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127)화 (127/157)

127.데스퍼라도(Desperado)

또 다른 리크

그날 오전부터 정오에 이르러서야  리크와 목유성, 마이클간의 긴밀한 대화가 끝이 났다. 집무실에서 나오는 목유성과 마이클은 아직도  혼란스런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간에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 당사자들을 빼놓고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필라펀 평야에서 기적을 일으킨 세도스는 자신을 따르는 반란군과 주민들을 이끌고 이곳 카젠모르의 숲으로 그 자신의 둥지를 튼 지 불과 4개월 여만에 대규모의 여러 군단을 편성 할수 있을 정도로 반란군 지지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과거의 옛 친구들, 스승들과 재회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바로 리크 가벤더라는 기억을 찾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하몬의 33개 군단 의 정부군이 이곳 카젠모르의 숲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반란군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대 전면전에 대한 극도의 긴장감과 마지막 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 비장감 마저 들 정도였다.

***

랑케트니스 대륙의 서북쪽 므로난 지방의 어느 산악지역. 거대한 산맥과 수많은 협곡이 들어서 있는 므로난 산맥은 태고의 숨결을 그대로 안고 있는 곳이다. 사계 주민들조차 감히 근접할 수 없을 정도로 험준한 산악지형, 눈보라가 휘날리고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일년 내내 있는 곳. 바로 므로난 산맥이 통과하는 그 지역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라 할 수 있었다.

은빛 찬란한 날개 펼친 기이한 존재가 눈보라를 헤치며 므로난 산맥 정상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신체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새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었다. 잠시후 그 존재는 산 중턱 어느 바위 동굴 지점에 내려앉았다.

"천상단장 라프시오스이다. 어서 문을 열어라."

[끼익]

신기하게도 거대한 동굴의 석문이 우(右)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일반 동굴과 같이 그다지 볼품이 없어 보였지만 문이 열리자 눈부신 빛이 새어나왔고 그 안은 수백 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광장이 있었다. 자신을 라프시오스라 하는 존재는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동굴 안쪽으로 이어진 긴 통로로 들어갔다. 잠시후 통로 끝 금속성 문 앞에는 거대한 몸집에 붉은 깃털이 달린 투구와 은빛 흉갑을 입은 경비경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라프시오스를 보더니 각자 들고 있던 푸른 창을 지면에 꽝 구르더니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라프시오스는 거만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짧게 말했다.

"보고하라!"

"네!. 라프시오스 제 3 천상영역 단장님이 오셨습니다."

그러자 금속 문안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라프시오스님이 오셨다고. 당장 안으로 모셔라!"

[스르르르]

문이 열리자 라프시오스가 안으로 들어갔다. 눈부신 섬광이 번쩍거리는 곳, 도저히 산맥 안에 이런 별천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기에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오른단 말인가? 하프를 연주하는 여성들과 나팔을 붙잡고 허공 이쪽 저쪽을 떠다니는 어린아이들, 땅까지 닿을 듯한 백발의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들, 바닥에 질질 끌리는 하얀 의복을 입은 남녀들이 서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거니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신(神)의 영역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라프시오스가 문안으로 모습을 보이자 일시에 그를 주목했다.

"와우. 라프시오스님이다."

"라프시오스님이 이런 곳에 다 오시다니.."

"후. 보기만 해도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거려.."

그때 금빛의 문양이 수놓인 망토를 걸친 백발 노인이 허공을 날아올라 라프시오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끓고 고개를 숙여 정중한 예를 표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수백 명의 존재들 역시 저마다 지면에 내려앉아 예의를 표했다. 참으로 이채로운 광경이었다. 이제 겨우 20 살 정도 밖에 안 보이는 청년에게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모두 그의 발아래 무릎을 끓고 고개를 숙이니 말이다. 라프시오스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한마디했다.

"흠. 이곳이 사계(四界)라..생각보다 나쁘진 않군."

잠시후 라프시오스는 금빛문양의 망토를 두른 노인을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후후. 그대가 현재 이곳 사계 파병 선발 군을 이끌고 있는 몬테인가?"

"네 그러하옵니다."

"흠. 보기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군. 그나저나 당장 회의 준비 석상을 마련하거라."

"회..회의라니요? 일단 여장을 푸시는 것이..그리고 회의는 그 다음으로.."

"닥쳐!

"닥치라니요. 전..그저."

갑자기 라프시오스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수리를 버럭 질렀다.

"몬테 네 이놈! 우리 천상인들의 먹칠을 한 네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천상인들에게 먹칠을 하다니요."

"내가 오늘 칠계로부터 급히 내려온 이유는 바로 네놈을 혼내주기 위함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팍!]

"억!"

순간 라프시오스의 발길질이 보기 좋게 몬테의 가슴팍을 내질렀으니 갑자기 실내 분위기가 찬물을 껴 얹은 것처럼 썰렁해졌다.

"빌어먹을..천상인의 이미지를 기생 숙주로 전락시키다니..분명 네 놈이 주도한 것이 맞겠지?"

"아..네. 하지만 그..그건..일종의 전략적.."

[팍!]

"악!"

참으로 볼 쌍 사나웠다. 20대의 청년이 근 100살이 되어 보이는 백발노인에게 발길질을 해대니 말이다.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우리 천상인들에 걸 맞는 우아한 전쟁을 하지 못할 망정 벌레 같은 사계(四界) 놈들에게 기생숙주를 이용하다니.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군. 어쨌든 당장 회의석상을 준비하거라."

"아..네.."

잠시후 또 다른 밀폐 공간에 현재 이곳 사계 선발군들의 지휘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 상석에는 제3영역의 천상 단장 라프시오스가 노기를 띤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세히 보고해 봐!"

그때 백발 노인 몬테가 잔뜩 긴장한 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라프시오스님. 저..이젠 노여움을 푸시죠. 천상인들 중 가장 하찮은 종족인 하몰트 기생숙주인들을 이용한 전력은 현재 보기 좋게 먹혀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로서도 이런 하책 방법까지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살성인 하몬과 여러 전사들이 아무르의 위성의 기연을 얻고 프리즘의 전사로 탈바꿈하는 바람에 그들과 전면전 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우린 천상인의 선발진일뿐이니 다소 조심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비책이 바로 하몰트 기생숙주 종족들을 이용하는 전략이었는데 현재 좋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하몬의 정부군과 사계주민들과의 내분을 일으켰다는 것이지요."

"젠장. 창피하군. 천상인들이 고작 하찮은 사계 존재들을 대상으로 내분이나 일으키다니.."

"라프시오스님도 하몬이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바로 그는 태고 적부터 칠계에서 살성인들을 이끌던 명실상부한 관장자 아닙니까? 더구나 그는 창성인들이 만든 칠계 검까지 갖고 있으니 우리 사계 선발진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몬테의 설명을 듣고있는 라프시오스의 굳어진 표정이 그때서야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겼다.

"하몬이라..젠장. 그 놈은 칠계에서도 눈에 가시 같은 놈이었는데.."

"그리고 현재 반란군의 지도자인 세도스라는 자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입니다."

"세도스라니?"

"그는 바로 하몬에 대항하는 사계의 반란군 지도자입니다. 지금도 사계 전국에서 그와 합류하려고 각 단체와 탈영병, 주민 반군들이 그의 본거지인 카젠모르의 숲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흠. 그따위 사계 일개 반란군 지도자를 감히 내게 거론할 필요가 있겠는가?"

"후. 세도스의 기적에 대한 설명을 드리려고.."

"세도스의 기적이라니?"

"그는 하늘을 움직였습니다. 하위차원에서 거친 진동수를 의식적으로 조율한다는 것은 칠계에서도 그 가장 신비롭다는 창성인들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인데..그 세도스라는 자가.."

"뭐라고. 고작 반란군 지도자 놈이 어떻게 그런 능력이.."

"저희도 말로만 들었으니 단지 부풀어질 대로 부푼 소문으로 치부하고 있지만..혹시라도.."

"후후. 혹시는 무슨 혹시..자신의 반란군에 힘을 더해주기 위한 거짓 신화를 만들어낸 조작에 불과할 테지. 더구나 창성인이라니? 그는 지난번 제 1차보고 때에 제거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내 직접 베른의 단도를 하사하지 않았는냐?"

"네. 저희 선발진에 캐시어스라는 천상각성존재가 그 임무를 해냈습니다. 그녀는 창성인으로 예견되는 리크라는 자에게 접근하여 베른의 단도를 정확히 그의 가슴 중앙에 박았다고 했습니다."

"분명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는가?"

"예. 확인했다 합니다."

"후후. 베른 단도라면 제아무리 창성인이라도 뒈진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 그나저나 왜 우리 살성인과 멸성인들 간에 창성인들이 껴들려는 거야. 하하하. 멍청한 창성인들 그 능력이 신비롭다고는 하나 하나같이 평화, 사랑, 화합 같은 것이나 외치는 얼간이들 아닌가?

피가 난무하는 우리들 전쟁에 껴들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리고 앞으로 전개상황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현재 하몬의 정부군 33개 군단이 카젠모르의 숲에 숨어있는 반란군들을 토벌하러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정확히 일주일 뒷면 그들은 대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후후. 33개 군단이라..정말 엄청나군..하몬이 상당히 열 받았나 보군. 어쨌든 잘되었군. 제 1 청상 단장님과 제 2천상 단장님 두 분이 천상전사들로 구성된 정예병력을 이끌고 내려 올 때까지 약간의 공백 기간이 남았으니 난 구경이나 해볼까?"

"구경을 하시다니요?"

"난 아직도 그 세도스의 기적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는데 내 직접 그 반란군 지도자 놈을 찾아가 확인해 보리라."

"혼자 가시려고 합니까? 아무래도 이곳을 잘 아는 사람과 같이 가시는 것이 좀더 안전하실 것 같아서.."

그때 몬테 노인이 누군가를 불러 귀속 말을 했다. 그이 말을 전해들은 자는 급히 회의장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후 누군가와 같이 들어왔다. 순간 라프시오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누..누구지..?"

몬테 노인이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캐시어스라 합니다. 그녀는 반란군이 있는 케록시아 대륙을 잘 알고 있으니 라프시오스님과 동행을 한다면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흠. 원래 난 누구와 동행하는 체질은 아니지만.."

라프시오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케시어스를 천천히 살펴보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흠 한마디로 마음에 드는군. 그나저나 캐시어스라고 했나? 캐시어스라.."

"바로 그녀가 리크라는 창성인의 가슴에 베른의 단도로 제거한 장본인입니다."

"오 홋! 바로 그 캐시어스가 이 여성이란 말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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