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106. 천상제단
데스퍼라도(Desperado)
천상제단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흐른 뒤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반데라스 성(城) 바로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아린이 품안에서 조그만 지팡이를 꺼내 들고는 살펴보았다. 검게 그을린 막대기가 영 볼품은 없었지만 깨알같은 고어체(古語體)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으니 그저 평범한 막대기 같지는 않았다. 케이사르 역시 세아린의 라우타르의 지팡이를 보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였다.
"후. 세아린 벌써 라우타르의 지팡이를 꺼내다니. 진짜 저 아래 반데라스 성을 박살내기라도 할거야?"
"......."
싸늘한 표정의 세아린이 언덕 반데라스 성쪽으로 향했다.
"세아린..뭐야? 일단 케시어스를 만나보고 그 진위를 확인해 보자. 괜히 경솔한 행동하지 마. 그 피격을 당한 성자가 리크라는 것과 성자를 공격한 여자가 케시어스라는 정확한 증거가 없잖아."
"두고보면 알겠지."
세아린은 반데라스 성문 입구에 다다르자 다짜고짜 라우타르의 지팡이를 휘둘렀다.
[번쩍]
주황색 섬광이 성문을 향해 발했다.
[우지직]
거대한 성문이 장작 쪼개지는 것처럼 쭉쭉 갈라졌다. 잠시후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성문 입구로 들어갔다.
"훗. 뭐야? 세아린 네가 오는 줄 알고 모두 도망간 것 같은데.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가 안으니 말이야."
"본관 안으로.."
"설마 그곳에 있을 라고 도망친다면 외부 밖으로 갔겠지."
"내 느낌에 그 케시어스라는 계집애는 절대 도망갈 인물이 아니야."
"느낌에 그렇단 말이지. 흠. 하긴 여자끼리는 뭔가 통한다는 게 있다고들 하던데. 그게 악연(惡緣)이 될까봐 걱정이라서 그렇지."
잠시후 본관 건물 안으로 들어온 세아린과 케이사르가 안을 살펴보았다. 과연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3대 명문가답게 거실 안은 온갖 화려한 구조물과 조각품, 장식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세아린은 오른쪽 벽면을 보더니 갑자기 지팡이를 휘둘렀다. 이에 놀란 케이사르가 그 쪽을 쳐다보았다. 검붉은 머리에 초록의 눈빛 초상화는 케시어스임이 분명했다.
[활활]
세아린은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케시어스의 초상화를 보고는 더욱 독기가 받쳤는지 버럭 소리 질렀다.
"이것들이 다 어디로 도망 간 거야!"
[쉭]
[슉]
겉으로 보기에 보잘 것 없이 생긴 라우타르의 지팡이가 휘둘릴 때마다 건물 벽면이 쩍 갈라지고 부셔졌다. 세아린은 마치 광기라도 부리는 것처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본관 건물들 여기저기를 파괴하였다.
"세아린 미쳤어! 그만해 건물 전체가 폭삭하면 우리도 위험하단 말이야!"
"시끄럿! 이 나쁜 계집애가 모습을 보일 때까지 이 재수 없는 성을 전체를 박살낼 테야!"
"저기! 중앙 거대한 기둥만큼은 그냥 나 둬! 저게 이 건물의 버팀목인 것 같은데 만일 쓰러진다면 진짜 건물이 내려앉는단 말이야!"
케이사르는 세아린의 광기가 발작되기 전 잽싸게 중앙 기둥으로 향하더니 두 손을 뻗쳐 그만 하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때였다. 케이사르의 붉은 메스트린트의 검이 웅웅거리며 심한 진동을 일으켰다.
"잠깐!"
세아린 역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중앙 기둥 앞에 서있는 케이사르를 바라보았다.
"검이 진동을.."
잠시후 세아린이 그 기둥으로 가자 라우타르 지팡이도 진동을 하였다.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동시에 거대한 기둥으로 시선을 모았다.
"뭔가 이상한데. 분명 이 기둥을 보고 검이 반응을 하는 것 같아."
둘레가 약 5 M에 달하고 건물 천장과 맞닿아 있었으므로 무척 높아 보였다. 푸른 대리석 질감의 돌기둥에는 화려한 금박과 은박의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세아린은 기둥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면밀히 살펴보고서는 갑자기 눈빛이 번뜩 거렸다.
"밑이야!"
"밑이라니?"
"기둥 밑에 뭔가 있어!"
그때 케이사르가 자신의 검을 하늘로 향했다가 기둥 밑 둥 구리 쪽으로 향하기를 반복하더니 말했다.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검이 아래 분을 향할 때 더욱 진동이 심해지거든. 그나저나 기둥 밑에 뭐가 있지."
그때 세아린이 케이사르의 메스트린트 검을 바라보더니 외쳤다.
"케이사르 네 메스트린트 검으로 지면을 갈라 줘!"
"엥. 뭐라고? 내 절기를 그저 땅이나 가르라고?"
"응."
"쳇.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아린의 부탁이라면..그나저나 일단 밖에 나가서 시도해 보자. 이 안에서 했다가는 건물 더미에 압사 당해."
잠시후 밖으로 나온 케이사르가 검을 뽑아 하늘로 향하더니 순식간에 지면으로 검 끝을 팍 꽃아버렸다.
"메스트린트의 힘이여! 대지를 갈라다오!"
[쿠르르르]
[지지지직]
[콰르르릉]
메스트린트의 검 끝으로 갈라진 틈이 순식간에 쩍 벌어지더니 건물 안의 거대한 기둥으로 까지 지면이 입을 벌렸다. 물론 그 충격에 건물은 폭삭했고 기둥마저 옆으로 쓰러졌다. 케이사르는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건물 안의 기둥까지 갈라지자 검을 다시 등뒤로 넣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가끔 이 검의 위력에 나도 놀란다니까?"
잠시후 먼지가 걷히자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아까의 그 기둥 근처로 향했다. 여기저기 잔해들 속에서 아직도 먼지가 풀풀 났지만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갈라진 지면 틈으로 무엇인가 찾으려는 것 같았다. 결국 아까 그 기둥자리의 갈라진 지면 틈에서 푸른빛이 나오니 이들이 찾고자 하는 것이 나타났다.
"뭐지? 저기 갈라진 지면 틈으로 오래된 돌계단이 보이는데. 더구나 그 아래 통로에서 푸른 빛이 새 나오고 있어."
"들어가자!"
"세아린! 잠..잠깐 무작정 들어가면 어떻게 해? 혹시 함정이라도.."
"그게 걱정이라면 염려마!"
세아린은 그 틈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향하게 하고 사정없이 주황빛을 쏘아대었다.
[슈슈슈슈슉]
[파파파파파팟]
그러자 지팡이의 주황빛과 저 아래 틈에서 나오는 푸른빛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수많은 섬광을 터트렸다. 잠시후 신기하게도 저 아래 통로에서 더 이상 푸른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케이사르는 아직도 의심이 남아 있는지 들어가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그..그래도 들어가기가 좀.."
"빌어먹을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아무튼 내가 먼저 들어 갈 게!"
세아린은 살짝 점프를 해서 지면 아래로 보이는 통롤 계단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지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케이사르 역시 세아린이 사라져버리자 마지못해 그녀를 따라갔다.
"후. 세아린이 간다면 나도.."
신기하게도 횃불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어둡지 않았다. 돌계단 밑바닥까지 내려온 이들은 상당히 길게 이어진 복도를 발견하고는 그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훗. 정말 놀랍군. 벽 자체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발하다니. 덕분에 주위가 어둡지 않아서 좋지만 웬 지 불안하군."
세아린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벽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저쪽 보이지 않는 통로까지 길게 이어진 벽면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존재들이 그려져 있었고 케이사르는 도대체 그 그림의 주인공들이 뭔가 하고 살펴보았다.
"뭐야. 분명 인간형인 것 같은데 귀가 쫑긋하고 개중에는 날개가 있는 것도 있네. 인간은 아닐 테고 마족, 어둠의 종족과도 다른 모습인데..그리고 이런 존재들의 그림이 왜 이런 인간종족의 건물 지하실 벽면에 새겨져 있는 거지?"
"쉿 조용히 해봐. 저 기 앞에 보이는 것이 문 같은데 아마 통로 끝인가 봐!"
"이 거 떨리는데."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석문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이제는 그 주위를 유심히 조사하였다.
"문고리도 없는데. 이게 문이 확실하긴 확실할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막다른 벽 같은데."
"아냐 입구가 틀림없어! 먼지에 바랜 다른 벽면과는 달리 여기 막다른 돌 주변을 잘 봐! 밑 부분 가장자리가 제법 많이 닳아 있고 먼지하나 없잖아. 그러니까 이 맞은편 석판은 누군가에 의해서 열고 닫히고 한 것이 분명해!"
"열고 닫힌다면 문고리가 있어야 하잖아."
"문고리가 필요 없는 문이라서 그럴 거야."
"문고리가 필요 없다니?"
"정말 멍청하기는 너랑 같이 다니다가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 문이 꼭 앞뒤로 열고 닫으란 법 있어? 이 문은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문이야. 아무튼 어딘가에 여는 장치가 있을 거야."
"쳇. 그래 너 잘났다. 아무튼 쉴 테니 혼자 똑똑한 척해라."
케이사르는 세아린의 말이 다소 언짢았는지 나 몰라라 팔짱을 끼고는 오른쪽 벽면에 기대었다. 그 순간 케이사르의 등뒤에 돌출 된 벽 부분이 뒤로 밀리면서 석판이 옆으로 밀려갔다.
[스르르르]
"헉! 문이 움직인다."
과연 세아린 말대로 석문은 옆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그 문을 통해 다시 이어지는 복도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 직면한 복도는 참으로 희한했다. 복도의 통로가 가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처음 사람 높이의 넓이와 높이가 약 50M 쯤 더 들어가자 사방 둘레가 마차가 여러 대 들어갈 정도로 넓어졌다.
"뭐야. 이젠 복도가 아니라 아예 광장으로 바뀔 판이네..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사막같이 넓은 곳이 나오는 거 아니야?"
"잠깐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저기 또 다른 입구가 보이는 것 같아."
"엥. 진짜.."
그들은 새로 나타난 입구 쪽으로 다가가더니 서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번엔 문고리가 달린 석문이었지만 문 앞부분에 부조로 조각되어진 여러 존재들 중 한 존재의 모습이 낮이 익었던 까닭이었다. 바로 그들의 시선을 끈 것은 처음 복도 벽면의 그려졌던 기이한 존재들의 모습이지만 케시어스와 똑같이 생긴 존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엥. 케시어스가 왜 여기 조각되었지 더구나 그녀의 귀가 원래 쫑긋했었나? 그리고 이거 등뒤에 말이야 분명 날개를 조각해 놓은 거 맞지?"
"일단 들어 가보면 알겠지."
"들..들어간다고? 젠장..사람 진짜 애 간장 녹이네..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야?"
[끼이이익]
어느새 세아린은 앞의 서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아 보일 것 같은 육중한 석문이 가볍게 열렸고 그 안에서는 황홀한 빛들이 섬광을 일으키듯 품어져 나왔다.
"훗. 눈부셔!"
세아린과 케이사르는 빛이 너무 밝자 자신들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발걸음을 안으로 돌렸다.
"저것들이 다 뭐야."
"이..이럴 수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