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21화 (21/185)

<-- 21 회: 1권 - 육체의 한계 -->

“응?”

문득 돌아본 시선 끝에서 다리 위에 반쯤 다리를 걸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성진이 벌떡 일어섰다.

“오빠. 왜 그래요?”

“희진아. 저기 안 보이니?”

성진이 가리킨 끝을 바라본 희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가요?”

“아…….”

곧바로 성진은 깨달았다.

인공지능 팔찌의 신체 강화로 인해 시력까지 크게 높아진 성진에게도 극히 작게 보이는 저 모습이 지금 희진에게 보일 리가 만무한 것이다.

“희진아. 미안한데 지금 오빠가…….”

그때 다리에 매달렸던 사람이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제기랄.’

마음이 급해진 성진은 곧바로 강물 속에 뛰어들었다.

“오빠!”

뒤에서 희진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성진은 정신없이 사람이 떨어진 쪽으로 헤엄을 쳤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순간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약 4분.

특히나 위험한 작업을 많이 하는 공병대에서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를 철저히 들은 성진이었다.

익사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안다.

‘후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최대한 숨을 참아가며 성진은 빠르게 현장으로 다가갔다.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저기다.’

새하얀 남방 차림을 한 중년 남성이 버둥거리며 물속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성진은 더욱 속도를 높여 접근했다.

‘후웁.’

성진이 다가가 안심하라고 신호를 하고 겨드랑이로 팔을 넣었다.

하지만 중년 남성은 아예 성진에게 매달리며 온몸을 요동쳤다.

‘이런, 실수다.’

안전 교육 중 배웠던 내용이 뒤늦게 생각이 났다.

본래 물에 빠진 사람이 공황 상태에서 허우적거릴 때 아무런 장비도 없이 직접 맨몸으로 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줄을 던지거나, 정 안되면 차라리 힘이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바로 구하는 것이 낫다.

막상 상황이 닥치니 당황해서 무작정 구하려 든 성진에게는 큰 낭패였다.

어떻게든 호흡을 확보하려고 남성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성진은 크게 소리쳤다.

“이봐요! 이러면 다 죽어요. 제발 진정 좀 하세요.”

자살하려는 사람도,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공포에 압도되어 버린다.

죽어가다 깨어나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중년 남성은 성진의 목이며 어깨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러댔다.

“살려줘……. 살려줘어!”

‘젠장.’

사실상 이 남성의 몸무게까지 합쳐서 부력을 유지해야 하는 성진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끄윽.”

한참을 그렇게 있자니 온몸의 근육이 고통으로 욱신거렸다.

- 마스터. 현재 극도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팔과 다리에 주요 신체 근육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알았어.’

안 되겠다 싶은 성진은 주먹질을 짧게 끊어서 남자의 뒷목을 내려쳤다.

“컥.”

난리를 치던 남자가 축 늘어지자 그제야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

“하아……. 후우…….”

숨을 헉헉대면서도 성진은 남자까지 어떻게든 끌고 헤엄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미 힘이 너무 떨어져버렸다.

수백 미터를 전력으로 헤엄쳐 와서 예상 못한 난리를 한참동안 겪었다.

조금만 힘을 빼도 사지가 축 늘어질 지경이었다.

인공지능 팔찌도 경고했다.

- 마스터. 이미 한계 상황입니다. 수영을 하시는 동안 소모된 체력에 방금 전 일까지, 현재 온몸의 과부하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떻게든 도와줘.’

- 마스터…….

‘그래서 지금 이 아저씨를 버리라는 거야?’

- 마스터. 위험한 상태입니다. 현재 이 남성을 감당하실 만한 상황이 도저히 못 됩니다.

‘안 돼. 어떻게든 도와줘.’

성진은 스스로 알면서도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도저히 자기 손으로 사람 목숨을 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반쯤은 인공지능 팔찌를 믿는 마음도 있었다.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쯤 되니 인공지능 팔찌도 어쩔 수 없었다.

주인이 설사 어리석은 선택을 해도 인공지능은 주인을 강제할 수 없다.

- 온몸의 근육조직과 신경을 자극하는 신경물질을 최대한 공급하겠습니다. 아드레날린 생성, 일부 근육 강제 수축 고정, 기타 장시간 적용 시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물론이야.’

- 알겠습니다, 마스터.

곧바로 반응이 왔다.

고통스럽던 팔다리가 조금이나마 가뿐해지고 한결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빠른 속도로 체력이 소진되는 것이 느껴졌다.

“헉, 헉.”

가장 가까운 뭍으로 다가가기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 남성이 다리에서 떨어지자마자 물길에 떠밀린 모양이었다.

“끄으으으.”

이를 악문 성진은 남은 한 손으로 쉴 새 없이 헤엄을 쳤다.

온몸이 찢겨져 나갈 듯한 고통이 전신을 내달렸다.

-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수영은 엄청난 체력이 소진되는 운동이다.

그것도 잔잔한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강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면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남자 한 명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 헤엄쳐야 한다면 전문가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으아아아.”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해 가장 가까운 강변으로 다가간 성진은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인근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들이 성진이 지른 고성을 듣고 달려왔다.

“아니, 저게!”

“큰일 났네. 사람이 빠졌어.”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듯한 얼굴을 한 사람이 의식 불명인 사람을 끌어안고 헤엄을 치고 있었다.

“119에 신고부터 해요.”

개중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이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그 외에도 중년 아주머니나 어린 아이들이 모여들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저거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게 참…….”

저마다 말들은 많았지만 호기롭게 뛰어들만한 젊은 장정은 공교롭게도 한 사람도 없었다.

한참을 멀리서 바라보며 발을 구르던 사람들은 성진이 악전고투 끝에 강변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고. 용케 왔네. 왔어.”

119에 전화를 했던 중년 남성이 얼른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내 손 잡아요.”

성진이 남은 힘을 쥐어짜 대답했다.

“저보다 이 사람을 좀…….”

성진이 의식을 잃은 남성의 몸을 밀어 올렸다.

중년 남성이 어깨를 잡고 남성의 몸을 끌어올리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헉.’

금방이라도 무너질 온몸을 팽팽하게 유지했던 긴장이 툭 끊겨버렸다.

저항할 힘을 잃은 채 중력에 고스란히 사로잡힌 성진은 무력하게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읍…….’

수면 위로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얼핏 스쳐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물이 한가득 몸속으로 들어오자 호흡 곤란이 시작됐다.

‘헉. 커허업.“

인공지능 팔찌의 음성이 즉각 울렸다.

- 생존 위급 상황 감지. 체내 유입된 물을 즉시 산소로 분해하겠습니다.

성진의 몸속에 잠자고 있던 나노 로봇들이 활동을 개시했다.

폐 속으로 몰려든 나노 로봇에 의해 일정 분량의 산소가 생성됐다.

그러나 조족지혈이었다.

밀려드는 물에 비해 나노 로봇이 분해해서 만들 수 있는 산소량은 열세였다.

이렇게 물이 계속 차면 폐를 비롯해 각종 신장이 영구적으로 망가진다.

그리 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 마스터. 급박한 생존위기상황으로 판단됩니다. 보호 규정에 따라 의식 판단을 하실 수 없는 마스터의 동의를 배제한 처치를 시행하겠습니다.

주인의 위기를 감지한 인공지능 팔찌는 절체절명의 순간, 성진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가동하기로 했다.

- 2단계 육체 강화 긴급 가동. 성공 확률은 약 11% 내외로 추정됩니다.

의식이 끊어져가는 성진이 들은 말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행운을 빕니다. 마스터.

즉시 온몸에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2단계 육체 강화는 죽음을 논할 위험한 일이었다.

이미 악조건 속에서 혹사를 당한 육체가 견디기에는 절망적인 모험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팔찌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2단계 육체 강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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