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107)화 (107/157)

[데스퍼라도] 107. 천상제단

데스퍼라도(Desperado)

천상제단

세아린의 놀란 표정은 점차적으로 분노의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거대한 신전과 중앙에 제단을 모셔 놓은 석상이 있었다. 바로 그 곳에 케시어스가 턱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 조각이 새겨진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세아린과 케이사르가 적지 않게 놀란 이유는 바로 그녀의 달라진 모습이었던 것이다. 쫑긋한 귀와 등뒤의 은빛 날개가 아래로 가지런히 포개져 바닥까지 질질 끌리고 있었다. 세아린은 분명 케시어스가 리크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을 확신했고 그런 잔악한 행동을 한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자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아올랐다.

"리크의 가슴에 칼을 꽂은 게 바로 네 년이 틀림없겠지."

그때 케이사르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아린! 아직 케시어스가 리크를 죽이려 했다는 확증도 없는데 다짜고짜 상 욕을 해대면 어떡해?"

"저 계집애를 잘 봐! 분명 우리가 이리로 찾아 올 것이라 예상하고는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더구나 인간의 모습이 아닌 것을 보니 아마 사악한 요물임에 틀림없어."

케시어스가 갑자기 등뒤의 날개를 들어 퍼덕퍼덕 거렸다. 그러자 때아닌 광풍이 휘몰라 치면서 입구에 서있었던 세아린과 케이사르의 머리카락과 옷을 풀풀 날렸다.

"세아린. 리크에게 칼을 꽂은 건 사람이 바로 제가 맞아요."

세아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네 년이 인정을 하지 않는다 해도 너란 줄 알았지."

순간 세아린이 라우타르 지팡이를 들어올리려 하였다. 그러자 케시어스가 외쳤다.

"잠깐만!"

세아린의 동작이 움찔거렸다.

"제게 공격하기 전에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뭐라고? 얘기를 들어보다니.."

"리크는 아직 살아 있을 거에요."

"네가 죽여놓고 살아있다니.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거야! 이 나쁜 년 같으니."

"내가 리크의 가슴에 꽂은 베른의 단도는 바로 내 분신입니다. 멸성(滅性)인이었던 제 무기이기도 하지요. 리크의 가슴에 꽂아놓고 그의 고통스런 몸짓을 보았을 때 저 역시 단도로 여기저기 몸을 베이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바로 내 분신인 베른의 단도로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쑤셔 박는 고통을 말이죠. 결국 베른의 단도가 그의 깊숙한 심장으로 들어가기 전 저는 단도를 그의 몸밖으로 빼낼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이 그의 심장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저 자신도 정신이 나간 상태라 어떻게 그곳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허튼 소리! 설령 리크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네 년이 칼로 리크를 살해하려 했단 이유만으로도 넌 죽어 마땅해!"

극도로 흥분한 세아린이 케시어스에게 다가가려 하자 케이사르가 세아린을 저지했다.

"세아린! 잠깐!"

케이사르는 세아린을 가로막고는 재빨리 케시어스에게 물어보았다.

"케시어스. 도대체 날개가 달리고 이상한 모습을 변한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전 멸성(滅性)인입니다."

"멸성인이라니요?"

"천상인(天上人)들의 실체적 상위존재입니다. 이미 이 곳 사계(四界)에는 천상인들이 인간, 마족 어둠의 종족들과 섞여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래 전 바로 우리들 멸성인들이 뿌린 씨앗이라 보면 되지요."

그 순간 세아린이 케이사르를 비켜 세우고 라우타르의 지팡이를 케시어스에게 향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죽어라!"

[슈슈슈슈슈슈]

지팡이 끝에서 오렌지 섬광이 풀풀 솟아나더니 하나의 거대한 채찍으로 형상화하였다.

"라우타르의 채찍이여 저 사악한 요물을 죽여라!"

거대한 주황 빛 채찍이 제단 중앙에 있는 케시어스로 향하면서 주변의 커다란 신전 기둥들이 무 잘라지듯이 뎅강 뎅강 나가 떨어졌다. 실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케이사르는 순식간에 형성된 에너지의 기세에 밀려 뒤로 자빠졌으나 케시어스는 채찍이 정면으로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녀 역시 등뒤의 은빛 날개 활짝 펴지면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눈이 부실정도로 은빛이 반짝거리더니 방어형태의 둥그런 날개가 회전을 하였다.

[슈슈]

[콰 광!]

[파파파파파팟]

세아린의 빛의 채찍과 케시어스의 방어 형태의 은빛 날개가 부딪치면서 거대한 폭 팔이 일어났고 드넓은 신전전체가 흔들거렸다. 그 충격의 여파로 세아린과 케시어스 양쪽이 뒤로  팅겨 나가 떨어졌다.

"헉!"

"악!"

기아몬 신전에서 아무르 위성의 백색 빛을 받고 프리즘의 전사가 되서야 라우타르 지팡이의 의 수십 가지 절기들을 시전 할 수 있었던 세아린의 빛의 채찍은 오늘로서 그 첫 번째의 전투기술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공교롭게도 케시어스 역시 자신이 멸성(滅性)인이라는 각인을 깨닫고서 윙드펜스 방어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였으니 이들 두 사람은 자신의 절기에 놀라고 상대방의 절기에 또 한씩 더 놀란 표정들이었다. 허나 성질 사나운 세아린이 만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입가에 흐르는 선혈을 손으로 한번 죽 닦더니 다시 일어났다.

"빌어먹을. 저 계집애가 갑자기 어디서 저런 기술을.."

케시어스 역시 통증이 오는지 한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외쳤다.

"나는 그렇다치고 세아린 당신은 기아몬 신전에서 왜 부상당한 리크를 내게 맡겨두고 떠났나요? 비록 얼마  되지 않아 돌아왔다고는 했지만 일단 떠난 것은 사실 아닌가요?"

케시어스의 말을 들은 세아린의 표정이 한순간에 멍해졌다.

"내..내가 리크를 떠났다고.."

"내가 당신이었다면 난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지 않았어요. 비록 그 당시 제가 리크를 보살펴 준다고 당신을 안심시켰지만 당신은 절대로 리크를 떠나지 말아야 했어요. 도대체 그날 처음 만난 나를 어떻게 믿고서? 흑.."

케시어스가 울먹이면서 말하자 세아린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난 리크를 떠났지. 사실 리크를 버린 건 나야. 비록 뒤늦게 돌아왔지만 그건 이미 늦었어..그땐 이미 리크와 케시어스 네가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지. 더구나 난 너를 잘 알지도 못했는데 리크를 네게 맡겼어. 내..내가 왜 그랬지.."

세아린은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더니 어깨를 들석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케시어스 역시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하며 그저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세아린 당신이 믿으실 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제가 리크의 암살자로 선택된 것이 다행일수도 있었어요. 마일 제가 아닌 다른 멸성인들 중 하나가 그 임무를 맡았다면 리크는 완전한 소멸을 당했을지 몰라요."

"닥쳐! 그래도 어떻게 리크의 가슴에 단도를 박을 수 있어! 사람의 탈을 쓰고서야.."

"천상인인 제 부모님과 오빠의 생명이 담보로 잡혀있었기에. 그 당시에는 저도 죽고싶을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젠장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도대체 멸성인은 뭐고 천상인은 뭐야!"

"제 가족들은 이 사계(四界)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천상인들입니다. 후에 제가 멸성인의 각성이 돌아오고서야 그들이 전에 있던 세계에서 제 밑에 있던 수하들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즉 우리들의 임무는 창성(創成)의 힘을 가진 자를 추적해서 그를 제거하는 것이 임무였는데

바로 그 창성인을 제거할 때 제 기억도 완전하게 돌아오게 된 거죠. 하지만 암살의 임무를 가진 제가 멸성인으로 돌아왔을 때 바로 그 창성인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창성인을 제거하지 못하면 제 수하들인 이 사계(四界)에서 인연을 맺었던 가족들의 목숨을 보장 못했죠."

"분명 네가 지금 얘기하는 창성인이라는 자가 리크를 말하는 건가?"

"네 리크가 맞습니다.

"이거 완전히 소설을 쓰는군."

"이 마당에서 세아린 당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이 뭐라 생각하던지 제가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명 프리즘의 전사라 말하는 그대들은 우리들의 공적 제거 대상이기도 하지요. 그런 당신들에게 멸성인인 제가 이런 비밀을 누설했다는 자체도 저는 소멸 대상 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당신들과 이렇게 대화만 하는 것은 단지 오늘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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