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134. 격전
데스퍼라도(Desperado)
격전
[크앙]
[슈슈슈슈]
거대한 백신룡들이 한 마리도 아닌 7마리가 저편 창공에서 맹렬한 속도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기류가 카젠모르의 숲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바위산 능선 곳곳에 진을 치고 있던 수십 만 명의 반란군들 역시 칠계(七界)의 영물이라 일컫는 백신룡들의 기세에 경직된 듯 한 모습들이었다. 그때 리크는 중앙에 높이 솟은 바위 위로 풀석 뛰어올라가더니 백신룡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참으로 아찔한 광경이었다. 거대한 백신룡들이 오는 중앙 길목을 리크가 정면으로 막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리크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도 평화로와 보였으니 그 또한 이해하지 못 할 장면이었다. 리크는 눈을 지긋이 감은 체 마치 감미로운 꿈을 꾸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느껴진다. 내 고향의 기운이여! 성스러운 용들이여! 아직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분명 그 느낌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충만해 온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과도 같은 감정이여!'
잠시후 도저히 믿지 못할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의 리크 코앞까지 웅대한 기를 풀풀 품으며 다가 왔던 백신룡들이 멈추고는 그의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이 아닌가? 아니 오히려 리크를 보호하듯이 그의 주변 반경을 서서히 유영하면서 그 흉폭한 기류마저 거두고 마치 어미용이 새끼용을 보듬어주듯 리크를 감싸고 있었다. 한마디로 백신룡들은 리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크르르르]
리크는 환한 미소로 백신룡들을 맞아주었다. 그러나 사실 아직 완전한 각성을 이루지 못한 리크는 백신룡들과의 첫 이런 식의 만남이 상당히 위험한 모험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느낌만으로 옛친구와도 같은 용들을 잠재적으로만 느꼈을 뿐 그들은 하몬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불러낸 광폭한 용들이 아니었던가? 비록 백신룡들이 리크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의 사슬고리이자 저 아련한 가슴속에 있는 고향의 영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백신룡들은 리크의 가슴속으로부터 밀려오는 애 뜻한 반가움을 느꼈다. 비록 말 못하는 영물들이라고는 하나 용들 역시 자신들의 옛 주인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와 같은 광경에 아군이든 적군이 경악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태고적 칠계의 대운성이 비쳐주는 어느 초상위 영역에는 창성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창조주의 신성한 분리 영혼들인 창성인들은 그들의 주인인 창조주가 이 우주를 천체운행을 함에 있어서 일종의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주가 진화(進化)하고 성숙(成熟)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감정의 영혼체들이 서로 어우러저 신성한 경험을 맛보아야만 했다. 비록 창조주의 관념(觀念)이 빛으로 물질적으로 현현(泫泫)하여 형성된 영혼의 분리체들이 살성, 멸성, 영성, 창성인들이었지만 그들이 언제 가는 서로 융합하고 승화하기까지는 창조주 그 자신도 모험을 걸어야만했다. 결국 태고의 우주 질서와 균형을 잡아줄 매체로서 자신의 본질을 닮은 창성인들에게 기대를 걸어야만 했다. 폭력과 살의, 교만, 오만, 탐욕, 질투, 배신 등의 이원적인 감정들이 교차하는 우주의 여정이야말로 더욱 다양하고 진화된 영혼의 학습과정이었지만 그 조율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자신과 같은 능력의 준 창조집단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창성인들은 준 창조집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현현한 빛의 전사들이었다. 칠계의 초상위 영역 그곳은 제라드라 불렸다. 바로 창성인인 리크의 고향이기도 하였다. 창성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영물들 또한 제라드의 영역에서 탄생되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지냈다. 가장 창조의 능력이 뛰어난 꼬마 창성인 리크는 바로 수많은 영물들 중 제라드의 신전을 지키던 백신룡들과 많은 추억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리크는 아직 완전한 각성을 하지 못했지만 잠재적으로 솟아오르는 친근함을 주체못했고 그저 자신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수많은 창성인들이 칠계 검을 만들면서 백신룡들을 그 검에 봉인시킨 이유는 바로 리크를 가장 잘 따랐던 영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로 리크의 또 다른 능력은 바로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 그 자체로서 다른 창성인들 보다도 가장 광범위한 창조 능력을 갖고있었고 많은 영물들 또한 그런 리크를 잘 따랐던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는 몹시 당황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하몬이었다. 하몬은 칠계 검을 손에 쥐고서도 부르르 떨고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 믿고 있던 갈비아스 파동검술 제7공격인 백신룡들의 힘을 빌리 고저 함이 완전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백신룡과 리크와의 관계를 어렴풋이 직감은 하고 있었다.
"이거 낭패로군. 빌어먹을 리크 저놈이 신(神)이라도 된단 말인가? 어찌 백신룡들이 공격을 하지 않는지.."
하몬은 자신의 칠계 검을 하늘에 들어올려 백신룡들을 다시 소환했다. 아직 백신룡들은 칠계 검의 봉인 상태이기에 결국 현재 주인인 하몬이 외치는 주문에 의한 명령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후 백신룡들이 허공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자 하몬이 섬광을 일으키며 리크가 있던 바위 쪽으로 날아왔다.
[슉]
[탁]
하몬은 칠계 검을 리크에게 겨누면서 그만의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후후. 정말 대단하군..설마 네가 백신룡들과도 잘 알고 있다고는 생각 못했는데..하긴 이 칠계 검을 네 족속들이 만들었다고 하니 뭐 영물들이야 같은 편이 될 수도 있겠지..하지만 어차피 검(劍)의 주목적은 바로 적을 베기 위함이겠지. 그따위 백신룡 같은 영물 나부랭이 힘을 필요치 않단 말이야! 더구나 우리 살성인들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 뭔지 아나? 하하. 바로 검(劍)을 다루는 기술이란 말이다. 이제 갈비아스 파동검술이야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검법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난 아무르 위성의 백색의 빛을 받은 프리즘의 전사란 말이다. 후후. 리크. 백색의 빛이 뭔지 아나? 그건 바로 살성의 근원적 힘을 말한다. 바로 그 힘이 이 칠계의 검에 고스란히 간직되었다는 점이지. 하하. 폭력과 살육의 살성 힘과 너희 창성인들이 만들었다는 이 칠계 검과의 융합적인 힘을 상상해보란 말이다."
순간 리크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아무르 위성의 백색의 빛은 분명 칠계로부터 내려온 기연으로서 살성의 힘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지난 수십년간 칠계의 대 전쟁에서 차곡차곡 쌓인 살성인들의 전쟁 에너지의 응집체라 볼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만의 순환된 에너지의 법칙으로 만들어진 살성의 힘인 것이다. 이처럼 살성, 멸성, 영성, 창성인들에게는 자신들의 고유 진동수와 적합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고 드디어 오늘날에 각각 이루어놓은 힘의 결정체를 사용하려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이 우주는 한 주기를 끝낼 시점에 와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리크 역시 현재 하몬이 사용하려는 살성의 힘에 대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궁금한가? 일단 내 검을 받아보게니. 위대한 창성인이여? 하하하"
[획!]
[슉]
하몬이 가볍게 검을 휘둘렀고 리크는 거의 반사적으로 피했다. 하몬은 저 뒤로 물러선 리크를 보며 하얀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잠시후 자신의 손에 쥐어진 칠계의 검을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흠. 아무리 창성인이라지만 역시 이 칠계 검을 두려워하는군. 그저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기겁을 하고 뒤로 도망치다니..후후. 그렇다면 이번엔 좀 강도를 세게 두어볼까?"
[이얏!]
갑자기 하몬이 두 손으로 검을 잡은 체 도약을 했다. 물론 그 목표는 바로 리크였다.
[쉭]
"훗!"
[쾅우르르르]
이번에도 리크는 하몬의 검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검은 바위를 강타했고 그 충격으로 바위가 통 체로 부셔졌다.
"하하하. 어떻냐? 살성 근원파체공격기술! 그 어떤 것이라도 일단 검(劍)에 살짝 닿기라도 한다면 가루로 변해버리는 기술이지..자 다음은 무슨 기술을 보여줄까? 그렇지 뇌우살성(雷雨殺成)공격기술이 좀 났겠군. 네 놈이 순식간에 우리 33 개 군단을 전멸 시켰으니 나 역시 네 놈의 부하들을 대량으로 살육해야 조금이나마 분이 풀릴 것 같은데.."
하몬의 몸이 그 자리에서 수직방향의 허공으로 쭉 올라갔다. 허공의 어느 지점에 머무른 하몬이 칠계의 검을 들어서 하늘 위로 향했다.
[우르르쾅]
때아닌 먹구름이 몰려오며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쳤다. 순간 대지는 캄캄해졌으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리크 역시 이번만큼은 하몬이 대량살육을 불러일으킬 엄청난 에너지의 번개를 불러오리라 예상했는지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하몬..이번만큼은 그대가 공격을 하게 내버려 둘 수 없소!"
"하하하. 능력이 있다면 막아보시지..만일 날 막지 못한다면 네놈을 비롯하여 저기 바위산과 그 안에 쥐새끼들처럼 숨어있는 반란군들 모두 산산조각을 내줄 테다."
[파파파파파파]
[우르르르쾅]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새까맣게 덮여있었으며 여기저기에서 작은 섬광들이 번쩍였다. 잠시후면 하몬의 검이 가리키는 지점에 엄청난 에너지가 모일 기세였다. 역시 허공에 떠있던 리크가 자신의 두 손을 모아 하늘로 서서히 향했다. 은은한 빛이 두 손으로부터 일더니 손끝에서 밝고 연한 푸른빛의 가느다란 광선이 저 새까만 먹구름 사이를 관통했다.
"[진동수조합] 하늘이여 원상태로 돌아오라!"
[쿠르르르르]
요란한 천둥소리를 내던 하늘이 갑자기 다른 기묘한 소리를 냈다. 잠시후 먹구름이 곳곳에서 소용돌이치며 때아닌 광풍을 만들어냈다. 카젠모르의 숲의 모든 식물들이 뿌리뽑힐 만큼 강한 바람이었고 그 둘의 싸움을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들 역시 바위 뒤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 오직 하몬의 측근인 프리즘의 전사들 과 리크의 참모들인 슬레이어, 목유성, 카라펠리오,가스톤만이 광풍에 견디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참으로 웅장한 전투였다. 하몬과 리크는 무기를 이용한 단순한 전투보다는 마치 신(神)들의 전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조절하며 힘 겨루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이 전쟁은 하몬의 정부군과 리크의 반란군의 대결이 아니라 바로 하몬과 리크의 둘만의 숙명적인 대결이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는 누가 하늘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더 많은 조화를 부릴 수 있는냐에 따라 그 승패가 갈릴 판이었다.
"리크..과연 그 [진동수조합]이라는 창성인들의 힘은 대단하구나. 하지만 과연 네 놈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군..하하. 벌써 있었느냐? 이 칠계의 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무한한 에너지라는 것을..얼마든지 품어내도 전혀 상관없단 말이다. 하지만 리크 네놈은 곧 지칠 테니 얼마든지 막아보거라. 네가 힘 빠지는 순간 이곳 일대가 초토화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하몬이여! [진동수조합]은 의식의 힘이지 고갈되는 개념의 에너지가 아니오. 그대는 오로지 힘의 집합체인 뇌우살성[雷雨殺成)이란 엄청난 공격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가 펼치는 기술은 힘의 논리보다 현재의 물질 개념을 변형시키는 일종의 제3의 기술이오? 즉 그대가 하늘의 힘을 빌어 공격한다면 난 하늘의 힘을 부드럽게 완화시키는 방법을 쓴다는 것뿐이오."
"무..무슨 헛소리를.."
"자 하늘을 보시오"
하몬은 하늘을 살펴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그 사납던 기세가 점점 부드럽게 누그러졌으며 소용돌이치는 먹구름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저..저놈이. 좋다. 어차피 목표는 네놈이니까 상관없다."
"뇌우살성의 최후 절기인 브라튼니스 극성이여!"
[펑펑펑!]
[쾅쾅]
순간 하늘의 먹구름에서 일던 수천 수만개의 섬광들이 하몬의 칠계 검 끝으로 그 빛이 모였다.
[번쩍!]
모든 번개를 머금은 칠계의 검은 너무 밝아서 쳐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연속해서 거대한 프래쉬가 터지는 것 같았다.
[파파파파파]
사람들 역시 저마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욱 눈부셔!"
"뭐..뭐야. 너무 밝아서 아무것도 안보여!"
"도대체 저 둘은 전투를 하는 거야 아니면 자연의 조화를 부리는 거야.."
"후. 뭔지 몰라도 잠시후면 엄청난 일이 발생할 것 같은데.."
잠시후 하몬이 번쩍이는 칠계검을 리크에게 서서히 향했다. 아무래도 하몬이 자신의 전력을 다한 마지막 공격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크는 그리 당황하거나 두려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리더니 가운데 중지 하나만을 내밀었다. 그 손가락의 방향은 하몬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가 알겠는가? 리크 역시 내심 하몬의 최후 절기인 뇌우살성 브라튼니스 극성체의 압도적인 힘에 벌써부터 숨이 가빠져 올랐다. 아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후. 하몬..정말 대단하군..이렇게 겨우 서있는 것조차도 힘겹지만 만일 그의 공격이 시전 된다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