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35화 (35/185)

<-- 35 회: 2권 - 토벌 -->

청춘과 인생의 태반을 바친 조직.

흑돼지파에 속한 조직원의 머릿수가 어느덧, 대충 500명을 넘어갔을 때였다.

문식은 드디어 이 악랄한 주먹 세계에서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실감했다.

지역 일대를 장악하다시피 한 계파의 간부.

소위 이 지역의 족보라고 할 만한 급수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섰다.

그럼 문식은 딱 이 정도에 만족할까?

“내가 겨우 여기까지 해먹고 말아야겠냐?”

직속 부하들을 눈앞에 일렬 횡대로 집합시킨 문식은 이를 갈았다.

“내가 큰형님, 아니 회장님한테 장담을 했다. 경환이 그 멍청한 놈이 말아먹은 그 건,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우리 조직이 야심차게 아주 거금을 투자한 그 경마 프로젝트! 그거 살려내겠다고 말이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문식 앞에서 다른 조직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부동 자세로 꼼짝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 하는 모양새를 멀리서 살피고 있는 눈길이 있었다.

                       *   *   *

“아주 꼴깝을 하는군.”

성진은 문식의 하는 행동이 우스웠다.

인공지능 팔찌의 스캔으로 살피고 있는 깡패들의 건물은 겉보기에도 굉장히 번듯하다.

신축된 지 얼마 안 되는 5층짜리 상가 건물.

그 지상층을 사무실로 쓰고 지하에는 술집을 겸한 형태의 위장한 성매매업소가 있었다.

“얼마나 나쁜 짓을 해서 저런 건물을 지었으려나.”

그간 인공지능 팔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이 지역 일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흑돼지파는 꽤 오랜 세월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 온 조직이었다.

대략 추정하는 기간만 약 20년.

그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범죄조직은 오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제 슬슬 출발해볼까.”

성진은 타고 있던 차에 시동을 넣었다.

문식이 나오기 전에 미리 기다리고 있기 위해서였다.

독사대갈이라는 별명의 장문식.

악랄하기로 소문난 깡패인 놈은 우습게도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서울 내 주상복합지구에 살고 있었다.

놈의 빌딩 건물에서 해당 주상복합지구로 향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도로 노선이 있다.

그 도로 근처로 차를 몰아서 미리 도착한 성진은 차를 다른 곳에 주차시켜놓고 커브 구간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 후.

여러 차량이 다가오면서 그 와중에 검은색 세단이 눈에 띄었다.

미리 눈여겨봤던 문식의 대형 세단이 불빛을 비추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는 건가?’

눈앞이 커브 구간이기에 차는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속도가 줄어들면서 가까이 다가오자 성진은 차 안에 타고 있는 문식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그 즉시 성진은 도로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 저 차를 해킹해서 도로에서 벗어나게 해.”

- 알겠습니다, 마스터.

도로 변에 서 있던 성진이 팔찌를 차고 있던 손을 문식의 차를 향해 쭉 뻗었다.

문식이 타고 있던 차는 커브 구간에 접어들면서 방향을 꺾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차들은 멀쩡히 잘만 달리며 구간을 빠져나갔지만 문식의 차는 고스란히 직진을 할 뿐이었다.

“뭐야, 임마! 너 미쳤어?”

문식이 눈을 부라렸지만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부하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모, 모르겠습니다. 운전대가 말을 안 듣습니다. 브레이크도…… 으악!”

“우아아아악!”

차 안에 타고 있던 녀석들의 비명을 담고 차는 도로를 벗어나 외곽 논밭으로 빠져버렸다.

충격으로 시트에서 나동그라진 문식은 다른 부하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몸을 일으켰다.

“이 새끼야!”

열이 오른 문식은 운전대를 붙잡은 부하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뭐하는 놈이야! 뒤지려면 혼자 뒤질 것이지 감히!”

마구잡이로 후려치는 문식 앞에서 운전을 하던 부하는 양 손을 빌며 사정했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차가 갑자기 말을 안 들어서 그만…….”

“차가 말을 안 들어? 그게 변명이냐? 오냐, 네가 오늘 아주 그냥 날을 제대로 잡았다.”

팔을 걷어 붙이는 문식이 주먹을 올릴 때였다.

이상한 불길함이 온 몸을 싸늘하게 훑고 내려갔다.

“헛.”

재빨리 뒤를 돌아봤을 때 모자에 마스크, 선글라스까지 낀 성진이 지척에 나타났다.

놀란 문식이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성진의 손바닥이 문식의 배를 때렸다.

고작 손바닥을 맞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다.

“어엉?”

의지와 상관없이 몸뚱이가 무너져 내린다.

문식은 분노보다도 어이가 없었다.

놈의 손이 스칠 때마다 부하들도 픽픽 쓰러졌다.

뜬금없이 나타나서 부하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자신까지 마비상태로 만들었다.

‘이런, 망할.’

조직이 커나가면서 행동대장으로 항시 선봉에 섰다.

그만큼 원한도 많이 쌓았다.

길 가다 칼 맞는다는 말은 문식에겐 농담이 아니었다.

‘청부꾼인가?’

당장 온 몸에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고통보다 이렇게 순식간에 일을 해치우는 수준을 보면 분명 놈이 전문가일 거라는 생각이 닿았다.

마비된 문식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성진은 냉정한 눈길로 문식을 내려 봤다.

“당신하고는 할 얘기가 많으니까 장소를 옮깁시다.”

성진은 바로 문식을 업고 미리 다른 쪽에 주차된 차를 찾았다.

그 흔하다는 CCTV도 없는 농촌 도로.

대형 폭력조직인 흑돼지파의 행동대장이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를 당하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트렁크에 문식을 실은 성진은 한참 길을 달려서 교외의 허름한 창고 앞에 차를 댔다.

몇 십 년 전에 지어져서 곡물 등을 쌓아놓던 창고였지만 농촌 인구가 줄어들고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면서 아예 방치되다시피 한 건물이었다.

성진은 트렁크를 열어서 다시 문식을 들쳐 업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문식의 손발을 묶은 성진은 잠시 후 문식의 몸상태가 진정이 되자 곧바로 심문을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짐작이 되나?”

문식은 악에 받힌 채로 고함만 지를 뿐이었다.

“네깐 놈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폭력조직의 간부 노릇이라도 했기 때문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소리를 지를 배짱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일전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약간이나마 감정이 쌓인 성진이었다.

가볍게 혼을 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성진은 다시 손을 뻗어서 이번에는 문식의 허벅지를 만졌다.

“흡!”

성진의 손이 가볍게 닿았을 뿐인데 허벅지 전체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파왔다.

이를 악물면서 고통을 견디는 문식을 보면서 성진은 대놓고 협박을 했다.

“오늘 쓸데없이 버티면 당신은 당장 죽어. 어디 그것뿐인가? 당신 가족들도 남김없이 황천 따라 보내 줄께. 내가 장담하지.”

“으으…….”

말은 살벌했지만 성진의 협박은 그냥 공수표였다.

목적은 문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알아내야 할 것이 문식에게는 심각한 일이기에 협박부터 던졌다.

이제 두 살 난 딸을 뒤늦게 얻은 문식은 어지간히 갓 난 자식을 이뻐한다는 소문이었다.

가족을 거론하는 협박을 하면 마음에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차피 생각만 떠오르게 하면 되니까.’

문식이 심적 부담과 압박을 느끼다 성진의 질문을 받으면 생각으로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 즉시 뇌파를 읽어 들일 수 있다.

그렇게만 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즉효였는지 문식은 심각하게 동요했다.

“뭐, 뭐냐!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잔뜩 흥분해서 악을 쓰는 문식을 보고 성진은 일이 쉬워질 것을 느꼈다.

“원하는 건 딱 하나다. 흑돼지파 최고 두목. 최형배라고 했나? 그 인간 어딨어?”

“그, 그것이…….”

당황하는 문식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두목의 행방을 찾는 킬러라고 자신을 단정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혼자 벌이는 건지, 뒷 배경이 따로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성진은 그 안에서 공통점을 딱 한가지 느꼈다.

‘불안? 아니, 공포에 가까운가.’

문식은 심각하게 동요했다.

하지만 끝내 문식이 단호히 뱉은 말은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죽여라.”

의외의 대답에 성진은 놀랐다.

“너 하나 죽어서 끝나는 게 아니야. 가족도 말인가?”

“못난 부모, 못난 남편 만난 탓이지. 맘대로 해라. 대신에.”

문식은 독기 서린 눈으로 성진을 노려봤다.

“내가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 놈을 씹어 먹어버릴 거다.”

“하핫.”

성진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친놈.”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숭고한 목적이 있을 때는 의연하게 비친다.

그 옛날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들이 그랬다.

하지만 가족을 가지고 위협하는 데 결국 한다는 말이 조직을 위해서 다 죽이라는 말이다.

성진은 기가 막혔다.

“역시 깡패는 깡패였구만.”

“맘대로 지껄여라.”

“그게 댁들이 생각하는 멋인가? 의리 지키려고 가족이랑 같이 죽는 거?”

“맘대로 지껄여.”

담담하게 말하는 문식을 보니 더 기가 막힌다.

‘이거 내가 꼭 악당이 된 기분인데.’

하지만 눈앞에 있는 놈은 사람 목숨을 가지고 숱하게 장난을 친 천하의 인간 말종이다.

자신은 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본질은 가족의 목숨마저 폭력조직을 위해 바치는 놈이었다.

성진은 순간 깨달았다.

악에는 악으로.

독에는 독으로.

“그래요. 댁 수준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지. 내가 잘못 생각했네.”

문식의 어깨를 짚으면서 성진은 싸늘히 웃으며 속삭였다.

“혹시, 분근착골이라고 아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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