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61)화 (61/157)

[데스퍼라도] 61. 백의종군

데스퍼라도

백의종군(白衣從軍)

금새 일주일이 흘렀다. 하지만 리크와 세아린은 아직도 하늘을 나는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다소 의기소침(意氣銷沈)한 표정으로 가스톤을 기다렸다. 리크는 지난 일주일 동안 나름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무던히도 공중부양을 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무공(武功)이나 초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이 세계의 에너지와 하나가 되어 말 그대로 하늘에 오르려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하였던 것이다. 현재 리크는 지금까지 자신이 터득한 모든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사계(四界)의 에너지를 느끼려 했지만 아무런 기술 없이 무턱대고 공중에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세아린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일찍 포기하고 자기 방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드디어 가스톤이 일주일 되는 오늘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스톤의 지시로 리크와 세아린은 건물 앞마당으로 나왔고 이내 가스톤이 뭐라 말했다.

"이젠 하늘을 오를 수 있나?"

"..........."

리크와 세아린은 끌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을 못했다. 가스톤은 갑자기 팔짱을 끼더니만 다소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후. 이거 내가 너희들을 너무 과대평가(過大評價)했나. 쳇. 하긴 저 아래 휴론계인들에게 갑자기 사계(四界)기술을 요구했으니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되겠군."

가스톤은 다소 실망한 눈초리로 리크와 세아린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윽고 말문을 다시 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아무런 기술도 가르쳐주지 않고 무작정 하늘을 오르라는 말은 바로 사계(四界)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느껴보러 함이었다. 사실 이곳 존재들도 하늘을 나는 기술만큼은 극소수에 불과하지. 후후."

순간 리크와 세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난번에는 이곳 존재들 누구나 하늘을 날수 있다고 했잖아요."

"물론 그랬지.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날개 틀을 이용해 하늘을 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곳의 에너지에 편승(便乘)하는 고도의 기술로서 공중을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는 사람은극소수에 불과하지. 즉 아주 극강한 전투실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애초부터 우리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시킨 것이잖아요? 이곳에서도 최강의 전사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을 우리가 어떻게 일주일만에 할 수 있겠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난 사실 리크 자네를 테스트 해보기 위해서였네."

"테스트라니요?"

"지난번 내가 너를 처음 만나 전투를 벌였을 때 자네의 독특한 전투기술과 알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을 때 난 내심 경악을 했지. 또한 계곡에서 내가 줄을 흔들어 자네와 세아린을 계곡 아래로 추락시켰을 때 자넨 아주 기이한 기술로서 붉은 용의 형상을 하고 보란 듯이 상승을 한일들 정말 내겐 충격적인 모습이었지. 어둠전사인 나와 비등한 전투실력 그리고 하늘로 상승하는 기술 등에 난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네. 아무리 자네가 하몬의 후계자라지만 결국 휴론계인 아닌가. 그런 하위차원인이 어떻게 그런 기술을 펼칠 수 있는지 그리고 사계(四界)에서도 극강한 전사에 계열에 있는 이 가스톤과 비슷한 전투실력을 가졌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 결국 난 자네의 기술 원천을 연구했고 그 원류를 알 수가 있었지. 헌데 놀랍게도 자네의 기술은 저 이계(二界)에 속한 지구라는 행성의 고대전투기술이었고

또한 삼계(三界)의 초마법기술과 엘시온의 검술이 그 원류를 이루고 있더군."

가스톤은 갑자기 말하다 말고 자신의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문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어째서 저 아래 계(界)의 전투기술 소유자인 리크 네가 이곳 사계(四界)에서도 상위 클라스에 속하는 이 가스톤의 전투기술과 거의 대등한지 난 그게 궁금했지. 더구나 난 2000년전 하몬의 부탁으로 자네와 그의 딸을 제자로 거둘 것을 약속했지만 우습게도 자네 리크는 거의 내 전투실력을 능가하고 있단 말일세. 그래서 일주일전 자네를 한번 더 시험해 보기로 했지. 자네가 습득한 어떤 기술도 사용하지 말고 그저 하늘을 올라보라고. 역시 자넨 이곳 사계(四界)의 에너지의 개념보다는 이미 자네 몸 속에 뿌리 밖힌 독특한 전투기술이 자네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그리고 지구의 고대전투 기술이나 초마법과 엘시온의 검술 등 개별적으로 본다면 이곳 사계(四界) 전투 기술에 훨씬 못 미치지만 자넨 그것들을 하나로 융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로 만들었으니 그 위력이 나조차 추측이 안될 정도로 거대한 기류를 느낀다네. 정말 이상한 일이지. 성질이 다른 3개의 전투기술이 융합되다니. 그것도 자네 신체의 세포 하나 하나에 녹아들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리크 자네가 원하는 것 이상의 힘을 무한히 내뿜을 수 있단 결론이 나오네. 결국

서로 다른 에너지의 융합이 상상도 못하는 거대한 분열을 일으키는 원리라 생각하면 쉬울 걸세."

가스톤은 자신의 안목으로 리크를 정확하게 판단했다. 리크의 스승 아론이 그에게 초마법을 전수하기 위해 프아라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었고 목유성이 알려준 최상승의 내공심법인 천소상심결을 운용하던 중에 놀랍게도 이 두 에너지는 융합을 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단전에 녹아 흐른 프아라의 거대한 에너지가 리크의 온 몸 구석구석 세포까지 스며들었다. 이는 리크가 의지만 갖는다면 원하는 대로 폭팔 하듯이 끝없는 분열의 힘을 내뿜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지금 까지 리크가 보여준 전투실력은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한 것이다.

가스톤은 이를 정확히 파악하였고 아마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리크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문을 이어갔다.

"후. 난 결국 하몬의 후계자를 거둔다는 그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네. 대신 세아린은 하몬의 딸이고 그의 정기를 받은 아이이니 내 제자로 받아들일 순 있다네."

순간 리크가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뭐라 외쳤다.

"그..그렇다면 전 어떻게.."

"자넨 자네의 길을 찾게나. 어차피 하몬의 검이 선택한자이니. 분명 이 사계(四界)의 수백개

대륙의 희망이 될 걸세. 또한 자네의 의지를 개발한다면 상상도 못할 융합된 에너지를 무한한 초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네. 그것만큼은 그 누구도 감히 스승이 될 수 없지. 오직 자네 자신만이 스승이요 또한 수행자로서 그 양쪽 역할을 해야만 하네."

리크는 갑자기 땅바닥에 털석 앉았다. 그리고는 다소 혼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가스톤이 리크 등뒤로 다가오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리크 기운 내게. 내가 자네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자네의 무한한 잠재능력이 나를 거부한다네. 후. 나 역시 하몬의 후계자를 가르친다는 즐거움으로 살아왔건만 이토록 거대한 자가 내 앞에 나타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지. 아무튼 자네의 스승은 못되어도 내 앞으로 리크 자네의 일정에는 참견 좀 해야겠네."

"일정이라니요?"

"경험을 쌓게나. 일단 이곳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이곳의 군대에 입대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군대..."

"암. 그곳이야말로 경험을 쌓기에는 최적의 장소이지. 리크 자네는 이곳의 밑바닥부터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지. 일개 병사로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 하면서 사계(四界)에 처한 현실을 느껴보게나. 이곳은 혼합개념의 세계로서 수백의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종족이 어울려져있고 바로 그런 존재들이 세력다툼을 위해 오늘도 피를 뿌리고 있다네. 지금부터 자넨 하몬의 후계자도 아니요. 선택받은 전사도 아니네 그저 보 잘 것 없는 작은 제국 아미라스루텐의 어느 일개병사에 지나지 않는 것을 명심하게..그리고 스스로 올라서게.."

***

사계(四界) 케록시아 대륙 원력 448000년 50 루퍼 오전. 리크는 아미라스루텐의 캐시어스 제 3군단 소속 어느 신병훈련막사로 정식 입대하였다. 끝없이 넓은 군대영역에 수백개 연병장중 구석에 위치한 초라한 연병장에는 가죽을 엮어서 만든 막사들이 있었다. 저 편에서 베낭을 짊어지고 등뒤에 검을 맨 청년이 뚜벅뚜벅 막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출렁거리는 금발을 바람에 휘날리고 짙푸른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 청년은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막사 중 자신이 들어갈 곳을 찾는 것 같았다. 자신이 받은 배정표와 각 막사에 새겨진 로고를 거듭 확인하며 소속 막사를 찾으려 했지만 좀처럼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후. 몇 백 개나 되는 막사들 중 배정표에 그려진 그림이 새겨진 막사를 무작정 찾으라니 황당하군."

그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뭐야. 지금 식사배급시간인데 너 혼자 왜 여기서 서성거려!"

"저..저기 막사를 찾으려고.."

그는 갑자기 청년이 들고 있던 배정표를 낚아채더니 뭐라 말했다.

"신병 리크 가벤더라...쳇 어디서 또 멍청한 놈 하나 들어왔군. 바로 코앞에 있는 막사도 찾지 못하고."

"네?"

"야 이. 등신 같은 놈아. 바로 이 막사잖아!"

앞 대머리가 약간 벗겨지고 눈 꼬리 마저 올라간 그는 다짜고짜 리크에게 욕을 해댔다.

"그리고 난 샤트 교관이다. 바로 너 같은 멍청이들을 가르치는 지옥의 교관 샤트니 잘 기억하는 게 좋을걸. 일단 막사에 짐 풀고 대기하기 바란다. 그리고 여긴 캐시어스 제 3군단 소속 신병 훈련소임을 알고는 왔겠지?"

"아..네."

"후후. 알면 다행이군."

샤트 교관은 이내 등을 돌리더니 절도 있는 걸음으로 막사 뒤로 사라졌고 리크는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었다. 각각 침대가 양옆으로 쭉 배열을 맞추어 있었으며 그 숫자가

30개였으니 분명 막사하나에 30여명의 신병들이 있었으리라. 잠시후 리크는 침대 머리맡 다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고 침대 맨 마지막 열에 놀랍게도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후. 어느새 내 이름표가 달려있네. 아무튼 여기가 내 침대이군."

리크는 베낭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와우. 제법 푹신푹신한데. 그나저나 지금은 식사시간인지 이 막사 안 엔  아무도 없네."

잠시후 식사시간이 끝났고 막사 안에 다른 신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리크가 있는지 없는지 저마다 자신의 침대로 가서 침상정리를 하고는 이내 각자의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리크 역시 허둥대며 나가는 신병들을 따라서 나갔다.

리크가 입대한지 약 30일이 지났다. 식사시간과 잠자는 시간외에는 오로지 훈련과 훈련을 거듭하는 단조로운 생활이었지만 리크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샤트 교관 역시 훈련을 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괴롭히는 건지 무척 사나운 성깔로 신병들을 들들볶아댔지만

이도 리크에게는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월등한 체력과 기술로서 잘 적응했다.

신병 훈련기간인 60일이 채워지자 신병들은 자신들의 모든 짐이 들어있는 짐을 챙겨 연병장 앞으로 집결했다. 약 500여명 정도가 모여있었고 드디어 정신 군인으로서 각자의 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샤트 교관을 비롯한 다른 교관들이 연병장에 서있던 신병들에게 무엇인가 종이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샤트 교관은 이내 리크에게 다가오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리크에게도 종이 한 장을 주었다.

"후후. 리크 가벤더. 자네가 이번 훈련신병들 중 최고의 점수를 기록했다네. 축하하네. 그리고 내가 준 기록표 잘 보관하고 자네가 배치 받을 보병단 장교에게 전해주게.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자네 신상기록표가 될 테니까. 그리고 배치 단 소속은 거기에 기록되었으니 알아서 찾아가게. 후후. 처음 여기 올 때처럼 막사도 제대로 못 찾는 멍청한 짓 하지 말고 이번엔 한번에 찾을 수 있길 비네. 아무튼 자넨 내가 지금 까지 가르친 신병들 중 최고라네..하하. 그럼 이만.."

연병장의 신병들은 신상기록표를 가지고 그 안에 적힌 배치장소로 각자 찾아가기 시작했다.

리크 역시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처럼 베낭 하나에 검 하나 달랑 차고 케시어스 보병 제3군단 영역인 어느 연병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고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무심코 리크는 뒤를 한번 돌아다보았다. 따라 오던 자도 리크와 눈이 마주치자 다소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리크에게 다가왔다.

"어이. 잠깐만 같이 가자. 우린 방향이 같은 것을 보니 어차피 같은 보병단에 배치 받는 것 같은데."

"그..그래?"

"응. 우선 내 이름은 듀리엘이야. 넌?"

"리크."

"저기 말이야. 네 기록표 좀 봐도 되겠니?"

리크는 자신의 이름을 듀리엘이라고 소개하고 다짜고짜 기록표를 보자고 하니 내심 의아했지만 손에 있던 기록표를 그에게 전해주었다. 듀리엘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탄성의 소리를 질렀다.

"와우. 총점이 498점이라니. 도대체 이런 점수가 존재한다니 믿을 수 없구나."

듀리엘은 리크의 기록표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다시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500점 만점에 498점이라..후. 이래서 결국 내가 2등을 먹었군. 내 딴엔 내가 최우수 신병에뽑힐 거라고 장담했건만.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있을 줄이야. 내 점수가 407점이니 당연히 리크 네가 없었더라면 일등이었는데. 그나저나 이거 처음부터 신상기록표에 오점을 남겼으니. 후"

리크는 듀리엘이 다소 신상기록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그래?"

"리크 너 딴 나라에서 살다왔니. 이곳 군대에 입대하는 그 첫날부터 마지막 전장에서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신상기록표야. 더구나 모든 진급 케이스가 이 기록표에 좌지우지(左之右之)된단 말이지. 지금 이곳 케시어스 3군단장이던 총사령관이던지. 그들도 이 신상 기록표 하나 달랑 들고 우리처럼 이렇게 시작했다는 사실. 후후. 설마 그런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

그제 서야 리크는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자격을 주고 각자 그 능력에 맞게끔 진급을 허용시키는 제도라."

"아무튼 리크. 그러고 보니 이번 신병훈련소 졸업생 중 1등과 2등이 나란히 같은 보병단으로 배치를 받은 것 같은데.

"응.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이들이 배치 받은 장소는 신병훈련소처럼 가죽으로 만든 막사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반 보병단 막사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바로 케시어스 3군단장이 있고 작전부와 여러 핵심부서가 몰려있는 중앙부의 보병단으로 배치되었던 것이다. 유능한 신병만이 올 수 있는 이 곳에 신병훈련소의 1등과 2등의 리크와 듀리엘이 배치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앙외곽지역에 제법 나무로 단단하게 지어진 여러 막사들이 있었고 리크와 듀리엘은 서로 다른 막사로 배정 받았으니 일단 거기서 헤어지게 되었다. 리크는 듀리엘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자신의 배정 막사로 들어갔다.

약 50여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막사 안에는 병사들이 모두 있었다. 그들은 각자 제 할 일을 하다 리크가 들어서자 일제히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다소 퉁명스럽게 외쳤다.

"너. 뭐야!"

"저..저. 신병 리크 가벤더입니다."

"신병이라고?"

병사들은 신병이란 말에 리크 주위로 몰려들었다.

"오늘 신병 들어온단 전달사항 상부로부터 들었나?"

고참으로 보이는 자가 뭐라 말했고 이내 다른 병사가 대답했다.

"컥크 수장님. 오늘 오전 신병 전달 상항을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뭐라고! 이 개새끼가 그런 사항을 왜 오후 늦게 서야 보고해! 앙!!"

"죄송합니다!"

"아무튼 요즘 너희들 정신이 빠져도 단단히 빠졌어. 어차피 한번 군기를 잡긴 잡아야 되겠군. 이 새끼들.."

컥크 수장은 바로 이 막사의 50명의 대장 급으로 그들을 책임진 장교 아래 급의 수장 병사였다. 그는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번엔 리크를 보고는 뭐라 말했다.

"내 놔 봐!"

".........."

리크는 컥크가 뭘 내놓으라는 건지 몰랐다.

"어쭈. 이 새끼가 너 뒈질래? 빨리 내 놔."

"혹시. 기록표..여기 있습니다."

컥크는 리크의 신상기록표를 살펴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누군가를 불렀다.

"페아몬! 잠깐 이리와 봐! 이 신병 자식 기록표 좀 보라고 뭔가 잘못 된 것 같은데."

누군가 컥크 옆으로 잽싸게 오더니 같이 리크의 기록표를 보기시작 했고 그 역시 경악해 하였다. 그때 컥크가 사악한 미소를 띠더니 이내 리크의 뺨을 보기 좋게 날렸다.

"짝!!"

"악!"

"야. 이 새끼야. 너 빽으로 들어왔지. 점수를 조작하려면 작작해야지. 뭐 500점 만점에 498 점이라고. 나 참. 신병훈련소 소장이 네 아버지 맞지 아니면 상부 군단장쯤 되는 분이 네 아버지거나.."

"...................."

리크는 부동자세로 아무 대답 없이 서있었다. 이번에 컥크는 갑자기 발로 리크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욱!"

"내가 알고 있는 역대 최고 신병훈련점수가 450점을 못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자식이 거의 만점에 가까운 498점이라니..도대체 빽으로 들어오던 돈을 먹여 들어오든지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점수로 조작해야지. 이 새끼는 완전히 대놓고 나 빽으로 들어왔수다! 하고  선전을 하는 꼴이네.."

그때 누군가 막사 입구로 들어왔다. 그러자 병사들 모두 기립자세를 취했다. 그는 일반 병사와는 다른 전투복장의 장교였고 이내 입가에 피를 흘리는 리크를 살펴보더니 뭐라 말했다.

"흠. 벌써 신병 신고식을 시작한 모양이군. 젠장! 컥크 수장!!"

"네. 장교님."

"신병 신고식도 좋지만 누가 피 보라고 그랬어. 여기 신병 입가 좀 보라고.."

"죄..죄송합니다."

"아무튼 여기 신병 신상기록표를 네놈이 들고 있는 것 같은데 당장 가져와!"

컥크는 재빨리 리크의 기록표를 장교에게 전달했다. 장교가 나가자 컥크는 다소 김샜다는 식으로 죄 없는 병사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뭘 봐. 이 새끼들이..그리고 신병 너 앞으로 각오해!"

리크는 첫날부터 보기 좋게 봉변을 당했다. 언제까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곳 막사에서 한동안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으리라. 그날 밤 리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고 이것저것 잡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후. 드디어 새로운 시작이로군. 비록 첫 날부터 시작은 안 좋았지만 가스톤님 말대로 난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되겠지.'

리크가 케시어스 3군단 중앙 소속으로 어느덧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리크는 아직도 컥크와 다른 고참들에게 시달렸고 이를 악물고 잘 견뎌내고 있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이곳 중앙부서 소속으로 배치 받은 병사들은 상당수가 신병훈련 때 높은 기록 점수를 받은 엘리트 출신들이었다. 중앙 소속에 배치 받은 이곳 병사들의 임무는 주로 전장보다는 3군단 지휘본부를 방어하는 것이었기에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투하는 병사들보다는 훨씬 안전한 보직이었다.

하지만 케시어스 제 3군단 병력 전군은 드디어 전장으로 대이동 준비를 하였으니 바로 아미리스루텐 제국의 서북쪽 변방에 챔버트 종족이 쳐들어왔던 것이다. 리크 역시 오늘도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이동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리크 막사는 제 17 막사로 명칭 되었으며저마다 검을 차고 베낭을 꾸리고는 이내 연병장으로 집결하기에 이르렀다.

대규모 연병장에는 케시어스 제 3군단 병력이 출병식을 앞두고 모두 집결해있었으니 리크는

이제서야 이곳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병력 실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보병 출신인 자신과 같은 병사들은 맨 뒤쪽에 있었으며 연병장 상단석으로 향할수록 일개 보병을 지나서 장교급 ,실전 전사, 수호전사의 순서대로 대열을 이루었으며 그들의 복장은 한마디로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특히 장교들 앞에 위치한 실전 전사들은 대부분 두꺼운 금속 바스트와 각기 다른 무기를 등뒤에 차고 있었고 한눈에 봐도 일당백의 전사들 같아 보였다. 그 앞줄에는 일명 수호전사들이 대열을 이루었고 그들 모두는 범상치 않은 기도가 흐르고 영웅다운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일개 병사 출신인 리크는 초라한 행색으로 그들을 먼발치에서 살펴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릴 정도 였으니 과연 그들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드디어 케시어스 제 3 군단장이 모습을 들어내자 수많은 병사들과 장교, 실전 전사, 수호전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리크 역시 덩달아서 마구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잠시후 누군가 저 높은 연단위로 나왔다. 그때 리크는 수만명의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케시어스 군단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여자다. 그..그것도 이제 내 또래 밖에 안된.."

케시어스 제 3군단장은 기껏해야 20살 정도의 애 띤 여성이었고 그녀는 당당하게 수만명의 병사들 앞에 나선 것이다. 리크는 3군단장이 검은 수염을 날리며 화려한 전투복 함께 나타날 줄 상상했건만 웬 여성이 나타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 이곳은 철저한 개인 신상기록표에 의한 점수대로 단계단계 밟고 올라 가야지만 일개 병사에서 수장 병사 그리고 겨우 장교가 되고 실전 전사 그 위로는 수호전사의 과정을 거쳐서 각 병력을 관할하는 장군. 이 모든 것을 거쳐야만 군단장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 텐데. 저 약관의 나이로 군단장이라니. 그것도 여성이...'

그때 옆에서 마치 리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병사들의 잡담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케시어스 제 3 군단장님 얼굴을 보게 되는군."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최고 기재 케시어스 군단장이 아마 13살 때 입대했다지 그 이후로 최고 신상 기록표에 믿을 수 없는 높은 점수로 승승장구하더니 드디어 7년만에 군단장이 되다니 역사상 그 전례가 없던 일이지. 그런데 7년 전 케시어스 군단장님이 세운 신병훈련 점수인 480점을 능가하는 신병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 던대."

"아. 뭐 17막사에 498점을 기록했다는 병사 얘기 말이야. 항간에는 점수 조작을 해서 빽으로 들어온 그런 얘기도 있던데."

"하긴 그럴수도 있겠군. 게시어스 군단장님이 480점인데 감히 어떤 자가 498점을 기록할 수 있겠어. 그나저나 나는 수장(50명의 부대장급)자리만 올라도 소원이 없겠구만."

"이 사람아. 겨우 그 정도 야망가지고 어디 명함이나 내밀겠나? 적어도 장교 아니 실전전사

혹은 수호전사급은 바라보아야지."

"에구. 이 사람이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잖아. 아무튼 케시어스 군단장님은 신상기록표의 점수만 높은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큰공을 많이 세웠다지."

케시어스 3군단장은 약 1시간정도의 연설을 하고 연단에서 내려갔다. 이젠 본격적인 출병식이 거행될 차례였다. 수만명의 병사들은 각자의 대열을 이루고 발을 맞추어 연단 앞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리크의 부대가 차례를 기다리기까지 무려 2시간이 걸렸으니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연단 앞을 행진했는지 몰랐다. 아무튼 리크는 병사들 틈에 끼워 연단을 지나갔고

케시어스 군단장은 자신들의 측근들과 함께 저 높은 연단 위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편 연단 양옆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출병식을 하는 3군단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중에는 세아린도 있었다. 약 6개월 동안 절대 면회가 허락되지 않아 리크를 볼 수 없었고 오늘 출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먼발치에서 리크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싶어 나왔다.

세아린은 수많은 병사들 틈에 섞여있는 리크를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 2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가 한 대열이 연단을 지나 갈 때 저 틈 속에서 그녀는 리크를 발견했다. 상당히 수척해진 리크의 얼굴을 보자 세아린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리크!!"

한편 병사들 틈에 끼여가던 리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돌리자 흘끔 관중석을 살펴보았다. 바로 세아린이었다.

"세..세아린.."

"리크!"

"세아린.."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몇 번 불렀을 뿐 대열은 이미 다른 출병단과 함께 지나갔고 잠시후 그 많던 병사들이 연병장을 모두 빠져나갔다. 제법 시간이 흐르자 이젠 연병단에 아무도 없었고 오직 세아린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눈가가 촉촉해진 세아린은 저 멀리 병사들이 사라진 곳을 보면서 뭐라 중얼거렸다.

"리크..보고 싶었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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