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43. 홀론의 그림자
데스퍼라도(Desperaro)
홀론의 그림자
해가 소걸음 치 듯 서산으로 뉘엇뉘엇 향하고 있었다. 대자연
이 창조한 대지와 융기된 산맥은 태고의 세월을 그래왔듯이
언제나 침묵만을 지켰다.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들 역시 이런
장엄한 테두리에서 자신의 겸허함과 조화를 이루며 삶을 영위
하여왔다. 그러나 신(神)이 창조한 수많은 피조물 들 사이에
억겁을 흐르던 침묵을 깨트리는 존재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들은 바로 이성과 합리적 논리의 토대로 진화
된 인간이었다. 그들 이성적 존재들은 스스로 제어와 통제를
할 수 있는 관념(觀念)을 형성하였지만 그 어떤 동물보다도
두려움을 많이 내포한 존재이기도 하였다. 두려움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자신의 방어를 넘어서 다른 존재에게
위협을 가하기까지 하는 변질된 이성논리를 형성하기에 이르
렀다. 그들의 변질된 이성논리는 인간내면 깊게 뿌리내린 투쟁
과 폭력성마저 일깨웠으니 이젠 모든 인간종족의 윤리개념을
넘어서는 집단 마취와도 같았다.
핵폭팔로 인하여 70%의 인구의 소멸을 경험했던 지구인들은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적인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백년 동안 모든 전쟁과 반목을 제거하려 노력해왔고 오늘
날 2777년 세계연방정부인 칼차온 정부를 기점으로 오로지
평화만을 추구해왔었다. 사실 차원 이동기술이 국가적인
프로젝트에 의해서 완성되었을 때 그것을 누구보다도 좋아
했던 사람들은 바로 칼차온 정부였다. 사실 칼차온 정부가
수립 된 후 그들은 성공적으로 수백년동안 평화를 유지해
왔지만 언제 어느 때 인간의 폭력성이 표출화 되어 또다시
반목과 투쟁이 발생할지 노심초사(勞心焦思)해왔는데 바로
이때 차원 이동 기술이 개발되자 칼차온 정부는 이때다
싶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로 관심과 눈을
돌리게끔 유도를 하였다. 많은 지구인들은 새로운 차원 세계
로 가는 길이 열리자 그 어느 때 보다도 흥분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너나 나나할 것 없이 다른 차원 세계로의 관광
을 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과학기술과 진보된 문명의 이기는 지구인 자신들보다
못한 하위차원에서 상당한 우월감과 쾌감을 느꼈으며 급기야
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그들을 취급하는 풍조까지 생겨
났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리를 이루어 보다 짜릿한
모험과 관광을 즐기기 위해 하위차원의 이질적인 짐승들을
사냥하기에 이르렀고 후에는 사냥 관광 팩키지 상품이 하나둘
씩 나오면서부터 본격적인 러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
만 자신의 영역에서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지구인들을 하위
차원인들이 보았을 때 이는 결코 서로의 대립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결국 관광을 위해 갔던 어느 지구인의 피를 부르는
사건이 터졌고 그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극대화되어 칼차온
정부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과연 살인을 부른 하위차원인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영역에 가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 지구인에게 물을
것인가? 오랜 고심 끝에 칼차온 정부는 결국 지구인의 손을
들어주었으니 이는 다른 차원인의 죄를 묻는 그 첫번째 판례를
남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칼차온 정부는 다른 차원 루트를
개발함으로서 지구인들에게 깊이 간직된 폭력성향을 다른 차원
영역으로 유도 아닌 유도를 하게 끔 만든 꼴이었다. 사실 지구
내에서 만큼은 오직 평화만을 그토록 추구해왔던 칼차온 정부
로서도 어찌 보면 은근히 원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난 2777년 불법적인 살상 서바이벌게임이
전세계적으로 그 성향을 이루리라고는 칼차온 정부도 전혀
상상을 못했으리라. 분명 지구는 믿기 지 않을 정도로 수백년
간 단 한번의 반목과 대립 전쟁등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과거
그 폭력적이고 광기의 지구인들을 얌전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언제나 지구엔 평화가 충만했지만 하위차원인들은 이유도 없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바로 자신들의 영역인 지구
에서만큼은 평화를 원했지만 다른 차원영역의 존재들은 지구인
의 내면적 폭력성의 표출화를 일일이 다 받아 주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
한편 협곡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는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
어진 웅덩이가 있었으니 그 지름이 약 5Km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때 웅덩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헤수스, 목유성, 그리고 아론이었다.
그들이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다소 여유
있는 표정과는 달리 온몸에서 한껏 살벌한 살기가 풀풀 솟아
날 정도로 냉혹해져있었고 그들의 의복마저 마치 핏물을 뒤집
어 쓴 것처럼 빨갛게 물들었으니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정말 말이 안나오는군..뭐 이런 개 같은 곳이 다 있어..?"
"정말 찢어 죽일 놈들이군....어떤 놈들이 이렇게 잔학한 짓을.."
"그나저나 저 웅덩이에 있는 약 1000여명에 달하는 시체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분명 리크는 없었단 말이야....근데..젠장
다시 한번 찾아볼까."
"그만해..벌써 3번 이상 찾아봤잖아...리크는 저기에 없는 것이
틀림없어....더구나 더 이상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저 아래로
도저히 못 내려가겠어.."
"후....저 시체들의 복장은 휴론계인들이 분명하단 말이야. 기사단
복장하며 각 용병단들도 꽤나 많아 섞여있군. 누군가 저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뒤 이곳으로 끌고 와 저 웅덩이에 버렸다는
건데..도대체 이 영역은 뭐 하는 곳이기에 사람들을 파리 죽이
듯이 학살하고 이런 곳에다 그 시체들을 버렸단 말이야.."
"한가지는 분명해! 이곳 존재들이 어떤 족속들인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의 잔인한 놈들이라는 것 말이야!"
제3계 출신의 엘시온 전사이자 하몬의 친구인 헤수스, 같은
제3계 출신 절대마계 테카몬트 관장자 아론, 저 공간과 시간
넘어서 온 이방인 불세출의 무림제왕 목유성은 한때 각자의
세계에서 최고의 전사로 추앙 받았었고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버린 자들이었다. 하물며 그런 그들이 웬만한 장면에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강심장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들의 정신을 더 이상 온전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다행이 저 시체 구덩이에 리크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지금
어디선가 벌벌 떨며 놈들의 추격을 받고 있을지 모르니 우리가
서둘러 리크를 먼저 찾지 않으면 안되겠어..에고 불쌍한 것 같으
니라고..."
아론이 말하자 헤수스가 외쳤다.
"리크는 그렇게 쉽게 당할 아이가 아니야! 내가 리크를 처음
아폴립스의 숲에서 보았을 때 그 당시 60명이나 되는 마을
아이들의 사냥감으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그들을 사냥했을
정도란 말이야..그것도 전혀 검술을 모르는 꼬마아이가.....
그놈은 천부적으로 생존, 투쟁본능이 내면 깊이 잠재된
아이야..."
"빌어먹을 지금 그 당시 상황과 같다고 보냐!! 나 조차도
이곳 존재들에게의 무기에 허벅지가 관통 당했는데.....명색
이 절대마계 관장자였던 내가 말이야...."
"험..아론 그거야 네가 멍청해서 당한 거지..험.."
"뭐라고 목유성 이 망할 놈이..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
"시끄러!! 너희 둘 혹시 진짜 바보 아냐! 지금 이 말 같지도
않은 상황에 리크가 위험에 처해있는데 스승이라는 것들이
고작 말다툼이나 하고 있고..젠장..아무튼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 역시 싸늘한 시체로 저 궁덩이 속에 쳐 박힐지
모르니까...이쯤에서 각자의 전투기술을 극대화로 끌어올리
자고.."
헤수스는 말과 동시에 자신의 등뒤에서 하몬의 검을 서서히
빼들었다. 그리고는 그 검을 아래위로 서서히 살펴보더니
뭐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몬이여..네 자네의 검을 잠깐 빌리겠네..그 옛날 자네 역시
이 검으로 수많은 악의 존재들을 처단하지 않았는가..오늘은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 같네만.."
아론 역시 자신의 품안에서 가론 스틱을 꺼내들고 간단하게
한마디했다.
"죽일 새끼들...두고보자..."
이번엔 목유성이 주변을 살펴보더니 근처에 떨어진 나무 가지
를 하나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나무잎새를 손으로 떨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를 위 아래로 휘두르면서 뭐라 말했다.
"결국 이 목유성에게 무기를 사용하게 만드는 자들이 나타났군..
허허허."
아론과 헤수스는 땅바닥에 가지하나 덜렁 줏어 들고 마치 귀한
무기를 얻은 것처럼 좋아하는 목유성의 모습을 보더니 어이가
없어했다.
"진짜 꼴갑을 떨어라.."
아론이 말하자 헤수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장난할 분위기 아니다. 목유성."
그때 목유성이 갑자기 아론과 헤수스를 살기 있게 노려보았고
이어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천천히 내뱉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아론과 헤수스는 목유성의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하게
나오자. 다소 움찔했다. 아론은 나무 가지 하나 덜렁 들고 자신
에게 살벌한 눈빛을 팍팍 싸되는 목유성이 한심하게 보였지만
더 이상 비아냥거리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에
제자 리크의 생사(生死)가 걱정이 되었고 여기서 더 이상
쓸데없는 일로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느껴서일까..
그때였다. 저편 허공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 세 사람은 잽싸게 근처 바위틈으로 숨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보고는 동시에 깜짝 놀란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저기 떠가는 게 뭐지...?"
"진짜 뭐여...?"
"뭐지..?"
협곡에서 단테피오테스 회원들을 태우고 롬페르담 본사(本社)로
돌아가는 서틀 운송기 10기가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비행을
하고있었으니 과연 이들 세 사람의 눈엔 하늘을 떠가는 커다란
금속물체가 신기하게 보였으리라.
"하늘을 나는 배라......"
"혹시 이곳 존재들이 저 안에 타고 있을지도.."
목유성과 헤수스 하늘에 떠가는 금속물체를 살펴보면서 뭐라
말하자 성질 급한 아론이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놈의 새끼들이 죽일 저 안에 있단 말이지..."
그때 아론은 갑자기 자신의 가론 스틱을 매 만지기 시작했다.
짧은 섬광이 스틱에서 발했고 이내 아론의 손바닥에 작은
구체(具體)의 푸른빛의 응집체가 형성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