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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24화 (24/185)

<-- 24 회: 1권 - 축제의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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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내 친구가 이런 능력자였을 줄이야.”

종연이 샐쭉 웃으면서 부럽다는 듯 놀렸다.

“……입 다물어라.”

성진이 살짝 으르렁대자 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킥킥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

“예, 예. 믿습니다. 마이 프렌드~”

한참을 까불대는 종연이었다.

‘나 참. 바람을 핀 적도 없는데 바람 핀 게 되어 버렸네.’

그 날 희진과 미란이 갑작스럽게 만나고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심상찮은 두 여자의 대립구도에 종연이 상상력을 발휘했다.

결국 성진이 뭐라 하든 다 변명이 되어버린 처지였다.

“야. 희진이가 너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했다며. 그런데 너는 참. 아휴 이 늑대자식.”

“그런 거 아니다 정.말.”

눈을 부라리자 바로 기가 죽은 종연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낮은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 다 아는데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희진이가 그런 비슷한 말 한 적은 있어도 내가 사귀자고 한 적은 없어.”

“뭐? 야 그게 진짜 나쁜 놈이다. 그렇게 예쁜 여자가 사귀자고 하는데 받아줘야지.”

“그건 또 어느 나라 법이냐?”

성진이라고 연애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연애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해봐야지.’

인공지능 팔찌가 가진 능력이 성진의 손안에 있다.

때문에 현재 성진의 관심사는 포부를 발휘하고 싶은 야망을 향해 차츰차츰 준비하는 쪽에 가까웠다.

연애 문제는 당장은 매달리고 싶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여튼 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부 잘하고, 범생이에 다 좋은데 결정적인 부분이 이게 요즘 남자애들 같지가 않아요.”

“좋을 대로 생각해라.”

성진은 웃으며 대꾸했다.

사실 성진의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는 그 나이 또래와 비슷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분명 아니었다.

막강한 정보력과 능력을 자각하게 되면서 성진은 오히려 자신을 감추는 데 노력을 더 많이 했다.

훨씬 신중해지고, 진중해지기 위해서였다.

지난 번 한강에서의 일 때문에라도 훨씬 더 자신을 차분하게 제어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어? 저기 애들 온다.”

종연이 가리키는 방향에 동아리 후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안에 섞여 있는 희진을 본 성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 희진아.”

“안녕하세요, 오빠.”

꾸벅 고개를 숙인 희진은 생각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성진은 선수를 치기로 했다.

“지난 번 일이라면 그런 게 아니야, 희진아.”

“알아요, 오빠.”

희진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아니라고는 했는데 오빠한테 바라는 기대가 컸나 봐요. 일방적인 거였죠. 오빠가 그 언니 그런 사이 아니라는 거 알아요. 그냥 좀…….”

희진은 뒷머리를 매만지면서 수줍게 말했다.

“그냥 제가 화가 좀 났었어요. 제 잘못이에요, 오빠. 무책임하지만 용서해 주실래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무심코 희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성진은 황급히 손을 거뒀다.

“용서하고 말 게 뭐가 있겠어.”

“네에-.”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어어? 둘이 무슨 일 있었어요?”

다른 동아리 후배들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별 일 아니다. 그냥 오해가 좀 있어서.”

성진이 간단히 대답했지만 종연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성진은 눈짓으로 눈치를 줬다.

‘죽는다.’

그러고서 곧바로 축제 공연을 감상했다.

학우들이 준비한 공연도 제법 다채로웠고, 오후가 되면서 인디 밴드들이나 공중파 아이돌가수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동아리 애들도 삼삼오오 흩어졌지만 희진만은 성진 옆에 꼬옥 붙어 있었다.

“야 성진아. 나 먹을 것 좀 사온다.”

종연이 매점 천막을 향해 다가가고 둘만 남았다.

희진이 뭐라 말을 걸려는데 공교롭게도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내가 바라보는 그 거리에~♬ 너를 닮은~♪

“어 희진아 잠깐만.”

양해를 구한 성진이 휴대폰을 꺼내니 영식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 그래, 영식아.”

- 형. 저도 형 학교에 놀러 왔어요.

“응? 우리 학교에 왔다고? 어딘데.”

“형 지금 눈앞에 계신 거 같은데요?”

전화 소리 대신 말소리를 들은 성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 영식이 서 있었다.

다만 혼자가 아니었다.

“미란 씨?”

“안녕하세요, 성진 씨.”

미란이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화사한 분홍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미란은 오늘따라 더 성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어 넘기니 특히나 하얀 목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성진이 살짝 손을 흔들었다.

“아. 미란 씨도 왔네요.”

“언니도 오셨네요.”

희진은 의외로 태연한 표정이었다.

“아아. 그쪽도 오랜만이네요.”

미란도 나긋하게 웃고 있었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진은 이 상황이 살짝 신경 쓰였지만 그렇다고 정말 마음을 주지도 않은 여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닐 마음은 없었다.

“참. 우리 무역과 주점 코너가 있는데. 나도 도와주러 가야 할 거 같아서요. 우리 기왕이면 거기서 먹죠.”

“그래요. 성진 씨.”

“네. 오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끈 성진은 영식과 미란, 희진 모두 무역과 주점 코너로 데려갔다.

“어? 성진이 형. 일행이랑 같이 오셨어요?”

한창 일하는 중이던 1학년 후배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성진도 복학생 대접받느라 알음알음 양보를 받아 주점 운영 멤버에서 빠졌지만 그래도 아주 모른 척 하기는 미안했다.

“내가 잠깐 도와줄게. 니들도 좀 쉬어라.”

“에이. 아니에요. 별로 힘들지도 않아요. 앉으세요. 제가 안주 넉넉히 갖다 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성진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앉고, 전화 연락을 받은 종연도 주점 코너에 나타나 술판이 벌어졌다.

희진과 미란도 어색해하다가 몇 차례 술잔이 돌고 나니 한결 더 누그러진 표정이었다.

“흐흥. 언니 이름이 미란이라고 했죠? 어쨌든 잘 부탁해요.”

“뭐. 나야말로.”

두 여자는 서로 잔을 부딪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알게 모르게 불편했던 분위기가 일단락되자 친해지는 건 급속도였다.

서로간의 학교생활을 풀어놓거나, 영식과 종연이 나름대로 아는 농담들을 풀어놓자 편하게 웃음도 터져 나왔다.

“저기 미란 씨는 동희여대라고 하셨죠? 이 불쌍한 솔로한테 소개팅 좀 어떻게…….”

“종연아. 너는 제발 소개팅 좀 작작하고 학점관리 좀 해.”

“성진아. 공부는 인마.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연애는 때가 있는 거야.”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말이 돼.”

그렇게 종연이 너스레를 떨자 미란이 말을 받았다.

“제 친구들 눈이 높은데요? 종연 씨 매력을 한번 보여줘야 할 거 같은데.”

“아! 제 매력이요?”

벌떡 일어난 종연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길한 생각이 든 성진이 종연을 앉히려고 잡아끌었다.

“야. 앉아. 왜 그래.”

“저기 있다, 저기. 저기 농구동아리 길거리 농구코너 보이시죠? 이 멋진 남자의 농구 플레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농구요? 종연 오빠. 저 길거리 농구 세 명이서 하는 거였는데요.”

희진의 말에 종연이 주변을 둘러봤다.

“세 명? 멤버 딱 맞네.”

옆에 앉은 영식과 성진을 번갈아 본 종연이 헤벌쭉 웃었다.

“형? 저요? 전 농구 잘 못하는데.”

영식이 자신 없어 했지만 종연은 막무가내였다.

“에이 못 하는 게 어딨어. 야, 성진아 너도 고고씽~! 야 가자 빨리.”

“갑자기 농구는 또 뭐야.”

성진은 영 내키지 않았다.

‘농구는 별로 못 하는데…….’

하지만 희진과 미란이 오히려 더 바라는 눈치였다.

“전 찬성이요. 성진 씨 농구하는 모습 보고 싶은데요?”

“저두요, 오빠.”

“후우…….”

결국 주변의 바람에 성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이 난 건 종연뿐이었다.

“오케이. 자 우리 어디 한번 농구 동아리를 박살내러 가보실까? 으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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