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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29화 (29/185)

<-- 29 회: 2권 - 구출 -->

표시된 위치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여기구만.”

야트막한 언덕에 주변에는 민가조차 없이 썰렁한 창고 하나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 오차 범위 20m 내외입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인은 끝났고.’

따로 잴 필요 없이 놈들은 창고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주변에 자라 있는 나무 그늘에 숨은 성진은 찬찬히 상황부터 살폈다.

“안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팔찌의 스캔 능력에 기대를 건 성진은 가급적이면 정확한 안의 상황을 알고 싶었다.

안에는 영식이 인질로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 모든 탐지 파장을 발생시켜 내부 물체비중과 열원을 파악하겠습니다.

잠시 후 인공지능 팔찌의 분석 정보가 성진의 시야에 시각 정보로 덧입혀졌다.

널찍한 폐 창고 안에 살이 잔뜩 찐 남자의 형상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앉아 있는 것은 단 두 명.

의자에 제대로 앉아있는 비교적 날씬해 보이는 사람과, 주저앉은 채로 묶여 있는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영식이다.’

이제 어떻게 영식이를 안전하게 구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무턱대고 들어가면 영식이가 인질로 잡힐수도 있다.’

생각이 거기에 닿은 성진은 결국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후우…….”

노심초사하며 상황을 지켜보는데 의자에 앉아 있던 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는 건가?”

성진은 잽싸게 발소리를 죽여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혼자서 의자에 앉아있던 놈이니 분명 우두머리 격이리라.

성진의 머릿속에 즉각 감이 섰다.

‘저 놈을 제압하면…….’

쓸모가 있다.

상황이 정 여의치 않으면 똑같이 인질로 잡아서 맞수를 둘 수도 있고, 놈들을 동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는 와중에 생긴 반전의 여지였기에 성진은 망설일 수 없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면서 주먹을 꽉 쥔 성진은 폭력을 행사하는 거부감을 떨치려 애썼다.

여기까지 오면서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폭행이 직업인 작자들이다.

직접 폭력을 사용하기가 꺼림칙했지만 도저히 사정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

마침내 놈이 나오는 순간, 성진은 즉시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크악!!”

놈은 고통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곧장 주먹을 휘둘러 반격해 왔다.

독기인지, 본능인지 꽤나 날카로운 의외의 반격이었지만 성진은 한 팔을 들어 간단히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연달아 주먹을 먹였다.

“크윽…….”

끅끅대면서도 놈은 고통을 참으며 버티고 섰다.

안 되겠다 싶은 성진은 바로 복부를 건드렸다.

“컥!”

성진은 죽지 않을만큼 힘 조절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타격이 급소에 꽂히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사이에 결국 바닥에 쓰러뜨린 놈을 내려 보면서 성진은 한쪽 발을 들어 복부를 찍어 눌렀다.

“크악!”

놈의 비명이 울리자 창고 안의 다른 놈들이 정신없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성진은 좌우를 살피는데 한쪽 구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창고의 흐릿한 전구 불빛 아래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반쯤 엎어져있는 사람의 모습.

영식이였다.

‘이 새끼들이…….’

그 광경을 보자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억눌러 왔던 분노가 서서히 끓어올랐다.

그런 성진의 앞에 도열한 놈들이 윽박부터 질러댔다.

“형님!”

“이 새끼야. 당장 그 발 안 치워! 새끼야.”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각목이며 갖가지 흉기를 성진 앞에서 찌를 듯 휘둘러 보인다.

척 봐도 충성심을 보이려는지 어설픈 호기로 가득 차 있다.

‘영식이를 인질로 잡을 생각은 안 하는 모양인데.’

이 분위기를 띄우자.

숫자를 믿고 우르르 덤비도록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렇게 생각한 성진은 이를 갈아붙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 다 죽어봐라.”

살기를 뻗는 성진을 보고 놈들은 잔뜩 비웃을 뿐이었다.

숫자가 압도적이니 거칠 것이 없었다.

이죽거리며 성진에게 앞서 다가선 놈들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됐다.

“커억!”

성진의 발차기가 상대의 두툼한 뱃살을 차올렸다.

뒤뚱거리며 퉁퉁한 뱃살을 들이미는 놈들은 모두 성진 앞에서 느려터진 표적판에 불과했다.

살이 많으니 제법 버틸 법도 한데 놈은 비명도 못 지르고 엎어졌다.

“이 새끼가!”

옆에 있던 놈들이 성이 났는지 각목을 내려치며 달려들었다.

즉시 튀어 오른 성진의 발이 목을 번갈아 내려쳤다.

“컥.”

눈 깜빡할 새 격중당한 놈들은 켁켁거리면서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순간 경악한 시선으로 성진을 바라보는데 고함소리가 터졌다.

“쫄지 마! 제껴 버려!”

그래도 개중에 목소리 큰 놈이 있었다.

분위기가 바로 환기되는 걸 보고 성진은 놈을 목표로 잡았다.

“네가 다음 머리구나.”

“뭐?”

눈을 찡그리며 반문하는 순간.

곧장 날아든 성진의 발이 놈의 하단에 꽂혔다.

“크앗!”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놈의 전신을 성진이 마구 짓밟았다.

그 모양을 본 다른 놈들이 옆에서 재빨리 흉기를 휘둘렀다.

“뒈져!”

각목이며 칼, 손망치 등 각양각색의 연장이 손에 들려 있었다.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흉기가 성진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들 눈앞에 비친 성진은 금방이라도 찢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성진의 손발이 날카온 흉기 사이로 쭉쭉 뻗어나갔다.

“컥!”

비명조차 못 지르고 여러 명이 연달아 급소를 가격당해 쓰러졌다.

머리수 30이 넘어가던 놈들 중 어느 틈에 십여 명이 널브러졌다.

“어으으으…….”

무턱대고 덤벼드는 용기도 잠깐.

압도적인 실력 차로 찰나에 반수가 깨져 나가자 살기등등하던 눈빛에서 살짝 기세가 풀렸다.

“계속 와 봐.”

태연한 기색으로 도발까지 하는 성진이었지만 멀쩡하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베이고 찢어진 옷가지 사이에서 선홍색 피가 배어나왔다.

‘흐읍…….’

방금 전, 흉기를 휘두르는 놈들 사이에 뛰어들었을 때, 날카로운 금속에 부딪힌 팔 다리가 찢겨져 나갔다.

제아무리 뛰어난 반사 신경에 대사스캔을 바탕으로 한 행동예측이 있어도 사방을 에워싸고 무더기로 흉기를 휘두르는 데 완전히 피할 도리는 없었다.

‘젠장. 정말 아프네.’

통증이 아려오기 시작하자 성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주인의 고통을 눈치챈 인공지능 팔찌가 명령을 요청해왔다.

- 허락하신다면 지금 즉시 통각 차단을 실행하겠습니다.

‘좋아. 빨리 해줘.’

그러자 곧바로 고통이 멎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느껴진 고통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성진은 한숨을 삼켰다.

‘후우…….’

- 통각을 차단시켰지만 무리한 신체손상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 특히 주요 장기와 근육조직에 동시 다발적인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경우 단시간 내에 수복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 사라졌지만 신체의 손상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점을 주지시킨 인공지능 팔찌는 곧 최대한 상처를 수복하는 데 나노 로봇을 투여했다.

성진은 이런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을 믿고 섣불리 부딪힌 감이 있었다.

대가는 상당했다.

‘쳇. 너무 무모했다.’

위험했음을 깨달은 성진의 뒷덜미로 땀이 흘러내렸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칼 든 상대도 맨손으로 제압하는 광경을 떠올리곤 했지만 역시 실제는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차라리 한둘이라면 몰라도 무더기로 둘러싸인 놈들 사이에서는 가까스로 급소와 주요 혈관, 근육을 피하는 것이 한계였다.

‘그래도 소득은 있는데.’

처음 제압한 놈 다음으로 목소리를 제법 내는 녀석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아마도 그 녀석이 개중 다음가는 우두머리격일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질서도 없고, 흐트러진 채 폼만 재며 다가오는 녀석들.

척 보기에도 오합지졸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피투성이가 된 성진을 보고 이제 도리어 자신만만해졌다.

“케헤…… 피칠갑을 했구만, 아주.”

요란하게 생긴 등산용 나이프를 혀에 대고 핥아대는 놈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면서 빈정거렸다.

성진은 씨익 웃어 보였다.

“음…… 니들 말이야.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인데.”

성진의 시선이 발아래를 향했다.

이미 쓰러진 놈들 사이에 방금 전까지 흉기로 쓰인 쇠파이프에 눈길이 닿았다.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아!!”

등산용 나이프를 홰홰 쑤실 듯 휘두르면서 놈이 덤벼들자 성진은 잽싸게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컥!”

쇠파이프의 끝 봉이 놈의 다리를 찔러 들어갔다.

갑작스런 격통에 나이프마저 놓친 놈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듯 파이프는 바로 복부를 찔러들어 갔다.

“헉!”

숨도 못 삼키고 쓰러져버린 놈을 내려 보면서 성진이 중얼거렸다.

“내가 무기를 안 들어서 상처가 난 거야.”

또 한명의 동료가 순식간에 당했다.

“이 새끼가!”

경악한 놈들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덤볐다.

성진은 제자리에서 맞서는 대신 뒤로 돌아 뛰었다.

악착같이 쫓아 뛰는 놈들을 향해 제자리에서 빙글 돌아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이마, 어깨 등을 마구 두들겼다.

놈들이 칼을 쓰면 칼을 빼앗아 다리에 던지고, 다른 걸 쓰면 고스란히 빼앗아 이용했다.

방금 전 정면으로 맞서는 무모한 행동 대신 적절히 자리를 피하고, 무기까지 뺏어 휘두르자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진작 이걸 쓸 걸.”

성진은 혀를 차면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크악.”

다리를 얻어맞은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눈앞에서 칼이 날아들고, 갖가지 흉기가 번뜩였지만 그래도 급소는 최대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안 되니까.’

현대사회의 평범한 청년으로 살아온 성진이다.

흉기가 눈앞에 날아들어도 정면으로 부딪혀 볼만큼 대담해졌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성진은 가장 만만하고 행동까지 묶을 수 있는 다리만 골라서 주로 팼다.

“끄아악.”

‘어라. 이건 좀 단단히 걸렸는데.’

손에 걸린 느낌이 남다르다.

아마도 다리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미안하다.”

고통을 잊게 해주려고 성진은 목덜미를 수도로 후려쳤다.

“헉!”

바로 의식을 잃고 머리가 축 늘어졌다.

성진이 문득 돌아보니 이제 남은 머리수가 대충 열을 채우기 힘들어보였다.

“우으…….”

그러자 눈에 띄게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모두 다 이제 갓 조직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안 된 신입들.

경험이라고는 머리수만 채우고 여기저기 불려다녔을 뿐이다.

학교에서 편안하게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다 주먹세계에 갓 들어온 놈들에게 막상 눈앞에 닥친 위협에도 물불 안 가리는 깡다구나 배짱이 있을 턱이 없다.

성진은 그런 뒷사정을 알 길이 없었지만 대충 봐도 기세가 확연히 꺾여 있었다.

“망할, 이건 말도 안 돼.”

뒤꼍에서 팔뚝만한 손도끼를 꼬나 쥐고 있던 놈이 침음성을 흘렸다.

도끼를 쥔 손이 떨린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면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십 수 명이 무기를 쥐고 덤비는데 단 한사람에게 모조리 제압당하는 광경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불가사의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면 공포를 느낀다.

성진의 존재가 그들 눈에는 이제 공포였다.

뒷걸음질 치던 놈들이 어쩔 줄 모르고 서로 눈치만 봤다.

그때 몇 놈이 뒤를 쳐다봤다.

“응?”

바로 인질로 잡힌 영식이 눈에 보였다.

머리수가 많은 걸 생각하고 무턱대고 덤볐다가 깨져버리니 그제야 인질이 생각난 것이다.

성진은 실소가 터졌다.

“이제 눈에 보이냐?”

뒤늦게 유리한 패를 하나 발견했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다.

성진은 잽싸게 튀어나가 영식에게 눈독 들인 놈들부터 때려 눕혔다.

사기가 꺼진 상태에서 성진이 달려들자 수십 명이 우왕좌왕 했다.

각자가 손에 쥔 흉기를 발작적으로 휘둘러댄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휘를 할 만한 간부도 없고 모두가 얼치기 동년배 초짜들이다.

뻔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한명씩 차례차례 쓰러질 뿐이었다.

도저히 성진의 손속을 피할 수가 없었다.

연거푸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면서 이제는 상황이 끝났다는 위기감과 함께 본능이 도망을 택했다.

아직까지 사지 멀쩡한 놈들은 뒤도 보지 않고 출구로 달려갔다.

물론 성진은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어디 보자…….”

주변에 널린 칼을 하나 집어든 성진이 흡사 표창을 던지듯 날렸다.

-사악!

순식간에 날아간 칼날이 가장 앞서 나가던 녀석의 어깨를 스치고 나갔다.

“흐억!”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자 깜짝 놀란 놈들이 기가 질려 자리에 멈췄다.

성진이 양 손에 칼을 집어 들고 경고했다.

“동작 그만!”

놈들이 모두 돌아본 순간.

성진의 왼손에 들린 칼 한 자루가 순식간에 허공을 날았다.

“으악.”

한 녀석의 허벅지에 칼날이 꽂혔다.

피가 흘러내리는 다리를 보면서 다른 녀석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도망가면 내가 못 잡을까? 여기 칼은 많은데 말이야.”

성진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위협을 제대로 가하기 위해 일부러 칼까지 던졌다.

성진의 다른 한손에 남은 칼이 흔들거리는 것을 본 녀석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잠시.

한 명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무릎을 꿇었다.

성진은 냉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흘렸다.

‘후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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