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147)화 (147/157)

[데스퍼라도] 147. 칠계

데스퍼라도(Desperado)

칠계

칠계의 초입영역인 베론소니프의 경치 정말 아름다웠다. 설마 이런 곳에 멸성인들이 진을 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온화한 햇살아래 푸른색의 잔디밭에 누워 옥색 하늘과 흘러가는 연한 보랏빛 구름을 바라보며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고 싶을 정도였다. 일행 중 특히 세아린이 칠계의 경치에 흠뻑 젖은 듯 하였다. 그녀는 마치 주인공인양 양팔을 들어 빙빙 돌며 춤을 추듯이 들판을 뛰어 다녔다.

"와우..너무 좋다!"

꽃으로 수놓인 들판이 끝없이 이어져있었다. 비단 세아린 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주변을 살펴보며 경치를 감상했다. 그때 리크 갑자기 외쳤다.

"자 모두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곳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리크의 말에 특별전사들은 저마다 움찔했다. 그 날 오후 이들은 베론소니프의 영역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은 천인(天人)들과 레드 드래곤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도대체 길이라도 잘못 들었단 말인가? 지금쯤은 그들이 나타나서 한바탕 결전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건만 아무런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니 말이다. 이들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들판을 계속 걷다가 드디어 강을 만나게 되었다. 강 주위에는 제법 높은 바위 협곡이 보였고 그 아래 듬성듬성 숲들이 초록의 내 음을 풍기며 포진을 하고 있었다. 강폭은 약 100미터정도로서 넓은 축에 들어갔지만 물살은 고요할 정도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하늘빛 색을 머금은 강조차도 이들에게는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당장 뛰어들어가서 수영이라도 하고 싶군.."

마이클이 한마디하고 강가로 다가갔다. 그러자 리크가 외쳤다.

"잠깐!"

"잠깐이라니?"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니..뭐가?"

마이클뿐만 아니라 다른 특별전사들 역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곳 강가 주변에는  간간이 미풍만이 불어와 자신들의 머리카락만 휘날릴 뿐 그다지 위협적인 요소가 없었다. 그때 슬레이어의 어둠의 검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웅웅]

슬레이어는 검(劍)이 진동을 일으키자 무슨 영문인지 리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 리크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그 의미는 아마도 뭔가 발견했다는 표정이었다.

"내 추측이 맞아. 이곳 강을 경계로 저 너머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풀풀 느껴지니 분명 우리는 저들에게 완전히 노출 당했음이 분명해.."

리크가 중얼거리자 세아린이 말했다.

"노출 당하다니? 주변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발견할 수 없는 마치 우리가 적들에게 포위 당한 것처럼 말하네?"

"후후. 우린 완전히 포위 당했어."

특별전사들은 리크의 말에 저마다 당황했다. 리크가 칠계의 검을 허공으로 천천히 들었다.

"적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

[슈슈슈슈]

허공 높이 치켜든 칠계의 검에서 눈부신 섬광이 팍팍 터졌다. 도대체 리크가 뭘 하려 하는지 특별전사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리크..뭐 하는 거야?"

"베른의 장막(帳幕)을 거두려고.."

"베른의 장막이라니?"

"베른이란 이곳 칠계의 독특한 에너지 중 하나로서 칠계 외의 다른 외부 차원에서 온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만들어. 즉 일종의 투명막 구실을 함으로서 여기 영역 존재들을 볼 수 없게 하는 역할을 해."

"그렇다면 그 의미는 우리 눈앞에 천인(天人)들이 있다 하더라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

"응."

"설마 지금 우리를 포위했다는 적들이 천인들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 아마 엄청난 숫자의 천인들이 우리를 몇 겁으로 포위한 것 같은데. 아무튼 베른의 장막을 걷어 낼 테니 직접 보라고. 그리고 놀라지나 마!"

그제 서야 특별전사들은 서로 한자리에 모여서는 각자의 무기를 빼어들고 긴장했다. 한편 칠계의 검에서는 섬광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온 세상이 눈부실 정도로 밝아지니 바로 앞의 사물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잠시후 칠계의 검에서 터지던 섬광이 멈추고 주변 사방이 점차적으로 확연하게 재조명되었다. 특별전사들은 뭔가 달라진 듯한 주변을 살펴보더니 저마다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헉!"

"학!"

"이..이럴 수가.."

"아..아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온 사방이 이상한 존재들로 꽉 차있었다. 하늘과 땅 심지어 강에도 말이다. 리크는 그런 장면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고 있었던 것처럼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이곳 베론소니프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이들은 알았어."

"우리의 침입을 알고도 지금까지 가만있었던 거야?"

"그렇지."

"왜.."

"그야 저들 천인(天人)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린 그저 장난거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렇겠지. 저 놈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영역 한복판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던 거야."

"그러니까 저들이 천인(天人)들이란 말이지.."

세아린은 천인들의 실체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케시어스가 천인 출신이었지만  이처럼 수천명의 천인들에게 둘러 쌓여있으니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은빛날개만 없다면 인간종족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생긴 그들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사악한 표정으로    리크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조롱이라도 보내는 듯한 표정으로 감히 중간계 영역인 사계에서 자신들에게 대항하려고 이곳 초상위 칠계 영역으로 들어온 자체가 가소롭다는 표정들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리크와 그 일행들을 보며 어떻게 갖고 놀아야할지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그때 강에서 수영을 하던 천인들 중 한 명이 물 밖으로 나오더니 자신의 은빛 날개를 탁탁 털었다. 검고 긴 머리카락마저 좌우로 흔들어 물기를 털어 버리고는 팔짱을 낀 체 리크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리크와 다른 특별전사들을 가만히 살펴보더니 피식 웃었다.

"후후. 사계 존재들이라..그나저나 리크란 놈이 누구지?"

놀랍게도 그 천인은 리크를 언급하였다. 어쨌든 리크 역시 앞으로 나서더니 입을 실룩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다 임마!"

"네..네가 창성인 리크.."

"그런데 어쩔 건데..이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아.."

""어쩔 거라니? 네가 아무리 창성인이지만 이미 네 놈과 사계 수하들의 목숨은 끝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병신!"

검은머리 천인은 자신들의 동료에게 포위 당한 리크와 그 일행들의 전투는 이미 볼 것도 없다는 식의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자신이 손짓하나면 이들의 목숨을 모두 앗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창성인 리크가 강하게 나오자 검은머리 천인 역시 움찔거렸다. 사실 리크가 저속어를 써가며 실실 웃으니 특별전사들 마저 의아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도무지 예전의 리크로서는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리크는 검은머리 천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네 놈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이곳 칠계의 모든 멸성인들은 창성인 네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비록 네 놈이 변형된 창성인으로 칠계의 검마저 손에 넣고 우리 멸성인들에게 반항하려 하지만 이미 때는 지났지. 하하하. 우리 멸성인들의 힘은 창조주마저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져 버렸단 말이다.."

"그래서 창조주가 나를 선택했지..후후."

"네 놈이 제아무리 변형된 창성인으로서 칠계의 검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우리 역시 예전의 천인(天人)들은 아니다. 과연 여기 수천명의 내 동료들이 공격한다면 네가 신(神)이 아닌 이상에야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게다. 아니 설사 신(神)이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겠지. 하하. 아무튼 서론이 너무 길었군. 그렇다면."

검은머리 천인이 손을 들어 공격을 지시하려하자 리크가 외쳤다.

"잠깐!"

"잠깐이라니.."

"생각할 시간 좀 줘라!"

"무슨 생각.."

"우린 소수이니 네 놈들이 모두 공격한다면 당연히 질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말인데 작전을 세울 시간 좀 주란 말이다."

검은머리 천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 주변에 포진했던 다른 천인들조차 저마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는지 여기저기에서 킬킬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이 리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상부에서 내려온 정보가 전부였다. 즉 긍정과 부정의 경험을 한 변형된 창성인으로서 창조주가 안배한 칠계의 검을 갖고 있다는 정도의 정보 말이다. 창조주마저 역행을 당하는 판에 제아무리 날고기는 창성인이라 할지라도 이들 수천명의 천인(天人)들 눈엔 그저 보 잘 것 없는 전사에 불과했을지 몰랐다. 더구나 사계에서 올라온 그의 수하들 역시 저 하위차원 존재들이 아닌가? 도대체 그들이 왜 이곳 초상위 영역 칠계에 올라와 자신들에게 대항하려는지 그 자체도 웃긴 얘기였다. 어쨌든 창성인 리크가 작전을 세울 시간을 달라는 것에 대해 검은머리 천인은 기꺼이 응해주었다. 그는 이들을 쉽게 죽이기보다는 즐기면서 천천히 할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았다. 한편 리크 일행은 한자리에 모여서 뭔가 진중 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프리즘의 전사들이 먼저 나설래요?"

리크가 말하자 프리즘의 전사들인 리아몬과 포니, 골고트, 케이사르, 세아린의 표정들이 굳어졌다. 아무튼 세아린이 불끈해서 말했다.

"리크 왜 하필 우리 프리즘의 전사야! 다같이 합세해서 싸워도 질 판에 말이야!"

"그야 너희 프리즘의 전사들이 제일 잘났으니까.."

"잘 났다니? 무슨 말이 그래. 마치 비꼬는 말투 같아."

"비꼬는 게 아니라. 지금 저들과 싸울 상대는 여기서 나말고 프리즘의 전사들 밖에 없잖아.."

"왜 우리들 밖에 없다고 그래..여기 카라펠리오, 슬레이어, 목유성 아저씨와 마이클과 데스퍼라도 전사들 그리고 다른 참모진들도 있잖아."

리크가 이번에는 오른편에 앉아있던 골고트를 바라보더니 한마디했다.

"이보시오 골고트..사실 당신네들 프리즘의 전사들이 나서는데 감히 다른 전사들이 낀다는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맞지요?"

"아..저..저기.."

골고트는 당장에 뭐라 대답조차하지 못했다. 이곳 칠계에 올라온 후 그 얼마나 다른 전사들을 비웃었던가. 오로지 프리즘의 전사가 최고인양 그 오만함을 팽배한 골고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다른 전사들의 힘을 빌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리크는 그런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 은근하게 질책을 가했다.

"자 전투실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프리즘의 전사들이여 어서 앞으로 나서서 저 수많은 천인(天人)들을 물리치시오."

그러나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세아린의 성질이 급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분명 지금 리크는 프리즘의 전사들을 은근히 깔아뭉개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 혼자서도 싸울 거야! 그 따위 목숨이 뭐가 아깝다고.."

순간 리크가 당황했다.

'후. 계집애 또 나서기는 하여간 저 성질 머리는 어딜 가나 나타나는군..'

그때였다. 저쪽에 팔 짱을 낀 체 이곳을 바라보는 대장 천인이 외쳤다.

"아직도 작전인지 뭔지 하는 거 안 끝났나? 어차피 죽을 놈들이 뭔 작전은..정말 어이가 없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젠장. 하긴 죽을 놈들 소원이라면 못 들어줄 이유도 없겠지..아무튼 빨리 끝내!"

참으로 묘한 상황이었다. 수천명의 천인들에 포위 당한 리크와 사계 특별전사들이 작전회의를 짜는 광경은 어찌 보면 웃지 못 할 심각한 상황이었다. 도대체 리크는 무엇 때문에 이 순간에 작전회의를 요구했단 말인가?

"프리즘 전사들 중 세아린만이 나선다면 말이 안되지..다른 프리즘의 전사들 중 지원자 없습니까?"

리크의 시선이 이번엔 어둠의 종족의 최고 계열인 헬 전사 리아몬과 포니에게 갔다. 결국 리아몬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시오 리크 대장..그대는 마치 우리가 겁이 나서 나서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사실 수십명 아니 수백명의 천인들만 있다 하더라도 우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서겠소. 하지만 지금 수천명의 천인들 앞으로 나서라는 것은 한마디로 개죽음을 당하라는 거나 별반 무슨 차이가 있겠소."

"엥. 개죽음을 당하다니요? 죽지 않고 이기면 되잖습니까?"

"어..어떻게 저들을 이길 수가?"

그때 리크가 슬레이어를 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다시 리아몬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어둠의 종족에서도 43만년동안 단 7명만 존재했다던 헬 전사 출신이자 프리즘의 전사이기까지 하니 적어도 사계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깝다고 하겠지요."

"갑자기 그런 얘기를 지금 이 순간에 하는 이유가?"

"여기엔 전투능력에 있어서 당신보다 훨씬 형편없는 헬시급 전사가 있습니다. 만일 그가 여기 천인들을 물리친다면 앞으로 그를 당신의 상관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순간 리아몬이 슬레이어를 쳐다보았다. 이중에 헬시급 전사는 단 한사람 슬레이어밖에 없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무튼 대답만 해주시오. 만일 슬레이어 아저씨가 천인들을 물리친다면 당신 상하 관계를 바꿀 수 있겠소?"

"갑자기 대장의 황당한 제안에 혼란스럽지만 만일 슬레이어가 저 수천명의 천인들을 물리친다면 그에게 절이라도 하겠소. 하하. 내 참 살다가 별소리를 다 들어보겠군.."

"절이라도 하겠다. 후후. 그럼 약속을 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순간 리크의 눈빛이 번쩍 거렸다. 잠시후 슬레이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리크 역시 그에게 다가갔다. 그 둘은 서로 눈빛만 교환할 뿐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분명 슬레이어는 리크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도 남음이었다. 어둠의 검이 슬레이어의 등뒤에서 서서히 뽑혔다. 한편 대장 천인(天人)이 이번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빌어먹을! 이젠 작전회의가 다 끝난 모양이지. 아무튼 더 는 못 기다릴 테니 이쯤에서 결판을 내자!"

"작전 끝! 자 우리들 중 단 한사람만이 네 놈들과 대적하겠다."

"뭐..뭐라고? 단 한사람이라고? 작전회의 끝에 나온 결론이 고작 그런 미친 생각이라니..한마디로 미친놈들이군..아무리 뒈질 놈들이지만 정말 제정신들이 아니군. 다 덤벼도 모자랄 판에 한 놈만이 우리 수천명의 천인들과 대적을 하겠다는 말인가?"

"응."

"응이라니? 네..네놈 창성인 리크 너도 가만히 있겠다는 것인가?"

"응."

"....."

대장 천인은 더 이상 대꾸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는 공격을 지시하려고 손을 천천히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 보다도 앞서 슬레이어의 어둠의 검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웅웅]

어둠의 검 주위에 검은 기류가 뭉클뭉클 형성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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