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Paulus und Zweiter Weltkrieg (완)
“혹시··· 다음 대통령 선거에 원수 각하께서 한번 나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예.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 독일에서 대통령직에 어울릴만한 사람은 원수 각하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슈페어의 말대로, 지금 독일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만한 거물급 정치인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1933년에 나치당이 전권을 장악한 이래로 사회민주당과 가톨릭 중앙당은 완전히 존재감을 잃어버린 데다가, 집권 여당인 나치당조차도 사실 히틀러의 거수기에 불과한 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히틀러와 나치당 수뇌부가 한 번에 사라져버리고, 홀로 남은 슈페어가 전시 총리로서 어찌저찌 국정을 운영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니 인물이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그럼 나치당은 어찌 되는 겁니까? 지금까지는 수권법을 통해서 일당독재를 이어왔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수권법을 계속 연장하는 것도 이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젠 총통도 없는 데다가, 전쟁도 끝났으니 이렇다 할 만한 명분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나치당 내부에서도 분파의 조짐이 보이고 말입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총통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수권법도 일단 법률상으로는 7년마다 국민투표를 다시 치러서 선출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키고 계엄령을 발동해서 모든 선거를 중단시키는 방법으로 그것을 회피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전쟁이 끝났고, 그렇기에 나치당이 다시 수권법을 연장하려면 일단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딱 이 타이밍에 카를 한케, 그자가 나치당의 대선 주자로 나선 거로군요. 그리고 총리께서는 제가 그 대항마로 나가주기를 바라는 것이고 말입니다.”
“하하··· 탁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도 카를 한케보다는 제가 계속 총리직을 이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사실 그의 말대로였다.
나치의 인종주의적 정책에 심취한 카를 한테와는 다르게, 지금까지 슈페어 총리는 국정 운영과 경제 문제에 더 많은 신경을 써왔으니까.
아마 이번에 나치당 내부에서 분파가 발생한 것도 그런 슈페어의 정책에 반발한 골수 나치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리라.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래서 슈페어 총리의 연임이 한 번 더 힘을 실어준다면···.’
내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슈페어 총리가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각하. 지금 나치의 위세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전쟁 영웅으로 명망 높은 각하뿐입니다.”
“······.”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고개를 들어 슈페어 총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
타각- 타각- 타각-
이른 아침, 푸르스름한 빛이 스며드는 어두운 방 안에 타자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타각- 타각- 타각-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종이 위에는 투박한 글자들이 새겨져 갔다.
“후우··· 빌어먹을.”
끝없이 쏟아지는 글씨를 노려보면서 나는 쉴새 없이 손을 놀렸다.
타각- 타각- 타각- 띠링.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페이지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창밖에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깨웠다.
“신문이요!”
“···이런, 벌써 이런 시간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켠 뒤, 현관으로 나가 신문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려서 아침 삼아 마시며 느긋하게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의 날짜는 1945년 5월 1일.
아직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뉴스거리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 중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바로 독일의 대통령 선거였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 독일의 제4대 국가 대통령으로 당선!’
“호오··· 결국 만슈타인 원수가 당선되었나. 뭐, 그 양반이라면 잘 하겠지.”
나는 슈페어 총리의 대선 출마 제안에 며칠 동안 심사숙고하다가 결국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왜냐하면, 본래의 목적이었던 독일의 패망을 막는 것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좀 편안히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슈페어가 나를 대신해서 찾은 파트너는 바로 만슈타인 원수였다.
이에 야심만만한 만슈타인 원수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동부전선에서 함께 싸운 참전 용사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결국 당선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 밑으로는 카를 한케를 비롯한 나치당의 일부 인사들이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창설한다는 얘기가 대강 적혀있었지만, 이런 것은 아무래도 좋으리라.
그리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영국 정계의 소식이 적혀 있었다.
“···이런, 처칠 총리는 결국 실각한 건가. 뭐, 강화 이후로도 계속 맞서 싸워야 한다며 떠들어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연합국과 독일이 강화를 체결한 이후에도 영국의 경제 사정은 그리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국은 유럽 대륙을 장악한 독일과 도버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바라보게 되는 바람에 막대한 재정을 군비로 지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난 전쟁에서 지중해의 몰타와 크레타 섬마저 독일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식민지에 대한 지배력마저 크게 약화된 상황.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전쟁만을 외쳤으니, 영국인들이 내각을 갈아 치워버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아무리 내각이 바뀌었어도 대독일체제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바뀌지 않겠지만.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는 영국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한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 드디어 무조건 항복!’
“···멍청한 놈들, 결국 이럴 거면 처음부터 항복하는 것이 나았을 텐데.”
일본인들은 유럽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근성과 기개를 보이며 끝까지 본토 결사 항전을 이어나갔다.
이에 미군은 진주만의 수치를 갚아주겠다는 듯이 무지막지한 폭격과 공습으로 일본 전역을 새카맣게 태워버렸다.
뭐, 들리는 말로는 미국 측 장군이 ‘일본을 석기 시대 이전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말했다던가.
회귀 이전과 비교해보자면 이번에는 원자 폭탄을 맞지는 않았으니 차라리 다행인가 싶기도 하지만, 미군의 몰락 작전을 보면 차라리 원자 폭탄 두 대 맞고 끝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일본과 한반도, 만주의 영토 문제로 미국과 소련이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동북아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그리고 유럽에서는 영국과 독일, 소련이 마주 보게 되는 건가. 이제 완전히 미, 독, 소 3강 구도로 흘러가겠군.”
냉전 대신 3강 구도라.
그럼 앞으로 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냉전처럼 조용히 체제 경쟁에 열을 올릴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강대국 간의 전면전이 일어나서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스탈린그라드의 6군도, 패전으로 몰락했던 독일도 모두 구했으니까.
이제 나의 전쟁은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신문을 접어 폐지로 내놓은 뒤 머그잔을 싱크대에 갖다 놓았다.
‘자, 이제 회고록이나 마저 써볼까.’
그리곤 서재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초인종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파울루스씨,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씨 계십니까?”
“···지금 나가겠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발걸음을 돌려 현관으로 나갔다.
내가 문을 열자, 그곳에는 우체국 집배원 복장을 한 젊은이 하나가 등기 우편을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씨 본인이 맞습니까?”
“그래, 내가 파울루스요.”
“여기, 등기 우편입니다.”
“고맙소이다.”
내가 우편을 받아 돌아서려고 하자, 그 청년은 머뭇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왜 그러시오? 혹시 인감이 필요한가?”
“아, 아닙니다. 그게···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6군 사령관이셨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 각하가 맞으십니까?”
“맞소이다.”
혹시 나와 인연이 있는 장병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운전병부터 부관, 참모장교까지 기억나는 얼굴들을 모두 떠올려봤지만, 애석하게도 이 젊은이는 전혀 짚이는 바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를 어디서 보셨소? 나로서는 전혀 모르겠소만.”
“하하, 각하께서 기억 못 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저는 그저 지나가다 한번 각하를 뵌 것 뿐이니까요. 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에 격파된 4호 전차를 기억하십니까?”
격파된 4호 전차?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라···.
그 말에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격파된 4호 전차 승무원들에게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훈했었지.’
“그때 각하께서 사관 후보생으로 추천해주셨던 카를 프란츠 상병입니다. 각하의 추천 덕분에 이렇게 중위로 무사히 전역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힘차게 경례하는 카를 프란츠 중위에게 마주 경례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닐세. 그게 어떻게 내 덕분이겠는가. 다 자네가 열심히 싸운 덕이지. 오히려 나야말로 감사할 따름일세. 자네와 같은 장병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 독일이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네.”
“하하하, 하긴 각하의 지휘를 따라다니느라 몇 번이고 죽을뻔하긴 했었지요.”
“그래, 그동안 고생했네. 앞으로도 독일을 위해 힘써 주시게.”
“물론입니다, 각하.”
나는 프란츠 중위와 힘차게 악수를 나눈 뒤,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각- 타각- 타각-
‘스탈린그라드 전투라···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
5년 전, 회귀 이후 지금까지 지나온 나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크레타섬 공방전부터 바르바로사 작전, 레닌그라드 함락, 모스크바 공방전, 블라우 작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돈강 방어선과 북아프리카, 노르망디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 독일은 결국 승리를 거뒀다.
그 기억을 되새기며, 나는 다시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각- 타각- 타각-
이 책의 이름은『Paulus und Zweiter Weltkrieg』.
지난 2차 세계대전 당시, 내가 독일군을 지휘하며 겪은 일들에 대한 회고록이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