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회: 1권 - 신체 단련 -->
남자라면 누구나 강해지기를 꿈꾼다.
육체적으로도, 완력으로도 그리고 남들의 위협으로부터 유사시 자신은 물론이고 소중한 것까지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는 격투기를 배우는 게 필수지.’
지금도 이런 근육질의 몸만으로도 어디 가서 쉽게 맞고 다닐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성진의 마음속에 급속히 발달한 이 육체적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는 마음이 고양되고 있었다.
- 무술, 먀셜 아츠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스터.
“응. 마셜 아츠라고도 하지? 나도 제대로 된 무술을 익혀보고 싶어.”
인공지능 팔찌는 난색을 표했다.
- 마스터. 그런 부분은 저로서는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가?”
- 저는 지식을 입력해드리거나 육체적인 발달 및 정보 분석을 도울 수는 있지만 마스터께서 직접 수행하시는 기능적 숙달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무술은 따로 도장에 다녀볼 생각이야.”
성진도 인공지능 팔찌가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 만능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인공지능 팔찌를 활용해 나가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차츰 이해가 갔다.
“내친 김에 바로 무술 체육관에 가볼까.”
아직 오후 3시. 시간은 충분하다.
성진은 일부러 가까운 헬스클럽을 고른 것처럼 무술을 배우는 체육관도 가깝기를 바랐다.
헬스클럽을 나와 걸으면서 주변 간판들을 살펴봤다.
태권도, 합기도, 검도, 킥복싱 등 다양한 무술학원들이 보였다.
하지만 성진은 영 끌리지 않았다.
와 닿는 느낌이 없었다.
그때 특이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태합 종합유술]
‘뭐지? 이상한 무술도 다 있네.’
호기심이 든 성진은 일단 들어가 봤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구식 건물에 가장 꼭대기인 5층 위치였다.
하지만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의외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계십니까?”
인기척을 낸 성진에게 운동 중이던 사람들의 눈길이 모여들었다.
시선에 약한 성진이 잠깐 머뭇거리는데 곧 한 사람이 다가왔다.
사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흑색 도복을 입은 남자는 얼핏 봐도 몸 구석구석에 다부진 근육이 잡혀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예. 제가 여기서 무술을 한번 배워볼까 하고 왔는데요.”
“아. 등록하러 오셨군요.”
“그런데 혹시 여기 관장님 되십니까?”
“그래요. 내가 관장 표학선입니다.”
진중하고 정중한 태도였다. 우람한 체격에 조금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눈빛만은 차분하다.
묘하게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일단 인상은 괜찮은데.’
“그럼 등록하러 따라오시겠습니까?”
“예.”
고개를 끄덕인 성진은 곧 관장의 안내를 받아 구석의 조그만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다.
관장실이라고 문패가 붙은 좁은 방에서 주소, 이름 따위를 적은 성진은 회비부터 물어봤다.
“한 달에 8만원 정도입니다. 대신 복장은 자유고 최대한 질기고 편안한 옷으로 챙겨 오세요. 참고로 난 주말에도 대개 도장에 있기 때문에 오고 싶으면 주말에 와도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내가 사부이기도 하니 말을 놔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관장님.”
성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관장은 마주 웃어 보이면서도 성진의 몸 상태를 찬찬히 살폈다.
이곳저곳에 제대로 된 근육이 다부지게 박혀 있었다.
근육을 부풀리는 건 차라리 쉽다. 하지만 저런 근육은 단기간 속성만으로는 안 된다.
‘장기간 운동을 했나?’
오랜 시간 육체적인 단련을 해야 저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도 체질이 안 되면 힘들다.
게다가 더 감탄한 점은 바로 몸의 양쪽 균형이 딱 맞아 떨어지는 점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몸의 균형이 딱 맞는구만.’
오랜 시간 무술을 연구하고 때로는 지도해 온 관장은 관찰을 통해서 신체의 특징을 파악하는 눈썰미가 생겼다.
물론 외양을 살피는 것이니 아주 정확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성진은 유독 두드러지게 신체의 균형이 잡혀있었다.
“오래 운동을 했나?”
순간 망설인 성진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예. 한 5년 정도 했습니다.”
“5년?”
관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5년 만에 저 정도라고? 타고난 체질인가?’
그걸 본 성진은 영문을 모르고 긴장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음. 아니. 큼.”
헛기침을 한 관장은 화제를 돌렸다.
“에. 비록 우리 도장이 복장은 자유지만 무술을 배우는 만큼 예의가 중요해. 격한 운동을 할수록 예의가 앞서야 다툼이 없는 거지.”
“예.”
“그런 의미에서 일단 다 같이 인사부터 나누자고.”
밖으로 나간 관장은 목청을 높였다.
“자! 주목!”
체육관에서 각자 운동 중이던 관원들이 시선이 단박에 쏠렸다.
관장 앞으로 모여든 단원들은 의외로 면면이 다양했다.
나이 든 아저씨부터 성진보다 어려보이는 청년, 중학생, 여자 단원들 등 17명 정도의 관원들이 성진을 바라봤다.
“자 인사해요. 오늘부터 등록한 한성진 군입니다.”
“한성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젊은 여성 한 명이 먼저 낭랑한 목소리로 환영인사를 건넸다.
“환영해요.”
삼십대 후반쯤 될까.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도 성진의 몸을 살피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우. 몸이 장난 아닌데? 이거 나랑 언제 붙어봐야겠어?”
“어. 그럼 지금 한번 붙어보지?”
관장이 말을 받았다. 삼십대 아저씨가 눈을 뚱그렇게 떴다.
“지금요?”
“그래. 어디 가볍게 테스트하는 셈 치자고. 어렵겠나?”
관장이 성진과 삼십대 아저씨 양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삼십대 아저씨 쪽도 호기심이 동하는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해보자고. 글러브, 각반 끼고 가볍게 스파링 해봐. 팔다리만 쓰자고. 어떤가.”
이번에는 성진을 바라봤다.
나름 자신이 있는 상태라 성진은 선선히 동의했다.
“자 그럼 해볼까?”
글러브가 주어지고 헤드기어를 착용한 성진과 삼십대 아저씨가 링 안으로 들어갔다.
둘이 마주 보며 인사했다.
“내 이름도 알아둬. 나는 한정훈이다.”
씨익 웃어 보이는 정훈을 보며 성진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인사를 나눈 둘은 천천히 떨어져서 공격을 준비했다.
한정훈은 성진보다 키도, 체격도 훨씬 컸다.
거의 190은 되는 데다 살집까지 우람한 커다란 체격이었다.
성진도 키가 큰 편이지만 180을 살짝 넘는다.
전체적인 체격도 호리호리한 편.
그런데 성진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근육에 힘을 주는 부분이 다 보이잖아!’
한정훈과 대결하는 상황이 되자 인공지능 팔찌가 주입하는 정보가 성진의 시각에 덧씌워졌다.
마치 스마트폰의 증강현실 기능처럼 희미한 그래픽 정보로 표현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한정훈이 신체 어느 부위에 힘을 주고 어떻게 접근할지 예상되는 데이터를 담은 정보들이었다.
‘훤히 다 읽히는구만.’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가 제공하는 정보량에 혀를 찼다.
덕분에 위압감 넘치는 몸집을 가진 한정훈의 덩치 앞에서도 성진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관장은 이채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오호. 이것 봐라?’
그가 일부러 한정훈을 붙인 이유는 그가 제일 큰 체구를 가졌기 때문이다.
보통은 머리 하나 이상의 체격차가 나는 사람과 겨루게 되면 부담을 느끼고 자연히 몸이 굳는다.
그러나 성진은 여전히 태연하고 차분하다.
‘배짱이 두둑한 건가. 아니면 한 가닥 믿는 수가 있는 건가.’
관장은 묘한 기대를 품고 성진을 바라봤다.
척 봐도 격투기나 무술 쪽으로는 전혀 배운 적이 없다.
어설픈 걸음걸이, 힘의 배분, 팔, 다리가 늘어진 몸짓만 봐도 대충 수준은 짐작할 수 있다.
‘완전 초보인데 말이야.’
정훈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이 녀석, 가볍게 이기겠는데.’
링 밖에서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성 한 명을 정훈이 슬쩍 훔쳐봤다.
이 도장을 다닌 지 반년쯤 되는 여성이었다.
이름만 아는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정훈은 강공을 쓰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한 대만 제대로 맞아줘라.’
정훈이 맹렬한 펀치로 성진의 시야를 현혹했다.
성진은 정신없이 스트레이트를 피하는데 순간 아래로 내지른 어퍼컷을 성진이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몸이 비틀렸다.
그때 정훈은 곰 같은 발을 높게 차올렸다.
찍기다. 정훈의 유독 긴 다리에 높은 체중을 가하면서 크게 회전한 찍기가 작렬하면 웬만한 장정도 나가떨어진다.
“크앗!”
완벽한 사정권에 들어온 성진이었다. 정훈은 노림수가 통했다고 생각했다.
“흡!”
숨을 삼킨 성진은 가볍게 몇 걸음 움직이는 것만으로 정훈의 찍기를 피해버렸다.
‘아니!’
지켜보던 관장도 깜짝 놀랐다.
‘저건!’
관장 밑에서 6년째 배운 정훈은 노련한 파이터다.
정훈은 성진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도록 몰아붙인 다음 가장 자세가 불안정한 순간 피할 수 없는 강공을 날렸다.
어렵사리 피한다 해도 넘어지는 게 당연하다.
‘이 녀석이!’
정훈의 뒷목을 타고 땀이 흘렀다.
그 짧은 한순간. 관장은 봤다.
성진은 찍기를 피하면서 무너지기 직전인 신체의 균형을 바로 상체를 뒤틀면서 회복했다.
그런 식으로 불균형을 극복하려면 초인적인 수준의 반사 신경과 균형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
‘거기에 단단한 몸이 버텨줘야 한다.’
그 한순간의 불균형을 버틸 만큼 전신이 아주 조밀하고 단단하게 단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자질도, 신체도, 모두 극상.
관장은 이제 열망을 담은 눈으로 성진을 바라봤다.
척 봐도 아무런 기술도, 요령도 없이 그저 감각만으로 정훈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만!”
관장이 제지하자 성진은 막 내뻗으려던 주먹을 거뒀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쉬움으로 탄성을 흘렸다.
이제껏 회피만 하던 성진이 공격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그 앞에서 정훈은 몸이 긴장으로 쭈뼛거렸다.
‘제대로 맞았으면 끝장이다.’
초짜인 줄 알았더니 공격을 모조리 피했다.
방금 전 성진의 주먹도 분명 위력적이다.
맞았다면 자신이 무너졌다.
발차기를 실패하고 발 하나가 어중간하게 들린 상황이라 주먹을 맞았다면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야! 일부러 초짜인 척한 거냐?”
두려움을 분노로 이겨내려는 걸까.
흥분한 정훈이 성진의 어깨를 짓누르면서 얼굴을 디밀었다.
천부적인 격투감각이 있다면 모를까 방금 겪은 건 도저히 초짜의 실력이 아니다.
“이거 이제 보니 괜히 내숭떤 거 아냐?”
갑자기 씩씩대는 정훈 때문에 성진은 난감했다.
‘이 아저씨, 이상한 쪽으로 오해했나 보네.’
분위기가 험악해질 찰나 관장이 링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정훈! 설마 도장 안에서 싸움질을 하려는 거냐?”
그제야 정훈이 표정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아닙니다, 관장님.”
그 와중에 뒤늦게 도장 관원들 쪽을 힐끗 돌아보다 인상을 찡그렸다.
잘 보이려고 점찍어뒀던 여자 관원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정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
무작정 화를 낸 자신이 잘못한 일이었지만 자기 잘못부터 따질 만큼 정훈의 도량은 넓지 않았다.
그는 더 일을 키워봐야 손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애써 화를 삭였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생각보다 뛰어나서 제가 괜히 흥분한 모양입니다.”
정훈이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자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자네 잘못이니 사과부터 하게.”
정훈은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성진도 순순히 손을 잡았지만 영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진심이 아닌 거 같지?’
인공지능 팔찌가 성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 현재 심박수가 고조되고 안면 근육 일부가 경직된 상태입니다. 상당한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진은 혀를 찼다.
‘역시.’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을 받으니 다는 아니더라도 추측은 가능해졌다.
영 좋지 않은 감정인 걸 봐서 앞으로 정훈을 주의해둬야 할 성 싶었다.
“자. 이제 다들 화해했으니까 서로 친하게 지내두게.”
상황을 대충 정리한 관장은 관원들에게 손짓하며 자리를 물러나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방금 전 성진이 보여준 재능에 흠뻑 빠져있었다.
‘정말 보통 자질이 아니야. 어디서 이런 녀석이 튀어나왔지?’
잘만 다듬으면 자기 문하에 쓸 만한 무술가가 탄생할 듯 했다.
욕심을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는 사실 자신의 비전을 전수할 제자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타난 성진은 그야말로 다시없을 무골.
“자네 앞으로 열심히 배워 보게. 재능이 있구만.”
“예. 감사합니다.”
관장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적당히 칭찬을 던졌다.
사실 성진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적잖이 흥분한 상태였다.
척 봐도 정훈처럼 제대로 무술을 익히고 체격도 더 큰 상대를 상대로 어렵지 않게 대처했으니 뿌듯함을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진짜 열심히 운동한 보람이 있네.’
이 고양감. 이 흥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확실히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 정훈 같은 거구를 상대한다면 마음에서부터 위축됐을지 모른다.
힘을 성취하고 나니 분명 그만큼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성진도 모르는 사이에 성진 자신은 분명히 변하고 있었다.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몸은 물론 내면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