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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0화 (10/185)

<-- 10 회: 1권 - 베팅의 명수 -->

도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

“으앗!”

성진에게 가볍게 패대기쳐진 관원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휴휴휴휴.”

“괜찮으세요?”

성진이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난 관원은 감탄한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봤다.

“이야. 이거 진짜 딱 한 달 배우는 사람 같지가 않네.”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운동만 해온 그는 정말 성진이 신기했다.

처음에는 발차기나 주먹질조차 어설펐던 성진이 한 달 만에 자신을 가볍게 날려버릴 줄이야.

이제는 너무 압도적으로 당해서 분한 마음도 안 들 정도다.

“진짜 타고났네. 타고났어.”

“하핫. 감사합니다.”

그런 성진을 눈여겨보는 관장도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 먹는 솜처럼 한번 배우는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다.

이건 도리어 무서울 정도의 재능이다.

‘슬슬 정식으로 제안을 해볼까.’

수제자를 받는 일이니 고민이 꽤 길었다.

그럴수록 성진의 압도적인 재능이 너무나 탐이 났다.

“크흠. 이봐, 한성진 군?”

“아 예, 관장님.”

부르는 소리를 듣자 달려온 성진에게서 관장은 섭섭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마침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관장님. 저 당분간 도장에 오기 힘들 거 같습니다.”

“응? 아니 왜.”

깜짝 놀란 관장이 반문했다.

성진은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집안 사정이 좀 생겨서요. 앞으로 한두 달 정도 쉬고 그 다음부터 다니겠습니다.”

“어…….”

관장은 침통한 낯빛이었다.

“음. 그래.”

실망했지만 차마 표현할 수 없었다.

집안 사정이 안 좋다는 데 뭐라 말하랴.

“그런데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음. 아닐세. 아무 것도.”

얼굴을 굳힌 채 관장은 터덜터덜 관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더위 드셨나?”

무더위가 한창이라 몸이 안 좋으신 모양이었다.

“요즘 더위가 심하긴 하지.”

짐을 챙긴 성진이 도장을 나오면서 아침에 봤던 뉴스를 떠올렸다.

폭염으로 인해 연로한 노인 사망자가 생겼다는 보도였다.

그런데 이 무더운 날씨에 아버지는 연신 밖으로 나가 일을 찾으시려 했다.

아직 괜찮은 일자리를 못 구하신지라 마음고생이 심하신 모양이었다.

“제대로 목돈을 벌어서 가게라도 차려드려야지.”

성진이 도장을 잠시 그만둔 건 그 목적을 위해서였다.

나이 22살. 사회 기준으로는 분명 한참 어린 나이다.

이 나이에 가족을 책임지는 게 가능한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성진에게는 힘이 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밀하고 강력한 힘이.

‘그래. 이 녀석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팔찌를 매만지면서 성진은 돈 벌 구석을 궁리했다.

허나 남들의 생계를 빼앗을 만한 짓을 해서는 곤란하다.

번역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성진이 가진 인공지능 팔찌의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다.

그런 능력으로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일거리를 뺐으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하면 좋을까.”

단기간에 상당한 돈을 벌 수 있는 일.

그리고 타인들의 직업적인 생계 수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

자신은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의 호구지책을 빼앗아 배를 채울 만큼 뻔뻔하지도 않다.

“기분이 찝찝해지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지.”

이는 자신이 가진 힘과 책임에 대해 차츰 눈떠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던 성진은 지하철로 들어가면서 벤치 옆에 꽂힌 무료신문을 펼쳐들었다.

뭔가 도움이 될 것이 없나 살펴보던 성진에게 ‘경마 소식’이라는 면이 눈에 띄었다.

“그래 참! 경마!”

요즘 들어서 인공지능 팔찌가 제공하는 신체 스캔 능력의 유용성을 절감하는 차였다.

이런 분석력이 있다면 경마에서 어떤 말이 우승마가 될지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경마는 돈 놓고 돈 먹는 일이지.”

직업으로서의 일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경마는 엄연히 ‘잃을 것을 각오’하는 조건에 동의해서 돈을 거는 일이다.

성진은 그런 판에서 돈을 따는 행위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을 가질 만큼 무턱대고 착하진 않다.

경마는 성진이 찾는 조건에 부합했다.

‘혹시 말 같은 동물의 움직임이나 신체능력을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 충분한 현장 데이터가 수집된다면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혹시 경마라는 스포츠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 예. 입력된 데이터에 추가되어 있습니다.

‘본론부터 말할게. 나는 경마로 돈을 벌고 싶어. 네 도움이 필요해.’

-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최근 경마 우승기록과 모든 전적에 대해 검색하겠습니다. 기타 적중확률을 높일 수 있는 데이터 수집을 집중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말귀를 알아들은 인공지능 팔찌가 정보 수집을 가동했다.

경마 베팅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정보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정보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성진은 경마를 선택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마침 오늘은 금요일.

경마 경기가 열리는 주말이 내일이다.

‘좋았어. 내일 경마장에서 멋지게 해보자고.’

성진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날. 과천 서울경마장.

경기가 시작되는 토요일 주말답게 사람들이 몹시 붐볐다.

경마장 지하철을 나온 출구부터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무슨 종이를 내밀며 장사를 하셨다.

뭔가 해서 사고 보니 경마 결과를 대충 예상해놓은 잡지 비슷한 종이였다.

“난 또 뭐라고.”

쓰게 웃은 성진은 길가에 보이는 휴지통에 종이를 버렸다.

지금 성진에게는 어떤 예측보다 더 정확한 경마 예상 시스템이 팔에 달려 있었다.

“오늘 경기하는 말 중에 어떤 말들이 가장 유력하다고 했지?”

- 예, 마스터. 폭풍룡, 백호창, 노리솟대, 스파클, 시그마 세븐, 이상 5마리입니다.

“좋아. 그 말들을 중심으로 말들의 신체 상태를 확인해보자고.”

- 예, 마스터.

자신만만한 성진이었지만 생전 처음 오는 경마장이었다.

붐비는 인파속에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데 말을 붙이는 사람이 있었다.

“저기. 처음 오셨어요?”

인상이 서글서글한 중년 아저씨였다.

붙임성 좋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붙이는데 낯선 곳에서 정신없이 둘러보던 중이라 순간 마음이 풀릴 정도였다.

“예. 그렇긴 한데…….”

순간 감을 잡았다.

세상에 친절한 사람은 본시 두 종류.

꿍꿍이가 있거나, 마냥 착하거나.

성진이 딱 봤을 때 이 아저씨는 전자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뭐. 저 같은 사람으로 말하면 이 귀하 같은 초보 분들을 돕는, 그런 뭐랄까! 아! 경마장 도우미? 뭐 그런 거죠. 허허.”

좋게 둘러댔지만 경마장에 도우미 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

아마도 심부름꾼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어지간히 초보 티를 냈구나.’

초짜마냥 이곳저곳 둘러본 게 화근인 모양이었다.

“뭐 저는 괜찮은데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저 같은 전문가 도움을 받아서 쉽고 편하게 경마를 즐기시죠.”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니 바로 태도를 또 바꾼다.

‘거 참 끈질기네.’

이럴수록 더 부담스럽다.

먼저 도와주겠다는 사람치고 정말 순수한 선심을 발휘하는 부류는 드문 법.

그냥 지나쳐 가려는데 먼발치에서 머뭇거리는 어린 녀석이 이쪽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대충 고등학생쯤 될까.

흥미를 느낀 성진이 시선을 돌렸다.

“어라? 혹시 쟤를 고르려구요? 쟤는 어린 데다 초짜인데…….”

만류하는 아저씨를 무시하고 성진은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너도 혹시 경마장에서 심부름하니?”

“예? 예 그럼요. 저도 다 할 줄 알아요. 저도 베테랑입니다, 베테랑.”

갑자기 말을 거니 당황하는 것도 한 순간,

녀석은 금방 뻔뻔하게 자기 자랑을 했다.

아직 앳된 얼굴에 유들유들하게 굴었지만 어딘가 어설픈 끼를 감추지 못했다.

‘못된 놈 같지는 않은데.’

고개를 끄덕인 성진이 녀석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따라 와. 삯은 넉넉히 줄게.”

멀리서 아저씨가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성진은 무시하고 경마장 입구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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