택했다.

    그게 순리라고 생각했다.

    성진이 예상치 못했던 것은 이 일을 가지고 정의의 협객이 나타났다는 식의 소문이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 별개로 성진이 종종 나타나 불량배들을 쓰러뜨리곤 했던 거리에는 깡패 사냥꾼이라는 식으로 전설이 돌고 있었다.

    “하핫. 소문이라는 게 참.”

    인터넷에서 그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당사자인 성진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경환이나 문식같이 직접 영식과 연루됐던 자들도 직접 응분의 조치를 취했다.

    그렇게 성진은 차츰 이 일을 마음 한 편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직접 나서서 무력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부담도 느꼈다.

    총의 위력 앞에서 목숨이 위급해져보니 절감하는 사실이 있었다.

    ‘난 무적이 아니다.’

    인공지능의 도움이 받쳐줘도 살과 뼈로 이루어진 사람일 뿐.

    폭력을 사용하는 데 따라오는 위험에 눈을 뜬 것이다.

    가슴 가득 채워지기만 했던 자신감에 긴장과 고민이 한 조각 끼워졌다.

    성진은 이제 직접적인 무력보다 다른 힘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를 느꼈다.

    “최근 주식거래 현황 보고해줘.”

    성진의 지시에 인공지능 팔찌가 보고 목록을 출력했다.

    - 이번 달 목표 수익액수에 도달한 기간은 16일입니다.

    총수익 경과보고 직후 가지각색의 투자 테마와 언론에 노출되는 투자 정보가 서로 다른 카테고리로 출력됐다.

    거기에 대해 일일이 실제 근거를 바탕으로 가공된 분석 자료도 첨부됐다.

    “흐음.. 이건 다음에 투자하고…….”

    주식시장.

    이 말 많고 탈 많은 동네의 바깥 테두리에서 제일 귀하게 취급되는 품목이 정보다.

    그 중에서도 확실한 신빙성이 있는 정보는 부르는 게 값이다.

    이런 정보를 넘치도록 제공받고 있으니 실로 성진은 엄청난 정보의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만 해두자고.”

    - 알겠습니다, 마스터.

    웬만한 대기업과 투자재단의 정보 분석력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성진은 엄청난 거액의 성과를 갑자기 보유하면 느껴질 부담이 염려스러워서 항상 100만원으로 시작, 한 번 수익이 5억에 이르면 거래를 종료하도록 제한했다.

    한창 수익관리 도표를 보고 있는데 생각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 한성진 씨 되십니까?

    목소리에 고저가 없는 낮은 울림.

    사무적인 예의를 차리는 말투였다.

    “예. 접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성진 고객님께서 이용하고 계신 상우은행의 박세혁 대리입니다.

    “아, 예.”

    상우은행이라면 성진의 주식 거래 은행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이시죠?”

    -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고객님을 뵙고자 하는 여러 요청이 들어와서 전화 드리게 되었습니다.

    “요청이요?”

    - 예. 증권 투자 기업 쪽에서 여러 군데 연락이 왔는데 승낙하신다면 제가 자세한 사항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동의하시면 전화로…….

    “음..”

    성진은 잠시 생각했다.

    ‘무슨 일인가.’

    하지만 짐작 가는 바가 없지도 않았다.

    “좋습니다. 메일 주소 보내드리죠.”

    - 예. 고객님께서 절대 불쾌하실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얼마 안 있어서 또 비슷한 전화가 걸렸다.

    - 양진은행입니다.

    이번에도 성진의 또 다른 주식거래 은행이었다.

    - 다름이 아니라 증권 거래사 몇 군데에서 고객님을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아, 예.”

    성진은 대충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성진의 메일 주소로 들어온 메일들이 모두  국내 유수의 증권사가 발송한 메일들이었다.

    “귀하를 모시고 한국 증권계의 상황에 대해서…….”

    제목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 한번 만납시다.

    증권사들이 뭐가 아쉬워서 성진과 담소를 나누려 할까.

    명백한 스카웃 제의였다.

    나름 몸 사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메일을 받다니.

    입맛을 다셨다.

    “어떻게 나를 안 거지.”

    꾸준한 수익을 올려붙인 탓일까.

    성진 자신이 어떻게 노출이 됐는지부터가 신기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거절할 수도 있다.

    “경험삼아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그렇다면 몇 군데 돌아볼까.

    “여러 군데 간 보는 건 취향이 아니고.”

    성진은 제안을 보낸 증권사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한 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플루토 투자신탁.

    초기 자본금 몇 백 억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수조원의 자금을 예치한 손에 꼽히는 대규모 증권 투자사였다.

    더군다나 사장은 개미(개인 투자자) 출신.

    성진은 최근에 급성장을 해온 그 독특한 이력에 관심이 끌렸다.

    “음…….”

    성진은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만나볼까?”

                     *     *     *

    최형배의 심문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끝나버렸다.

    문제가 생겼다.

    굳이 나오지 않았어야 할 정보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

    젊은 담당 검사는 심문을 끊고 급히 취조실을 나왔다.

    주변을 물리고 철저하게 확인한 뒤 휴대폰을 꺼냈다.

    “예. 접니다. 예, 예.”

    지체 높은 검사답지 않게 말투는 공손했다.

    “예. 당부하신 대로 처리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검사는 손수건으로 땀이 흥건해진 이마를 닦았다.

    “후우. 대형사고 터질 뻔 했네.”

    그러고서 창문으로 비치는 최형배의 넋이 나간 표정을 살폈다.

    “저게 미쳤나? 왜 할 말 못 할 말을 안 가려.”

    처음부터 이상했다.

    최형배가 잡혀 들어온 경로부터가 수상쩍은 일이었다.

    거기에 질문을 던지면 처음에는 끙끙 앓는 시늉을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고 묻는 말마다 이실직고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최형배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였다.

    굳이 그가 최형배의 담당 검사가 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혓바닥이 목숨도 끊어내는 거 뻔히 알 텐데…….”

    하필 말해선 안 되는 이름이 나왔다.

    “단단히 미쳤구만…….”

    어쨌거나 이 상황이 자신한테 손해는 아니다.

    “간만에 공은 세웠으니.”

    검사는 넥타이를 살짝 풀고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밖으로 나가자 문 앞에 부하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심문 끝났으니까 구치소로 돌려보내요.”

    “예. 검사님.”

    지시를 내린 검사는 담배를 훅 빨아마셨다.

    목구멍을 가득 채우는 타르 연기가 오늘은 유독 맛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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