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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6화 (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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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다음날 점심 무렵이 되자마자 전화가 울려댔다.

    “예. 여보세요?”

    - 예. 거기 한성진 씨 집입니까?

    순간 출판사에서 전화가 온 걸 직감한 성진은 득의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예 제가 한성진입니다.”

    - 아 한성진 씨? 나 창연 출판사 편집장입니다.

    “아 예.”

    연락이 오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편집장이 직접 해오는 것은 의외였다.

    - 그게 메일로 어제 도착한 번역본 말이에요. 그거 정말 한성진 씨가 직접 한 겁니까?

    “예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 아니 그게…….

    잠시 머뭇거리던 편집장은 감탄이 섞인 찬사부터 건넸다.

    - 번역의 질도 훌륭하고, 기성 번역가들도 하기 힘든 학술 번역을 너무 완벽하게 했더라구요. 감수를 맡은 교수님한테 연락을 드렸는데 그 분도 상당한 칭찬을 하셨어요.

    “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그만한 내용을 어떻게 하루 만에 한 겁니까? 혹시 도와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소개를 좀 시켜줬으면 하는데?

    말꼬리가 조금씩 가늘어지는 걸 보니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눈치가 빠른 편인 성진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아뇨. 모두 제가 혼자서 한 겁니다.”

    -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이게 진짜 말도 안 되는 분량을 하루만에……. 아 참. 어허허허. 오늘 일 없으면 계약을 했으면 하는데 출판사로 올 수 있겠어요?

    성진은 싱글싱글 미소를 지었다.

    “예. 지금 가겠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출판사로 향하는 성진에게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있었다.

    “가만. 꼭 중국어 번역만 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번역은 인공지능 팔찌가 하는 일이니 언어를 가릴 필요는 없다.

    성진은 내친 김에 출판사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어를 빼고도 스페인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등 여기저기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일감이 없는지를 물었다.

    “응? 다른 외국어 번역도 가능하시다구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번에도 시험 삼아 일부 원고를 받아온 성진은 일부러 몇 주 정도 시간을 끌고 바로 완벽한 원고를 보냈다.

    결국 창연 출판사에서 일본어, 영어 번역 일을 추가로 받은 성진은 이번에도 일주일 정도 후 번역된 원고를 보냈다.

    *   *   *

    “후. 이거 정말 빠르십니다.”

    한 달이 지나 다시 만난 장년의 편집장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번역 속도였다.

    “게다가 어떻게 이리 다양한 외국어에 정통하셨습니까.”

    하루 만에 엄청난 분량을 번역하는 사람이니 생활이 없을 거라 여겼다. 헌데 막상 만날 때마다 멀끔하고 건장한 행색이다.

    결국 성진의 실력을 완전히 믿은 출판사는 거의 몇 십여 권에 달하는 수천만 원어치 번역 계약을 성진과 단독으로 맺었다.

    그러고 난 뒤 성진은 다시 한 달 만에 모든 작업을 끝마쳐 버렸다.

    “출판될 때는 제 이름 대신 가명으로 부탁드립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책을 번역해댄 사람이 자신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부담스러운 일이 생길까 싶었다.

    쓸데없는 의심을 살만한 일은 피하고 싶은 까닭이었다.

    “아 물론입니다. 반드시 그럴 거고 요구하신 대로 한성진 씨 본인에 대한 신원도 함구할 겁니다.”

    “예. 그럼.”

    출판사를 나오려는데 편집장이 못내 아쉬운 듯 말을 이었다.

    “차후에 또 일을 하시려면 저희에게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요. 그건 좀…….”

    성진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저는 당분간 번역 일은 그만둘 겁니다.”

    성진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번역 원고를 쏟아내면 번역자가 아니라 인쇄기 수준이다.

    게다가 언어의 종류도 가리지 않는 인쇄기다.

    이러다 보면 다른 성실한 번역자들 생계를 빼앗게 된다.

    ‘적당히 벌었으니 이제 그만 해야지.’

    고개를 젓는 성진을 보고 편집장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시군요.”

    입이 떡 벌어질 속도로 상당한 수준의 번역 원고를 뽑아내는데 왜 아쉽지 않을까.

    하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출판사를 나선 성진은 가장 가까운 은행부터 찾았다.

    ATM기기에 넣은 통장에 이천만 원이 고스란히 찍혀 나왔다.

    “아싸!”

    액수를 통장으로 직접 확인하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성진은 감격에 젖은 채로 ATM창구를 나섰다.

    날아갈 듯한 기분을 알았는지 인공지능 팔찌가 말을 걸어왔다.

    - 마스터.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응. 그야 기분이 좋을 수밖에. 돈이 생겼잖아.”

    재산의 축적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신 거군요.

    “헤헤. 그렇지 뭐. 돈이 많은 걸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거든.”

    성진은 일단 이 돈으로 부모님께 선물부터 사드릴 생각으로 기뻤다.

    인공지능은 그런 성진의 기분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마스터. 최근 두뇌 강화로 인해 상당한 진척을 얻으셨습니다.

    “맞아. 덕분에 기억력도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거 같더라고.”

    처음에는 외국어를 더 많이 익히려고 수락한 두뇌 강화 기능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기억하기 쉽지 않은 다량의 문장이나 순서 등을 요즘 한결 더 쉽게 파악해서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본래 다음 두뇌 학습차례가 되면 꼭 영어를 배울 생각이었다.

    인공지능은 동의와 함께 새로운 제안을 덧붙였다.

    -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런데 마스터께서는 혹시 육체를 강화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육체를 강화한다?”

    두뇌 강화에 이어서 이번에는 육체 강화가 나왔다.

    “그게 정말 가능해?”

    - 물론입니다, 마스터. 최근 마스터의 신체 대사를 스캔한 결과 불균형으로 인한 장기적인 질환 가능성이 예상되었습니다. 저에게 육체 강화 권한을 승인해주시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육체 강화라…….”

    두뇌 강화를 할 때는 다소 거부감이 들었지만 육체 강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혹시 엑스맨의 울버린처럼 뼈가 단단해지고 그러는 건가?”

    - 지극히 장기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호오.”

    오래 걸린다는 소리였지만 일단 가능은 하다니 호기심이 팍팍 치솟는다.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됐고 일단 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고 했지? 그 부분부터 해결해야겠다.”

    - 육체 강화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질병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좋아. 그럼 해보자.”

    성진이 허락하자 곧바로 동의를 묻는 안내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성진이 동의를 했다.

    그 순간 몸 전체를 휘감는 무언가가 느껴졌다가 사라졌다.

    - 이제부터 육체 능력강화를 위해 마스터의 모든 신체 대사와 작동 구조에 대해 체크하겠습니다. 저의 일부 기능을 담은 나노 머신들이 마스터의 육체 곳곳에서 필요한 작용을 돕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것으로 신체 강화는 다 끝나는 거야?”

    - 아닙니다, 마스터. 강화 속도를 더 빠르게 촉진하려면 마스터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나의 도움이라니 그게 뭔데?”

    - 마스터께서는 이제부터 직접 운동을 해주셔야 합니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갑자기 성진은 살짝 속은 기분이 들었다.

    운동을 하면 몸이 나아진다.

    이건 당연한 상식이다.

    인공지능이 한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운동을 해야 몸이 나아진다?”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닌가. 이에 인공지능이 해명했다.

    -신체 강화는 마스터께서 직접 신체를 움직이고 활용하실수록 빨라집니다.

    “뭐가 됐든 결국 내가 운동을 해야 한다 이거구만.”

    - 그렇습니다. 신체활동을 하시면서 겪게 되는 신체적 반응과 변화를 제가 직접 체크하여 적확한 근육 배양과 피로 이완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전문적인 외국어 실력을 앉아서 단숨에 얻은 성진은 내심 신체 강화도 편하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에고. 역시 뭐든 공짜는 없네.”

    성진은 당장 운동을 시작하려니 은근한 부담을 느꼈다.

    그래도 통장에 들어있는 돈 이천만 원을 생각하자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긴다.

    “가만 일단은 울 엄니한테 좀 드려야지.”

    고생하시는 아버지나 걱정이 태산인 어머니 때문에라도 성진은 집에 돈을 가져다 드리는 게 먼저였다.

    일단 천만 원 가량을 따로 담은 성진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어머니에게 봉투를 건넸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엄니. 아들이 번 돈이에요.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하세요.”

    은근히 자존심이 강하신 아버지라 아들이 번 돈은 받지 않으려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에고. 이게 다 뭐냐.”

    봉투를 받자마자 액수를 확인하신 어머니가 놀라셨다.

    “아니 신사임당이 왜 이리 많으셔.”

    5만 원 권 200장이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어머니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셨다.

    “어디서 번 돈이니.”

    “아니 뭐…….”

    막상 어디서 벌었느냐를 말하려니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미리 변명거리를 생각해둔 성진은 스스럼없이 입을 열었다.

    “주식했어요. 엄마 아들이 전에 샀다가 군대 있으면서 대박난 거예요.”

    “주식? 아이구, 얘는 그 위험한 걸.”

    평생 재테크 수단에 관심 없이 살아온 어머니가 보기에 주식은 도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극단적인 결과만 보면 크게 다르지도 않다. 누군가가 벌면 반드시 누군가는 잃는 게 주식이니까.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되물으셨다.

    “아들, 너 혹시 빚 얻은 건 아니지?”

    “아이 참 저 그런 거 없어요. 입대 전에 모은 돈으로 투자해서 전역하니까 대박난 거예요. 일단 씻을게요.”

    성진이 거짓말을 하는 성미는 아닌 지라 어머니는 그제야 표정을 푸셨다.

    “아유 그래라. 우리 아들. 장하다. 씻고 얼른 밥 먹어라.”

    욕실로 씻으러 들어온 성진은 문틈으로 흘러오는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들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막상 손 안에 돈이 들어오니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었다. 왜 아닐까. 가뜩이나 아버지가 실직으로 힘들어하시는 때였다.

    이런 때에 아들이 돈 봉투를 들고 왔는데 반가워하지 않을 부모님은 없다.

    성진은 거울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두고 보세요, 어머니. 이 아들이 이제 우리 집안은 책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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