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36화 (36/185)

<-- 36 회: 2권 - 토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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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으으으아아아…….”

반쯤 혀가 꼬인 채로 온 몸을 부들부들 떠는 문식은 반쯤 정신이 나갔다.

근육을 끊고, 뼈를 어긋나게 한다.

전설적인 고문 수법으로 회자되는 분근착골.

아마도 그와 비슷할 고통이 문식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별로 몸에 이상은 없을 겁니다. 장문식씨.”

성진은 고통을 멎게 해주면서 눈을 찡그렸다.

직접 고통을 가해서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후우……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발경을 깨치면서 부수적인 소득으로 따라온 셈이었다.

이는 성진이 일반적인 수련을 통해 얻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발경의 작용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인공지능 팔찌가 조사하다, 반대로 순전히 고통만을 극대화시켜 가하는 작용법을 착안한 것이다.

결국 10분을 못 견디고 문식은 최형배의 소재를 댔다.

가족까지 희생시키겠다는 장담이 무색하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앞에서 장문식의 충성심은 쉽게 사라졌다.

문식의 생각까지 읽어 들인 성진은 그 말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했다.

“빨리 말해서 고맙습니다. 당신이 말했다는 건 꼭 비밀로 지키지. 그리고 당신 휴대폰은 내가 아까 꺼내서 부숴버렸으니까 연락할 방법은 전혀 없어.”

성진은 문식에게 재갈을 물린 다음 성진 기둥에 묶어서 앉혀 두고 창고 문을 나섰다.

 “그럼 잘 있으세요. 일 끝내고 와서 바로 풀어 줄 테니.”

사실 이렇게 번잡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흑돼지파의 두목 최형배가 심복을 제외하면 자신의 소재지를 비밀로 하는 유별난 조심성이 없었다면 말이다.

“도착하면 새벽이려나.”

성진은 그 즉시 차를 몰았다.

수도권 도로를 빠져나와서 바로 영남권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     *     *

흑돼지파 두목 최형배는 치밀하게 몸조심을 하기로 소문난 자였다.

몸을 사리는 건 폭력조직의 두목들이 대개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최형배는 정도가 심했다.

심복 장문식을 비롯해서 몇몇 유력한 중간 두목들을 제외하면 자신의 일정한 거주지나 소재를 전혀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서울 일부를 오랫동안 장악, 유지해 오면서 흑돼지파에 이를 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비교적 젊고 날랜 조직원들 중 믿음이 가는 인원들로 자기 주변을 지키게 해놓고 최형배는 유유자적 노년을 즐겼다.

부산 지역의 노른자위 건물 몇 채를 사서 마음이 동할 때마다 젊은 여자를 불러들였다.

지역 사회에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을 만큼 은밀하게 놀았고, 그렇다고 노는 데 불편이 생길 만큼 외출을 꺼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정력은 일정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은 최형배는 손녀 뻘 되는 젊은 여자의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잠에 빠져 있었다.

그때 뭔가 그의 귓전을 간질이는 소음이 잠을 깨웠다.

방음 설비를 한 침실인데도 들릴 정도라면 꽤나 큰 소리다.

“응?”

가뜩이나 새벽잠이 쉽게 깨는 최형배는 자신의 단잠을 깨운 일이 뭔가 싶어 가운을 걸치고 방문을 열었다.

“무슨 소란이야 이 자식들아!”

“회, 회장님!”

당황한 부하들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최형배가 거실로 나가 살피는데 비명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해운대가 훤히 내려 보이는 펜트하우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배경으로 펼쳐진 반대쪽 발코니에 부하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당황해서 서 있는 최형배에게 젊은 조직원들이 다급히 말했다.

“회장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 아래층 애들까지 다 뚫렸습니다. 여기는 저희가 막겠습니다.”

“뭐? 뭐가 뚫렸다고?”

그 와중에 비명 소리와 함께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렬로 길게 설계된 펜트하우스 반대쪽에서 픽픽 쓰러지는 부하들이 눈에 보인 최형배는 얼굴이 벌게졌다.

“아니 이런…….”

“회장님! 피하셔야 합니다.”

“피하면 어디로 피해?”

옥상까지 다 뚫렸는데 아래로 튀면 어디로 튈까.

최형배는 안방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 옷장을 뒤졌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마저 잠이 깬 어린 여자가 옷장을 뒤지는 최형배를 보고 애교를 떨었다.

“아이 회장님. 이 오밤중에 뭘 그리 찾고 계세요.”

“입 닥쳐!”

“아니 회장님 섭섭하게…… 오, 옴마야.”

여자는 최형배가 손에 쥔 물건을 보고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 물건은 바로 묵직하게 생긴 은회색 권총이었다.

“어느 놈들이 처들어온지는 몰라도 머리통에 구멍을 내버리겠어.”

밀매상이 말하기로는 미군용 제식 물품을 빼돌렸다는 베레타 권총이었다.

“죽여 버리겠어.”

손 안에 든 총을 정말로 쏠 수 있는 인간이 최형배였다.

그에게 살인이라는 건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죽이면 내가 살고,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안방 문을 박차고 다시 총구를 앞세우며 튀어나오는데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몇 남아있는 녀석들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이 자식들아 뭘 하는 거야!”

열이 뻗은 최형배가 소리를 쳤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살짝 눈치를 볼 뿐 도통 앞으로 튀어나가는 놈이 없었다.

“이 놈들이?”

수시로 돈 뭉텅이를 던져줄 때는 간도 빼줄 듯 살랑대더니 중요한 순간에 몸을 사리는 꼴을 보고 최형배는 속이 터졌다.

“얼마나 왔길래 이 꼴이야?”

펜트하우스가 위치한 빌딩을 지키는 아이들이 전체 50명이나 된다.

그런데 그 숫자가 다 뚫려서 이 지경이 되다니.

“그게 회장님…… 딱 한 놈입니다.”

“한 놈?”

반문하는 사이에 복도 끝에서 사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최형배는 재빨리 권총을 겨눴다.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고, 사람 형상이 모퉁이에서 나오는 순간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움직였다.

“뒈져!”

앞뒤 재지 않고 최형배는 총을 갈겼다.

총탄이 발사된 짧은 순간.

그 총탄이 향한 목표물.

성진의 머릿속에서 인공지능 팔찌의 경고음이 울렸다.

- 비상 위험 상황 인식!

- 인지능력을 긴급 최대 가속하겠습니다,

성진의 의사와 상관없이 비상 기능이 작동했다.

눈앞의 모든 사물이 느려졌다.

그 와중에 유독 총구에서 발사된 총탄만이 빠르게 다가왔다.

눈앞에 다가오는 총탄을 악을 쓰며 피했지만 급소를 간신히 피할 뿐.

총탄이 옆구리 끝에 걸려서 피보라를 뿜으며 뚫고 나아간다.

“크윽!”

총탄이 스쳐가자 강제 인지가속이 차츰 줄어들었다.

그 반대급부로 급격히 몰려오는 부작용에 머리가 타오를 듯 아파왔다.

하지만 지금 의식을 놓으면 안 된다.

‘죽는다.’

총격의 위협을 몸으로 느끼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으아아아!”

기합을 내지르며 성진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다른 놈들이 성진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적수가 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이 자식!”

최형배가 총을 재차 겨눴지만 부하들과 뒤엉켜서 제대로 조준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마지막 한명까지 쓰러지고 성진만 남은 순간,

“죽어라!”

팔을 처들고 겨냥했지만 총은 최형배의 손에서 강제로 뺏겨졌다.

“흐악!”

쏜살같이 옆으로 다가선 성진을 보고 최형배가 비명을 질렀다.

도저히 피할 틈도 없었다.

눈이 보고, 몸이 따라 반응하기 전에 어느새 목이 잡혀 버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최형배는 무력한 인질이 되어 버렸다.

“최형배씨?”

마스크에 선글라스, 비니 모자.

얼굴을 몽땅 가린 성진은 권총을 겨누는 대신 장갑을 낀 채 탄알집을 분해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끄으…… 누, 누구냐?”

“그건 알아서 뭐하게.”

성진은 최형배의 목을 가볍게 목을 수도로 쳐서 기절시켰다.

그때 안방에서 울음 섞인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여자 울음소리였다.

젊은 여자가 왜 최형배의 침실에 있을까.

성진은 상황을 알아차렸다.

“거기 방안에 있는 여자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여기 남아 있으면 많이 힘들어 질 겁니다.”

들어가면 민망한 꼴을 볼 것 같아 성진은 한마디 말을 남기고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전리품이 된 최형배를 어깨에 들처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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