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130. 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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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퍼라도(Desperado)
격전
그로부터 20일 후
카젠모르 숲의 반란군들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드디어 하몬의 정부군 33개 사단이 필라펀 평야를 구름 때처럼 몰려오고 있는 것이 정찰병에 의해 보고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천연지형물로서 최고의 방패막 구실을 해주었던 방대한 카젠모르의 숲을 믿고있었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하몬이과 그 외 리아몬, 포니, 골고트, 케이사르, 세아린등 프리즘의 전사들이 이 전쟁에 직접 나서기로 하였고 무려 33개군단 (약 130 만 명)의 대군이 몰려오니 만일 그들이 일시에 카젠모르의 숲으로 진격해 들어온다면 기습, 매복 작전 같은 것이 먹힐지 의문이었다.
리크를 비롯한 지휘부들은 오늘 제 3차 마지막 대책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 회의에는 새로운 부사령관으로 취임한 캐시어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긴장 되 있었다. 그녀가 부사령관의 자리에 단번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제 3군단장 출신이었고 전직 부사령관인 아멜이온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전투능력으로 보자면 캐시어스를 능가하는 슬레이어, 카라펠리오등이 있었지만 현시점에서는 군대를 체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그 옛날 전설적인 지휘능력으로 투철한 용맹과 기발한 전술로서 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3군단장 캐시어스의 능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지난 20일 동안 카젠모르의 숲을 면밀히 답습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번 전쟁이 심한 난관에 부딪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어쨌든 근 100여명의 지휘부 관계자들은 캐시어스의 설명을 주위 깊게 경청하고 있었다.
"카젠모르의 숲이 방대하다고는 하나 정부군의 33개 군단이라는 대군이 한번에 진격해 들어 온다면 더 이상 천연요새로서 그 의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곳 숲의 지형이 완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태고의 거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지만 그 자체의 방어 막으로는 적의 대군을 막기에는 한참 역부족입니다. 후. 만일 이곳이 협곡과 계곡, 수많은 능선으로 이루어졌다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카젠모르의 숲은 말 그대로 굴곡조차 없는 그저 완만한 지형이라는 점이 병사들의 숫자가 열세인 우리들에게는 무척 불리한 상황으로 작용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참모작전 루베니우스가 말문을 열었다. 그 역시 전직 3군단 제17막사 출신으로서 캐시어 휘하의 병사 출신이었다. 하급계열 출신이었던 루베니우스가 오늘날 작전 참모 격으로 이런 지휘부 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리크가 그의 비상한 두뇌를 인정한다는 점이었다.
"부사령관님. 저 역시 이곳이 천연지형으로서 완전한 틀을 갖추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12개 군단 규모로서 적지 않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많은 인원을 적절히 기습과 매복 작전에 투입시킨다면 그리 불리한 여건은 아니라 봅니다. 일단 카젠모르의 숲은 하루에 한번씩 소나기가 내릴 정도로 습한 지역이기에 적들의 화공(火公)으로부터 안심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숲 지형이 비교적 완만하다고는 하나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니 우린 바로 나무를 이용한 매복과 기습작전을 펼칠 수 있습니다."
"작전참모. 그대가 하몬의 입장이 되어 33 개 군단을 이끌고 이곳 카젠모르의 숲 앞까지 당도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그가 뻔히 숲 속의 매복과 기습을 무시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밀고 들어올까요? 인간제국의 군단 안에는 숲 속의 적만 토벌하는 전문집단이 있습니다. 과거 산악 마족들을 정벌하려고 만든 군대 내의 특별부대인데 그들은 총 3조의 형식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 1조가 두꺼운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한 체 보이는 나무와 풀들을 베면 화살 부대인 제 2조가 1조의 작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엄호를 합니다. 그 의미는 나무 위에 매복한 적들을 사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때 제3조가 나무에서 떨어진 매복 군들을 확인 사살을 하는 것이지요. 분명 하몬은 자신의 33개군단 전군을 이런 3단계의 조로 편성하여 공격해 들어올 것입니다."
"후. 설마 그들이 이 방대한 숲 전체를 그런 무모한 방법으로 들어오리라 보시는 건..아무리 많은 병력이라도 그건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곳에도 첩자가 없으란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곳의 본부 위치가 적의 첩자에 의해서 이미 하몬의 작전상황부에 들어갔을 테니 그들 정부군은 현재 우리가 있는 이곳 페이른 공터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곳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들어오니 방대한 숲 전체를 모두 벌목할 필요는 없는 거죠. 130 만 명이 오로지 우리들 목표로 길을 만들고 진격해 온다면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 리크가 이들에 대화에 껴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죠."
회의 참석자들은 현 반란군의 지도자인 리크가 말문을 열자 일시에 그를 주목했다. 리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오른편에 임시로 세워진 커다란 지도로 향해갔다.
"현 상황은 부사령관인 캐시어스님이 말한 것 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적인 정부군은 그야말로 인간 종족, 어둠의 종족, 마족 등 3개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목적 군이란 사실입니다. 과연 그들이 지상으로만 공격을 하리라 보십니까? 바로 마족에게는 타카첸 고대 마룡(魔龍)들이 있고 그들은 하늘을 향해 단번에 이곳까지 쳐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마룡들이 탈 것 즉 하늘을 나는 기구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정부군을 실어 온다면 그 또한 속수무책으로 적들에게 고스란히 안방을 내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띄어난 일당백의 전사들이 있지만 하몬을 비롯해서 프리즘의 전사를 능가하는 전사들이 없다는 점 또한 걱정됩니다."
그때 늙은 고룡(古龍) 카라펠리오가 약간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후. 리크 사령관..나와 슬레이어를 너무 무시하는 군. 쳇 그까짓 프리즘의 전사가 뭐 대단하다고.."
"하하. 제가 말을 실수 한 것 같군요."
순간 슬레이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흠. 리크 사령관..사실 자네 말이 맞네..나는 헬시급 전사로서 헬 급 전사출신인 프리즘의 전사들보다는 그 능력이 한 단계 아래이니..더구나 그들은 아무르 위성 프리즘의 빛을 받은 자들 아닌가? 그런 그들을 내가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카라펠리오가 아무리 그 옛날 날고 기었다지만 이젠 늙은 고룡에 지나지 않으니..후."
그때 카라펠리오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망할 놈 같으니. 자꾸 말끝마다 늙었다고 씨부렁거리다니.."
"후.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자는 얘기야.."
"도대체 지금 회의가 상대방 전력에 감탄하자는 것인가? 그리고 우린 그들보다 한참 열세이니 그저 현실을 받아들여 어떡하든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 건가? 지금 회의 참석자들 표정들을 보게 사기가 눌려 겁먹은 모습들을 말이야..어쨌든 리크 자넨 이곳의 지도자이니 그저 목놓고 날 좀 잡아먹으쇼 하고 기다리지는 않겠지?"
"하하. 물론 그렇게 대책 없이 기다리지는 않을 겁니다. 바로 오늘 회의 안건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는 취지로 열린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가?"
"그전에 여려분에게 정식으로 소개시켜 드릴 분들이 있습니다."
리크가 회의장 뒤켠으로 눈짓을 하자 마이클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 통로로 걸어 나왔다. 마이클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했고 이어 말문을 열었다.
"제 비록 데스퍼라도인의 대표는 아니지만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마이클이라 합니다.여러분들이 제2계라 부르는 곳인 지구인이기도 합니다. 제2계는 수평적 개념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방대한 우주인데 바로 지구는 그 공간에서 티끌 한 점도 되지 않는 작은 영역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2계의 우주 행성들 가운데 왜 하필 우리 지구가 고차원 파동지역인 3계, 4계, 칠계의 공간과 연관이 되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 2777년 지구의 과학이 바로 차원 서바이벌을 위해 차원의 문을 열어두었기에 바로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그때 역시 참견을 좋아하는 카라펠리오가 한마디했다.
"뭐라고..2계라고? 또 지구는 뭐고 데스퍼라도인들은 뭐기에 감히 2계 하위존재들이 설쳐되는 거야!"
그때 리크가 점잖은 목소리로 카라펠리오에게 말했다.
"후후. 표면상 2계 출신일 뿐 바로 이들 지구인들과 다른 데스퍼라도인들은 칠계의 영성인들입니다."
"뭐라고? 영성인들이라고?"
그 순간 슬레이어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들 역시 지난번 하몬을 찾아갔을 때 그에게서 살성,멸성, 영성, 창성의 4개 존재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즉 하몬은 칠계 살성의 존재이고 현재 사계 주민들의 3개 종족 역시 살성의 기운을 받은 종족들이라는 것과 천상인들 역시 멸성의 기운을 받은 자들이고 리크는 창성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사계의 대혼란은 결국 칠계의 상위존재들로부터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영성인들은 항상 베일에 가려있어 도대체 어떤 존재들인지 전혀 추측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아래 하위 2계 존재들인 지구, 혹은 데스퍼라도인들이라 부르는 자들이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영성인이라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룡(古龍) 카라펠리오 역시 칠계 출신이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과거 살성, 멸성, 창성의 존재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칠계 주민조차도 영성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니 카라펠리오 조차 이곳 사계에서 영성인들을 처음 보는 셈인 것이다.
"느닷없이 영성인들의 출현이라..흠. 이거 뭐가 뭔지..더구나 하위계 존재들이 영성인들이라니..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후후. 그들 영성인들은 차원 여행자들입니다. 원래 7계 출신이지만 하위계의 거친 진동수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한 창조주의 분리체들이지요. 그들의 본질은 의식이자 빛으로 설명 될 수 있습니다. 우린 그것을 다른 말로 영혼이라고 하지요. 저 아래 영역의 물질적, 육체적인 껍데기를 쓰고 온갖 다양한 경험을 맛보고 여행을 위한 존재들이지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영혼의 전사들입니다. 바로 그들이 오랜 여행 후에 이곳 사계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후. 무슨 말인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뭐 영성인들이 하위차원으로 영혼의 여행을 갔다는 점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현재의 저 젊은이와 다른 데스퍼라도인들이 영성인이라는 점은 아직도 좀 그렇다네. 사실 영성인들이 의식의 존재 혹은 빛의 존재인 순수 영혼이라면 굳이 저렇게 하위계의 모습대로 육체의 모습을 해야한단 말인가?"
"죽음이 저들을 풀어 주었지요.."
"죽음이 풀어주다니.."
"저들에게 죽음이란 의미는 하위계에서의 생(生)을 마감한다는 뜻입니다. 즉 여행을 마치고 원래의 본질적인 영혼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죠."
"하지만 저렇듯 육체를 가지고 있는데.."
"저 모습은 하위계에서 살았을 때 형상을 본 따서 다시 재구성한 에테르 체입니다."
리크가 마이클을 향해 눈짓을 주자 그는 빙그레 웃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순간 회의장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후와.."
"뭐야. 없어져 버렸네..."
잠시후 마이클이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리크는 회의 중앙으로 나가더니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현재의 전쟁에 승패는 바로 저 아래 영역으로 오랜 여행을 한 바로 지금의 데스퍼라도인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린 그들의 경험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 조차 자신들이 왜 이곳 사계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또한 영성인이라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들은 칠계로부터 다른 차원의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망각의 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 이 데스퍼라도인은 지금도 다른 차원에서 또 다른 여행을 하는 영성인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 영성인들은 하위계에서 저와 인연을 맺었고 저 때문에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곳 사계로 넘어오면서 '죽음'(여기서 죽음이란 하위계로부터 여행이 끝나는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즉 사계라는 중간 영역에서는 새로운 탄생이라는 의미가 맞다.)을 맞았고 새로운 영성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망각의 늪에 빠져 있었으므로 며칠 전만 하더라도 자신들이 지구인 혹은 휴론계인들이라 굳게 믿고 있었지요. 지난번 저는 각성에서 돌아온 뒤 이들 데스퍼라도인들이 영성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완전한 각성으로 돌아오도록 도와주었고 이젠 자신들이 영성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이클과 목유성은 지난번 리크의 집무실에서 자신들이 영성인이라는 사실에 여기 회의 참석자들보다도 더욱 놀랬었다. 더구나 죽음을 맞고 이곳 사계라는 곳에 왔다는 리크에 말에 혹시 그가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까지 했을 정도였다. 리크의 말에 의하면 여기 사계의 고차원 영역은 하위계 신체를 지니고는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롬페르담 건물의 모든 데스퍼라도인들은 저 2계 지구로부터 이곳 사계로 차원이동시 전부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죽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계의 에테르 에너지체와 그들의 의식체가 이룬 또 다른 신체로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러한 비밀은 오늘날 창성인의 각성을 한 리크에 의해서 밝혀졌고 그들이 과거 영성인들이었다는 각성마저 돌아왔던 것이다. 즉 그들 데스퍼라도의 현재 모습은 바로 빛의 영혼들인 영성인들이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칠계에서는 영성인과 창성들의 교류가 번번히 이루어졌다. 영성인들이 저 하위계의 여러 차원에서 경험을 얻는 용감한 존재들이라면 창성인들은 바로 칠계에서 창조의 즐거움을 맛보는 존재들이기도 하였다.
이에 살성인들은 분노와 폭력에 점철되어진 존재들로서 그 뿌리가 사계에까지 내린 상상의 영역 혹은 판타지라 불리는 이곳 사계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멸성인들 역시 오만과 탐욕으로서 자신들 이외에는 모든 멸절, 소멸되어야 한다는 극단의 배타적인 존재들로서 그들 역시 천상인의 뿌리를 이곳 사계까지 내렸던 것이다. 결국 살성인과 멸성인들은 태고의 칠계 전쟁과 사계를 전쟁으로 내몬 장본인들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창조주의 의도대로 영성인과 창성인들은 살성인과 멸성인들의 오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존재들로 이곳 사계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으니 바로 리크와 데스퍼라도인들이었다.
결국 이 사계에는 그 전례가 없던 칠계의 살성, 멸성, 영성, 창성의 존재들이 대거 몰려들어 최후의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였다. 대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창조주의 안배가 바로 리크라는 창성 존재와 데스퍼라도인이라는 영성존재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오늘날 리크와 데스퍼라도인들이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어쨌든 리크는 어수선해진 회의분위기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고 그는 다시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이곳 카젠모르의 숲 반란군을 데스퍼라도라 공식 명하겠습니다. 바로 현재의 전쟁 승패는 영성인들 아니 데스퍼라도인들의 도움이 절대적일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때 카라펠리오가 리크의 말을 짤랐다.
"후. 지금까지 자네 말대로 저들 데스퍼라도인들이 영성인들이라 한들 갑자기 전세가 우리에게 유리한 것처럼 말하는데 과연 영성인들의 전투능력이 하몬의 33개 군단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단 부딪쳐 봐야죠."
"흠. 그저 대책 없이 영성인들의 힘만 믿고 정면 대항을 하자는 것인가?"
"그들의 경험을 빌리자는 것입니다. 이곳 사계에서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구의 과학기술을 빌리자는 것입니다. 영성인들은 지구인의 삶으로 살면서 우리들이 꿈도 못 꾸는 독특한 기술을 발전 시켰지요. 그건 바로 과학이라 일컫는 것인데..그 힘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미 로엔스톤 대륙에 있는 데스퍼라도인들 모두를 이곳에 불렀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을 모두 사용하기 위해서지요. 아마 3일 안으로 그들이 이곳 카젠모르 숲에 도착 할 것입니다."
"흠. 과학이 뭐가 뭔지 모르지만 과연 이런 시기에 기적을 일으킬 만큼 대단한 것인가?"
"후후. 물론 여러분들이 도와줘야 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오늘 회의의 본격적인 작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자 모두들 여기 마이클에게 집중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이번 작전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알려줄 것입니다."
그로부터 15 일 후
하몬의 군대는 필라펀 평야를 가로질러 헤이슬론 강을 건너 드디어 카젠모르 숲 코앞까지 다가왔다. 33개 군단은 숲 앞의 드넓은 평야에 진을 치고 있었고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중 다른 막사에 비해 그 크기가 몇 십 배는 큰 거대한 막사 안에서 머리가 희끗한 반백의 중년인과 젊은 여인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다름 아닌 하몬과 그이 딸 세아린이었다.
"세아린..이젠 오해가 풀렸니?"
"아직 모르겠어요."
"흠. 언제까지 이 애비를 원망만 할테냐? 분명 천살전사들의 주민 학살은 지방자치 적이고 독자적인 행정에서 나온 부작용일 뿐이란 말이야. 결코 난 그들에게 무고한 사람들을 처단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어."
"아버지 정책이 원래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 아니었던 가요?"
"그 말에 변명할 생각은 없다만. 나 역시 지방 담당 천살전사들이 그렇게까지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이용하여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할 줄은 몰랐었다. 아무튼 주민살육에 관련된 모든 천살전사 지휘자들을 처형시켰으니 이제 그 문제는 접어두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니?"
"이미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어떡하라고요? 그리고 그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저 카젠모르의 세도스라는 반란군 지도자 휘하로 들어갔는데 현재 아버지는 무려 33개 군단을 이끌고 그들 대부분을 소멸시키려 하고 있잖아요."
"세아린 잘 들어라. 난 일단 사신을 보내 저들에게 항복을 권할 생각이다. 물론 투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죄를 묻지 않기로 할 작정이란다. 난 그들을 소멸시키러 온 것이 아니고 살려 주러 왔다는 것을 알아야해. 내가 33개 군단의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은 바로 저들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의도도 있단다. 나 역시 이번 전쟁이 유혈(流血)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으니 말이야."
"저들이 투항을 하지 않는다면요?"
"그렇다면 일단 저들의 반란군들이 더 이상 세력(勢力)를 넓히기 전에 여기서 끊어야 하겠지..사실 내가 진정 두려워하는 자들은 저들이 아니라 앞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천상인들 그러니까 멸성인들의 정예 군대란 말이야. 사실 이번 세도스의 반란군들은 오히려 천상인들의 사계 점령을 도와주는 꼴이니 이 애비는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구나. 우리끼리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반란을 도모하여 정국을 더욱 혼란시키니 말이야."
그때 세아린은 비장한 결심은 한 듯 하몬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버지 한가지 부탁을 들어주세요."
"부탁이라니?"
"저들의 항복을 권유할 사신으로서 저를 보내주세요."
순간 하몬의 표정이 하얗게 굳어졌다.
"그..그건..안돼!"
"안된다니요?"
"세..세도스라는 놈이 얼마나 잔학한지 그 소문을 듣고도 하는 소리냐?"
"그 역시 대의와 명분으로 많은 반란군들을 보호하는 지도자인데 설마 무방비인 사신들을 어떻게 하지는 안을거에요."
"그 런 적지에 내 하나밖에 없는 딸을 내 몰수는 없어!"
"아버지! 이번에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앞으로는 절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게요."
"안..안돼. 차라리 네 원망을 듣는 것이 났지.."
"아버지.."
"아무튼 안 돼!"
순간 하몬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분명 저 세도스라는 인물이 리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필라펀 평야에서 보여준 일명 세도스의 기적은 창성인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았고 바로 그 창성인이 리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아직도 리크를 잊지 못하는 세아린을 볼 때 어찌 그에게 사신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그와 같은 부탁은 내게 입밖에도 내지 말거라. 흠 조금 있으면 회의가 진행될 테니 난 가서 준비 좀 해야겠다. 그럼.."
하몬은 세아린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대형 막사로 쏙 들어 가버렸다. 세아린은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쳇. 진짜 나를 위해서 그러시는 거야 아니면 다른 꿍꿍이속이 있으셔서 저러시는 건지."
잠시후 하몬의 주체로 대형 막사 안에는 회의 참석자들로 꽉 차있었다.
"자 여러분 드디어 우린 카젠모르의 숲 앞까지 왔습니다. 비록 우리가 33개 군단의 대군이라 하지만 저들의 병력 역시 10개 군단 규모로서 그리 쉽게 끝날 전쟁은 아니라 봅니다. 일단 저들에게 항복을 권유할 사신을 보낼 생각인데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저들은 우리에게 굴복 따위는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요. 그러니 사실 오늘 회의는 앞으로 이틀 후에 전면전을 치를 최종 작전회의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작전은 필라펀 평야에서 세워 났지만 오늘은 좀더 세부적인 상황을 재조명하고 좀더 희생을 줄일 수 있는 여러분의 좋은 방안을 듣기 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자 오늘 여기에는 인간종족 대표, 어둠의 종족 대표, 마족 대표들의 모든 지휘자 분들도 참석하셨는데 우린 이제 3개 종족의 연합군으로서 서로간의 반목보다는 화합을 위한 결의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하니 각자가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솔직한 의견을 나누어보기로 합시다."
그때 어둠의 종족 프리즘의 전사 리아몬이 말문을 꺼냈다.
"3개 종족의 화합이라. 흠. 뭐 지금 이 순간엔 그리 보이니 별 반박은 하지 않겠소. 그나저나 여기 카젠모르의 숲이 방대하다고는 하나 우린 이미 놈들의 본거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한 곳만을 진격해서 들어간다면 울창한 숲 따위는 방해물이 될 수 없겠지요. 더구나 완만한 지형이니 나무만 제거한다면 놈들의 매복에 의한 기습 따위는 별 상관도 없겠지요."
"그리 쉬운 것이 아니요. 나무 위에서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진격을 해야하니 우리 측 희생도 적지 않을 것이요. 물론 공중은 마족의 타카첸 마룡(魔龍)들이 탈것에 우리 병사들을 실어 나를 것이지만 그러한 공중 공격은 지상군의 숲길이 적들의 본부와 훤히 뚫려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동시에 지상과 공중의 합작 공격이 이루어져야 저들의 10개 군단을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있습니다."
"흠. 결국 숲의 진군 통로를 만드는 것이 자장 중요한 일이군.."
"제 생각입니다 만은 이번 숲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종족의 수호전사들과 어둠의 종족 그리고 마족의 고대 부활전사들과 상급전사들이 앞길을 터 주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즉 그들이 나무 위에 매복 해 있을 적들을 사전에 제거해 들어가면서 뒤에는 산악공격병사들이 나무를 베면서 통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흠. 상급전사들이 앞길을 터 준다는 생각은..좀."
"그들의 마법을 이용하자는 겁니다. 나무 위의 매복한 적들은 상습전사들의 마법광선 한방이면 제거할 수 있으니 약 10000명으로 이루어진 선두 상급전사들이 미리 숲 속으로 침투하여 매복 군을 섬멸시키고 그 뒤로는 33개 군단 모든 병력이 숲을 베어가면서 조금씩 전진해 들어가는 겁니다."
그때였다. 막사 안으로 누군가가 급히 들어오더니 하몬에게 외쳤다.
"큰..큰일 났습니다."
순간 하몬이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회의를 방해할 만큼 큰일이라도 났단 말인가?"
"저..저기 세아린님이 약간의 사람들을 이끌고 숲 속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순간 하몬이 경악을 하였고 회의장 역시 어수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젠장. 세아린이.."
"사신 자격으로서 반란군들을 설득하시러 들어간다고 하몬님께 전해 달랬습니다."
"이런 한심한 것들 세아린을 막지 않고 너희들은 그저 구경만 했단 말인가?"
"워낙 막무가내로.."
"시끄럿!"
그때 마족의 프리즘 전사 골고트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말문을 열었다.
"후후. 어차피 보내려던 사신 아니었습니까? 뭐 내일 가든 오늘 가든지 상관없지 않습니까?"
[쾅!]
[우지직}
순간 그 회의 두껍고 넓은 테이블이 하몬의 주먹에 의해서 부셔졌다.
"이..이런..제길. 바로 내 딸이 적진으로 들어갔는데 무슨 헛소리야!"
갑자기 골고트는 자세를 고쳐 잡고 실실거렸다.
"허허. 이..이것 참 내 말에 화가 나셨다면 사과 드리리다. 전 그저.."
그날 회의는 하몬의 갑작스런 퇴장으로 일단 뒤로 연기되었다.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하몬은 아직도 굳어진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이..이런. 세아린과 리크가 만나면 모든 게 틀어질 수 있단 말이야! 젠장 어떻게 이런 일이..그 리크 놈이 세아린을 인질로 잡기라도 한다면.."
하몬의 걱정은 바로 세아린의 신변 안전이었다. 탐욕과 생각이 많은 하몬일지라도 뒤늦게 만난 자신의 딸 세아린을 진정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심성이 곧고 착한 세아린 만큼은 훌륭한 여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몬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런 연정이야말로 요 근래 하몬에게 생긴 또 다른 감정이었고 세아린의 웬만한 부탁이라면 다 들어주었다. 사실 천상인들의 학살 역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세아린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하몬의 결정이었다. 하몬은 아직도 단 하나의 천상 숙주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변함없었다 단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천살전사들의 학살을 금지한 것이다. 그는 그만큼 세아린을 사랑했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
정부군의 사신 자격으로 온 세아린과 일행들은 페이른 공터에서 반란군의 지도자인 세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리크의 집무실에는 리크와 캐시어스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둘은 이제 친구관계에서 연인들 사이로 발전했고 남들의 이목이 없는 곳에서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애정 어린 눈길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캐시어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으니 필시 그녀에게 무슨 고민이 있는 듯하였다. 리크 역시 충격을 먹은 사람처럼 멍해 있었으니 이렇게 세아린이 정부군의 사신으로 올 줄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로서 과연 이 순간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다. 정작 그가 혼란스러운 것은 현재 세아린의 대한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조차 몰랐다는 점이다. 수많은 추억들과 화환이 교차되지만 리크는 자신을 떠난 체 현재 하몬의 딸로서 이곳 반란군을 토벌하러온 프리즘의 전사 세아린을 어떻게 맞아 주어야될지 몰랐다.
"리크..정말 세아린을 보지 않을 거야?"
"후. 모..모르겠어."
"리크. 몇 번을 얘기해도 정말 모르겠어? 세아린은 너를 배신하지 않았어. 그날 아무르 위성의 빛을 받던 날 기아몬 신전에서 세아린을 피해서 너를 빼돌린 사람은 정작 나 란 말이야. 사실 그녀는 부상당한 네 곁에 남아있기를 원했어. 하지만 내가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그랬어..그리고 세아린은 신전을 떠났어. 나는 그녀가 되돌아 올까봐 너를 데리고 급히 그곳을 빠져 나왔지. 그리고 나중에 세아린은 분명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을 거야. 사실 너희들 사이에 내가 껴들어 사이를 갈라놓은 꼴이 되었으니 진짜 죄인은 바로 나란 말이야."
"그만.."
리크는 괴로운 듯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쨌든 그녀는 부상당한 나를 떠났잖아. 세아린이 후에 내가 걱정되어서 다시 돌아왔어도 일단 세아린은 떠나버렸단 말이지..지..지금에 와서.."
"후. 리크 사실 난 너희 둘 사이에 껴든 제 3자에 지나지 않아. 후. 솔직히 난 너와 세아린이 잘되었으면 좋겠어. 그게 원래의 순서였어. 난 비겁하게 너희 둘 사이를 교묘하게 갈라놓고 지금 너를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냐..난 이제 세아린 앞에 정정당당하게 나서서 행동하고 싶어. 세아린이 비록 지금 반란군의 지도자인 세도스가 리크 너란 사실은 모르지만 일단 그녀와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각성에서 돌아온 리크는 그 동안 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믿지 못 할 정도의 놀라운 통치력과 자신감에 충만해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무척 고뇌와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리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테라스 쪽으로 나갔다. 그곳은 페이른 공터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아마 저 아래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세아린의 모습이 보고싶었는지도 몰랐다. 캐시어스는 테라스에 나간 리크의 뒤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휴..과거엔 내가 옳지 못한 행동으로 리크와 세아린을 떨어지게 하였지만 이제는 그 둘을 다시 이어줘야 해야 돼! 일단은 말이야 그리고 나중에..나..나중에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한편 테라스에서 리크는 저 아래 세아린의 모습을 보자 눈을 지긋히 감아버렸다.
'세아린. 그 당시 기아몬 신전에서 난 네가 나를 끝까지 돌볼 줄 알았는데..후. 원래 그렇게 되야 정상이 아니었던가? 나중에 눈떠 보니 캐시어스가 내 곁에 있었지..그 당시 내 심정은 칼로 폐부를 도려내는 것 보다 훨씬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어. 아..세아린. 지금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할지 잘 모르겠군. 난 그 누구보다 상처를 잘 받을 수 있는 편협하고 옹졸한 사내에 불과하단 말이야.'
생각에 잠긴 리크가 테라스에서 머문 시간은 무려 한시간이나 되었다. 페이른 공터에는 아직도 세아린이 반란군의 지도자인 세도스를 보기 위해 가만히 한자리에서 서있었다. 사실 리크는 지금 그답지 않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리크는 아직도 세아린을 사랑했다. 그런 이유가 오히려 세아린과의 만남을 방해했던 것이다. 현재 리크 옆에 있는 여인 캐시어스이고 리크는 그녀 역시 사랑했던 것이다. 리크의 감정이 이 두 여인에게 교차되면서 한순간에 혼란의 늪에서 빠져 나올 줄 몰랐던 것이다. 그때 캐시어스가 리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꼭 잡고 한마디했다.
"리크. 정말 나를 좋아한다면 세아린을 만나.."
그제서야 리크는 캐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캐시어스. 나 세아린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네게.."
"난 상관없어."
"캐시어스.."
"어차피 둘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 그리고 너희 둘이 재회를 해서 예전보다 더 사이가 좋아져도 난 오히려 축복을 보내고 싶어. 나도 지금 내 감정이 떨리지만 웬 지 그게 옳은 것 같아. 내가 아무리 너희들 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들 항상 이방인처럼 느껴져..그러니 난 상관 말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리크.."
약 두 시간이 흘러서야 세아린은 반란군의 지도자 세도스의 집무실로 안내 받을 수 있었다.세아린은 자신의 사신 일행을 페이른 공터에 남겨둔 체 혼자만이 가파른 바위 계단을 오를고 있었다.
"젠장! 사람을 두 시간 씩이나 기다리게 만들다니..도대체 그 세도스라는 작자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잠시후 세아린은 바위산 중앙지점의 신전형식의 동굴 정문 앞에 도착했다. 삼엄한 경비 속에 세아린은 검을 맡기고 맨몸으로 신전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또다시 여러 개의 통로로 갈라져있었고 세아린은 맨 오른쪽으로 안내 받았다. 드디어 세아린은 세도스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고 이젠 문만 열면 그와 대면하게 되어있었다. 경비병이 문을 열어주자 세아린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남녀 한 쌍이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세아린은 그들을 보자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같았다.
"아..아니.."
리크는 세아린을 보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세아린.."
"너..너 리크 맞지?"
"응."
"네..네가 왜 여기 있어?"
".........."
리크는 별 대답도 못한 체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세아린은 이번에 캐시어스를 쳐다보더니 한번 더 놀랬다.
"캐시어스.."
세아린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세아린은 3 년 전 기아몬 신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 리크가 세아린에게 다가가자 세아린은 오히려 캐시어스에게 다가가더니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때 세아린의 손이 캐시어스의 얼굴로 향했다.
[짝!]
[악!]
순식간의 일이었다. 세아린의 손바닥이 캐시어스의 뺨을 강하게 날렸고 그녀는 뒤로 넘어졌다. 이에 놀란 리크가 잽싸게 달려가 캐시어스를 부축했다.
"세아린 이게 무슨 짓이야!"
세아린은 리크가 캐시어스를 부축하고 자신을 노려보자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나쁜 년! 리크를 빼돌리다니..."
리크가 캐시어스를 부축이고 일어났다.
"세아린 잠깐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시끄럿!..흑.."
세아린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그 자리에 털 석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날 기아몬 신전에서 저 여우같은 계집애가 자신이 잠시 돌보겠다고 나보러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는 거 있지. 그 당시 나는 얼굴에 흉터가 있던 캐시어스의 눈길을 보고 진정 그녀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꼈어. 흑흑. 그 당시 웬 지 모를 동정심 때문에 잠시 그녀로 하여금 리크 너를 맡겼던 거야. 그런데 일주일 후에 돌아와 보니 캐시어스는 널 데리고 이미 없어진 후였어. 내가 저 여우같은 년을 믿은 게 잘못이지. 흑. 그 후 무려 3년 동안 널 찾아 다녔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둘이 같이 있는 걸 보니 내가 가만있게 생겼어?"
리크 역시 다소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날 떠난 게 아니라 잠시 캐시어스가 돌보도록 했단 말이지?"
"야. 이 쑥맥아. 넌 진짜 나를 몰라서 그래? 내가 널 왜 떠나! 그 날 난 캐시어스에게 괜한 동정을 베풀었던 거란 말이야! 그 동정을 오늘날 원수로 갚은 계집애가 누구인데?"
그때 캐시어스가 이 둘 사이의 대화에 껴들었다.
"내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결코 동정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내 연인을 맡기지 않아요! 잠시라도 말이죠. 물론 그 당시 전 당신과 세아린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한없이 질투가 났어요.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며 제가 간호 있게 해달라고 절실히 부탁했죠. 세아린 당신은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제가 원한다고 해서 제 부탁을 들어 줄만큼 바보였어요. 당신의 애인을 나두고 떠 날만큼.."
"떠나다니? 난 다시 돌아왔단 말이야."
"그 동안 제가 리크를 간호만 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당신이 오면 리크를 영원히 당신에게 빼앗길텐데 사랑에 눈이 먼 제가 가만있었겠어요? 흑흑."
캐시어스 역시 울음을 터트렸다. 이번엔 세아린이 리크를 쳐다보았다.
"리크. 너..너무해 흑. 이제 보니 넌 내가 널 떠난 줄 알고 무척 날 원망했겠구나. 정말 어이가 없어서! 흑. 이 바보 같은 놈아 진짜 나를 그 정도 여자로밖에 생각 안 했어? 설마 내가 널 배신해서 떠났다 한들 끝까지 나를 찾아내서 그 이유를 물어봐야지..이 바보야. 그저 냉가슴 앓듯이 속으로 한이 얼마나 맺혔겠냐?"
리크는 세아린의 말에 별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실망이야! 저 나쁜 년이 얼마나 입발림 소리로 녹였으면 단 한번이라도 날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니.."
"세아린..그게 아니라. 캐시어스는 그저 날.."
"시끄럿..! 흑. 아직까지도 저 계집을 두둔하는 거야! 나쁜 놈 같으니..널 3년 동안 찾아 해 맨 내가 우스워질 따름이야."
그때 캐시어스가 세아린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세아린 정말 죄송해요. 그 당시 전 질투에 눈이 멀어서 리크를 빼돌린 사실 인정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리크가 헤어지도록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에 대해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리크와 화합을 해서.."
[짝!]
"닥쳐!"
이번에도 캐시어스는 세아린에게 뺨을 맞고 뒤로 자빠졌다. 리크는 재빨리 캐시어스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고는 버럭 소리 질렀다.
"세아린! 이게 무슨 짓이야! 일단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난 캐시어스 아니었으면 벌써 죽은목숨이었어."
그간 리크와 캐시어스 사이에 있었던 파란만장한 내용을 모르는 세아린이 순간 눈에 불이 확 들어왔고 표정마저 굳어졌다.
"둘이 보기 좋군..그리고 지금 리크와 다시 화해하라고? 뭐 인간의 감정이 고무줄이야 늘렸다 줄였다 하게. 한마디로 병 주고 약주고 할건 다하는 군. 그래 지금도 리크에게 동정을 받으니 어때? 넌 이 순간에도 리크에게 위안을 받으려 약한 척 하는 연극 짓거리를 한다는 거 내 모를 줄 알고. 나쁜 년. 이제 와서 다시 리크와 화합을 하라고?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절대 그런 게 아니에요. 전 리크와 당신이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버릴 수도 있었요."
"흠. 이젠 아예 거짓말에 도가 텄군."
세아린이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장식용 검을 뽑고는 캐시어스 앞으로 던졌다.
[쨍그랑!]
"그럼 죽어 봐! 내 앞에서 목숨을 끊어보라니까?"
그 순간 캐시어스가 주저 없이 검(劍)날의 끝을 자신의 목에 대고 힘껏 향했다.
[쉭!]
순간 리크가 재빨리 검을 손으로 팅 겨 버렸다. 그야말로 조금만 늦었다면 검이 목에 박힐 판이었다. 세아린은 리크가 검을 버리고 캐시어스가 딴 짓 못하게 꼭 앉아주자 급기야는 이성을 잃을 판이었다.
"이젠 네 연극에 리크까지 동참하게 만들었군. 보아하니 여기 세도스라는 지도자가 바로 리크 너 같은데..물론 네 능력으로 이런 반란군의 지도자 역할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겠지. 하지만 각오해! 어차피 정부군에게 철저히 제압 당할 테니. 어디 두고 보자고..너희들!"
세아린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리크는 재빨리 달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세아린 제발.."
"이거 놔!"
"세아린 얘기 좀 해!"
그때 세아린이 고개를 돌려 리크를 바라보았다. 세아린의 눈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리크. 결국 우린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거야?"
리크 역시 눈시울이 붉어진 체 그녀를 바라보다 갑자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세아린..이..이젠 떠나지마! 제발..네가 정말 보고 싶었어."
"나 역시 이대로 너와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하지만 운명이 그렇게 허락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세아린 역시 리크를 안은 체 한동안 있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리크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리크..너무 늦었어..나..나를 이대로 돌아가게 해 줘.."
"세아린.."
"부탁이야..날 놔줘."
잠시후 리크는 계단 아래로 향하는 세아린을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었다. 세아린은 하늘을 바라보며 펑펑 나오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계단을 밝고 내려갈 뿐이었다. 그녀 역시 캐시어스의 뺨을 띤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 몰랐다. 속이 후련한 느낌 역시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캐시어스가 이 둘의 인생에 껴들지 안았다면 운명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정 그녀는 리크 곁을 또다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발걸음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방향을 돌려 리크에게 와락 안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발걸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끄 리크와 멀어지려만 하니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3 일 후
운명의 결전이 다가왔다. 하몬의 군단이 카젠모르의 숲으로 진격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