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85)화 (85/157)

[데스퍼라도] 85. 변신전

데스퍼라도(Desperado)

변신전(變身戰)

그 성벽의 길이는 약 2 km에 달하고 높이 또한 100M에 달했다. 바로 아래에는 강이 흐르는 거대한 요새였다. 이곳이 무너지면 바로 하몬디아 제국 전체가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곳은 한마디로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었다. 곳곳의 모든 병력이 자신들의 성과 요새를 버리고 이곳으로 집결하여 하몬디아 제국의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있었다. 무려 25개 군단이 성벽 위에 새까맣게 포진하 체 필사적으로 마족들을 막고있지만 이번만큼은 공중을 장악한 마룡(魔龍)들 때문에 한순간 요새가 함락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마룡들의 공중공격보다도 당장에 거대한 해일처럼 성벽을 넘어서 밀려오는 마족 군단을 막지 못하면 이미 이 전쟁의 대세(大勢)는 기울어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종족에게도 마지막 히든카드가 있었다. 그건 바로 25개 군단의 각 최고 지휘관들이었다. 수십만년 동안 전쟁으로 점철된 사계(四界)의 군 지휘 계통은 어느 종족이던지 능력위주로 그 서열이 가려졌다. 인간종족 역시 상급계열의 전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군단장들이었다. 페몬 수호전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투 실력과 용맹함을 갖고 있는 일당백의 전사출신들인 군단장들이 현 시점에서 마지막 히든카드로 작용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할수 있었다. 물론 현재 총사령관의 위치에 있는 하몬디아 제국의 명장 아라스킬이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는바 아니었다. 그는 지금 닥친 절대절명의 순간에 드디어 각 군단장을 소집했다.

"각 군단장들은 잘 들으시오. 저 하늘에 새까맣게 몰려있는 마룡들을 제압 못한다면 이 전쟁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저들이 뿜어대는 죽음의 액체들이 마구 뿌려지니 성벽의 모든 병사들이 방패 안에서 몸을 사리기에 급급하니 지상 마족군이 성벽을 넘어와도 속수무책(束手無策) 당하고만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군단장들의 임무는 공중에 떠있는 마룡들을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제압하는 것이요. 만약 마룡들을 없앤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마룡은 수천 마리이고 우린 군단장들은 고작 25명인데 어떻게 그들을.."

그때 케시어스 군단장이 뭐라 소리 질렀다.

"지금은 그런 질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은 각자 능력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요."

케시어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망루 중앙 초소 석지붕 위로 올라갔고 자신의 검을 뽑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시여. 그대의 힘을 보여 주십시오.!"

그녀는 검을 마룡들에게 향하고 자신의 비전절기인 천애검법(天愛劍法)을 시전 했다. 순간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먹구름이 일었고 천둥 번개가 쳤다. 마룡들은 때아닌 기후변화에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고 먹구름이 몰려있자 저마다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 순간 먹구름 중앙에서 섬광이 일어나고 가느다란 뇌전(雷電)이 하늘 곳곳에서 보였다.

[치직!]

[크억!]

녹색 액체를 지상에서 뿜어대는 마룡들이 움찔했으며 저마다 벼락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미친 듯이 허공을 헤집고 다녔다. 사실 뇌전의 위력은 마룡들에게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몸체 한 부분 정도에는 상처를 입혔다. 벼락을 맞은 마룡(魔龍)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누가 이런 전투기술들을 펼쳐 보이는 성벽망루를 살펴보았다.

"크크크. 젠장 아파 뒈지겠네. 인간종족 중 누가 감히 하늘을 기운을 빌리는 전투기술을 쓰는거지?"

"저기 망루 지붕 위에 있는 계집애 보이지?"

"뭐야! 저 계집이 벼락을 치는 거야. 빌어먹을 일단 저 년부터 죽여버리자고!"

마룡들 중 누군가 외치자 단번에 거대한 마룡 무리가 케시어스에게 돌진하였다. 케시어스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마룡들을 보자 이미 체념한 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내 능력으로 더 이상 무리야.'

그때 망루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라스킬이 뭐라 외쳤다.

"전군에 명한다. 현재 마룡들이 녹색 액체 공격을 멈추고 이리로 몰려오니 전부 방패를 걷어 치고 성벽을 올라오는 지상 마족군을 저지하라! 그리고 각 군단장들은 준비하시오 아니 모든 페몬 수호전사들도 이쪽 망루중앙으로 집결하시오 우린 힘을 한데 모아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각자 마룡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방패로 가리시오."

"갑자기 방패로 모습을 가리다니요"

"이건 명령이오. 시간이 없으니.."

"알..알겠습니다."

각 군단장들과 쏜살같이 모여든 페몬 수호전사들은 아라스킬 말대로 망루 지붕 아래 저마다 거대한 방패로 몸을 가렸다. 중앙 망루 전투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케시어스의 천애검법(天愛劍法)이 비록 마룡들에게 그다지 타격을 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룡들을 자극시키므로 그들이 이쪽 중앙 망루로 유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였던가? 아라스킬 사령관이 절실히 원했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룡들은 사정거리를 벗어난 하늘높이에서 죽의 액체를 뿌려되었지만 워낙 성질들이 격한 그들인지라 자신들에게 감히 벼락 공격을 한 케시어스를 죽여버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한마디로 아라스킬은 케시어스를 미끼로 그들이 다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혹시라도 마룡들이 이곳 중앙 망루에 군단장들과 페몬 수호전사들이 집결된 것을 보고 다시 저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지나 않을까 하고는 전부 방패를 사용하여 모습을 감추라고 한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케시어스만이 덜렁 혼자 망루 석지붕 위에서 미끼 신세가 되어있었다. 아라스킬은 저 위에 죽음을 앞두고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고 있는 케시어스를 보며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아! 케시어스..진정 내가 흠모하던 여인의 목숨을 담보로 이런 짓을 해야만 하나. 하..하지만

지금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바로 하몬디아 제국이 멸망하느냐 안하느냐에는 이번 한번의 공격에 달려있다. 제발 케시어스여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망루 아래 각자의 방패 안에 숨어있던 군단장들과 페몬 수호전사들도 아라스킬 사령관의 의도를 알았는지 저마다 자신들의 비전절기들의 최고 에너지를 끌어 모으고 있었다. 즉 그들은 마룡들이 최대한 접근했을 때 일시에 마법공격을 한다는 이번 작전에 서로 비장한 눈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맨 선두에 있던 마룡이 망루로 오자마자 액체를 뿜었다. 순간 케시어스 왼쪽 갑옷이 녹기 시작했다. 이번엔 다른 마룡이 공격을 하였다. 그녀의 오른쪽 바스트 전투복에 녹색 액체가 튀면서 얼굴에도 소량의 액체가 묻었다.

[치지직!]

[악!]

그 순간 밑에서 숨어있던 군단장들과 페몬 수호전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케시어스 군단장을 죽일 참인가? 이쯤에서 우리가 나서야 되는 거 아닌가."

"젠장. 아무리 상황이 긴박해도 그렇지 아라스킬 사령관이 케시어스 군단장을 미끼로 쓸 줄이야."

"젠장 저러다가 죽겠어. 빨리 공격명령을 하시오!"

아라스킬 역시 저 위에서 전투복과 심지어 한쪽 뺨이 타들어 가는 케시어스를 보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처절한 심정을 느꼈다. 하지만 후방의 마룡들은 아직 사정거리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그로서는 아직 명령을 내릴 입장이 아니었다.

'제발. 조금만 더 참아주시오. 그리고 살아만 주시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내 평생 그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받칠 테니..'

망루 석지붕 위에 있던 케시어스는 자신의 한쪽 뺨이 타들어 가는 줄 알면서도 자세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총명한 그녀가 현재 아라스킬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미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할 참이었다.

맨 앞에서 액체를 쏟아냈던 마룡 역시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케시어스가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자 불끈했다.

"뭐야. 저 계집애가 아직도 서있잖아. 독한 년 같으니라고. 좋아 이번엔 아주 녹여주마. 모두 이리로 오라고! 저 계집애에게 동시에 공격하자!"

순간 후방에 있던 마룡들도 앞쪽으로 날아왔다. 그때 마룡들은 분명 이곳이 중앙 망루일텐데 왜 인간종족의 상급전사들이 안 보이는지 의아해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분명 아까만 하더라도 이 곳에 번쩍거리던 복장으로 보아 아마 상급전사들이 모여있던 작전 지휘부 같은데 지금은 방패로 가린 일반병사들밖에 없는 것 같으니. 뭔가 이상해 빨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을 텐데."

"젠장 누가 있다고 그래. 아마 높은 놈들은 지들 목숨 구하려고 전부 도망갔겠지. 그나저나 저 재수 없는 계집은 죽이고 가야지. 다들 앞쪽으로 나와서 한번에 녹여버리자."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마룡들은 저마다 목줄기에 힘을 주어 녹색액체를 뿌릴 준비를 하였다. 그때였다. 드디어 아라스킬 사령관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전원공격!!"

그 순간 망루 아래 몸을 숨긴 군단장들과 페몬 수호전사들이 방패를 걷어차고 자신들만의 최대의 비전절기를 동시에 시전 했다.

[팍 슛]

[쾅..우르르]

[크억!]

[컥!]

중앙망루에는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거대한 섬광이 터졌다. 그 섬광이 어찌나 컸던지 한참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수십만의 인간종족이고 마족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25명의 군단장들과 수많은 페몬 수호전사가 동시에 연출한 마법공격의 형태는 가히 예술적 승화로까지 보였다.

저 멀리 이를 지켜보던 현재 마족의 최고 서열자인 고대부활전사 페아무리온 3형제조차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형 웬 섬광이지?"

"보면 몰라? 병신 같은 놈들 한마디로 깨끗이 당했군."

"당하다니?"

"아무튼 저 새끼들이 아무리 하급계열이라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부활전사라는 것이 창피하군."

"우린 그래도 중급계열인데 저 놈들과 비교하는 것은.."

"세째야..잘 보아두라고 인간종족들이 비록 개개인으로 우리 마족들에 비해서 전투실력이 낮지만 바로 저게 그들만의 무서운 응집력이란 말이지. 어떻게 보면 이 사계(四界)에서 가장 무섭고 독한 놈들이 인간 놈들일 수도 있어."

"쳇. 저건 마룡들이 멍청해서 당한 것 같은데."

"뭐 그런 것도 있겠지. 그나저나 결국 우리가 나서야할 차례군. 후후. 저들은 아마 군단장을 비롯해 페몬 수호전사까지 온갖 힘을 끌어 모았으니 지쳐있을 테고 우리 고대부활전사가 이쯤에서 나선다면 기절초풍하겠지. 하하하."

"모조리 죽여버리자."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많던 마룡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더 이상 공중에 보이지 않았다. 청명한 푸른 하늘만이 있었을 뿐이다. 공중지원이 없어진 마족들이 당황하자 순식간에 전세는 역전이 되었다. 이제는 모든 병력들이 방패를 걷어치우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마족들을 무참히 살육하기 시작했다. 각 수호전사들과 군단장들 역시 직급에 관계없이 저마다 한마음이 되어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라스킬은 석지붕에 쓰러져있던 케시어스를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갑자기 흐느꼈다. 그녀의 한쪽 뺨이 녹색 액체에 흉하게 타들어 갔다. 다행히 생명(生命)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몬디아 제국의 명장이자 영웅이라는 칭호를 듣는 아라스킬은 자신을 호위하는 주변 참모진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자신의 어루만지며 연신 흐느꼈다.

"흑..케..케시어스..정말 미안하오. 진정..내가 그대에게 못할 짓을 했구려..정말 미안하오.."

케시어스는 아직 의식이 있었는지 나지막한 소리로 뭐라 말문을 열었다.

"저.. 제 얼굴 많이 보기 흉한가요.."

순간 그녀를 지켜보던 아라스킬과 주변 사람들은 비통한 표정만을 지을 뿐 그 누구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케시어스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후. 아무 말씀들이 없으시니 생각보다 많이 보기 흉한가보지요. 그나저나 전세는 어떻게 되었지요?"

아라스킬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케시어스 그대가 하몬디아 제국을 구했소."

케시어스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눈물을 주루륵 흘렸다.

"정말 다행이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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