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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퍼라도 (54)화 (54/157)

[데스퍼라도] 54. 지구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워라!

데스퍼라도(Desperado)

지구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워라!

리크는 한참을 이것저것 생각해보니 갑자기 모든 것이 서먹서먹

해진 느낌이었다. 정말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패샷보이는 리크

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여자라니..더구나 갑자기 지난 시절 친구들

의 영상이 허공에 스쳐지나갔고 어느새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자신의 가슴을 꽉 채웠다.

'후. 지금 휴론계 역시 대전란으로 인하여 많은 친구들이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겠지. 하긴 여기 상황이나 그곳 상황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군. 어느 곳에 가도 피와 절규하는 비명소리가 그치

질 않으니 원래부터 세상은 전쟁과 살육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되는

것인가..'

옥상 서편엔 어느새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리크

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한숨을 크게 한번 쉬었다.

"휴.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이겠지. 바로 현실이란 말이야. 이

낮선 지구에 온 것도, 많은 휴론계인들이 학살당했고 내 스승들

과의 만남, 이곳에 끌려온 수많은 차원인들, 이젠 우리가 그들을

제압한 일등..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을 해야되는 현실 바로 이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리크는 옥상 난간으로 다가가더니 이내 서산에 마지막으로 자신

을 태우는 빨간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살며시 감았다.

"하..하지만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왜이리 가슴이 답답한지..

후..아버님과 카란의 생사(生死)조차도 확인 못하고 이곳 세계에

갇힌 일. 하시아의 어이없는 죽음, 더구나 절친했던 친구 패샷

보이가 여자라니. 젠장."

리크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고 이내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난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 리크 현재 그게 네 모습이다!!

넌 이제 살육자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란 말이야.!!

아아아아"

리크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옥상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뭐라 중얼거렸다.

"후. 나도 결국엔 미쳐가는군."

그때였다. 리크의 뒤에서 누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봐도 진짜 미친놈 같네. 후후."

"어. 패..패샷보이.."

조금 전 옥상문을 뛰쳐나갔던 패샷보이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

는 예전의 장난기 있는 모습과는 다르게 다소곳한 몸가짐과

표정마저 붉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리크 역시 뭔가 서먹서먹한

듯 부자연스런 분위기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남자에서 여자로 변해버린 그를 어떻게 대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패샷보이가 리크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 는게 아니가.

그녀가 리크의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리크는 깜짝 놀란 나머지

뒤 걸음 치다 뒤로 벌렁 자빠졌다.

"호호호. 리크 진짜 웃기는군. 누가 널 잡아먹기라도 한데. 정말."

패샷보이의 말투마저 간드러진 여자아이 웃음소리를 내니 리크는

더욱 기겁을 하였다.

"쳇. 내가 여자로 변하니 갑자기 무섭기라도 한 거야?"

"으...응.."

"진짜 쑥맥이군. 하긴 너의 그런 순박한 점이 좋아서 그 동안 널

따라다녔으니. 뭐라 할말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네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

패샷보이의 강렬한 눈빛이 리크의 얼굴을 주시했다.

"뭔..뭔데?"

"내가 여자라는 것을 비밀로 지켜 줘. 난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죽기보다도 싫어하거든. 그러나 이후로 너 리크

만큼은 나를 여자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

"여자라고?"

리크는 패샷보이의 고백으로 분명 그가 여자라는 것을 이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남성적 잔재가 뇌리

속에 뿌리 박혀 당장에 여자로 인식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한편 패샷보이는 그런 리크의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호호. 이 바보야. 아직도 내가 남자로 보이니? 좋아 잘 보아

두라고."

패샷보이는 검은색 가죽 상의를 벗어제치더니 이내 상의 하늘

색 브라우스의 끈마저 풀기 시작했다.

"패샷보이! 너..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그러지마!"

패샷보이가 상의를 벗기 시작하자 리크는 무척 당황하기 시작

했다. 패샷보이는 하늘색 브라우스 마저 벗었다. 그녀의 가슴은

횐 천으로 둘둘 말려져 있었으니 아마도 자신의 튀어나온 가슴

을 억지로 누르려고 한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그 횐 천마저

푸는 것이 아닌가?

잠시후 횐 천마저 푼 패샤보이는 두 손을 머리 쪽으로 가져가

더니 뭔가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 동안 커트인줄만 알았던

짧은 머리가 훌커덩 긴 머리로 변해 그녀의 풍만한 가슴까지

내려왔다.

"헉.."

리크는 물론 넋을 잃고 있었으며 이젠 좀 전까지의 당황하고

그런 모습보다는 상반신의 속살을 완전하게 드러내어 물컹

거리는 풍만한 가슴과 석양빛에 출렁거리는 그녀의 긴 머리

카락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자신도 몰랐던 것이다.

트로얀 산맥의 촌놈인 리크는 17이 되도록 여자 손목을 잡아

본 경험조차 없었으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어떤 식

으로 해석해야 할 줄도 몰랐으며 왜 자신의 가슴이 쿵당쿵당

마구 뛰는지조차도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패샷

보이는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친구이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지금은 너무나 아름다운 나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

으니 그 누가 태연자약(泰然自若)할 수 있을까.

제법 시간이 흘렀다. 석양은 벌써 서산으로 모습을 감추었

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 서쪽 하늘의 깃털 구름을 진한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으니 그 자체의 장관 또한 대자연

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느새 남장으로 돌아온 패샷보이는

그 괄괄한 성격은 온데간데없는 듯 붉게 홍조를 뛴 소녀의

표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편 리크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건만 자신의 놀란 가슴을 쓸어 담느라 정신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이런 부자연스런 침묵을 먼저 깨는 사람이 있었

으니 바로 패샷보이였다.

"미안해. 많이 놀랐지. 하지만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마. 그저

예전처럼 대해주기를 바래."

"................."

그때였다. 옥상 입구에서 누군가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인기척

에 놀란 리크와 패샷보이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플랜시아!"

"여기 있었구나. 후 너희들 찾는라 이 건물을 얼마나 돌아 다녔

는지 몰라."

"우릴 찾다니."

플랜시아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시 뭐라 말했다.

"저기. 리크 네 스승님들과 스캇 대장님이 급히 찾으셔 그리고

패샷보이 너도."

"무슨 일 때문에?"

"자세히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뭔가 신기한 것을 발견하신 것

같아. 잘하면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물건일지도 모른

다고 말씀 하셨는데."

"정말?"

플랜시아는 패샷보이만이 대답을 하고 리크는 고개를 숙인 체

부끄러운 듯 대답을 못하자 이번엔 리크를 바라보며 뭐라 말했다.

"리크 너 아프니? 안색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아..아니야. 그냥..좀"

그때 패샷보이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놈이 얼마나 건강한데 아프기는..단지 못 볼 걸 봐서

그렇겠지. 그럼 난 먼저 내려갈게."

패샷보이는 황급히 옥상 입구를 빠져나갔고 옥상에는 리크와

플랜시아만이 남아있었다.

"못 볼 걸 보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아..아무 것도 아니야. 플랜시아. 아무튼 우리도 일단은 내려

가자. 이러다 늦겠어."

"정말 이상한데. 리크 너 말이야 평소 때와는 다른 모습인 것

같아.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정말 아니라니까. 아무튼 난 먼저 내려갈께."

이번엔 리크 마저 황급히 옥상을 빠져나가니 플랜시아만이

홀로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더니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후. 오늘따라 저 둘이 이상하네. 혹시 싸우기라도 했나. 그건

아니겠지. 평소엔 으르렁거리긴 하지만 리크와 패샷보이는

분명 그들만의 진한 우정이 있음을 난 느끼는데. 뭐 별일은

없겠지. 아무튼 그럼 나도 내려가 볼까.'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두컴컴한 초저녁에 이르고 플랜

시아의 은은한 금빛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  *  *  *  *  *  *

지구연대 서기 2780년 6월 25일 휴론계인들이 지구엔 온지

약 3년이 흘렀다.

휴론계인들에게 장악 당한 롬페르담社는 무슨 이유인지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토록 우려했던 칼차온 정부군의 공격도

없었다. 더구나 헤겔론 회장이 주 동력장치만 수리하면 금방이

라도 각 차원세계로 돌아갈 것을 굳게 믿었던 각 차원인들의

실망은 무척이나 컸다. 외부 전력이 차단된 롬페르담社의 주동력

장치는 아무 쓸모 없게 된 것이었다. 단지 보조동력장치로 3년

동안 별탈 없이 지내왔지만 이들 차원들은 항상 살얼음판 위를

지나는 것처럼 마음을 조리며 지금까지 버티어 온 것이다.

어쨌든 3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이곳 롬페르담社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바로 각 차원인들의 놀라운 적응속도였다.

이들이 지구에 관한 모든 것을 웬만큼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기억감흥장치]로서 근 1시간 안에 지구의 방대한 역사와 정보

들을 인위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차원

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떨어진 지구와 이곳 존재들에게 공포

심을 느끼지 않았으며 그들 또한 자신들과 같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제 롬페르담社는 각차원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만들어진 하나의

왕국이었으며 이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협동하였다. 거대한 지구

라는 영역에 갇힌 이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자신들의 세계

로 돌아갈 때까지 어떡하든 생존하는 것이고 바보가 아닌 이상

서로에게 반목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강력한 파동존재들인 리크

의 스승들에게 감히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재 수천명

의 차원인들을 리더 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그는 스캇

대장이었고 그는 스스로 앞장서서 마치 이 롬페르담社를 하나의

요새로서 각 행정과 통치기구를 만들었고 이 요새의 이름마저

데스퍼라도라 명칭했다.

분명 230년 전 데스퍼라도 용병단이라 불리는 휴론계인들은 버젓

이 살아서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이들 역시 과거

의 선조들처럼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으로서 그 명칭

을 데스퍼라도라 칭했음이 분명했다.

한편 오늘 데스퍼라도 위원회에는 제법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각 차원 대표 위원들은 현재 데스퍼라도 군 총관의 직책

을 맡고있는 리크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허. 리크 총관 느닷없이 정찰이라니요? 그것도 몇 개월이 걸릴

지 모른다니.."

"여긴 그 옛날 미국이란 나라로서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국립

공원 자리였죠. 저 밑으로는 콜로라도 강이 수천 Km 흐르고

있으니 저는 일단 간단한 땟목을 만들어 강이 흐르는 곳까지

정찰을 하려 합니다."

"후. 이제 겨우 리크 총관님 덕분에 이번 새로 창설된 차원군들

의 전투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할 정도로 크게 향상이 되었

건만..갑자기 정찰을 위해 여길 당분간 떠난다고 하니까. 이거

원 섭섭해서."

"그 동안 칼차온 정부군이 뻔히 우리 휴론계인들이 이곳 롬페

르담社를 장악했을 줄 알고도 오지 않은 것 자체가 아직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죠. 물론 그 덕분에 이렇듯 아직은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었지만 이곳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본다면 지구인

들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가

생각한 이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죠. 그리고 앉아서 당하는 것보다 일단 저들의 세계로

나가서 무엇이든지 정보가 될 수 있는 거라면 수집을 하는 것

이 좋다고 봅니다."

"후. 아무튼 과학이란 놀라운 문명을 이룩한 이들이 우리를

무려 3년 동안 온전하게 나둔 것을 보면 정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인데..그들에게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도 모르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제가 외부세계로 정찰을 나가는 것

입니다."

"그나저나 리크 총관 설사 이곳 위원회에서 정찰임무가 통과

된다 하더라도 통제실에선 과연 허락을 내릴까요. 그분들 심술

이 이만 저만한 게 아닌데. 특히 스캇 사령관님, 아론님, 헤수스

님, 목유성님등이.."

"하하. 그분들이라면 제게 맡기시고 일단 여기나 통과나 시켜

주세요."

"흠..그렇다면 위원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하루정도만 기다려

주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리크는 위원회실에서 빠져 나와 곧바로 과거 기획실로 불렸고

이젠 통제실로 바뀐 구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때 리크의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자가 있었다.

"이번 정찰 때 나도 같이 가!!"

"어. 패샷보이. 여긴 웬일이야. 너 지금 제 3대대 총 검술 가르

칠 시간이잖아?"

"헤헤. 잠깐 나왔어."

"내참 교관이라는 녀석이 땡땡이나 까고."

"젠장 나 데려갈 거야 안 데려 갈 거야?"

패샷보이는 마치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계집애가 어딜 간다고 그래. 내가 가는 곳은 무척 위험하단

말이야."

"리크 너 자꾸 계집애라고 그럴래.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젠장. 계집애보러 계집애라고 하지 뭐라 그러냐."

"아무튼 말조심해! 난 공식적으론 남자란 말이야. 그리고 나는

네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간다고 그랬는데 벌써 잊어

버린건 아니겠지?"

"후. 정말. 이건 도대체 사내녀석 보다 더 괄괄하니..참..요즘

들어서 플랜시아 조차도 너를 의심하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남자 행세할거니."

"쳇. 플랜시아가 나를 의심한다고. 그래도 같은 여자라고 눈치

는 있나보지. 아무튼 너 플랜시아한테 자꾸 눈길 주지마. 요즘

플랜시아가 널 바라보는 그 눈빛이 심상치 않단 말이야."

"내 참 기가 막혀서. 웬 선머슴 같은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말라니. 너야말로 나도 헷갈려 네가 여자

인지 남자인지 말이야."

"호호. 3년 전 다 봤잖아."

"뭘 보긴..뭘 봐...젠장...아무튼 나 지금 시간 없어. 그럼.."

리크는 황급히 몸을 돌려 통제실로 향했다. 패샷보이는 그의

당황스런 모습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이 빙그레 웃었다.

'리크는 3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쑥맥이네. 호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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