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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22화 (22/185)
  • <-- 22 회: 1권 - 육체의 한계 -->

    *   *   *

    온몸이 갈리고, 터져나가는 느낌.

    무한한 고통이 펼쳐지는 세계 속에서 성진은 홀로 눈떴다.

    그리고 직감했다.

    생과 사의 경계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죽음이 어느 때보다도 가까운 이 순간.

    가혹한 고통 속에서 흐릿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빛기둥을 향해 성진은 갈망했다.

    ‘저 빛에 닿아야 살 수 있을 것이다.’

    불안정한 의식 속에서 성진은 어떻게든 빛을 향해 전진했다.

    살이 터지고, 뼈가 갈리는 무한한 고통의 공간 속 심연을 거슬러갔다.

    으아아아아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터트리는 내면의 절규와 함께 성진은 눈부신 빛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   *   *

    “으음…….”

    낮은 신음소리가 짧게 울려 퍼진 순간.

    환호가 울렸다.

    “살았어요! 살았습니다.”

    “오오, 살았어요.”

    “아휴 어쩜. 다행이네.”

    쏟아지는 환성 속에서 눈을 뜬 성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잠수복을 걸친 남자가 걱정스런 말투로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저를 구해주신 모양이네요.”

    “예. 저희는 119 한강 수난 구조대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강변 한편에 작은 모터보트 한대가 정박해 있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인걸요.”

    구조대원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저희가 깜짝 놀랐습니다. 혼자 뛰어드셔서 다른 한 분을 구하셨던데요.”

    “아, 예…….”

    문득 생각이 난 성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분은 괜찮으신가요?”

    “일단 지금은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천만다행입니다. 물에 빠지신 지 10분이 지났다는 말을 듣고 훨씬 상황이 나쁠 줄 알았습니다.”

    “10분이요?”

    성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인공지능 팔찌의 마지막 음성이 떠올랐다.

    -2단계 육체 강화 긴급 가동.

    -행운을 빕니다. 마스터.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감을 잡은 성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랬군요.”

    동시에 인공지능 팔찌에게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 생존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유일하게 가능한 비상대책을 가동했습니다.

    ‘혹시 그게 2단계 육체 강화라는 거야?’

    - 그렇습니다. 본래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마스터께 정보 제공을 배제하고 있었지만 유일한 생존 대책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아…….’

    어쩐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던 셈이다.

    ‘위험부담이라면, 혹시 죽을 수도 있었던 거야?’

    - 그렇습니다. 지구 인류의 육체구조로는 성공하기 힘든 과정이어서 영구적으로 보류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

    아무튼 성공했으니 자신이 살아있을 수 있었으리라.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묻기로 생각한 성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예.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병원에서 꼭 진찰이라도 받아보세요.”

    “예.”

    성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별안간 박수가 쏟아졌다.

    당황한 성진이 주변을 돌아보는데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주변에 가득 모여서 성진을 칭찬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목숨도 안 돌보고 남을 구하고 말이야.”

    “아휴 참 대단하네. 정말.”

    머쓱해진 성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별 거 아닙니다. 아무튼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고 뒤돌아서려는데 응급구조대원이 성진을 잡았다.

    “저기 신원 파악을 해야 해서요. 간단한 성함이나 전화번호 좀 가르쳐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예.”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준 성진은 다시 감사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니 퍼뜩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아, 희진이!”

    오리배에 혼자 남겨두고 물속에 뛰어들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연락이라도 하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니 강물에 푹 젖어 있었다.

    “하아…….”

    이 상태에서 작동을 누르면 반드시 고장 날 것이다.

    휴대폰 대리점부터 들려야겠다고 생각한 성진은 오리배 선착장으로 차를 찾으러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니 마침 성진의 차 근처에서 애타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희진이 보였다.

    “오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

    격앙된 음성으로 묻는 희진을 보고 성진은 사과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 오빠가 급한 사정이 생겼어.”

    “후우…….”

    희진은 한숨을 쉬었다.

    “저 솔직히 방금 오빠 원망 많이 했거든요?”

    “그래…….”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

    “아니에요. 그거 때문에 화난 거 아니에요.”

    “그러면?”

    “걱정 돼서요. 갑자기 물속에 뛰어들어서 전화도 한참 안 받고, 얼마나 불안했는지 알아요?”

    말 속에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진심으로 염려하는 희진의 마음을 느낀 성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하다.”

    “아니에요. 무사한 거 같으니까 됐어요.”

    “집으로 바래다줄게.”

    미안한 마음에 성진은 옆자리 차 문을 열었지만 희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 오빠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요?”

    그 말에 성진은 자신의 몸을 살폈다.

    온몸이 물에 푹 젖은 모습이 좋게 보이기는 힘들 듯했다.

    “하, 하……. 그래. 좀 그렇겠구나.”

    “오늘은 잘 쉬시고 다음 주에 봐요.”

    “그래. 오빠가 오늘 일은 나중에 갚을게.”

    “그래요 오빠. 안녕.”

    “잘 가.”

    인사를 나눈 희진을 보내고 성진은 차를 달려 휴대폰 수리부터 맡겨야 했다.

    이런 저런 일 끝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별안간 집전화가 울려댔다.

    “여보세요?”

    성진이 받은 전화에서 나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희진이었다.

    - 오빠. 지금 뉴스에 오빠 나온 거 알아요?

    “뭐? 내가?”

    - 한강에서 투신 남성 구한 청년이라고, 우리 대학교 재학 중인 모 학생이라고 증명사진이 뿌옇게 처리돼서 나왔던데요? 그거 오빠 맞죠?

    “뭐? 아니 그게…….”

    순간 응급구조대원에게 적어준 이름과 전화번호가 생각난 성진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 역시 오빠 맞으시구나? 다음 주에 학교에서 봐요, 오빠. 자세히 알려주셔야 해요?

    “희진아 그게 아니고…….”

    뒤늦게 변명해보려 나섰지만 눈치 빠른 희진은 쐐기를 박아버렸다.

    - 그거 알려주시면 오늘 일은 용서해 드릴게요. 저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오빠 원망 많이 했거든요?

    “참. 이거 못 당하겠네. 알았어. 오빠가 나중에 알려줄게.”

    키득거리는 희진의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그럼 오빠. 잘 자요.

    “어. 희진이 너도 잘 자.”

    - 네. 오빠.

    뚜우. 뚜우.

    피식 웃은 성진은 방으로 들어가 피곤한 몸을 누였다.

    “하아…….”

    생각도 못하게 큰일을 치룬 하루였다.

    더욱이 자신의 얼굴이 비록 모자이크 상태였지만 뉴스까지 탈 줄이야.

    “뭐 그래도 거기까지지.”

    성진은 인터뷰에 응하거나 괜히 신원을 공개해서 일을 귀찮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설사 인터뷰를 요청해도 거절할 생각이었다.

    나른함이 몰려와 침대에 눕는데 문득 인공지능 팔찌에게 묻기로 생각한 일이 있었다.

    “참. 2단계 육체 강화라는 게 정확하게 뭐야?”

    - 예. 설명 드리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의 질문이 떨어지자 인공지능 팔찌는 간단한 정보를 시각으로 제공함과 동시에 설명을 시작했다.

    - 기존 육체강화는 대사능력 향상과 근육조직의 강화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 하지만 2단계 육체강화는 전혀 새로운 목표를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새로운 목적?’

    - 그렇습니다. 바로 제3단계. 초상능력 사용을 위한 종적 진화를 위한 단계입니다.

    “초상 능력이라고?”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지만 낯설다.

    - 흔히 초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현상입니다.

    “초능력!”

    성진은 탄성을 흘렸다.

    - 초능력 발현을 위한 유전자 변화를 위해 2단계 강화는 보다 더 막대한 수준의 육체적 강화를 꾀합니다.

    “좋아. 계속 설명해봐.”

    - 2단계 육체강화는 기존 육체를 압도하는 신장 기능과 재생력, 육체 전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강화가 극대화된 경우입니다.

    - 2단계 강화 이후 거의 모든 독소에 내성을 갖게 됨은 물론 오염물질과 외부 충격에 대해 훨씬 더 높은 생존능력을 갖게 됩니다.

    - 더불어 이 과정에서 압도적인 폐활량과 수중 호흡능력을 갖게 되어 생존을 위한 대책으로 긴급 가동하였습니다.

    “수중 호흡? 이젠 물속에서도 숨을 쉰단 말이야?”

    - 그렇습니다. 마스터. 성공 확률이 극도로 낮아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덕분에 앞으로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겠네.”

    밝게 웃은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이 있었다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보다 더 강력해진 육체적 능력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 본래 생물학적으로는 성공확률이 극히 힘든 일이지만, 변환 과정에서 마스터의 정신적 의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생체 에너지 반응이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 즉, 성공 결과에는 마스터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셈입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성진도 떠올랐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보였던 빛기둥의 기억이.

    그 와중에 강력하게 작용한 성진의 의지력이 상황을 좋게 이끈 셈이었다.

    “그래. 그랬군.”

    - 앞으로 감각과 육체적 변화에 의해 다소 불편을 겪으실 수 있습니다.

    - 이는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점차 해결되실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성진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3단계에 성공하면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지?”

    - 그렇습니다. 마스터. 하지만 3단계의 성공 확률은 더욱 어렵습니다. 현재 2단계만으로도 엄청난 기적적 성공입니다. 다음에 이런 행운이 작용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시도를 보류하시기 바랍니다.

    “음. 좋아. 알았어.”

    초능력에도 호기심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진화니 유전자 변화니 하는 걸 봐선 섣불리 호기심만 가질 일은 아닌 듯 했다.

    무엇보다 일단은 살아남은 것이 중요했다.

    더욱이 이번 일로 새로이 깨닫게 된 점도 있었다.

    “오늘은 너무 무모했네. 내가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었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었다.

    사람이 죽어가기에 어쩔 수 없다 해도 돌이켜보니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셈이었다.

    성진은 심각하게 무모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할게. 고마웠어.”

    - 아닙니다, 마스터. 저의 역할은 마스터를 돕는 것뿐입니다.

    “그래. 고맙다.”

    여유롭게 대답한 성진은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되새기면서 피곤에 잠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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