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퍼라도 (41)화 (41/157)

[데스퍼라도] 41. 홀론의 그림자

데스퍼라도(Desperado)

홀론의 그림자

중천에 떠있던 태양이 서서히 서쪽으로 내려앉기 시작했고

붉은 계곡을 태워버리는 듯 한 뜨거운 열기마저 이젠 어느

정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붉은 빛 능선 곳곳에

뿌려진 피와 살점들은 아직도 그 온기가 가시지 않은 듯

방금 수많은 가축을 도륙한 도살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리크는 주변의 참혹한 시신들에 둘러

싸인 체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그러기를 벌써 1시간이

지났을까.

"그..그렇지 나..난 내 아버님과 형제인 카란을 찾아서 파가논

제국으로 가는 길이었지..그래 난 그곳으로 가는 길이었어....

난 그들을 찾아야 돼.."

아까부터 연신 뭐라 중얼대는 리크가 갑자기 말하다 말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안돼 !!! 안 된단 말이야 하시아를 죽인 놈들을 찾아야 돼..

맞아..그들을 찾아서 모조리 없애버릴 거야!..아아....그..그런데

도대체 여긴 어디지.."

이질적인 세계, 거대한 협곡들, 붉은 토양, 낮선 존재들, 이상한

무기가 존재하는 세계 과연 이곳이 어디인가? 리크는 말하다

말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젠장 이곳이 어디든 간에 지옥 끝까지라도 가서 그들과 싸워야

돼..안 그러면 나..나머지 생존자들인 휴론계인들 마저 저들에게

죽게 된단 말이야"

리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하시아의 피묻은 옷 조각을 둘둘

말아서 다시 녹슨 철검과 연결하기 위해 자신의 손목에 단단히

매기 시작했다.

리크는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자신에게 희생당한 주변

시신들의 나이가 고작해야 자신과 같은 또래인 10 대 정도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근 한 시간을

횡설수설(橫說竪說)하기 시작했고 이제야 다시 결심을 굳힌

듯 녹슨 철검을 잡고 일어섰던 것이다. 이번에 리크는 녹슨

철검을 바라보더니 다시 뭐라 중얼거렸다.

"후..아깐 운이 좋았다고 볼 수밖에 없었지. 어기혈천도(漁磯

血天刀)라..무심코 읊은 마공(魔功)중 혈파천의 두 번째결 어기

혈천도(漁磯血天刀)가 나를 살려주었군...검이 저절로 뽑혀 내

심기(心氣)가 정한 목표물에 정확히 날아가다니..정말 목유성

스승님 세계의 검술은 아직도 그 위력과 범위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더구나 혈파천은 사만사천종의 마공(魔功) 중에

극히 일부분 아닌가.."

뭐라 중얼중얼 거리며 능선 아래로 내려가는 리크의 발걸음은

상당히 무거워 보였으며 고개마저 밑으로 떨쿠었으니 아직도

지금 처한 자신의 상황에 여러모로 혼란을 겪고있었다. 하지만

분명 리크는 다음 목표를 마음속에 정해두었다. 그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하시아에 대한 복수의 일념이었던 것이다. 결국

리크는 휴론계인들이 있는 동굴로 돌아가지 않고 그 반대방향

으로 그의 행보를 틀었으니 또 다른 사냥을 위한 발걸음인 것

같았다.

*  *  *  *  *  *  *  *  *  *

"어...어떻게 이런 일이....

살상 서바이벌 주관체인 롬페르담 회사 헤겔론 회장은 끝말을

마저 있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비단 회장뿐이었겠는가

롬페르담 회사가 건립된 이후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되어 그 존립

여부자체도 불투명한 상태인데 다른 중견간부들 역시 극도로

충격 받은 표정들이었다. 게다가 금번 게임은 칼차온 정부가

법으로 금지한 인간차원인 휴론계인들 대상으로 살상 서바이벌

이란 점과 엎친대 덮친 격으로 비채널을 통한 비극적인 장면까지

전세계에 알려졌고 물론 그 현장 테이프를 재빨리 입수한 칼차온

정부의 강력한 제제까지 받을 처지였다. 한마디로 롬페르담 회사

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던 것이다.

"처음 차원이동 기술이 발견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이

었고 롬페르담 회사 역시 250 년 전에 건립되어 오늘날 이 지구

상에서 몇 손가락 안에 뽑히는 차원 서바이벌 회사로 거대하게

성장을 했건만 이젠 그 막을 내릴 때가 온건가...후..."

몇 년째 끊었던 시가를 다시 입에 물고 연기를 팍팍 몰아내는

헤겔론 회장의 표정은 이젠 굳어질 때로 굳어졌다. 그는 갑자기

파르마 기획실장을 보더니 다시 한숨을 쉬었다.

"휴...파르마 기획실장...무슨 대책이라도 있으면 한번 말해보시오.

가장 극악의 사건이 우리 롬페르담 회사 서바이벌 영역에서

발생했고 그것도 모자라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방영까지 되었

으니 과연 이 롬페르담 회사가 살아날 방도가 있겠소....휴....

더구나 칼차온 정부의 특별수사대 K.I.Z(Kalchaon Information

Zone)역시 이를 계기로 우리 롬페드담 회사를 아예 말아먹을

것은 불 보는 듯한  뻔한 얘기 아닌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헤겔론 회장과는 대조적으로 파르마 기획

실장은 그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그는 아마도 이런

사태를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 같았다.

"회장님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비관적이라...후..파르마 실장...지금 나는 이 사태를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는 거요. 아무튼

좋소 어쨌든 비관적이 아닌 다른 생각이 파르마 실장에게 있는

것 같은데 뭐 좋은 대안이라도 있는 건가?"

"특별한 대안은 없습니다 만...."

"특별한 대안이 없다라...그런 대안도 없다면서 지금 이 사건이

비관적이 아니라니.."

"단지 좀 더 사태추이를 기다려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정말 답답하군...저 모니터에 찍힌 극악한 존재에 의해서 다른

희생자들 마저 계속해서 생겨날텐데..기다리다니.."

"기다린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수천명의 특수

안전 진행요원들을 현장에 내보냈고 그들이 현재의 게임 진행

중에 있는 [단테피오테스]회원들을 보호 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전 기다린 다는 의미는 바로 칼차온 특별수사대의 움직임

을 지켜보자는 뜻이었습니다."

"K.I.Z의 움직임이라니.."

"사실 살상 매니아 클럽에 의해서 비채널 생방송 시스템이

서바이벌 영역 내에서 가능했지만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듯이

K.I.Z는 그보다 더욱 정밀한 중계시스템으로 이미 금번 살상

게임 초입 시간대부터 정밀분석조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즉 그들은 휴론계인에 간혹 섞여 있을지 모르는

상위차원의 파동적 존재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라는 것이지요."

"상위차원 파동적 존재라면 230년전 데스퍼라도 용병단을

이끌던 하몬과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 사건이 비채널 모니터로 방송

되었을 땐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었죠. 즉 K.I.Z 요원들이 밀어

닥치고 현장의 7조 아이들을 학살한 저 극악한 휴론계의 존재

마저 제압 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칼차온의 특별수사대 K.I.Z

는 별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하.하긴 그렇군. 지금쯤 이 롬페르담 회사가 벌써 난리가 났어

도 단단히 났을텐데. 그렇다면 이젠 궁금증이 생기는군. 왜 저들

이 가만있는지.."

"저도 그 점에 대해서 의아한 부분이 많은데..단지 이렇게 추측

만은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상위차원 파동적 존재에 대한 관심

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다는 것과 현재 서바이벌

영역권내에 모니터에 찍힌 저 존재뿐만 아니라 다른 상위 존재

들이 더 존재한다는 것이겠지요."

"뭐..뭐라고. 7조를 몰살시킨 저 극악한 놈 이외에 다른 놈들이

더 있단 얘긴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만약 다른 존재들이 더 있다면 K.I.Z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는 거죠. 과거 230년전 단 한명 뿐인 하몬

이라는 상위차원 존재에게 당한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더구나 이번에 그런 존재들이 여러 명 된

다면 절대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그렇다면 이거 큰일이군...비록 현재 서바이벌 영역에 있는

[단테피오테스]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진행요원들 수천명을

파견했지만 그들 역시 상위 파동권인가 뭔가 하는 존재들에게

당할 위험이 있지 않은가?"

"저도 그런 우려를 예상하고 이미 조치를 취했습니다. 일단

파견된 진행요원 들의 무기는 2단계 용 고고학적 탄환총이

아닌 현재 무기시스템 빔 건들렛으로 무장했습니다. 무엇

보다도 진행요원들 중엔 그 이름만 들어도 놀랄만한 자들이

있죠. 일명 홀론의 그림자라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전 미

연방 살상 서바이벌 챔피온 출신과 그를 추종하는 살상

게임 상위랭커들이 포함되었습니다,"

홀론의 그림자라는 말이 파르마 기획실장의 입에서 나오자

회의장은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홀론의 그림자라면...지금으로부터 10 년 전쯤인가..미연방

지역의 전설적인 살상 매니아 아닌가? 후..어..어떻게 그를.."

더구나 다른 상위랭커들까지 한자리에..더구나 우리 측 진행

요원으로.."

"사태가 이렇다 보니 거액을 주고 그들을 신속하게 영입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회장님 허락도 받지 않고 진행시킨 점 얼마

든지 질책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인가. 그들이 이 사태에 도움이라도 된다면

질책은커녕 파르마 실장 자네를 업고라도 다니겠네..."

*

한편 서바이벌 영내 협곡에는 각 조의 단테피오테스 회원들

이 갑자기 나타난 수천명의 진행 요원들을 보고는 어리둥절

하였다.

"뭐야..지금 아직 게임 중 아닌가..그런데 난데없이 진행요원

들이 들이닥치다니..."

검은 선글라스와 푸른 제복의 진행요원들은 저마다 현대식의

중무장을 하고 있었고 그 표정마저도 다소 비장감의 기운이

돌았으니 회원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하였다.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