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회: 2권 - 본격적인 수련 -->
‘성과가 좀 있어?’
- 그렇습니다, 마스터. 모든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 관련 정보를 전송하겠습니다.
그 즉시, 성진의 머리속으로 발경의 발동에 관한 모든 정보들이 입력되었다.
관장의 신체 곳곳으로 퍼져 나간 나노 로봇들의 센서가 감지한 모든 정보들이 성진의 머릿속에 생생히 입력되었다.
“후우.”
심호흡을 들이키며 일어선 성진은 아직 몸이 덜 풀린 듯, 엉거주춤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얼굴 표정만은 밝았다.
“사부님. 이제 제가 한번 발경을 시전해 보겠습니다.”
“자네가?”
“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성진을 보고 관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고작 한 대 맞아보고 기술을 깨쳤다는 건가?”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성진의 진지한 표정을 본 관장이 눈빛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흐음…… 알겠네. 한번 보도록 하지.”
성진은 자세를 곧추세웠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음. 오시게나.”
관장도 양 발을 벌리며 자세를 취했다.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가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몸 안의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 해당 에너지 반응의 활성을 유도하겠습니다.
- 에너지 반응 유도 시작.
성진의 아랫배 쪽이 살짝 따뜻해지면서 손끝에 생경한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흐압!”
기합을 지르며 관장에게 덤벼든 성진의 손이 방어 자세를 취한 관장의 팔을 스쳤다.
“흡!”
관장이 팔에서 느껴지는 예상 외의 느낌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 사라지는 감각.
관장은 팔에 온 힘을 집중해서 사라지려 하는 감각을 되찾으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결국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팔을 보면서 관장이 경악한 눈으로 성진을 바라봤다.
“이런. 믿을 수가 없구만.”
하지만 곧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내 수 십 년 성취를 자네가 단번에 얻어 버렸구만.”
감탄과 놀라움이 뒤섞인 관장의 표정을 보면서 성진은 미안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실은 몰래 관장님의 몸속에 나노 로봇을 집어넣어서요. 죄송합니다.’
사실 성진은 말도 안 되는 편법을 썼다.
관장의 발경 기술을 최대한 빨리 익히고 싶은 마음에 몰래 관장의 몸속에 센서기능을 활성화시킨 나노 로봇을 커피에 담아 집어넣었다.
결과는 좋았지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 사부님 덕분입니다.”
겸양을 피우는 성진을 보면서 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이거 정말 엄청난 제자를 받게 되었구만. 허허허.”
* * *
그 순간을 떠올린 성진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후음.”
다만 그 미소가 눈앞의 깡패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어라? 너 지금 웃었니?”
“와. 이 상황에서 진짜. 이 물건 배짱이 장난 아니다?”
깐죽거리며 다가온 놈들을 향해 성진은 쓸데없이 말을 나누지 않았다.
대신 가운데 중지를 올려보였다.
“어?”
황당해 하는 놈들을 향해 성진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컥.”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놈을 걷어찬 성진이 재빨리 수도를 찔렀다.
“흐악!”
마치 전기에 감전된 물고기마냥 굳어버린 녀석은 그대로 허물어져서 바닥에 엎어졌다.
“후.”
성진은 만족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 기 에너지의 운용의 갈수록 능숙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마스터.
‘그래?’
관장의 발경 수법을 분석한 그 날.
인공지능 팔찌는 인체에서 발현되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 반응을 포착, 분석했다.
인간의 신체 세포에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반응을 포착하고, 관련 메커니즘을 분석한 인공지능은 그것이 동아시아 전설상에 전해 내려오는 ‘기’와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단전이라 명명한 부위에서 기 에너지를 발현하는 정도가 더욱 용이해지시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 상당한 발전을 이루신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말에 성진이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네 덕분이다.’
그런 성진을 본 다른 깡패들은 갑자기 동료를 쓰러뜨리고 혼자 희죽거리는 광경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뭐야 이거. 미친 놈 아니야?
성진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 씩 웃기만 했다.
곧바로 성진의 수도가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흐압!”
재빨리 손을 들어 막아선 놈의 팔이 성진의 수도를 막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팔이 힘없이 떨어지는 것을 본 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거?”
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불완전한 자세로 찌르면 이렇게 되는군.’
제대로 들어가면 온 몸이 일순간에 마비되지만 어설프게 공격이 닿으면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만 마비가 된다.
아직은 기의 운용이 능숙하지 않다는 걸 성진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으허어…….”
감각이 사라진 팔을 붙잡고 놀라 당황하는 녀석을 재차 주먹을 먹여 제압했다.
픽픽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고 남은 녀석들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이게 어디서 감히!”
하지만 의욕은 실력을 따라주지 못했다.
성진의 팔 다리가 쭉쭉 뻗어나갈 때마다 놈들은 속절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뻗어버린 놈들을 바라보는데 엉뚱한 기척이 느껴졌다.
바로 좀 전까지 깡패들에게 흠씬 얻어맞고 있던 중년 남성 둘이 이 틈을 노려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성진은 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저기요.”
성진의 말소리가 갑자기 들리자 슬금슬금 도망치려던 중년 남성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천천히 돌아보는 그들 표정에 겁이 잔뜩 서린 것을 보고 성진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그나저나 여기서 대체 왜 맞고 계셨던 거예요?”
성진의 물음에 남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망설이다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우리가 다른 술집에서 술 마시고 뭐 돌아다닌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 눈 떠보니까 엉뚱한 술집에 있어가지고, 갑자기 술값을 내라고 하니 참.”
사정을 알 만 했다.
보나마나 취해서 뻗어있는 사람을 아무나 가게로 데려와서 술 마셨다는 억지를 쓰고 바가지를 씌운 것이 분명했다.
성진은 혀를 찼다.
“안 되셨네요. 일단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할까요?”
경찰에 신고할 뜻을 넌지시 비춘 말이었지만 남자들은 힐끔거리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성진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댁으로 빨리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 예에.”
두 사람은 고개를 꾸벅거리면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성진은 남은 녀석들을 보다가 잠시 고민했다.
“이 놈들을 내버려두면 분명히 계속 일을 저지를 텐데.”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하자니 증거도 없고, 피해 당사자인 사람들은 신고할 생각도 없이 도망부터 갔다.
“지금은 이 수밖에 없겠는데.”
성진은 쓰러진 놈들에게 일일이 나노 로봇을 주입했다.
“이번에는 근육 힘을 상당히 줄여 놓는 정도로 해두자고.”
- 알겠습니다, 마스터.
제 몸의 힘만 믿고 폭력을 휘둘러대는 자들이다.
어느 날 몸의 이상을 눈치 채면 자연히 남을 핍박하려들 배짱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힘이 훨씬 약해진 상태로 살면서 다른 일을 찾든, 뭘 하든 지금 이대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성진은 놈들의 신체 상태를 스캔하도록 지시했다.
“별다른 이상은 없지?”
- 예. 그렇습니다, 마스터.
- 신체 각 부위에 대한 대사반응을 스캔한 결과 주요 장기와 척추 등 주요 항목 모두 양호합니다.
“후우. 그래.”
늦은 밤에 직접 밤거리를 쏘다닌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성진의 발경이 직접 인체에 가격되었을 때 심각한 피해가 남지 않게끔 힘을 조절하는 것.
성진이 목표하는 경지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불필요한 살상을 피하고 온전히 제압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을 절실히 원했다.
성진은 자신이 쓰러뜨린 상대들의 신체에 큰 손상이 없이 제압에 성공한 것을 보고 만족했다.
“좋아. 슬슬 다른 데로 가볼까.”
자리를 벗어난 성진은 곧 다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걷는데 문득 양 손을 들여다보면서 새삼 감탄했다.
“내가 이 손으로 기를 다뤄서 발경을 쓴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기라는 게 실재한다는 것도 아직은 영 신기해.”
인공지능 팔찌의 정보를 바탕으로 몸속의 기를 움직일 수 있게 된 성진이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기라는 힘의 존재가 이제는 몸속에서 의지만으로 자연스럽게 뻗어 나왔다.
- 인류의 정신문화에서 기, 마나, 에테르 등의 비슷한 개념이 다수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아마도 본래 고대 인류 중에서는 기의 존재를 직접 확인한 존재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
성진 자신이 기를 통해 발경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다른 누군가도 불가능하리라는 법은 없다.
“언젠가는 그런 상대를 만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누가 됐든, 나타나지 않은 적을 미리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성진은 어두운 골목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