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78. 새로운 만남
데스퍼라도(Desperado)
새로운 만남
리크가 캐시어스 3군단에 소속되어 카밀로스탄 대륙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세아린은 가스톤을 따라서 이곳 대륙에 먼저 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캐시어스 3군단의 목적지가 있는 하몬디아 제국이 있는 남쪽 지방 어느 해변가에 어둠의 종족 전사들 역시 헬폰소 전사 가스톤의 사사를 받으려 이곳에 있었다. 세아린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의 젊은 전사들은 칼폰소 계열의 전사들이였다.
어둠의 종족은 인간종족의 군대와는 다른 체계를 갖고 있었고 인간과 마족에 비해서 그 숫자가 훨씬 낮았지만 전사들 개개인의 전투능력은 타 종족에 비해서 타의 추종을 부를 만큼 강력했다.
총 6개 등급으로 나뉘어진 전사계열은 다음과 같았다.
헬 (고대 대살육 전사)
헬시 (대살육 전사)
헬폰소 (초월 전사)
칼 (상급전사)
칼시 (중급전사)
칼폰소 (하급전사)
어둠의 종족 하급전사들인 칼폰소들의 전투능력이 인간 종족의 상급전사 페몬 전사들에 버금 가니 이들의 능력은 인간과 마족을 능가했다. 하지만 어둠의 종족의 오랜 전통은 바로 한 부부가 평생 한 자식만을 얻을 수 있기에 그 숫자가 타종족보다 턱없이 낮았다. 어둠의 종족이란 본래 지하세계 사람들을 다른 말로 부르는 명칭이었다. 이들은 수십 만 년 동안 지하에서 생활했고 그 영역의 한계성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지 않도록 한 가족 당 한 사람의 자식만 얻을 수 있는 강력한 법을 오래 전에 제정하였던 것이다.
프리아고란 태양이 저 깊숙한 지하세계에 존재하고 환하게 비쳐주므로 사실 이들은 타종족들이 생각하던 대로 어둠 속에서 생활하지는 않았다. 그저 땅 밑에서 생활하는 종족이란 선입견 때문에 어둠의 종족이란 불렸다. 이들은 지상에서 나누어진 수백개 대륙과는 달리 저 깊숙한 땅속에서 하나만의 영역에서 공동체 생활을 이루고 있었다. 프리아고 태양은 그 자체가 영묘한 에너지를 담고 있기에 어둠의 종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초인적인 힘을 갖았다.
사계(四界)의 시작되던 430000년 전부터 땅 밑에서 여러 시대를 거쳐왔던 어둠의 종족들은 긴 역사 속에서 그들만의 세력 다툼으로 피를 뿌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태고의 어둠 종족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온순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한정된 영역에서 지상으로의 영토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어둠의 종족 내부에서는 지상으로 올라가 타 종족들을 침략하고 영토를 넓히자는 호전적 세력과 절대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온건적 세력간에 갈등이 생겼다. 그런 갈등의 역사적 반복이 수 차례 발생하면서 양 세력간에는 적지 않게 피를 흘려야만 했었다. 결국 지금으로부터 6만년 전 어둠의 종족의 호전적 세력이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면서 지상으로 그들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때때로 인간들과 마족들에게 대살육의 공포를 안겨주었고 만일 이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전 대륙을 얼마든지 통일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또한 두려워하는 종족이 있었으니 바로 천상인(天上人)들이었다. 수만년 전 어둠의 종족들이 지상으로 대거 군대를 파병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천상인(天上人)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전멸을 당할 뻔한 적이 있기에 이후로는 지상 대규모 공격을 자제하였다. 이후 어둠의 종족은 수만년전 천상인(天上人)들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을 거울삼아 스스로 뼈를 가는 고통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키워왔고 급기야는 태고 전사들을 부활시켰다.
하급계열 칼폰소, 중급계열 칼시, 상급계열 칼 전사들은 기존 체계로서 이들을 초월하는 헬급 전사들을 양성하기에 이른다. 결국 초급 전사 헬폰소, 대살육 전사 헬시, 태고 대살육 전사들인 헬 등이 출현하면서 어둠의 종족은 지상의 패권을 잡으려는 욕망이 분출했다. 이젠 강력한 초월 전사들을 보유하게 된 그들은 더 이상 천상인(天上人)들이 두렵지 않았고 서서히 인간들과 마족들이 대립하는 각 대륙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리크와 같이 있는 슬레이어는 헬시급 전사이고 세아린의 스승 가스톤은 헬폰소급 전사로서 그 둘은 어둠의 종족 출신으로서 초월적 능력들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카밀로스탄 남쪽 지방 어느 해안가에 위치한 바위 동굴에서는 헬폰소급 전사인 가스톤이 천부적인 능력을 갖고 태어난 12명의 젊은이들을 선택하여 현재 수련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들 중 세아린 만이 유일한 인간 종족이었다. 가스톤은 그 옛날 하몬에 의하여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바로 그의 딸 세아린을 제자로 거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스승 가스톤이 하필 인간종족인 여자아이를 데려다가 어둠의 종족의 비전절기들을 가르치려 하는지 내심 불만들이 많았다. 이에 매일 그들에게 당하는 것은 세아린이었고 그녀는 요즘 들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특히 인간을 저 아래 하등동물로 비교하는 그들의 언행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오늘도 가스톤 스승이 도착하기 전 수련생들이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블로디우스 내가 웃긴 얘기 해줄까?"
"뭔 데? 리카도 이번에도 썰렁한 농담으로 시간만 낭비할 것 같은데. "
"하하. 이번엔 진짜 웃기는 거야. 잘 들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 인간이겠지."
"하하. 아냐. 바로 멍청이야."
"쳇. 별로 웃기지도 않는군. 그야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잖아."
그때 저편 구석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있던 세아린이 벌떡 일어나서 다가왔다. 세아린이 다가오자 히히덕 거리던 수련생들이 갑자기 겁을 먹는 시늉을 했다.
"헉! 드디어 오늘도 악녀께서 납셨군."
"맞아. 인가들이란 도대체 남녀 성별이 없나 봐. 분명 세아린은 여자인 것 같은데 남자보다도 더 드세니 말이야. 이거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
"흐흐. 확인이라. 그렇다면 어디부터 확인을 해봐야지."
"그야 뭐. 헤헤. 말하기 좀 거북스러운데."
평소 때 같았으면 당장 세아린이 노발대발하면서 성질을 냈을 텐데 오늘따라 조용했다. 수련생들은 세아린의 태도가 이상해서 그녀를 살펴보았다. 세아린은 그들에게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만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가스톤 스승이 뽑은 기재들이라. 호호. 어둠의 종족에서 그나마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들의 농담이 한낮 인간 여자를 상대로 성적 농담을 주고받는군. 이쯤에서 한번 자신들을 생각해보지. 훗날 어둠의 종족의 위대한 전사들이 될 네 놈들이 지금 하는 짓거리를 말이야."
"뭐야. 이 인간 계집애가 지금 감히 우리들에게 설교하는 거야? 건방지게."
그때 구석에서 지켜보던 케이사르가 뭐라 버럭 소리 질렀다.
"그만 해! 사실 세아린의 말이 틀린 것이 없잖아. 너희들의 지금 행동이 그저 한심한 시정잡배(市井雜輩)들이나 하는 행동과 무슨 차이가 있어? 우린 전사 수업을 받고 있는 군인이고 훗날 세아린의 말대로 위대한 전사 혹은 여러 부하들을 거느릴 지휘관 이 될 사람들인데 고작 누구하나 놓고 모욕을 주는 언행은 삼가는 것이 좋을 텐데."
"후 이게 누구 신가? 그렇지 않아도 인간 계집애랑 요즘 눈이 맞아 몰래 연애하는 것 같은데. 케이사르 너 나 정신차려 임마. 우린 비록 농담이나 주고받고는 있지만 그 대상이 인간이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린 그렇다 치고 농담거리도 안돼는 인간을 좋아하는 네 놈은 어떤 놈이냐? 네가 요즘 뛰어난 전투실력으로 가스톤 스승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냐?"
"맞아. 저 자식 요즘 따라 우리와 어울리는 것도 싫은지 아예 딴 데 가서 혼자 수련하더라고. 젠장 진짜 수련하는 건지 아니면 인간 계집애랑 연애하는 건지는 확인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
갑자기 케이사르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벌떡 일어났다.
"고작 표현하는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돼나? 명색이 어둠 전사의 수련을 쌓는 너희들이 과연 나중에 떳떳하게 국가를 위해 싸울 자격이나 있는 놈들인가?"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감히 눈깔을 치켜들고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오늘은 저 건방진 케이사르를 혼내 주자."
"맞아 평소에도 혼자만 잘난 척하는 재수 없는 놈이었어."
"이 왕이면 세아린도 혼내주자고. 저 계집애 성질도 오늘 아예 죽여버리자."
그 순간 수련생들은 케이사르와 세아린을 둘러쌓았다. 케이사르는 혹이라도 세아린이 다칠까봐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않았다. 세아린은 케이사르의 손을 뿌리치더니 뭐라 소리 질렀다.
"케이사르 아무리 상황이 위급해도 감히 내 몸을 만지는 것은 안 돼!!"
"난 그저."
"그나저나 이 새끼들을 어떻게 죽여줄까. 빌어먹을 시정잡배 같은 놈들."
그때 케이사르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세아린. 넌 그저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너 미쳤어. 너 혼자서 어떻게 10을 상대 해."
"나를 믿어."
"뭘 믿어?"
"글세 믿으라니까?"
이를 지켜보던 수련생들은 어이가 없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말 못 말리는 년 놈들이군.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그 새를 못 참고 연애를 하니."
"팟! 팟!"
파공 소리와 함께 수련생들의 각자 손목에 찬 팔찌가 날카로운 무기로 형성되었다. 팔찌나 목걸이 반지 입고있는 옷과 장갑 신발 등이 기묘한 형태로 변신되는 것은 어둠의 종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자 절기들이었다. 케이사르는 자신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조그만 반지가 분열을 하듯 여러 개 생겨나더니 오른팔 전체를 금속의 보호대로 감 쌓았고 손등에는 약 1M 길이의 날카로운 세 개의 검이 솟아나 있었다. 구 순간 수련생들이 경악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헉. 저놈이 반지를 사용하다니?"
"저건 가스톤 스승이 가르쳐 주지도 않은 기술인데."
"우린 고작 팔지 하나가지고 벌써 일년을 수련했건만 아직 팔찌의 12가지 절기들 중 그 절반도 터득 못했잖아."
"젠장 가스톤 스승이 저놈만 몰래 가르쳐준 거 아니야?"
케이사르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 피식 웃엇다.
"후후. 매일 하라는 수련은 안하고 놀 궁리들 아니면 세아린 괴롭히느라 수련할 틈이나 있었나?"
"저 새끼가. 안되겠어 한번 공격하자!"
"에잇!"
"슉슉슉"
"파! 파! 팟!"
"악!"
"헉!"
"욱!"
10명의 수련생들 팔찌에서 만들어진 검들이 360에서 동시 다발성으로 들어오자 케이사르가가 가운데 세아린을 보호하면서 그녀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나 빠른지 그 형체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알아보기 힘들었다. 잠시후 믿기 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으니 케이사르는 한순간에 10 명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들의 팔찌마저 전부 두 동강으로 냈던 것이다. 케이사르가 뭘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본 사람이 없었고 단 한번 회오리바람이 몰아친 것 같았으니 세아린 마저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때 동굴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그는 바로 가스톤이었다.
"허. 이놈들이 하라는 수련은 안하고 싸움질을 하다니."
"스승님.."
"스승님이다."
"그래 나다 이놈들아. 그런데 이게 뭐냐?"
가스톤은 바닥에 두 동강이가 난 10개의 은색 팔찌를 보고는 무척 놀라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는 팔찌를 한씩 집어서 절단 부위를 면밀히 관찰했다.
"에고 아까운 팔찌들..그런데 10개의 팔찌들이 같은 무기에 의해서 똑같은 검법으로 절단되었으니 분명 10명이 한 놈을 상대로 덤볐다는 것인데."
가스톤은 시선을 케이사르에게 돌렸다.
"팔찌를 절단 낸 놈이 분명 케이사르겠군."
"스승님.."
"반지의 기본검술을 사용한 것 같은데 이만하면 제법 실력이 그런 대로 향상되었군."
그때 가스톤이 세아린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살펴보았다.
"후. 세아린 너 어디 다친 데는 없지."
"뭐 에요. 징그럽게 쳐다보기는.."
"허허. 성질머리가 그대로 있으니 어디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군."
이번엔 가스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수련생들에게 다가갔다.
"쯧쯧 정말 실망이군. 자네들 분명 기재라 불리던 젊은이들이었는데 내 밑으로 들어와서 오히려 전투실력들이 퇴보하는 것 같으니 이거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군. 내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자네들 수련 태도나 행동거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 참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겠군. 이후로 너희들 10명은 짐을 싸서 당장 지하세계로 내려가거라."
"네?"
"스승님."
"어떻게."
"난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란 것을 너희들이 잘 알고 있을 게야."
가스톤은 괴로운 표정을 짓고는 동굴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때 누구보다도 당황한 것은 케이사르였고 그는 동굴 밖으로 나가는 가스톤 스승의 팔을 붙잡았다.
"스승님. 저들을 용서하세요. 제가 싸움만 안 했어도."
수련생들도 모두 무릎을 끓더니 동시에 뭐라 외쳐대기 시작했다.
"용서하세요!"
"제발.."
"스승님."
가스톤은 이들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사르 팔을 뿌리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잠시 후에 다시 들어오겠다. 그때까지 너희들 10명이 내 눈에 보인다면 진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가스톤이 나가 버리자 동굴 안의 수련생들 모두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끝이야."
"무슨 면목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후. 부모님은 헬폰소 전사이신 가스톤 스승님에게 사사 받는 것을 온 마을 알리고 다니실 정도로 기뻐 하셨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가스톤 스승님이 다시 받아 주시지 않으면 난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어 버리겠어."
케이사르와 세아린을 제외한 나머지 수련생들은 자신들이 스승님의 눈밖에 났다는 사실에 아직도 실감이 가지 않았는지 저마다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체 주저앉아 있었다. 잠시후 케이사르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수련생들 중에는 흐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조금 전 가스톤 스승의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리였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저녁때가 되자 가스톤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놈들이 아직도 짐을 쌓지 않고 있다니. 나는 두말하지 않는다고 경고를 이미 했건만. 자. 이제부터는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너희들이 선택한 것이니 나와 자네들의 인연이 이렇게 악연으로 끝나다니. 허.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게 또다시 힘든 결정을 하게 하시다니."
가스톤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았고 다시 눈을 번쩍 뜨더니 살기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가스톤이 차고 있던 반지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한순간에 전투복 차림으로 변한 가스톤 다시 반지를 낀 손가락을 팅 기며 검을 하나 형상화 시켰다. 그 순간 케이사르가 경악을 하면서 가스톤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분명 케이사르는 헬로폰 전사들의 매정하리만큼 잔인한 법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케이사르의 아버지가 헬로폰 전사 출신이었고 그들의 세계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어왔기 때문인가. 지금 상황에서 가스톤 스승이 전투차림으로 변했다는 것은 저들의 목숨을 거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미우나 고우나 자기 친구들이 죽게 생겼으니 케이사르는 무작정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스톤은 케이사르를 발로 걷어차고는 저기 바닥에 무릎을 끓고 있는 수련생들에게 다가갔다. 수련생들 역시 죽기를 각오했는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차라리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심정들이었다. 가스톤의 검이 허공으로 올랐고 잠시후면 10명의 시신들이 차가운 동굴 바닥에 놓일 순간이었다.
"안돼요!"
그 순간 세아린이 단검을 뽑아 자신의 목에다 들이 되었다.
"만약 이들을 죽인다면 저도 이 자리에서 목을 찔러 죽어버리겠어요."
가스톤은 세아린의 행동에 움찔했다.
"저리 비켜라."
"못 비켜요!!"
"너도 죽고 싶은 게냐."
"쳇 그까짓 주는 뭐가 두렵다고. 아무튼 스승이 제자들을 죽이려 하다니 정말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에요. 이건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되었어요."
"내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저들은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거지. 그러니 비켜라."
"세상에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괜한 짓 말고 저리 물러서라!"
"괜한 짓이라고요. 나도 한다면 하는 성질 모르세요?"
세아린은 날카로운 단검의 끝 날을 자신의 목에다 대었다. 그러자 검 끝이 살 거죽을 파고 들어갔고 이내 선혈이 세아린의 목 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가스톤 스승님이 검을 지금 거두지 않는다면 그냥 죽어버리겠어요."
"세아린 제발 그러지 말아라. 네가 자해할 필요가 없잖니. 보아하니 평소에 저 놈들과 별 사이도 좋지 않았는데 목숨까지 걸 필요 있느냐?"
"고작 스승이란 분이 하는 소리가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나요? 평소 사이가 나쁘다고 죽기를 바란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지금은 분명 스승님의 행동은 옳지 않아요. 그런 극단적인 방법 말고 얼마든지 좋은 방법이 많을 텐데 스승님은 귀찮다는 듯이 제자들 목숨을 한번에 앗아가려 하잖아요."
"더 이상 쓸데없는 행동하지 말고 저리 비켜라. 괜한 객기 부리지 말고."
세아린은 순간 눈을 지긋이 감았다. 그리고는 허공에 리크의 얼굴을 다시 한번 그려보았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더니 단검에 힘을 주고 진짜 찌르려고 했다. 그 순간 가스톤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만해!! 너 진짜 미쳤어. 진짜 죽으려고 하다니. 젠장. 에잇 저 멍청한 놈들이 세아린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좋으련만. 허. 이것 참 어둠의 종족에서 기재들이라고 폼 잡던 놈들이 인간 종족의 여자만도 못하다니. 정말 말세로군 말세야. 아무튼 이번엔 세아린을 봐서라도 한번 용서해 주겠다만은 다음엔 절대 번 복이 없을 거야."
가스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이미 밤이 되어버린 하늘을 쳐다보더니 뭐라 중얼거렸다.
"후. 하몬 과연 자네 딸답군. 세아린에게서 자네의 영웅 기질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야."
가스톤은 다시 길을 걷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세상에 제자를 죽이는 스승이 어디 있겠냐? 내가 아무리 헬폰소 전사이지만 제자들을 죽일 만큼 모질지는 못하지. 단지 이번 일을 통해서 저 못난 놈들이 세아린을 더 이상 괴롭히는 일이 없다면 오늘 연기는 그런 대로 성공했다고 봐야지. 하하하."
동굴 안에서는 수련생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게 경멸했던 세아린의 목에서 피가 계속 흐르자 저마다 가방에서 지혈 약초를 꺼내 서로 치료해주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었다. 케이사르는 그들의 돌변한 행동을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휴. 천당과 지옥을 오갔군. 그나저나 이거 오늘부터 세아린의 경쟁자들 10명이 더 늘어나게 생겼군. 이거 좋아해야 할지 슬퍼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후후."
케이사르는 빙그레 미소를 짓 더는 그 역시 세아린에게 다가갔다.
"너희들 뭐야! 너희들 언제부터 세아린에게 관심 가졌다고 그래? 다들 비켜 세아린은 내가 직접 치료해 줄 테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