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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28화 (28/185)
  • <-- 28 회: 1권 - 갑작스런 태클 -->

    “아, 예. 잠시만요.”

    성진은 즉답을 피하고 인공지능 팔찌에게 질문했다.

    ‘어때? 이쯤에 있는 거 같아?’

    - 이동통신회사의 위치추적 서비스는 거리오차가 일에서 사 킬로미터입니다. 여기서 약 오 분 이상만 더 주행하면 해당 위치에 도착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에서 사킬로미터? 오차가 그 정도나 된단 말이야?’

    예상치 못하게 오차가 컸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스터. 가까워진 거리에서는 제가 직접 위치추적을 수행하겠습니다. 마스터께서 찾으시는 사용자 ‘영식’ 명의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시면 그 즉시 송수신 서비스가 발동될 것입니다.

    - 그 즉시 제가 바로 해당 단말기의 작동 위치를 추적하겠습니다.

    ‘좋아.’

    속으로 안심한 성진은 택시기사에게 요청했다.

    “아저씨. 여기서 몇 분만 더 달려주세요.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목적지 확실한 거예요?”

    “그럼요. 제가 말씀드리는 방향으로 조금만 더 달려주시면 됩니다.”

    “뭐 그럽시다.”

    인적도 드문 외곽 도로라 기사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참을 달리는데 성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에도 영식의 번호였다.

    “여보세요?”

    - 잘 오고 있나? 지금 약속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인공지능 팔찌가 시야 한편에 시계창을 띄웠다.

    약속시간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요. 곧 갑니다.”

    - 약속 지키는 게 좋을 거야. 괜히 토끼면 쓸데없이 다치니까.

    “알았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인공지능 팔찌가 재차 보고했다.

    - 최신 위치 확인. 전의 위치와 동일합니다.

    - 위치 변동 없습니다.

    성진은 조용히 양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택시가 어둠 속을 질주하고 완전히 인적조차 없는 한적한 길 쪽에 다다르자 인공지능의 음성이 울렸다.

    - 확인 위치에 가까워졌습니다.

    ‘좋아.’

    성진은 바로 택시를 멈춰 세웠다.

    “다 왔습니다.”

    “예, 손님. 요금 십육만 팔천원입니다.”

    “여기 카드로 결제해주세요. 그리고 이건 팁입니다.”

    성진이 신용카드와 함께 만원 지폐 몇 장을 더 건네자 기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손님.”

    “고생하셨습니다.”

    신용카드를 돌려받은 성진은 차 밖으로 나왔다.

    택시가 떠나가자 주변은 완전히 어두컴컴한 한밤중이었다.

    “시력을 다시 올려줘.”

    - 예, 마스터.

    감각 정보 제한 해제.

    즉시 빛에 훨씬 민감해진 안구가 시야를 확보했다.

    미약한 달빛만으로도 가로등 하나 없는 주변이 뚜렷하게 식별됐다.

    성진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어. 다 오셨나?

    “다 왔습니다. 곧 만나게 될 겁니다.”

    - 그래. 빨리 보자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이 새끼들이.’

    울컥한 성진의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졌다.

    “영식이는 무사합니까?”

    - 그야 당연하지. 목소리라도 들려줄까?

    “아닙니다. 어차피 볼 건데 곧 가서 보죠.

    - 그럼 오기나 해.

    전화가 끊겼다.

    - 위치 확보. 현재 위치로부터 약 일킬로미터 이내 거리입니다.

    “좋아!”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위치 정보를 그래픽으로 시야에 띄웠다.

    성진의 시야 한복판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빛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성진은 즉시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기다려라. 조금만 기다려.”

    쉬지 않고 달려가면 1km쯤은 몇 분 내 주파가 가능한 거리다.

    성진은 나는 듯이 달려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놈들의 협박에 고분고분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곧 놈들은 상황 계산을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뼈저리게.

    *   *   *

    가을 중순이라 밤공기가 싸늘했다.

    조립식 판넬을 붙여서 만든 창고 벽이 바람은 막아 줬지만 보온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다.

    “에엣-취.”

    “뭐야. 너 벌써 감기냐?”

    살이 뒤룩뒤룩 찐 젊은 남자가 기침을 해대자 경환은 짜증을 냈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이 새끼. 살덩이는 나보다 훨씬 더 달고서 아주 염병을 떨어요. 아주.”

    “시정하겠습니다, 형님!”

    “너는 시정해도 가망이 없는 놈인 거 같다. 됐으니까 콧물 튀기지 말고 저쪽으로 꺼져.”

    “예, 옛.”

    군기가 바짝 든 남자가 한달음에 구석으로 건너갔다.

    몸집 가득한 살을 뒤룩뒤룩 흔들면서 달려가는 꼴이 우습다.

    경환은 그 모습이 한심해보였다.

    “하여튼 요즘에는 뼈대 있는 놈이 없어.”

    하지만 저런 놈들이 뚱뚱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경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중고교 때 주먹 좀 쓴다는 어린 녀석들을 따로 받아놔서 졸업하자마자 조직이 받아둔다.

    그렇다고 그런 부류를 제대로 된 전력으로 대우하는 것도 아니다.

    경험도, 실력도 없는 풋내기들을 폭력범죄의 세계에서 전력으로 써먹기 위해서 일단은 살을 찌우는 방법을 택했다.

    돼지 비계나, 심지어는 개 사료를 가둬놓고 먹이다 보면 체질 상관없이 체중이 수십킬로그램 이상 불어나기 마련이다.

    경환이 불만을 가지는 건 그런 녀석들의 살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못 써먹는 신입들을 자기 휘하에 집어넣은 조직의 처우였다.

    “제기랄. 중요한 대목은 지들이 다 해쳐먹고 나한테는 전화 심부름이나 시키니.”

    영식인지 경식인지 하는 놈을 경마장에서 잡아 올린 것도 자신이고, 지금 붙들고 전화로 목표물을 꾀어내고 있는 것도 자신이다.

    하지만 현장에 가는 대신 엉뚱한 데 처박혀 있으라는 조직의 명령에 경환은 허탈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조직을 욕할 수도 없으니 마냥 투덜거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 경환아. 너 그 자식 부른 거 맞냐? 아직도 안 왔어.

    “예?”

    경환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휴대폰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독사대갈, 장문식이었다.

    경환이 비주류 업소 몇 개를 겨우 관리하는 반면, 장문식은 이미 조직의 선봉을 자처하는 행동대장 격의 중간보스였다.

    목이 저절로 움츠러든 경환은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아, 아직 안 갔습니까, 형님? 제가 지금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 됐다. 너 몇 분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했냐.

    “그, 그게……. 한 5분 전입니다.”

    - 5분? 이거 감이 안 좋은데…….

    “그, 그럼 설마…….”

    - 알아서 할 테니까 내가 연락하면 잡고 있는 그 놈 바로 처리해버려.

    “예? 예. 알겠습니다.”

    경환은 대답하면서 창고 한복판에 죽은 듯이 축 늘어져있는 영식을 힐끗 바라봤다.

    - 그럼 끊는다.

    전화가 끊기고 그제야 경환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우. 오랜만에 송장 하나 치우게 생겼구만.”

    영식에게 다가간 경환은 의식 불명인 영식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그 놈 안 올 모양인데 어쩌냐? 하긴. 와도 어차피 죽었을지도 모르지.”

    큭큭거리며 웃어댄 경환은 뒤에 멀뚱히 서 있던 똘마니들을 불렀다.

    “이 놈 잘 감시해라. 난 차에 들어가서 잠깐 쉬고 있을 테니까.”

    “예. 형님!”

    우렁차게 대답하는 똘마니들을 두고 밖으로 문을 열었다.

    “아. 추워 죽갔네.”

    그 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응?”

    주먹세계에서 단련된 경험이 온몸에 위험신호를 보냈다.

    뒤돌아본 경환의 눈앞으로 곧장 주먹이 꽂혔다.

    “크악.”

    연이어 자비 없는 주먹질이 쏟아졌다. 온몸에 작렬하는 고통에 경환은 정신없이 나뒹굴었다.

    “끄아악.”

    비명을 질러댄 경환을 향해 창고 안에 있던 모두가 문을 향해 달려 나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신발로 경환의 가슴을 짓누른 남자를 보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야. 당장 발 안 치워?”

    “형님! 저희가 구해드리겠습니다.”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남자가 발을 살짝 들어 경환의 복부를 찍어버리자 온몸을 뒤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악.”

    경환이 앓는 소리를 내자 놈들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굴러댔다.

    “저, 저 새끼가!”

    “혀, 형님!”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든 남자.

    성진은 좌중을 둘러보며 나직이 말했다.

    “오늘 다 죽어봐라.”

    분노로 뒤덮인 성진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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