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86. 변신전
데스퍼라도(Desperado)
변신전(變身戰)
아라스킬 사령관은 꼭 잡은 케시어스의 손을 한참이나 놓지 안았다.
"케시어스..일단 여기에서 안정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아라스킬은 주변 참모진들을 바라보더니 뭐라 소리쳤다.
"비록 공중을 장악했던 마룡들이 없어졌지만 현 마족 지상군 또한 그 병력의 수가 우리보다 몇 배나 더 많으니 절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저들은 이미 성벽 에 긴 사다리를 대놓고 계속해서 올라오니 당장 그들을 막아야 한단 말이야."
그때 누군가 망루 석실로 안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사령관님 잠깐 밖의 상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밖의 상황을 살펴보라니?"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족 지상군의 병력들이 썰물이 빠지듯 전원 후퇴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비록 저들의 막강한 공중지원 세력인 마룡들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사실 그 어렵게 강을 도하(渡河)해서 적지 않은 희생까지 하며 겨우 성벽에 대형 사다리를 구축한 저들이 갑자기 후퇴라니?"
"저도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직접 나오셔서 상황을 보시는 것이.."
"그게 좋겠군."
아라스킬과 참모진들은 망루 석실 밖으로 나와서 성벽 아래 상황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기승을 부리며 무섭게 성벽을 기어오르던 마족들이 이미 강 저편 쪽으로 모두 후퇴를 하고있었다. 아라스킬과 참모진들은 저마다 이게 뭔 일인가 하고 강 건너편 들판에 위치한 마족의 본진을 이리저리 보았다.
"흠. 사실 마룡들이 우리에게 제압을 당했다고는 하나 수적으로 우세한 마족 지상군의 병력이 성벽에 겨우 사다리를 걸쳐놓고 너무나 쉽게 후퇴한다는 것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군. 후. 저 놈들이 무슨 꿍꿍이속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사령관님 저기 아래를 보십시오."
"이번엔 또 뭐야?"
"모든 마족 지상군들이 후방 평야로 후퇴한 뒤 단 세 명의 마족들이 이쪽 강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단 3명이라고? 도대체 뭐야?"
이쪽으로 다가오는 세 명의 마족들은 그 분위기가 참으로 묘했다. 사실 마족이라고는 하기에는 인간과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 명 모두는 뱀가죽 혹은 도마뱀 가죽에 푸르스름한 물을 들인 것 같은 긴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특히 세 명 모두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였지만 외모는 고작 10대 후반정도로밖에 안보였다. 마른 체격에 애 띤 모습의 인간형을 하고 있었지만 쫑긋 솟아난 귀와 그들의 붉게 충혈 된 눈에서 사악한 기운이 펄펄 솟아나니 분명 마족 임에는 틀림없었다. 길다란 성벽 위에 병사들는 도대체 그 많던 마족 지상군들이 일시에 후퇴를 하고 어디서 왜소한 몸집의 생전 처음 보는 마족 3명이 성벽아래 강가로 다가오자 저마다 웅성거렸다.
"뭐야 저놈들은..생김새가 흉측하게 생긴 일반 마족들에 비하면 제법 곱상하게 생겼는데."
"흠. 자신들이 철석같이 믿던 마룡들이 한번에 몰살당하자 휴전이라도 하러오는 걸까?"
"휴전은 무슨 휴전. 쳇 저놈들이 죽으면 죽었지 휴전 같은 협상을 할 족속들이냐? 아무튼 진짜 웃기는군. 세 명이 덜렁 나와서 뭘 어떡하자는 것인가?"
성벽 중앙 망루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라스킬 사령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입술마저 파르르 떨고 있었으니 참모진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아라스킬을 바라보았다.
"사령관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이..이제 끝났네."
"끝나다니요?"
"저 아래 그 생김새가 다른 마족들과는 다른 세 명의 마족들은 우리 상대가 아니야."
"사령관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단 세 명의 마족들이 이쪽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휴전 협상이라도 하러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 반대라네. 우릴 하몬디아 제국을 완전히 소멸시키러 오는 자들일세."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라스킬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짝 끼치는 느낌이랄까? 저들에게 풀풀 품어 나오는 거대한 에너지에서 살육의 냄새 나고 있었다.
마법력이 높은 여타 군단장들도 아라스킬 사령관과 같은 느낌이었는지 저마다 표정이 굳어져 있었고 심지어 두려움에 입술마저 덜덜 떠는 자도 있었다. 석실 안에 누워있던 케시어스 마저 무엇인가 강력한 기운에 가슴이 답답했는지 부상당한 몸을 겨우 일으키고 망루석실 밖으로 나와서 아라스킬 옆으로 다가갔다.
"사령관님 무엇인가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케시어스 안에서 쉬지 않고 왜 나왔소."
케시어스는 아라스킬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않은 체 도대체 자신이 느끼는 강력한 기운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살펴보다 무심코 성벽 아래 강가에 있는 세 명의 마족들을 발견했다.
"설마 저들이.."
"후. 맞소 저들에게 나오는 기운이오. 마법력이 제법 높은 우리 같은 지급들만 저들의 사악한 기운을 느낄 수 있죠. 이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소. 내 생각이 맞다면 저들은 마족의 고대살육전사들이 부활한 자들임이 틀림없소. 고대살육전사들이 나타난 이상 우린 더 이상의 희망이 없습니다."
케시어스 역시 아라스킬 사령관의 말뜻을 알고도 남았다. 고대문헌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사(戰爭史)를 보면 수많은 대 전쟁들 가운데 고대살육전사 몇 명에 의해서 그 전쟁의 승패가 좌우된 적이 수두룩하게 기록된 것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아라스킬과 케시어스 여타 군단장들은 말로만 듣던 마족의 고대살육전사들의 모습을 직접 보게된 것이다.
세 명의 마족들은 다름 아닌 7000년만에 부활한 중급계열의 고대살육전사들인 페아무리온 3형제였다. 그들은 동시에 강가에 몸을 숙여 물을 손바닥에 떠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첫째형 저들이 우리가 은근하게 흘려보낸 기운을 느꼈을까."
"후후. 아마 인간종족들 중 아마 지휘관급들은 우릴 알아봤겠지."
"헤헤. 그리고 지금쯤은 오줌을 질질 싸고 있을 테고..헤헤"
"암 그래 야지. 우릴 보고도 공포에 떨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겠지."
"흠 강가에 우리 마족들 시체가 널려있어서 그런지 물맛이 비릿한데."
"후후. 역시 동족의 피 맛보다는 인간들의 피 맛이 상쾌하지. 자 그러니 이제 그만 여유부리고 슬슬 시작해볼까? 간만에 피의 향연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암 두말하면 잔소리. 그나저나 막내야 오랜만에 네가 한번 물의 힘을 써보거라. 그렇지 않아도 하루종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니 좀 덥구나."
"알았어. 그럼."
순간 페아무리온 형제들 중 셋째로 보이는 자가 허리를 굽혀 강물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강물 수면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강물 여기 저기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더니 잠시후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이를 바라보던 성벽의 인간 병사들은 저마다 방패로 무장한 체 그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속수무책 구경만 해야했다. 아라스킬은 전군에게 방어형태를 지시했고 각 수호전사들과 군단장들에게 마법 방어막을 형성하게 하였다. 푸르스름한 빛이 성벽주위에 감돌기 시작했으니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한 듯 싶었다. 하지만 이미 솟구쳐 오른 거대한 물기둥이 회오리를 치며 중앙망루 쪽으로 다가가더니 성벽에 부딪쳤다.
[쾅! 우르르르.]
맹렬하게 회전하는 물기둥의 높이는 성벽의 높이보다 몇 배 더 컸으며 한순간에 성벽 한군데를 통 체로 박살냈다.
[악!]
[헉!]
수많은 병사들이 무너지는 성벽과 함께 강 아래로 떨어졌으며 수호전사들과 군단장들이 쳐 놓은 방어막도 거대한 물기둥 앞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보던 페아무리온 삼형제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마구 웃어되었다.
"킥킥킥"
"칵칵칵"
"첫째형! 인간 놈들이 쳐놓은 방어막을 뚫고 성벽을 박살 내는 것 보았지."
"흠 막내의 물의 힘이 아직은 쓸만하군."
"쓸만하다니. 이제 본격적으로 보여줄게. 단 한번에 중앙 망루의 상당부분을 날려버릴 테니 잘 지켜보라고!"
"막내야! 너만 재미 볼 테냐? 우리 것도 좀 남겨줘라."
잠시후 페아무리온 막내는 이번엔 아예 두 손을 강물에 처박고 뭐라 주문을 큰소리로 외쳐되었다. 그러자 강 수면에는 아까 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몇 십 배나 더 큰 물기둥이 다시 형성되었다.
[슈슈슈슈]
성벽 위에 모든 인간 병사들은 믿을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물기둥을 보고는 저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아라스킬과 케시어스 역시 이번에는 엄청난 파괴가 날 것이라 예상했지만 도저히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저 물기둥을 막을 능력이 없다는 것에 개탄하는 심정이었다.
"이번 건 도저히..이..이젠 희망이..아. 하몬디아 제국이여. 결국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아라스킬이 한탄하자 케시어스 역시 눈을 질금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 역시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죽기 전 하늘을 보고싶었던 모양이다. 순간 저 하늘에서 정체 모를 존재들이 맹렬하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케시어스는
무심코 그들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크님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다니..아..저건 환상일거야. 리크님이 이런 곳에 나타날 리가 없겠지. 후후. 환상이라도 마지막에 리크님을 보았으니 이젠 소원이 없어. 리크님 부디 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몬의 후계자시여.."
케시어스는 조금 전 본 리크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저 환상이려니 하고 다시 눈을 지긋이 감았다.
[쉭!]
허공에서 파공 소리가 들리니 케시어스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뭐지..뭔가 성벽 아래로 지나간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조금전 본 것이 환상이 아니라 실재인가? 정말 리크님이 오시기라도 했나.."
거대한 물기둥이 성벽을 덮치려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성벽 전체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횐 빛의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물기둥은 횐 빛의 방어막과 부딪치더니 거대한 굉음소리를 냈다.
[콰광!]
[칵!]
그때였다. 성벽이 여지없이 박살날것이라 예상했지만 정작 비명을 지른 사람은 저 아래 물기둥을 만들어낸 페아무리온 3 형제 중 막내였다. 그는 피까지 토하며 바닥에 털석 고꾸라졌다. 이에 경악한 페아무리온 첫째와 둘째가 막내를 부축였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지?"
"막내가 만들어낸 물기둥이 갑자기 나타난 횐 빛의 막과 충돌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어. 도대체 어떤 새끼가 장난을 친거야! 감히 우리 고대살육전사들에게.."
그때 페아무리온 형제들 앞에 [팟]하고 세명의 인형(人形) 나타났다.
"뭐야..너희들은.."
페아무리온 형제들 앞에 나타난 자들 중 왼쪽에는 푸른 망토를 걸친 자가 고개를 삐딱하게 든 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오른편에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검은 전투복 차림으로서 어둠의 검을 등뒤에 찬 자가 팔짱을 끼고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품어대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연한 하늘빛 금속성 전투복 차림의 젊은 청년이었고 그는 거의 무심(無心)에 가까운 표정으로 페아무리온 형제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검은 전투복 차림의 사내가 뭐라 말문을 열었다.
"기류를 보니 고작 중급계열의 핫바리 고대살육전사들 같은데. 뭐 우리가 나설 것도 없이 리크 혼자서 상대해도 충분하겠군. 젠장 오랜만에 대살육전사를 만나나 했더니만 재수 없게.."
"네..네놈들의 정체가 뭐냐?"
"뒈질 새끼가 알아서 뭐하겠냐? 젠장. 아무튼 리크야 처음 보는 사냥감들이라 좀 데리고 놀다가 죽여버리던지 아니면 즉사를 시키던지 네 마음대로 하거라."
성벽 위에서 이를 바라보던 케시어스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런 꿈같은 일이..리크님이..드디어.."
아라스킬은 케시어스가 흥분된 얼굴로 눈물까지 보이며 리크라 말하자 뭐라 물어보았다.
"리크라면 설마.."
"드디어 우리 인간종족에게도 진정한 전사가 출현했어요."
"혹시 하몬의 후계자.."
"맞습니다. 저 아래 연한 하늘색 금속 전투복 차림의 사람이 하몬의 후계자입니다."
케시어스의 하몬의 후계자란 말에 아라스킬은 물론 주변 참모진과 군단장들마저 경악을 하였다. 하몬의 후계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성벽 위에 있던 모든 병사들에게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과연 저 아래 젊은 청년이 진정 하몬의 후계자인지 저마다 웅성거리며 성벽으로 몰려들었다.
"뭐야. 진짜 하몬의 후계자께서 나타난 거야.."
"이럴 수가..그렇다면 하몬의 후계자의 도래설이 그저 전설이 아닌 실재로 일어났단 말이야? 우리 인간에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아! 신(神) 아직 우리 인간종족을 저리지 않으셨군. 오 감사합니다."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진짜 하몬의 전사라면 저 고대살육전사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어야하는데.."
성벽 아래 리크는 현재 갈비아스 파동검술의 제5공격 형태의 방어 전투복 변신(變身)을 한 상태이고 조금 전 거대한 물기둥을 막아낸 것은 바로 제5공격의 횐 빛의 방어 기술이었다. 이제 리크는 자신의 손을 가슴에 대더니 또 다른 변신(變身)을 시도하고 있었다.
[착! 착! 착!]
순식간에 리크가 갈비아스 파동검술 제 6공격의 공격 전투복 변신(變身)으로 바뀌니 바로 앞에서 이를 지켜보던 페아무리온 형제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