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22. 마울로 계곡
데스퍼라도(Desperado)
마울로 계곡
패샷보이는 다 먹은 고기 뼈다귀를 숲 속으로 획 던지더니 이내
뒤로 벌렁 눕고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초여름을 가는 길목
이라서 밤 공기는 그다지 차갑지 않았지만 그는 다소 추운 듯
자신의 모포로 몸을 감쌌다.
"리크! 네가 뭐라 해도 너 만큼은 놓칠 수 없어.."
"후..정말 끈질기군..또 그 데스퍼라도 타령이냐.."
순간 누워있던 패샷보이가 벌떡 일어났다.
"데스퍼라도 용병단은 일종의 계시란 말이야..네가 믿든 안 믿든
간에 리크 너와 가르시온의 만남은 이미 예정된 만남이란 말이야.."
"계시라니? 게다가 예정된 만남은 무슨 소리야.."
"젠장 얘기하자면 길어! 아무튼 난 데스퍼라도 용병이 될 일원들
을 찾기 위해 장장 5 년 간이나 이 파가논제국을 해매고 다녔단
말이야..그간에 나와 대결을 벌인 자들만 해도 족히 수 백 명은
될 거야. 뭐 마음에 들만한 놈들은 한 명도 없었지만 오늘에 이르
러서야 너와 아까 그 놈 가르시온을 만났다는 거지.."
"후 5 년 간이라..대단하군..그런데 네가 오랫동안 누굴 찾아다녔
든지 말았든지 더구나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나 역시
따로 찾아야 할 사람이 있거든.."
"뭐 너도 따로 생각하는 용병단이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난 당장에 전쟁터로 가신 내 아버님과 형제인
카란의 생사가 궁금하단 말이지.."
"아버님과 형제라..후..그런 사연이..이놈의 지긋지긋한 전쟁....
결국 제 2계라는 신비영역 칼차온 세계에서 떨어진 그 함페서의
서(書) 때문에 여기 휴론계(인간계)가 온통 난리법석을 떠니..
빌어먹을.."
"도대체 함페서의 서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거야?"
"리크 너 진짜 촌구석에서 왔니. 난 도무지 리크란 네 놈을 이해
할 수 없단 말이야 그저께 파카트니 용병단을 맞아 단신으로
물리친 실력을 내가 두 눈으로 목격했고 그 정도 능력을 갖춘
자가 세상물정 모르는 촌구석에서 나왔을 리는 없을 텐데.."
"후후..미안하지만 나는 변방 중에서도 한참 변방인 가드린 마을
에서 왔지..트로얀 산맥 끝자라기에 아주 작은 마을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한마을이지.."
"트로얀 산맥의 끝자라기라..후 이건 촌구석 정도가 아니네...
그렇다면 네가 파카트니 용병단에게 사용했던 그 황당한 마법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검을 휘두르니 그냥 사람들의 픽픽
쓰러지는 그 무시무시한 기술 말이야..그 어떠한 에너지 응집체도
없이.."
"무형(無形)의 기(氣).."
"그..그게 뭔 말이야..아까부터 이상한 언어를 사용하는데.."
"발음하기가 좀 어렵지..다시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가 내 자신 내부 속에 형성된 것이지 난 단지 그런 에너지를
검에 주입 시켜 발산한 거고..아마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사실
나도 잘 몰라.."
"헤헤..황당한 소리군..마법이란 공기 중에 널리 퍼져있는 여러
에너지를 응집하여 공격하는 기술인데 그런 것을 몸 안에 형성
시킬 수 있다니.."
"설명하자면 길어..더구나 말해줘도 이해가 가지 않을 거야. 그나
저나 마법이라는 것은 아무나 사용 할 수 있는 거니?"
"뭐 현재에는 개나 소나 웬만한 전투기술이 있는 자들은 사용
할 줄 안다고 봐야지. 바로 수 백 가지 마법기술이 적혀 있는
함페스의 서가 나타난 후로는....비록 지금은 론 제국이 함페스의
서를 보유하고있고 파가논 제국이 그것을 도로 찾기 위해 전쟁
을 벌이지만 사실 함페스의 서 이외에 또 다른 마법서(書)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어. 아마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마법
이란 소수의 마법사들만이 시전 할 수 있는 비전기술이었는데
이젠 아무나 사용 할 수 있으니..가르시온 역시 검에 불의 기운
을 불러오는 마법을 응용시킨 세파크 기술을 사용하는 거 보면
알잖아..젠장 기사단이 마법을 사용하는 자체가 어찌 보면 상상
도 못했던 일이지. 아무튼 지금 온 세상이 마치 뒤죽박죽 되었
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니까.."
"패샷보이 아까 함페스의 서 이외에 다른 마법서가 존재한다고
했는데 혹시 네가 가슴에 지니고 있는 양피지와도 관계 있는
것 아니야.."
"엥..네..네놈이 그걸 어..어떻게 알아.."
순간 패샷보이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하. 하루에도 열 댓 번은 몰래 꺼내보는 것 같은데 내가
모를 리 있겠어."
"엥..."
"뭐가 엥이야. 그 만 자자고."
"리크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까지 꼼지락 꼼지락 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리크는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바로 그때 패샷보이
가 등을 돌리고 무엇인가 하고있었고 리크는 도대체 패샷보이가
뭘 하나 살금살금 다가갔다. 순간 리크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후..기가 막혀서...누가 그까짓 양피지 가져 갈까봐 아예 안주머니
를 꼬매고 있냐?"
"............"
"쳇 진짜 쫀쫀한 놈이군.."
패샷보이는 리크를 한번 흘끔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리크 너 잘 때 저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자.."
"유치한 놈...."
***
넓은 들판을 지나자 거대한 산맥이 이들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르시온의 라르곤 기사단이 선두행렬을 이루고 있었고 뒤이어
나머지 두 기사단과 24 개의 용병단들이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한편 산맥이 나타나자 가르시온은 말에서 내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명령을 내렸고 이어 기사병들은 신속하게 대형 막사를
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막사 안에는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니 바로 3개 기사단의 단장들과 24개의 각 용병단 대표들
이었다. 어느새 막사 안에 임시로 설치된 테이블 주변 둘레에는
참석자들이 빙 둘러앉아서 맨 앞의 상석에 있는 가르시온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카그렌 산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했군요. 물론
마울로 계곡을 통과해야만 산맥의 초입지역으로 들어 갈 수
있는데 문제는 지난번에 말씀 드렸듯이 앞으로 우리가 통과해야
할 지역들이 예사롭지 않다는데 있죠. 요즘 들어 마울로 계곡을
지나서 아카그렌 산맥을 통과하지도 못하고 실종된 사람들의
숫자가 벌써 수 백 명에 이른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고 그 이후로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가기보다는 산맥 끝자라기를 빙 돌아서 가는 머나먼 길을
택하였죠. 물론 돌아서 가는 길은 예정보다 2 달 정도 더 걸
립니다. 지금 회의를 개최한 것은 과연 마울로 계곡을 지나
아카그렌 산맥을 넘어서 2주 내에 파가논 제국에 다다를 것인지
2달이 넘는 먼 길을 선택할 것인지 바로 그 문제를 상의 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때 착스 기사단장인 헬몬트가 말문을 열었다.
"후..다소 어려운 사안이로군요.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마울로 계곡과 아카그렌 산맥사이에서 원인
모르게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상황에서 과연
그곳을 통과 해야만 하는지.."
그때 뚱뚱한 체구에 짙은 황갈색의 수염을 한자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쳇..뭐가 무섭다고..우린 무려 2000여명이나 되고 명색이
파가논 제국을 도우러 가는 기사단과 용병단이 그 같은
소문에 겁이나 다른 길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실례지만 어느..용병단.."
"아차 내 소개를 안했구려..험.험..난 찬드라 용병단의 푸티 촌장..
아니 푸티 대장이라 합니다.."
찬드라 용병이란 말이 나오자 회의장의 참석자들은 일시에
푸티 촌장을 쳐다보았다. 찬드라 용병단 소속인 리크가 파카트니
용병단을 벌벌떨게 하였고 심지어 지난번엔 찬드라 용병중 가르
시온 대장에게 겁도 없이 대드는 자가 있지를 않나. 아무튼 이곳
까지 오는 여정에서 찬드라는 용병단은 다른 일행들사이에서
적지 않게 가십거리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회의에서
결국 그 대장이라는 자가 또 나섰으니..
가르시온 역시 찬드라 용병이란 말에 적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지난번 패샷보이와의 쓰라린 기억 때문인지 다소 긴장된 목소리
로 말했다.
"찬드라 용병단에 푸티 대장이시라....."
"험.험 분명 난 푸티 대장이 맞소..촌장이 아니고..."
"푸티 대장님 말씀에도...다..다소 일리가 있군요. 또 누구 다른 분
의견없습니까?"
가르시온 다소 껄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당찬
목소리가 쩡쩡 울렸다.
"난 케노리아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스캇이오."
사람들 역시 케노리아란 말을 듣자 이번엔 저마다 깜짝 놀란 표정
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길다란 회갈색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겨 번듯한 이마에 날카로운 콧날이 강인한 인상을 주는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젠장...이런 시시콜콜한 문제 때문에 회의를 열다니..난 당신들이
길을 돌아서 가든 안가든 저기 마울로 계곡과 아카르렌 산맥을
내 대원과 함께 넘을 것이오.."
스캇은 퉁명스럽게 말을 하더니 이내 막사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저..저런 건방진 몸 같으니...지가 아무리 케노리아 용병단 대장이
라고 감히 우리 기사단 단장들 앞에서 저렇듯 무례하다니.. "
착스 기사단의 헬몬트 단장 다소 기분이 상한 듯 말을 하자
참석자들중 누군가 한마디했다.
"후..이거 케노리아 용병단이 우리 대열에 포함된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군요. 사실 케노리아 용병단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파가논 제국에서도 몇 안 되는 용맹한 전사 출신들 아닙니까?
더구나 그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스캇 전사를 이런데서 볼 수
있다니.."
"후..나도 전혀 몰랐네 워낙 말수가 없는 자들이라..그저 평범한
용병단들인 줄 알았는데 케노리아 용병단 들이라니...더구나 스캇
전사까지..그들이야말로 일당백의 전사들이지.."
"흠..그들과 같이 마울로 계곡과 아카그렌 산맥을 통과한다면 뭐
가볼 만은 한데..."
"암 그렇고 말고..그들과 함께라면야...뭐 겁날 거야 없겠지.."
순간 가르시온의 눈썹이 위로 치켜졌다. 각 용병대장들이 케노
리아 용병단 대장 스캇에 의해 쉽게 동요를 일으키자 내심
불쾌감이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명색이 라르곤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가르시온에게는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었으리라.
결국 회의는 마울로 계곡을 지나 아카그렌 산맥을 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에 길을
떠나기로 했다.
한편 리크는 근방 숲 속에 위치한 커다란 나무 밑에 가부좌
를 틀고 앉아 있었다. 양쪽 허벅지에 자신의 손바닥을 편 체
올려놓았고 두 눈은 지긋이 감고 있었다.
"무상무념(無上無念)이라....목유성 스승님은 이곳 세계에 흐르는
프아라(puarra)의 에너지가 무공(武功)의 원천이 되는 기(氣)와
같다고 말씀하셨지..그러한 기(氣)를 단전에 쌓으면 쌓을수록
내공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고..."
잠시 후 리크는 얼굴에 땀이 송송 베인 체 눈을 떴다.
"후..정말 모르겠군...정신이 집중되지가 않아..도대체 지난번
그 천소상심결의 구결을 잘못 운용했다가 혼 난 이후 도대체
다른 내공심법의 구결이 먹혀 들어가지 않으니..이것 참...
더구나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지난번 파카트니 용병들과 싸울
때 무심코 사용했던 초혼검법(超魂劍法)이 한번에 시전 되다니..
더구나 나..난 아직 내공심법 조차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약 일주일 동안 드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왔고 이제야 남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숲 속을 발견한 리크는 무공(武功)수련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리크는 자신의 단전호흡을 기초
로 운기토납법을 운용하여 점차적으로 심후한 심법으로 이끌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내심 답답해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리크는 아직도 자신이 무심코 운용했던 천소상심결이 내부에
있던 거대한 프아라(puarra)에너지를 자신의 단전에서 끌어내어
온몸의 세포 구석구석까지 녹아들게 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목유성 스승의 세계 무림에서도 단지 몇 명의 초고수
만이 겨우 시전 할 수 있는 초혼검법(超魂劍法)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리크의 내공수위가 상상도 못할 경지
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허나 정적 본인은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 그저 실망스런 표정만을 지을 뿐
이었다.
"후...안되겠어 앞으론 어려운 무공구결보다는 그저 가벼운
것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좋겠군...그래 무림에는 정파와 사파
가 있다고 했지 특히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무공들이 그나마
수련하기에 그다지 부작용이 없다고 목유성 스승님이 말씀
하셨지.. 구파일방(九派一幇)이란 정파 무림의 대표격인 아홉 개
의 거대 문파와 하나의 방회로 이루어졌고 구파 가운데 대개
소림, 무당, 아미, 곤륜, 화산, 점창의 여섯개 문파에 청성, 종남,
공동, 장백, 형산파가 이에 속한다 그러셨지. 일방이란 개방을
뜻하는 거고.. 후...많긴 많군.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랍군 그 많은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모든 무공구결들을 대부분 외웠으니..후..그나
저나 뭐부터 시작해야하지..쳇 그것도 문제군....지난번 파카트니
용병단과 대결할 때 어떨결에 사용한 아미파의 난피풍검법
(亂披風劍法)의 위력도 상당했는데..이번엔 좀 다른 것을..소림파..
음..화산파..아냐...무당파로 할까...진짜 머리 아프군.."
그때 나무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꼬마야 이런데서 뭐하고 있냐..그것도 이상한 폼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리크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회갈색의 긴머리에 강인한 인상의 남자는 빙그레
웃더니 한마디했다.
"대열과 너무 떨어져 있지 말거라. 이런 한적한 숲 속이야말로
락케스 종족들이 숨어살기에 적당하지..후후..그들의 표적이
되지 말고 어서 대열로 돌아가거라.."
"누..누구시죠..."
"내 이름은 스캇이라 한다.."
"스캇이라면 케노리아..용병단...대장..."
"후후..어서 돌아가거라..난 락케스 종족에게 볼일이 있거든 그놈
들 몇 놈 잡아 족치면 마울로 계곡과 아카그렌 산맥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구나.."
단단한 근육에 그 용모마저 결코 범상치 않은 전사의 모습..
더구나 길다란 회갈색의 머리에 부드러운 말투까지..생긴 것
마저 그렇게 보고싶던 헤수스 아저씨와 비슷하게 생긴 스캇에게
리크는 자신도 모르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락케스 종족이라니요....저..저도 같이 가면 안될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