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98)화 (98/157)

[데스퍼라도] 98. 프리즘의 전사들

데스퍼라도(Desperado)

프리즘의 전사들

수많은 별무리 중 거대한 아무르 위성의 극점주기가 이루어지려 하였다. 팔마스탄 산맥의 수많은 봉우리 중 하늘빛 안개와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오른 이곳 기아몬 시전이 있는 봉우리에 하늘을 우러러보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 누구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우주(宇宙)의 별무리가 희미해져갔으니 이는 아무르 위성이 더욱 밝아 졌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아무르 위성의 서쪽 극점주기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자 빛이 저 드넓은 공간에 우유 빛 섬광을 뿌려놓았다. 그 빛에 기아몬 신전의 전사들은 너무 눈이 부신지 저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시늉을 하였다. 백색 섬광의 여운은 너무나 강했다. 섬광은 한번 터지고 사라지는 그런 종류의 빛이 아니었다. 밤 우주의 드넓은 공간에 백색의 길다란 빛 꼬리가 마치 오로라 처럼 요동을 치고 있었다. 일찍이 오늘과 같은 극점주기 현상은 이전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장관을 연출했던 것이다. 저 동쪽 끝 로엔스톤 대륙의 전설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곳 서쪽의 무로나 대륙에서도 새로운 전설의 조짐이 나타났다.

저마다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어 하늘높이 쳐들었으니 과연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 전설이 도래했음을 아는 자들이었던가.

리크의 하몬 검

세아린의 라우타르의 지팡이

케이사르의 메스트린트 검

리아몬의 창

포니의 석궁

골고트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무기.

그 외 알려지지 않은 전사들 역시 자신들의 갖가지 무기들을 허공에 치켜들었다. 잠시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밤하늘의 여기저기 유영을 하던 백색의 빛 무리가  여러 개 색으로 분리되었던 것이다. 푸른빛이 세아린의 라으타르 지팡이로 향했다. 이어서 붉은 빛이 케이사르의 메스트린트 검으로 향했고 초록빛이 리아몬의 길다란 창과 포니의 석궁으로 향했다. 금빛이 골고트의 이상한 무기를 비추어주고 마지막에 백색 빛이 리크의 하몬 검을 향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전사들에게는 별 특이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이곳 기아몬 신전에 참석한 각 종족들은 자신들의 상급전사들에게 일어나는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슈슈슈슈슈]

[파파파파팟]

각자 빛을 받은 상급전사들의 신체 주변에는 아름다운 불꽃이 일어났다. 특히 그들의 무기들은 아무르 위성의 빛과 융화하는 것처럼 각기 고유한 색을 냈다. 그때였다. 백색의 빛을 받은 하몬 검의 주인 리크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아아악]

마치 방금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 몸에 전율을 일으켰고 그의 의복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났다. 리크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겨우 살아 나온 자와 다를 바 없이 처절한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불뚝불뚝 솟아 나온 힘줄들과 벌겋게 변해버린 리크의 얼굴색 마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다른 상급전사들은 각기 빛을 받아들여 이제야 겨우 그 빛들과 동화가 되어 안정이 되어 가는 듯 했지만 리크는 아직도 고통을 못 이겨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케시어스가 급히 리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뒤에서 벼락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만지면 안돼!"

회색 빛 망토를 뒤집어 쓴 자가 뒤에 사람들 무리에서 뛰쳐나왔다.

"리크 빨리 하몬의 검을 내게 다오."

리크는 고통에 찬 시선으로 흘깃 그를 바라보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냥 검을 넘겨주었다.  망토의 사나이는 허공에 던져진 하몬의 검을 받아들고는 아무르 위성 정면에 내밀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의 안정을 찾은 다른 전사들이 하몬과 망토를 뒤집어 쓴 자에게로 다가왔다. 잠시 후 놀랍게도 망토의 사나이는 아무런 문제없이 하몬의 검으로 백색 위성의 빛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세아린은 리크의 검을 넘겨받은 망토의 사나이에게 다가가서 외쳤다.

"넌 뭐야? 리크에게 하몬의 검을 뺏고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세아린이 빛을 받아 아직도 푸르스름한 지팡이를 망토의 사나이에게 겨누었다. 이때 바닥에 엎드려 있던 리크가 소리질렀다.

"세아린 그분을 건들지마!"

"뭐..뭐야? 리크"

"그분은 하몬님이야..."

"하몬이라니?"

순간 기아몬 신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하였다. 잠시후 백색의 빛과 검을 융화시킨 망토의 사나이가 겨우 숨을 추스리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갑자기 하몬이 나타났다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누구하나 그에게 다가가는 자가 없었다. 오로지 리크만이 지난번 몽마(夢魔)의 현상이 일어나던 날 꿈속에서 하몬을 보았기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 망토 사이에 비쳐진 얼굴은 하몬이었고 그가 검을 달라고 하자 결국 넘겨주었던 것이다. 더구나 백색의 빛이 리크 자신을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때 망토의 사나이가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리크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하몬의 검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온 것이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하하하."

[팟!]

망토의 사나이는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

아무르 위성의 서쪽 극점주기가 끝난 지 한 달이 되도록 아직도 기아몬 신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리크는 그날 아무르 위성의 백색 빛의 충격과 부상으로 인하여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는지 기아몬 신전바닥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를 괴롭히는 것은 몸도 성치 않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그를 거의 식물인간처럼 만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에 벗어나려는 무언의 고통을 뒤 씹고 있는 것이 원인일지도 몰랐다. 벌써 적지않은 시간이 흘러 모든 사람들이 이 기아몬 신전을 떠났지만  아직도 리크 옆에는 세아린과 케시어스 그리고 케이사르가 있어주었다. 그들은 한달 전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아직도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아몬 신전 밖 편편한 바닥에 세아린과 케시어스, 케이사르가 서로 마주보며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케이사르가 두 팔을 벌려 거나하게 하품을 한번하고 세아린에게 말했다.

"세아린. 이젠 받아들여.."

"뭐를?"

"리크가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말이야..더구나 리크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아니 갈비아스 파동검술까지는 성공했으니 어느 정도 전사의 기질을 있다고 봐야지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야. 그러니까 상급계열은 아니.."

"그만해! 분명 하몬의 검이 리크를 택했단 말이야!"

"하하. 하몬의 검이 결국 하몬에게로 갔는데 더 이상 무슨 할말이 있다고 그래. 리크는 그저 하몬의 매개체 역할을 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보기 좋게 이용당한 거란 말이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후후. 선배인 헬 전사 리아몬님이 여길 떠나기 전에 했던 말 못 들었어? 하몬은 인간 종족들에게 있어서 추앙을 받는 대영웅이라 하지만 그가 2000년 전에 마족과 어둠의 종족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아는 존재들은 극히 드물었다고. 리아몬 선배님의 말에 의하면 진정 하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이상의 능력을 가졌다고 했어. 그는 불과 소수의 병력만으로 사계(四界)의 수백개 대륙을 피와 살점으로 물들게 하였지.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대영웅의 길을 가는 것처럼 명분 있는 전쟁이었지만 다른 종족들 눈에는 결코 그렇게 비추어지지 않았지. 그는 자신의 힘을 주체 못했는지 명분 있는 전쟁보다는 대살육을 즐겨했던 전쟁광이었어. 바로 저 칠계(七界)에서 떨어진 검의 주인으로서 그 힘을 아무런 죄 없는 마족과 어둠의 종족들의 평범한 주민들인 어린아이와 부녀자, 노인들 마저 가차없이 살육했지. 그리고 2000년 전 그는 아무르 위성의 힘을 얻기 위해 이 곳에 온 적이 있었는데 아무르의 힘은 잔인한 피로 더럽혀진 하몬의 검과 상충작용을 하여 별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 바로 그날이 하몬이 이 사계(四界)에서 사라진 날이야. 결국 하몬은 사계(四界) 어디엔가 존재하는 이름 모를 현자에게 찾아가서 아무르 위성의 힘을 얻는 방법을 물었어. 죽음의 냄새가 나는 하몬의 검이 아무르 위성의 힘을 받으려면 저 아래 일계의 대운성의 기(氣)받은 맑은 영혼이 그 검을 융화 희석시켜야 된다는 것이었지."

"하몬의 검이 칠계의 검이라면 칠계의 대운성의 기를 받은 리크가 왜 한달 전 아무르 위성의 백색 빛과 융화되지 못했지."

"하하. 칠계의 대운성의 빛을 꼭 리크만 받으란 법은 없었지. 바로 하몬 자신도 대운성의 기를 받은 자야. 그러니까 자세하게 말하자면 하몬은 대운성중 살성의 에너지를 받았기에 전사로서 운명을 타고났지만 리크는 대운성의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받고 태어난 자 같아. 하지만 리아몬 전사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하더라고. 그 종류가 다르더라도 일단 칠계의 대운성을 받은 리크 역시 아무르 위성과 융화되어야 하는데 한달 전에 왜 그와 같은 상충작용이 일어났는지 이해를 못하더라. 단지 리아몬 선배가 추측하기에 리크의 몸 내부에는 다른 강한 에어지가 내재되어 있었고 그 에너지가 아무르 위성의 강력한 에너지와 충돌을 일으킨 게 분명하다고 그랬어."

"흠. 이제 보니 그도 일리가 있군. 리크가 갈비아스 파동검술을 배우기전에는 프아라(puearra)의 에너지와 내공(內空) 같은 독특한 에너지가 융합을 이루었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 설마 그것 때문에 상충작용이.."

"어쨌든 이제 와서 그런 얘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어차피 모두 끝난 일. 하몬의 검은 원래 주인인 하몬에게 돌아갔고. 리크는 이제 자신의 갈 길을 가야되겠지."

"갈 길이라니?"

"리크에게 갈 길이 뭐겠어. 그저 자신의 고향인 저 하위차원인 휴론계에 돌아가서 조용히 사는 거지."

"어쨌거나 리크도 한때 하몬의 검이 선택한 대운성의 에너지를 받은 사람이잖아. 그런데 그냥 이대로 끝나고 마는 거야?"

"후후. 그 대운성의 에너지가 살성이 아닌 다른 종류의 것이니. 전사로서의 의미는 없다고 보는데 그저 대운성의 살성 에너지를 받은 하몬이 아무르 위성의 힘을 찾기 위한 매개체 역할 운명을 타고난 자에 지나지 않겠지. 이젠 그 역할마저 끝났으니 조용히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이 순서 아닌가? 더구나 세아린 너와 나는 어차피 다른 상급 전사들처럼 프리즘  의 빛을 선택받았으니 저 동쪽 끝에 로엔스톤 대륙 [하늘이 열리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너무 허무해.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게 리크의 운명이라 생각해. 리크의 맑은 눈과 착한 표정을 봐. 그는 도저히 이곳 사계(四界)에 처절한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타입이잖아. 그가 자신의 고향에서 조용하게 사는 것도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을 거야."

"그래도. 이건 아니야. 너 리크가 화날 때 본적 없지. 얼마나 무서운데.."

"후. 세아린 제발 억지 부리지마. 그나저나 그 하몬이라는 사람 정말 독하다. 얘기 듣기로는 세아린 네 아버지였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아는 척도 안하고 그냥 사라지냐."

"젠장. 어차피 서로 마찬가지야. 나도 그를 내 아버지 생각 안 하니까. 더구나 그는 자기 딸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거야."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케시어스가 말문을 열었다.

"케이사르님 말씀을 들어보니 어차피 리크의 남은 운명은 정해진 것 같군요. 두 분은 아무르 위성의 빛을 선택받은 프리즘의 전사들이니 아마 로엔스톤 대륙으로 떠나시겠죠. 그렇다면 리크 옆에는 제가 있을게요."

그때 세아린이 벌떡 일어나더니 케시어스를 노려보았다.

"내가 언제 리크를 떠난다고 그랬죠? 케시어스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닙니까? 정작 리크 옆에 남아 있을 사람은 바로 저에요. 프리즘의 전사고 뭐고 난 이 딴 거 다 소용없어요. 이런 기연들 얻고 싶어서 얻은 것 도 아니고 난 그저 리크를 따라서 이곳 세계까지 흘러들었지만 리크가 휴론계로 돌아간다면 나 역시 돌아갈 겁니다."

그때 케이사르가 한숨을 푹 쉬었다.

"휴! 리크가 부럽다 부러워. 젠장."

케시어스는 세아린의 단호한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세아린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저도 리크 옆에 있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아린 역시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싶었는지 잠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겨우 말했다.

"정말 리크를 좋아하시는 군요."

케시어스는 이내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아린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다소 침통한 표정으로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어깨를 어루 만져주었다.

"리..리크를 잘 부탁해요.."

세아린은 벌떡 일어나더니 케이사르에게 소리 질렀다.

"뭐해! 로엔스톤 대륙으로 떠날 준비 안하고.."

"어? 세아린 뭐야? 그리고 리크는.."

세아린은 신전 쪽으로 걸어들어 가려다 멈칫했다.

"리크. 미안해 도저히 널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리고 꼭 돌아올게. 단지 잠시동안 케시어스에게 널 보호하도록 맡기는 거지 그 이상은 절대 아니야. 절대로..흑흑."

세아린 역시 눈물이 글썽이며 기아몬 신전의 저 아래 절벽으로 그냥 하강해버렸다. 케이사르 역시 그녀의 뒤를 쫓아서 하강했다.

"이봐 세아린. 같이 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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