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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4화 (14/185)

<-- 14 회: 1권 - 아들 노릇 -->

자료 조사에 관한 한은 큰 부담은 없었다.

성진에게는 주제에 맞춰서 완벽 검색, 정리를 해주는 똑똑한 비서가 있었다.

“우리 집 주변지역 인근 상권이나 상주 인구, 하루 평균 인구 유동량 등도 좀 조사해줘.”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믿음직스런 인공지능 팔찌의 대답이 들리고자 성진은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

사실 현대에는 자료와 정보를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시대다.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인터넷만 뒤져도 필요한 정보가 넘치고 각종 행정 시스템과 자료도 인터넷을 뒤지면 잘 이용할 수 있게끔 갖춰져 있다.

“중요한 건 정보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지.”

최근 경마장에서의 일을 계기로 성진은 자신이 가진 인공지능 팔찌의 정보 분석력 활용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공부를 거듭했다.

책을 한번 쓱 읽기만 해도 머릿속에 단어가 그대로 입력되니 공부 자체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물론 이해와 기억은 별개이기에 완전히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나름대로 정보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차츰 초보적인 개념이나마 잡아가는 단계였다.

- 마스터. 현재까지 축적된 정보 분석이 끝났습니다.

“벌써? 그럼 지금 바로 보여줘.”

- 예. 마스터. 정보 출력을 시작하겠습니다.

대용량의 정보가 성진의 뇌리 속에서 빠르게 출력되었다.

그간 꾸준한 두뇌 강화를 받은 성진의 뇌는 직접적인 정보 입력에 훨씬 더 익숙해진 상태였다.

덕분에 인공지능 팔찌가 제공한 정보들을 빠르게 받아들인 성진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의 핵심을 빠르게 추려냈다.

“흐음. 이 지역은 사무실이 많아서 점심 밥장사가 잘 되는구나. 이 지역은 공단이 가까워서 유흥 시설이 밀집했고. 여기는……. 후우.”

대충 주변 상황을 조사한 성진은 여러 가지 조건을 미리 염두에 두었다.

경험이 없는 아버지가 비교적 수월하게 꾸려나가실 수 있는 업종일 것,

그리고 주변 상권 상황에 적절할 것.

“복잡하네.”

가려야 할 것이 많다 보니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더욱이 창업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은 총 6억.

여러 조건이 다시 취합되고 인공지능 팔찌의 분석 작업이 이루어졌다.

몇 가지 가닥이 잡혔다.

결정을 내린 성진은 아버지부터 찾아갔다.

“유기농 채식 카페를 하는 건 어떨까요.”

“채식 카페?”

“예. 일단 다른 식당보다 급한 일손이 덜 들어가니까요. 고기 집을 하시면 불판도 갈고, 여러 셋팅도 해야 하고 고기도 굽고 많이 바빠지는데 채식 위주의 식당은 최소한 기름은 덜 쓰니까 설거지도 훨씬 수월하고 관리도 쉽죠. 다른 어려우신 게 있으시면 제가 돕겠습니다.”

이런 걸 다 떠나서 다른 요식업은 어딜 가나 포화상태고 경쟁이 쉽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업종을 하려니 전망이 여의치 않았다.

뭣보다 별다른 경력이 없는 아버지가 하시기에 적절했다.

‘먹는 게 남는 거다.’

성진이 고려한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아버지께 모든 이유를 이해시켜드릴 수는 없었다.

“그럼 요리는 누가 하냐. 채식 식당이라고 하면……. 뭐 산나물 비빔밥 같은 걸 파는 거냐?”

“아닙니다. 커피를 파는 카페와 결합할 거라서 그런 메뉴보다는 샐러드, 월남쌈, 버섯전골 같은 걸 위주로 팔 겁니다. 샤브샤브 같은 것도요.”

“어허? 그거 네 엄마가 잘 하는 메뉴들이구나.”

아버지가 공장에 다니시면서 성진의 어머니도 여기저기 음식점에 조리 일을 다니셨다.

“예. 일단 어머니가 수락하시면 어머니께 맡기고, 안 되면 제가 또 따로 조리사를 고용할 겁니다.”

“그래. 네가 괜찮다면야 뭐 좋지. 그런데 커피는?”

“커피원두쯤은 로스팅 업체에서 공급받고, 커피를 우려내는 것쯤은 기계가 다 하기 때문에 조금만 배우시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바리스타라고 해서 전문성을 내세우는 곳도 있지만 저희는 채식 식당과 퓨젼하는 거니까 기본적인 커피 정도만 판매해도 될 거에요.”

“음. 좋다. 네가 그렇게 하자면 이 아버지도 따르마.”

“아니에요. 저보다는 아버지 의견이 더 중요하죠.”

“나도 좋다. 채식 식당이라면, 요즘 그 웰빙이라는 게 유행한다면서? 그 웰빙이라는 거 아니냐? 허허.”

“예. 요즘 웰빙이 대세긴 하죠.”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   *   *

성진은 새로 뽑은 최신형 G7을 몰고 시내로 나갔다.

바로 어제 인도받은 생애 첫 마이카.

하지만 막상 몰려니 군대 입대 전 따두고 장롱 면허로 오랫동안 처박아둔 성진의 운전 실력이 문제였다.

“으……. 이거 만만치 않네.”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겨우겨우 흐름에 맞춰가고 있었지만 영 쉽지 않았다.

“운전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때 인공지능 팔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 마스터. 제가 운전을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운전을? 네가 어떻게?”

성진은 의아스러웠다.

팔찌에 팔다리가 달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운전을 해준단 말인가.

- 현재 마스터께서 운전 중이신 자동차 모델에는 무선 제어입력이 가능한 장치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신호를 변환해서 해킹을 시도하겠습니다.

가뜩이나 익숙지 않은 운전이 힘든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인공지능 팔찌의 제안에 동의했다.

“좋아. 그럼 한번 해 봐.”

-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부터 자동차의 제어를 시작하겠습니다.

인공지능의 보고가 울리고 핸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엇?”

엑셀을 밟지 않았는데도 다음 도로에 진입하자 속도가 가속되고 커브 길에 들어서면 유연하게 꺾였다.

성진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베스트 드라이버였네.”

- 칭찬 감사합니다, 마스터.

“후우……. 그나저나 자동차도 해킹이 된다니 놀라운데.”

- 지구의 보편적인 전자공학 기술로는 아직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 최신형의 자동차일수록 전자제어장치를 탑재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해킹이 가능합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성진은 나중에 유용이 써먹을 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할 때 대신 운전해주면 좋겠지.’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오고 비교적 한산한 도로로 들어간 성진은 다시 스스로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직접 운전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니까 앞으로 종종 도와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은 차츰 운전 실력을 향상시켜놓을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기본적인 걸 일일이 인공지능 팔찌에 의존하기는 싫었다.

“그나저나 채식당을 하려면 여자 손님이 많아야 유리하겠지?”

- 그렇습니다, 마스터. 미용 측면에서 채식을 홍보할 경우 여성 소비자들이 반응하기 쉽다는 마케팅 자료가 있습니다.

“좋아. 그러자면…….”

성진은 운전을 하면서 의식 한편을 통해 점심을 식당에서 해결할만한 여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검색했다.

운전 중에 딴 짓을 하면 안 될 일이었지만 두뇌 강화를 통해서 동시에 여러 일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음. 꽤 많네.’

인근에 여성들이 자주 다니는 쇼핑몰, 여성 근로자가 많은 지역, 단독 생활하는 여성들이 많은 원룸촌 등이 대상이었다.

특히 인근에 채식당이 없는 곳이 우선 대상이었다.

필요 목적이 뚜렷하고 막강한 정보수집 분석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팔찌가 정보를 쏟아내니 막히는 부분이 없었다.

곧바로 몇 개의 상권지대가 선정되었다.

“됐어. 이제 직접 가서 물색해야지.”

현장 정보는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경마장에서의 교훈을 바탕으로 성진은 직접 선정한 상권골목마다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다녔다.

몇 번을 갖가지 이유로 물린 끝에 제법 괜찮은 가게가 보였다.

본래 음식점을 하던 가게였는데 인테리어며 집기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이 조건에는 여기가 최고죠.”

부동산 중개인이 호언장담을 했다.

친절한 인상이었지만 성진은 그가 제시하는 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동네 시세가 삼억이나 되던가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여기 원래 있던 내 가게도 잘 되서 나가는 겁니다.”

살짝 찔러봤지만 도리어 옆에 있던 가게 주인이 뻔뻔스럽게 장담했다.

나름대로 유동인구가 많지만 크게 명당이라고 보기는 힘든 번화가 외곽의 점포였다.

‘이 아저씨가 왜 이리 세게 부르시나.’

원래 주인의 속내가 어떻든 성진은 대충 이 지역 상가의 최근 시세를 알고 있었다.

정말 많이 쳐줘도 2억에 거래될 점포를 지금 3억을 부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개인도 은근히 주인 편을 드는 눈치가 역력했다.

‘앉아서 손해를 볼 수야 없지.’

성진은 입질을 당겼다.

“너무 비싸네요. 일억 오천에 합시다.”

“아니 후려쳐도 반 토막을 후려치시네. 주인이 동의하겠어요?”

낯이 훽 변해서 손을 휘휘 젓는데 거래하기 힘들다는 투였다.

주인도 화를 냈다.

“아니 권리금이라는 게 있어! 내가 음식 장사하면서 쌓은 이 지역 단골에, 가게 집기에, 시설 투자한 거 어쩔 거야!”

시설 투자고 가게 집기고 성진은 권리금 같은 걸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우리 가게는 새로 꾸릴 건데 권리금이라니?’

손을 저은 성진은 단호히 말했다.

“전 아쉬울 거 없습니다. 저도 알 건 다 알구요. 일억 오천 이상은 안 됩니다. 대신 일시불로 해드릴 수 있어요.”

성진도 거래를 접자는 투로 나서니 이번에는 주인은 물론이고 중개인이 머뭇거렸다.

“아니 뭐 그렇게 딱 단정적으로 거래를 하시나 그래…….”

노련한 부동산 중개인일수록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아는 눈치에, 역으로 조건을 던지는 성진 앞에서 꼼수가 떠오르지 않으니 그도 몸이 달았다.

“에이 참. 알았수다. 일단 상의는 해봐야지.”

투덜대면서 밖으로 나가는 중개인과 주인을 보고 성진이 빙글 웃었다.

거래 접을 생각이라면 애초에 말도 안 띄울 것이다.

결국 깎고, 거기에 또 깎고 해서 성진은 딱 일억 삼천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히야. 이거 바늘로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날 위인이네.”

가게의 전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가 부동산 중개일하면서 청년처럼 마구 깎아대는 경우는 처음이야.”

중개인도 질린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하핫. 제가 뭘 그리 깎아댔다고 그러세요. 딱 시세대로 치룬 거 아닙니까.”

“시세대로라니! 애초에 치러야 할 권리금만 해도 얼만데.”

주인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애초에 협상 자체가 불공평했다.

‘전 아저씨가 어떤 마음인지 대충 보이거든요.’

성진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인공지능 팔찌의 대사 스캔과 함께, 꾸준한 두뇌 강화 작용을 거치면서 성진은 한눈에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이 증대되었다.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면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일상에서 이미 발현되기 시작한 성진의 통찰력은 거의 직관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성진이 배짱을 부릴 때마다 주인은 태연하려 애쓰면서도 초조해 했기 때문이다.

‘아마 돈이 급하거나 오랫동안 거래자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겠지.’

대신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아저씨 혹시 꼭 삼억이 아니면 안 되는 문제라도 있으세요?”

넌지시 묻는 성진에게 주인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뭔 소리요? 웬 엉뚱한 소리?”

“예. 하핫.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여 딱 3억이 필요한 절박한 문제라도 있나 싶어 물어본 말이었다.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네.’

자신 때문에 남의 사정이 심각하게 곤란해지는 상황은 찜찜한 일이다.

성진은 홀가분하게 복덕방을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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