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94)화 (94/157)

[데스퍼라도] 94. 기아몬 신전

데스퍼라도(Desperado)

기아몬 신전

새벽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오는 팔마스탄 산맥 허공에는 거대한 날개를 펼친 리크가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협곡을 벗어난 마족 지역에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새벽에 보초를 서던 마족들 중 누군가 무심코 하늘을 보다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비상종을 울렸던 것이다.

"뭐야? 협곡 안에 있는 인간 종족들이 탈출이라도 시도한단 말인가? 갑자기 웬 난리야!"

"그런 게 아니라..하늘에 뭐가 있습니다."

"하늘에 뭐가 있다니?"

산등성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있던 마족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인간들이 지난 80년 동안 천연의 요새인 협곡 안에서 생활을 하였다면 그 주변에 터를 닦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족들이 있었다. 이들은 아미고스 라 불리는 산악 마족으로서 이 팔마스탄 산맥의 정통 마족이었다. 80 년 전 인간 개척민들이 이곳에 발을 들여놓자 자신들의 영역이 침범 당한 것에 무척 화가나 그들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오로지 길이 하나밖에 없는 천연의 요새를 공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아미고스 마족들은 아예 이 협곡 주변에 터를 정해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인간들이 협곡을 통해 나오는 것만큼은 절대 허용을 하지 않겠다는 심보였다. 지금까지 협곡을 탈출하려던 수백명의 인간들이 이들 마족들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과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여하튼 오늘 아미고스 마족들은 지금까지 저 협곡 아래 길만을 감시했지만 갑자기 하늘을 나는 사람을 보자 깜짝 놀랐던 것이다. 아미고스 마족들중 이 협곡을 책임지고 있는 카흐니 대장이 외쳤다.

"빌어먹을. 저..저 인간 놈들이 별 짓을 다하는군. 이젠 거대한  날개까지 만들어 여기 협곡을 탈출하겠다고. 흥. 어림없지.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 인간 놈들은 절대로 협곡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크크크."

카흐니 마족 대장은 부하들로 하여금 대형 활을 준비하도록 했다. 유난히 몸집이 큰 카흐니 대장은 거침없이 커다란 활의 시위를 당겼다. 온통 근육질에 힘줄마저 불끈 불끈 솟아오르는 그의 팔뚝과 어깨 죽지는 과연 엄청난 괴력을 예상할 수 있었다.

[쉭!]

화살이 파공 소리를 내며 허공에 떠있는 리크에게 향했다. 리크는 마족의 영역에 오자마자 공격을 받으니 은근히 부아가 솟아올랐다. 게다가 어제 푸샥 노인에게 들은 얘기 중 이곳을 탈출하려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들에게 붙잡혀 무참하게 살육을 당했고 그 중에는 아녀자와 어린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찌나 고문이 심했는지 협곡 전체 울려 퍼지던 이들의 비명소리가 3일간 계속되었다고 했다. 사실 리크가 새벽부터 정찰을 나온 이유에는 바로 그와 같이 잔인한 짓을 한 마족들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리크의 가슴에는 일종의 보복심리가 형성되고 있었다.

[턱!]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오는 화살이지만 리크가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뭐야! 저놈이 화살을 잡다니.."

카흐니 마족 대장은 다시 활을 쏘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잠시후 리크는 카흐니 대장과 수백명의 마족들이 포진한 중앙 지면으로 내려왔고 마족들이 리크를 포위했다. 그때 카흐니 마족 대장이 리크를 천천히 살펴보더니 한마디했다.

"크크. 수호전사인가? 금속 전투복에 날개라.."

"..........."

리크는 팔짱을 낀 체 카흐니 대장을 노려만 볼뿐이었다. 처음엔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던 아미고스 산악 마족들이 순식간에 주변지대를 덮을 만큼 불어났다.

"크크. 하늘을 나는 비상한 재주에 내 가 쏜 화살마저 잡는 네 놈의 실력은 인정한다마는 지금 우리 마족 본진 한복판에 겁도 없이 내릴 정도로 정신나간 인간 놈이 틀림없어."

그때 리크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대장인가?"

"엥. 그렇다면?"

"협곡을 탈출하려던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인 것이 사실이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나. 느닷없이 이곳에 나타나 갑자기 헛소리를 하고 자빠지다니..크크. 애들아 이 인간 놈을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그렇지 않아도 요즘 탈출을 시도하는 인간 놈들도 없고 젠장 심심했는데 말이야. 오랜만에 인간 비명소리를 듣고 싶군. 그나저나 조심해라. 저놈의 복장으로 보아 뭐 수호전사급은 되는 것 같으니. 뭐 하긴 인간 놈들 수호전사급이 우리 마족의 부장급 정도나 할까. 크크. 그러니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거야."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단 수십명의 마족들이 리크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생포하기 위해 그물망을 들고는 리크가 서있던 허공에 던졌다. 그 물망에 걸린 리크가 꼼짝하지 않자 우람한 몸집의 마족들이 그 위로 한꺼번에 덮쳤다. 그 순간 그물 망 속에서 섬광이 발했다.

[컥!]

[큭!]

그물에 걸린 리크를 수십명의 마족들이 덮치려다 단 한번의 섬광으로 몰살당했다. 이를 지켜보던 수많은 마족들이 경악을 하였다. 카흐니 대장과 주변 부장급 마족들이 방패와 둔탁한 무기들을 들고 다시 리크에게 다가갔다. 리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면서 그의 검 역시 지면에서 허공으로 들어올려졌다.

[슈슈슈슈]

[칵!]

[아악!]

약 20여분 정도가 경과했을까. 이 일대가 마족의 피로 넘쳐흐를 줄을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다. 인간 1명과 아미고스 산악 마족 수천명의 대결 자체가 황당한 일이었지만 더욱 경악할 일은 바로 단 한 명의 인간에게 수많은 마족들이 허공에 피 분수를 쏟으며 무참히 살육 당한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정찰하러 나온 리크 역시 처음부터 이들을 살육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활을 쏘면서 먼저 공격한 이들을 그냥 두고 지나가기도 마음에 걸렸는지 아예 대놓고 전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더구나 인간을 고문하며 죽이는 잔인한 습성의 아미고스 마족들에 대한 보복적인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기에 리크는 손속을 두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육을 감행하였다.

팔마스탄 산맥 저지대에 벌어지는 이와 같은 참극을 고지대 어는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팔짱을 끼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저 아래 자행되는 학살의 현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누구지?"

"아마고스 산악 마족들이 그 전투력이 약하다고는 하나 어떻게 인간 한 놈에게 수많은 마족들이 학살당할 수 있는 거지?"

"저 인간 놈의 복장이 예사롭지가 않아. 수호전사중에 혹시 상급전사인 페몬 계열이 아닐까?"

"아무리 폐몬 계열의 상급 수호전사라 하더라도 저런 전투 기술은 흉내도 못 내지. 더구나 저자는 등뒤에 금속성 날개까지 있으니. 마치 저건 전투복이 아니라 변신(變身) 형태를 띤 것만 같군."

"변신(變身)이라니? 설마.."

"그럴지도 모르지. 인간 중에 변신 기술을 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한사람..하몬의 후계자.."

"하. 하몬의 후계자라고?"

"후후. 이거 정말 뜻밖이군. 인간이고 마족이고 어둠의 종족이던 간에 대부분의 상급 전사는

저 동쪽 끝에 위치한 로엔스톤 대륙 [하늘이 열리는 곳]이란 성역으로 전설을 찾아 떠나는 이 마당에 왜 인간의 절대적인 영웅 하몬의 후계자가 이런 서쪽 외떨어진 대륙에 나타났지?"

"오빠 어떻게 할까? 그냥 죽여 버릴까?"

"뭐 그럴 것까지야. 사실 우린 여기 여행 목적으로 왔잖아. 수십만 년만에 부활해서 이젠 전쟁이나 대결, 살육하는 것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란 말이야."

"그래도 명색이 우린 어둠의 종족 중 가장 강하다고 하는 헬 급 대살육 전사인데 저 인간 아이를 나두고 간다는 것이 어쩐지 찜찜해서. 더구나 하몬의 후계자라는데 저놈의 실력도 보고 싶고 말이야."

"포니! 도대체 계집애가 생긴 것 답지 않게 항상 누굴 보면 싸움을 못해서 안달이니? 우리가 아무리 헬급 전사이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명분 없이 누굴 죽인 적이 있어? 아무튼 넌 찌그러져 있어!"

리아몬과 포니는 남매지간이었다. 이들이 이곳 팔마스탄 산맥으로 온 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고 이젠 아예 산 중턱의 어느 동굴 속에서 눌러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오늘 새벽부터 저 아래 마족 진영이 소란스럽자 이들 남매는 무심코 아래를 살펴 보게된 것이다. 어둠의 종족의 43만년이란 태고의 역사에서 헬급으로 기록된 전사는 단 7명 정도이다. 스스로를 헬급이라 칭하는 이들 남매에 비쳐진 리크의 전투실력은 그저 단순한 흥미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 졸려 워. 오빠 난 가서 잠이나 더 잘게."

"난 조금만 더 구경하고. 후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 하몬의 후계자란 인간이 저기 아미고스 산악 마족 언덕을 깨끗이 청소할텐데. 제법 성깔이 있군.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마족들을 모조리 살육하다니. 후. 뭐 원수라도 진일이 있나?"

잠시후 리아몬도 구경하기 지루한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해는 어느새 중천으로 떠올랐다. 케시어스는 아직도 늦잠을 자고있는 리크 방을 마구 두드렸다.

[탁! 탁!]

"리크. 일어나. 쳇. 새벽에 정찰 나간다더니 아직까지 자고 있어?"

"지..지금 일어났어. 나갈게."

"빨리 서둘러 푸삭 노인이 석굴 구경 시켜준대."

"어. 알았어. 옷 좀 입고 나갈게.."

케시어스가 리크의 방문 앞에서 나오려는 순간 뭔가를 발견하고 살펴보았다.

"흠. 문손잡이에 피가 묻어있네. 가만 여기 복도 지면 위에도 피묻은 발자국이 있는데 리크의 방문으로 이어져 있잖아."

케시어스는 갑자기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뭔가 생각을 하였다.

"혹시 리크가 새벽에.."

그때 방문을 열고 리크가 나왔다.

"하하. 상쾌한 아침.."

"상쾌한 아침이라고 지금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그나저나 너 새벽에 어디 갔다 왔어? 그리고 이 피 자국은 다 뭐야?"

"이따가 말해줄게. 그런데 푸샥 노인께서 석굴을 보여주신다고? 잘 됐다. 정말 궁금했는데."

"왜 갑자기 딴청이야. 리크 너 혹시 마족들을.."

".........."

"말이 없는 거 보니 진짜 너!"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나가자."

협곡 절벽 아래 조그만 동굴주위엔 사람들이 여러 모여있었다. 푸샥 노인과 리크, 케시어스는 보초를 서는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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