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30화 (30/185)

<-- 30 회: 2권 - 구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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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명, 한명까지 한 곳에 몰아 기절시킨 성진은 재빨리 영식의 상태부터 살폈다.

내내 인공지능 팔찌의 스캔으로 영식의 대사반응부터 살피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된다.

- 일부 골절과 피부 결손, 근육 파열로 인한 염증이 예상됩니다.

“당장 심하게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어? 생명이 위독해진다든가.”

-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내부 주요 장기는 손상이 거의 없고, 골절 또한 손가락 일부에 해당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영식이 응급을 요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당장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성진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성진은 가장 처음 들어오면서 때려눕혔던 남자를 억지로 흔들어 깨웠다.

“이봐.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격렬하게 몸을 흔들자 놈이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엄살 그만 피워요. 몸에 이상 없을 만큼 힘 조절은 확실하게 했으니까.”

성진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놈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남자, 경환은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헌데 뒤쪽 팔이 묶여 있었다.

헐렁한 느낌에 바지춤을 보니 벨트가 없었다.

“뭐야, 당신.”

“당신이 협박까지 하면서 오라고 불러 댔잖아.”

어리둥절한 상황에 경환은 횡설수설했다.

“여, 여기는 약속 장소가 아닌데…… 아니 이게 도대체…….”

“이봐요. 언제까지 엉뚱한 소리만 할 겁니까. 주변을 좀 둘러봐요.”

성진이 경환의 머리를 잡고 천천히 사방을 살피게 했다.

정신을 잃고 널브러진 부하들을 본 경환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대체!”

“이제 상황 파악이 되시나? 당신 부하들 맷집은 좋던데. 살을 찌우는 게 그것 때문인가?”

오연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진을 보면서 경환은 아랫도리가 싸해졌다.

이 바닥에서 나름 오래 굴러먹었다고 자부한다.

주변에 부하 놈들은 깨져 있고 눈앞에 멀쩡히 있는 사람은 이 작자뿐이다.

부딪힐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경찰? 경쟁 조직? 영화도 아니고 형사가 혼자 나서서 이런 난장을 만든다?

그렇다고 수 십 명을 혼자 찜쪄 먹는 인종이 인근 조직에 있다는 소문은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럼 설마…….’

경환은 바짝 엎드렸다.

“서, 선생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떠듬거리며 묻는 경환의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불길한 상상이 계속 떠올랐다.

청부업자, 그도 아니면 조직에 고용된 해결사.

어느 쪽이든 집에서 기다리는 자식 놈들을 만나기는 다 틀린 모양이었다.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하는 모양인데…….”

성진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물었다.

“나는 대체 이 황당한 일이 왜 생긴 건지 이유를 꼭 알아야겠거든요. 그리고 영식이 쟤. 어디서, 어떻게 납치한 겁니까? 나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죠?”

“예, 예?”

“그러니까 당신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인 거냐고. 시간 없으니까 빨리 설명 좀 해봐.”

“그, 그게…….”

이유를 묻는 성진을 보고 경환이 망설였다. 발설하면 조직에서 받을 징계가 두려웠다.

하지만 안 하자니 지금 당장 죽을까 겁이 난다.

“후. 역시 쉽게는 말을 안하는구만.”

성진은 한숨을 흘렸다.

시간이 없다.

자신이 약속장소에 안 나갔으니 곧 상황이 잘못된 걸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방법을 써야 하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 꽃같은 당신의~ ♪ 아름다운 입술을~♩

성진이 즐겨 듣지 않는 트로트 음악이었다.

“당신 건가?”

눈치를 보는 경환에게 물은 성진은 난감해하는 기색을 보고 바로 휴대폰을 뒤져 전화를 받았다.

- 야 이 새꺄!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잔뜩 성이 난 목소리였다.

성진은 숨을 죽이고 가만히 말을 들었다.

- 너 빨리 그 꼬맹이 처리하고 떠라. 일 텄으니까.

“처리라는 게 어떤 겁니까?”

- 뭐? 너 무슨 헛소…… 가만.

목소리가 다른 것을 눈치 챘는지 상대는 잠시 말을 멈췄다.

- 누구신가?

“지금 당신 부하들 박살낸 사람입니다.”

- 아하, 경환이 좀 바꿔줄 수 있소? 그 전화 원래 주인.

 성진이 슬쩍 경환을 바라보니 몹시도 불쌍하게 떨고 있었다.

“싫은데요.”

- 당신 정체가 뭐야?

“그러는 댁들은 왜 나를 건든 겁니까? 댁들은 정체가 뭐에요?”

- 나? 아. 그러니까 댁이 그 기술자요?

“기술자?”

- 과천에서 크게 해먹었다며. 그 어렵다는 쌍승식 세 번 낙착. 그 정도면 기술자지. 나는 말로만 들었는데 제대로 된 기술자하고 통화해서 영광이오.

“난 별로 영광이 아니네요.”

- 뭐 그러시겠지. 이해합니다. 허헛.

전화 속 상대방은 잔뜩 느물거리며 능청을 떨었다.

유들유들한 말투가 마치 끈적거리게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빠진 성진은 가볍게 쏘아붙였다.

“이해하지 마세요. 나는 이해가 안 되거든. 아무튼 대충은 이유를 들었으니 고맙습니다. 나중에 꼭 보게 될 겁니다.”

- 어, 저기…….

전화를 끊어버린 성진은 겁에 질려 떠는 경환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뭐가 그리 무서워요?”

“그, 그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왜 영식이를 납치한 겁니까?”

경환은 대답 대신 침묵했다.

“내가 묻는 거 말하기 싫은가요? 말하면 보복당하니까?”

“끄응.”

경환은 그저 신음만 흘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으로 충분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성진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최근 기억을 떠올린 경환의 사념을 담은 뇌파를 인공지능 팔찌가 수신해서 직접 성진의 뇌로 보내고 있었다.

휴가를 받은 영식이 간 곳은 경마장이었다.

아마도 잠시 들린 모양이었는데 근처에서 경환의 패거리들이 영식을 붙잡았다.

백주 대낮에 영식이 경환과 다른 놈들에게 납치되는 장면, 이어서 그들이 경마에 탁월한 기술자로 알고 있는 성진의 신원을 불라고 강요하는 장면.

끝내 불응하는 영식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장면이 펼쳐졌다.

‘하아…….’

성진의 얼굴이 분노로 또 한 번 일그러졌다.

그래도 끝끝내 불지 않는 영식이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그러고 나서 휴대폰에 생각이 미친 경환이 번호 목록을 열어보자 공교롭게도 딱 2개뿐이었다.

웬 여자가 받는 번호와, 남자가 받는 번호.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흠칫 동요하는 영식을 본 경환이 감을 잡았다.

- 어. 거기 형씨?

- 얘 이름이 영식이랬나? 우리랑 만나서 얘기를 좀 하셔야 할 거 같은데.

그렇게 해서 성진을 유인한 것을 알게 되었다.

“후우…….”

예전 같았다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경환을 똑같이 엉망으로 밟았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이성이 감정에게서 우위를 놓치지 않았다.

2차 육체 강화에 성공하면서 비록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을 받아 뇌파를 수집해야 했지만 직접 타인의 뇌파 정보를 직접 이해할 수 있게 된 성진이었다.

최근에 그러한 방법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인공지능 팔찌가 알려줬다.

하지만 남의 속마음을 읽는 것이 감정적으로 불편해서 피해온 와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용하게 쓰일 순간이 왔다.

“댁이 내가 누군지 몰랐네요? 그런데 나하고 전화 통화 한방에 어떻게 그게 나라고 확신했죠?”

“에? 그, 그것이…….”

당황해서 떠듬거리는 경환은 어물거릴 뿐이었지만 이번에도 경환이 떠올리는 생각은 성진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정보가 전달됐다.

어차피 영식이 고아에, 지인도 별로 없는 데다 대형차를 끌고 다니는 남자와 경마장에서 어울려 다니는 것을 봤다는 다른 노숙꾼들의 증언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 영식의 단 2개뿐인 번호 속에 있는 남자라면 자신들이 찾는 사람일 거라 확신한 경환이 멋대로 보고를 올린 것이다.

가뜩이나 출세욕에 몸이 달아있는 경환이었다. 공을 세워보겠다는 욕심으로 앞뒤를 재지 않았다.

가뜩이나 무대포 기질이 있는 경환은 이런 종류의 일에는 자신의 감을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감이 맞아 떨어져버렸다.

어처구니없게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댁들이 구체적으로 왜, 경마와 관련해서 나를 찾는 겁니까?”

“으으…….”

경환은 거듭 쏟아지는 성진의 질문에 어떻게든 입은 다물었지만 성진이 뿜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집요하게 거듭 다그치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성진 앞에서 영문을 알지 못하는 경환은 반사적으로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는 2단계 육체강화에 성공하면서 성진 자신도 모르는 강력한 존재감이 깃들게 된 까닭도 있었다.

대호 앞에 선 승냥이가 오금을 펼 수 없는 것처럼, 경환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진의 질문이 한마디씩 떨어질 때마다 심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새 사업이 붕 떠버렸다.

- 망할 단속 때문에 손실 액수가 끝장입니다 아주.

경마경기나 여러 경마장의 단편적인 풍경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거금을 건네받는 조교사와 기수들.

그리고 경찰과 마사회의 추적과 수사로 인해 연이어 어떤 의도했던 이들이 와해되어가는 뉘앙스의 상황들이 겹쳐서 펼쳐졌다.

경환의 심상을 보고 모든 것을 자세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경환이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거나, 혹은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제대로 된 정보를 떠올릴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계속 기억을 읽으려 해도 경환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져서 엉뚱한 일상생활 같은 것들이 자꾸만 섞여들었다.

‘답답하네. 기억을 직접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 현재의 여건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마스터. 인간의 두뇌작용을 통해서 스스로 연상하는 기억을 뇌파작용으로 수신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입니다.

‘흐음…….’

정확한 관계를 알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성진은 결국 자신이 경마로 뛰어난 배당률을 벌어들인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내 탓인가.’

성진은 씁쓸했다.

인공지능 팔찌의 기능에 취해서 섣불리 기능을 쓴 나머지 자신의 주변 사람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하지만 자책은 거기까지다.

죄책감에 휘둘릴 만큼 성진은 나약한 성격이 아니다.

‘어찌 됐든 죄를 지은 놈들은 따로 있지.’

설사 성진의 책임이 있다 해도 이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더러운 수작질을 하느라 폭력까지 행사한 작자들이 원인이었다.

그 첫 번째 징벌을 지금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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