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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27화 (27/185)
  • <-- 27 회: 1권 - 갑작스런 태클 -->

    “이 정도면 수익률이 괜찮은 편이네.”

    - 그렇습니다, 마스터. 동우화학은 1개월 사이 해외 기업과의 연계가 논의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성장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요즘 들어서 슬슬 증권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성진은 증권소에서 계좌를 개설한 뒤 인공지능 팔찌에게 투자를 대행하게 했다.

    잃을 것을 각오하고 몇 백만 원으로 초기 투자를 시작했는데 이미 상당한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 선에서 해두고, 손절매는 15% 선으로 하자.”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사실 직접적으로 성진이 주식 투자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학교생활을 하는 와중에는 오로지 성진이 요구하는 원칙에 따라 인공지능 팔찌가 모든 매매 활동을 알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주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내가 직접 익혀둬야겠지.’

    사전적인 정보는 인공지능 팔찌가 입력해서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직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려면 직접 경험을 해봐야 한다.

    다른 경제소식이나 정치적인 정책변화가 실제 증권가에 미치는 영향이라든지 실질적인 기업의 가치 등은 인공지능 팔찌의 분석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미묘한 사회구조가 빚어내는 경제 상황을 인공지능이 항상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해할까?

    엄청난 덕을 보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성진은 결코 인공지능 팔찌를 맹신하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를 확인한 성진은 모처럼 부모님을 만나러 갈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시간이 몇 시지?”

    - 오후 여섯시 사십분입니다.

    “그래? 오랜만에 가게나 찾아가야겠다.”

    외투를 챙겨 입은 성진은 현관문을 나섰다.

    요즈음 성진네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 영식이 수시로 소식을 전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직접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만큼 좋을 수는 없다.

    엘리베이터를 막 타는데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확인하니 성진이 직접 영식에게 선물한 휴대폰 번호였다.

    “여보세요? 영식아. 형이 지금 가게로 갈 거야.”

    - 어. 거기 한성진 씨?“

    대답한 목소리는 굵고 각이 진 목소리였다.

    나이 사십은 된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

    성진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누굽니까 당신.”

    - 뭐 됐고, 얘 이름이 영식이랬나? 우리랑 만나서 얘기를 좀 하셔야 할 거 같은데.

    성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떤 놈들인지 감이 섰다.

    적어도 절대 선량하다거나 호의를 가진 유형은 아니었다.

    성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당신들이 누군데 내가 만나야 합니까?”

    - 뭐 싫으면 됐고. 그런데 얘 지금 피똥 싸기 직전이야. 영 상태가 안 좋은데 인간적으로 엥간하면 와서 데려가시지?

    명백한 납치 협박이다.

    화끈거리는 분노가 얼굴을 덮었다.

    성진은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애써 억눌렀다.

    ‘후. 침착해라.’

    화를 참은 성진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좋습니다. 대신 영식이 목소리는 좀 들려주시죠. 목소리 못 들으면 안 갑니다.”

    - 아 그래? 근데 얘 지금 영 말할 상태가 아닌데? 야. 애 좀 깨워봐.

    잠시 몇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영식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허, 혀엉……. 저, 정대오…….

    영식의 목소리가 확실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분석을 시켰다.

    - 확인 결과 99% 이상의 확률로 성문이 동일합니다.

    ‘이 새끼들이…….’

    발음 자체를 힘겨워하는 것이 여실히 들렸다.

    머리에 열이 오른다.

    화가 치민 성진은 그걸 폭발시키지 않았다.

    대신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추가 지시를 내렸다.

    ‘지금 이 전화 건 놈 위치 추적 좀 해줘.’

    - 마스터. 전화국 네트워크에 침입해서 허락되지 않은 권한을 취득해야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해.’

    성진은 망설이지 않고 동의했다.

    평소라면 성진은 범죄와 결부되는 정보는 수집하지 말아달라고 인공지능 팔찌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위급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성진의 직감이 지금 이 놈들은 극도로 질이 나쁜 놈들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무슨 결과가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공권력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순간 생각해 봤지만 지금 이 놈들에게서 너무나 위험한 냄새가 났다.

    할 수 있는 건 일단 다하는 최선의 수를 둬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됐어, 영식아. 더 말하지 마. 형이 갈게.”

    - 아, 앙대오 허엉…….

    숨을 헐떡대는 영식이 목소리가 끊기고 다시 처음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혹시라도 신고하고 그러면 알지? 나쁘게 안 하니까 엥간하면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댁이 피해도 우리가 찾아갈 수도 있어. 얘 계속 조지면 술술 안 불겠나?

    “알았습니다. 알았으니까 영식이 괴롭히지 말고 가만두세요. 내가 지금 갈 테니 봅시다. 위치 말해요.”

    - 오케이. 지금 위치가…….

    “아, 예? 예.”

    놈이 위치를 부르는 동안 성진은 잘 못 알아듣는 척 하며 놈이 짜증을 부리지 않게끔 하는 선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 아 거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만. 아무튼 거기에서 바로 보자고. 시간 지키고.

    전화가 끊겼다.

    “후…….”

    이가 절로 갈렸다.

    “어딘지 찾았어?”

    즉시 인공지능 팔찌가 보고를 해왔다.

    - 최신 위치 확인했습니다. 위치는 행정단위로 경기도 외곽 성완구…….

    - 대략적인 위치는 현재 위치에서 약 백칠십 킬로미터 거리입니다.

    “역시 엉뚱한 주소였구만.”

    놈들이 부른 주소는 지금 인공지능 팔찌가 확인 위치로 잡은 곳과 전혀 다른 방향, 다른 위치였다.

    “혹시 영식이를 데리고 거기로 이동하려는 걸까?”

    -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반대편에 위치한 데다가 차량을 이용해도 약속된 시간 안에 해당 위치로 이동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고, 엉뚱한 위치에서 함정을 파 놓을 가능성이 높았다.

    모든 가능성을 점검한 성진은 가장 높아 보이는 가능성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제 시간이 문제였다.

    “좋아. 우리가 확인한 위치로 가야겠어.”

    결론이 내려진 순간,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성진은 가까운 대로로 달려 나가 택시부터 잡았다.

    성진의 차는 집에 두고 지하철로 통학하기 때문이었다.

    “택시! 택시!”

    다행히 오피스텔 주변이 번화가라 지나가던 택시가 금방 다가와 섰다.

    “어디로 모실까요?”

    “예. 여기로 가주세요.”

    성진이 메모에 적어 건넨 주소를 본 기사는 입술 끝이 올라갔다.

    “어이구. 멀리 가시네요. 편히 모시겠습니다.”

    “편한 것보다 아주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급해서요.”

    “예, 손님. 총알처럼 달려가겠습니다.”

    택시가 출발하고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지속적으로 휴대폰의 위치변화를 확인하도록 했다.

    - 현재 위치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좋아.’

    제대로 짚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진 성진은 기사를 더욱 재촉했다.

    “기사님. 좀 더 빨리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주 급합니다.”

    “지금도 최대 속도이긴 한데, 정말 급하신 거 같으니까 되는 대로 빨리 가드리죠.”

    “부탁드립니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기사가 엑셀을 밟았다.

    그 와중에도 성진은 내내 위치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참을 달리는 차는 시가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일렁이는 도심풍경에서 벗어났다.

    주변에 논밭만 가득하고 인적조차 드물어지자 성진은 영식이 훨씬 더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곳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겠군.’

    어쩐지 조직 폭력배들과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한참을 달린 택시기사는 슬슬 성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 손님? 어디까지 더 모실까요.”

    돈 버는 건 좋다.

    하지만 밤이 늦은 데다가 막상 오니 인적 드문 곳이라 택시기사는 돌아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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