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148)화 (148/157)

[데스퍼라도] 148. 베른의 영역

데스퍼라도(Desperado)

베른의 영역

어둠의 기류는 빠른 속도로 푸른 상공으로 치솟더니 두 개의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했다.

[[ 크  앙 ]]

천지개벽할 것 같은 엄청난 괴성이었다. 천인(天人)들을 비롯해 지상에 있던 사계 특별 전사들이 저마다 귀를 틀어막았다. 때아닌 광풍이 휘몰아치니 저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검은 흑신룡들에세 풀풀 솟아나는 것이 틀림없었다. 저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과연 2마리의 흑신룡들의 위세가 어떻기에 여기 모인 존재들이 두려움에 떤단 말인가?

"이..이럴 수가?"

고룡인 카라펠리오가 외쳤다. 슬레이어가 빼든 어둠의 검으로부터 나와 저 상공 위에서 유영하자 온몸이 경직됨을 느꼈다. 그 자신도 드래곤 출신 아니었던가? 하지만 본인이 직접  목격하는 저 검은 용들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한마디로 전율 그 자체였다. 리크 조차 흑신룡들을 보고는 움찔거렸다.

"후. 과연 그 옛날 아버님의 비장의 병기라 할 수 있는 흑신룡들의 위세는 가히 하늘을 찢고 땅을 가를 정도로군. 그나저나 9마리 중 단 2마리만 나왔는데 아직 슬레이어 아저씨가 어둠의 검을 완전하게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때 세아린이 리크의 뒤에 바짝 붙어서 벌벌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리..리크..저..저기 괴물이.."

"저건 괴물이 아니라 흑신룡이라는 거야.."

"흑신룡이라니?"

"지금부터라도 친해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후후."

수천명의 천인(天人)들은 조금전과 같은 기세는 어느새 사라지고 저마다 두려운 표정으로 저 상공에 떠있는 검은 용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였다. 분명 드래곤처럼 그 외형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 면에서 일반 칠계의 드래곤과는 엄청난 차이가 났으며 무엇보다도 흉폭한 살기가 진동을 하니 숨조차도 쉬기 어려웠다. 과연 이 칠계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때 천인 대장이 겨우 말문을 열었다.

"도..도대체 뭘 불러낸 거야?"

그때 슬레이어가 앞으로 나서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난 사계 전사 슬레이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날 원망하지 마라. 나조차도 다루기 힘든 영물인지라 너희들에게 손속조차 두지 못하는 거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뭐라고? 제법 그 기류가 대단한 영물이라 하여도 설마 저 2마리의 검은 괴물들이 우리들 모두를 상대한다는 뜻은 아니겠지."

"능력 있으면 한번 막아보기를 바란다. 그럼.."

슬레이어가 어둠의 검을 들어 외쳤다.

[흑신룡들이여 그대들의 힘을 비리겠노라. 우리 앞을 막는 천인들을 제거하라!]

[[ 크 앙! ]]

재앙(災殃)이 엄습해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꿈틀되며 서서히 아래로 하강하는 검은 용의 비늘들은 흡사 죽음의 사신이 하찮은 존재들의 생명을 앗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때 대장 천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공격대형 준비!"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천인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튀어 오르더니 자신들의 은빛 날개를 활짝 펼쳤다.

[착착착]

번쩍거리는 횐 날개의 깃털들이 갑자기 곤두섰다. 날카로운 메스와 같이 언제 발사되어 나갈지 몰랐다. 비록 천인들은 공격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흑신룡 두 마리가 맹렬한 속도로 다가옴에 다리가 후들후들 거릴 지경이었다. 대장 천인은 외쳤다.

"베른의 깃털을 발사해라!"

[슈슈슈슈슈슈슈]

[파파파파파]

수천 수만 개의 깃털 무기가 흑신룡을 향해서 발사되었다. 참으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푸른 상공에 수많은 깃털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으니 마치 대 낮에 터트린 불꽃놀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크앙]

깃털 무기가 흑신룡의 검은 몸통 여기 저기에 박히자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울부짖음은 결코 고통에 찬 괴성은 아닌 것 같았다. 수만 개의 깃털이 딱딱하고 검은 비늘에 고슴도치처럼 박혔지만 단지 건 각질 부분에 겨우 메달 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천인들의 공격은 흑신룡들의 포악한 광기를 더욱 건드린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피의 향연이 벌어지게 되었으니 아래서 지켜보던 리크 일행들은 저마다 얼굴을 찡그리게 되었다.

[아.아아아악]

[컥]

[으악!]

[컥컥]

[오드득 오드득..]

[[ 크앙! ]]

도저히 두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광경이었다. 분명 드래곤의 형상이지만 어떻게 보면 독특한 몸체를 가지고 있는 흑신룡은 이 곳에 모인 모든 존재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중국 용을 연상케 하는 몸체와 약 100 미터에 이르는 엄청 난 크기. 움직일 때마다  몸통에서 풀풀 솟아나는 어둠의 안개들이 허공을 검게 물들이고 집채만한 대가리가 닥치는 대로 천인들을 통 체로 잡아먹고 있었다. 단 두 마리의 흑신룡이지만 그들은 이미 공중을 모두 장악하며 하늘을 마음대로 휘젓고 있었다. 흑신룡들 이빨 사이에 낀 수십 명의 천인 시체들이 흘리는 피가 지상으로 떨어지니 마치 피로 물들인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런 전투도 존재한단 말인가. 아닌 전투라기보다도 차라리 대살육의 현장 같았다. 과거 어느 전사의 무시무시한 병기가 이제 막 우주 초기단계에 이른 칠계라는 곳에서 마음껏 광기를 펼치고 있었으니 오로지 리크만이 이와 같은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너무 심하군. 후."

리크가 무심코 한마디 던졌다. 그리고는 살며시 고개를 프리즘의 전사들에게 돌리더니 그중 리아몬과 골고트를 바라보았다. 충격과 경악에 휩싸인 리아몬과 골고트는 그저 입을 벌린 체 저 상공 위에서 벌어지는 대살육의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후 피의 향연이 끝나가고 있었다. 슬레이어 그 자신도 어둠의 검에서 만들어진 흑신룡들의 사냥하는 모습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둠의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흑신룡들이 수고했다. 이제 어둠의 검으로 귀환하라!]

[[ 크앙!! ]]

슬레이어가 말하자 흑신룡 2마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어둠의 기류로 변하더니 순시간에 어둠의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슉]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대지에 흩어진 시체 조각들만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끔찍한 대 재앙이 지나간 자리 같았다. 강물은 어느새 붉은 피로 변해 있었고 여기저기 몸통이나 팔 다리를 흑신룡에 뜯긴 천인들 아직 숨이 붙은 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멸성인들인 천인들은 그 오랫동안 전쟁을 해왔지만 오늘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부터 흑신룡과 정면 대결을 한 자체가 크나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주검이 되거나 혹은 중상을 당해서야 깨달았으리라. 잠시후 슬레이어가 어둠의 검을 등뒤에 차고 일행 쪽으로 걸어왔다. 특별 전사들은 아직까지 넋이 나갔는지 그저 그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조화라도 부렸단 말인가? 그때 고룡 카라펠리오는 말문을 열었다.

"슬레이어 도대체 뭘 불러낸 것인가?"

"흑신룡.."

"흑신룡이라고?"

"후. 정말 대단하지.."

"......."

그때 리크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자 모두들 정신 차리세요. 이곳 영역은 고작해야 칠계의 주민들에 지나지 않는 천인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진짜 전투다운 전투가 앞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아직 이곳에는 레드 드래곤 무리들이 있을 테고 다음 영역에는 그야말로 힘겨운 존재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천공전사들과 블루 드래곤들로서 그들이야말로 멸성인들의 정예 전사이자 이 칠계의 수호자들입니다."

그때 고룡 카라펠리오가 말문을 열었다.

"어쨌든 아직 이곳 영역을 벗어난 게 아니니 일단 출발하자고.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천인들이나 레드 드래곤들이 있다면 무작정 없애 버리는 것이 좋겠어."

어쨌든 카라펠리오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슬레이어가 단번에 수천명의 천인들을 쓸어버리자 무척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그동안 건방을 떨었던 프리즘의 전사들이 저마다 기가 죽었는지 표정들이 한풀 내려앉은 모습들이었다. 일개 어둠의 종족 헬시급 전사가 어떻게 그 거대한 흑신룡들을 마음대로 부리는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튼 첫 전투의 공은 슬레이어이니 그 누구도 그의 승전에 토를 다는 자가 없었다. 잠시후 리크가 슬레이어 곁으로 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저씨 정말 잘하시긴 했는데. 겨우 2마리밖에 불러내지 못했네요?"

"후.. 연습하고 실전하고 다른 것 같은데. 아무튼 2마리조차 부리는데 내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릴 정도라니까?"

"후후. 어둠의 검은 흑신룡 9마리를 완전하게 부릴 줄 알아야 제 힘을 발휘한답니다. 사실 오늘 천인들이야. 멸성인들 중 그 전투 실력이 가장 낮은 주민들에 지나지 않으니 2마리 가지고 충분히 상대했지만 앞으로는 좀 힘들거에요."

"흠. 그런가?"

리크 일행은 피로 범벅이 된 영역을 벗어나서 저 초록의 내 음이 짙게 풍겨나는 숲 속 안쪽으로 들어갔다. 비록 수많은 천인들이 희생당했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곳은 천인들의 영역으로서 주변에 깔리고 깔린 존재들이 천인들이었다. 하지만 흑신룡의 소문이 벌써 이곳 멸성인들에게 번진 것일까? 벌써 반나절이 지나고 해가 어둑어둑해지건만 리크 일행 앞에 그 어떤 적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리크 일행들은 다음 영역인 베른으로 넘어가기 위해 관문 지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약 7일이 흘렀다.

베른 영역이란 멸성인들의 정예병력들인 천공전사들과 블루 전사들이 살고있는 곳이다.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전사들로서 오늘날 멸성인들이 창조주에게 반란하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던 존재들이었다. 베른의 영역은 모든 것이 요새화 되었다. 수많은 성곽(城郭)으로 둘러친 고성들,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천연의 요새들. 들판 한 자락에도 덫을 놓고, 숲 속에는 여기저기 함정들을 파놓고 있었으니 이곳이야말로 수십만 년 간 멸성인들이 여타 다른 종족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흔적들이었다. 멸성인들이 수백의 종족들을 제압하기까지는 처절한 전쟁을 오랫동안 경험해야만 했었다. 어쨌든 오늘날 이런 요새들과 함정들은 저 아래 사계에서 온 리크와 특별전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곳 베른의 핵심부라 일컫는 중앙 사령부관내에는 긴급 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었으니 무언가 심상치 않은 대화가 오고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떻게 하위 차원인 사계 놈들이 벨론소니프 영역을 유린한단 말인가?"

"사령관님. 그게 말이죠..그러니까?"

"더듬지 말고 자세히 보고하게나."

"벌써 엄청난 수의 천인들이 그 놈들에게 희생을 당했습니다. 더구나 레드 드래곤들 역시 씨가 마를 정도라는.."

"뭐..뭐라고 레드 드래곤마저도? 도대체 그 놈들의 전투실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베론소니프 영역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단 말인가?"

"이제 그들은 이곳 베른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관문으로 이동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이곳으로 넘어 온다고? 정말 가관이구만.."

"사실 중간영역인 사계에 속한 자들이 초상위 공간인 칠계의 벨론소니프 영역을 초토화시킨 것은 그들 중 리크라는 창성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계에서 최강인 프리즘의 전사들 역시 천인들의 전투 실력보다 훨씬 앞서고 있습니다. 심지어 레드 드래곤마저 그들에게 제압 당할 정도이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참모라는 놈이 고작 내게 한다는 소리가 영문도 모른다니..앞으로 내 앞에서 그따위 소리하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명색이 제 3지역 천공전사 참모라는 놈이 쯧쯧 이런 걸 데리고 있는 내가 병신이지..그나저나 7일전 일어났던 대살육의 현장을 조사해보았나? 어떻게 수천명의 천인들이 일시에 몰살당할 수 있는가 말이다."

"조사에 의하면 희생당한 천인들은 어떤 거대한 존재에게 먹잇감 신세로 사냥 당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단번에 수천 명이나 되는 천인들을 잡아먹을 수 있단 말인가? 네 놈은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가? 생각을 해봐! 아무리 거대한 존재라도 수천 명이나 되는 먹이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배가 터져서 먼저 뒈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천인들은 잡아먹힐 때까지 뭐하고 있었냔 말이다. 아무리 그 놈들의 전투 실력이 형편없다지만 기본적으로 날개 공격 따위가 있지 않는가?"

"7일이 지나서 시체들의 부폐가 예상보다 심해 조사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분명 그들의 깃털 무기는 이미 발사되고 없는걸 보아서 공격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설마 칠계의 영물 백신룡이 나타난 건 아니겠지?"

"백신룡은 하얀 가루의 흔적이 있는 그런 게 없는 것으로 보아서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구나 백신룡은 천인들의 온몸을 그렇게 잔인하게 찢어발기고 몸통을 분해하고 먹이 감으로 사냥을 하는 습성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 정체불명의 괴물은 악의 화신처럼 그 포악함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 생물체인 것 같습니다."

[쾅!]

순간 사령관이 탁자를 내리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빌어먹을! 그렇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설마 그 괴물을 그 사계 전사들이 불러낸 건 아니겠지?"

"그게..아마 그들이 불러낸 것 같습니다만.."

그때였다. 사령관실 밖에서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치카 블루 드래곤 수장님이 오셨습니다."

"히치카께서 오셨다고..당장 모셔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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