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56화 (156/157)
  • 156화. 종전, 그리고 그 이후

    1944년 11월 24일.

    연합군이 전멸하고 서부전선이 완전히 종결된 지 약 열흘이 지났을 무렵.

    독일의 외무장관, 리벤트로프는 연합국 협상단을 만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방문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장관님. 스톡홀름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하. 이것 참, 어쩌다 보니 자주 뵙게 되는군요.”

    “저희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공항에서 내린 리벤트로프는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스웨덴 측 대표단과 악수를 나누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연합국과 협상할 때마다 매번 스웨덴 측의 중재에 기대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숨어있었다.

    왜냐하면, 유럽 대륙이 전부 독일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는 바람에 현재 영미 연합군과 독일 사이에는 이렇다 할 만한 중립국이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스페인과 비시 프랑스는 연합국으로부터 친 독일 국가로 분류된 지 오래였고, 스위스는 내륙 한가운데에 있어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그리고 노르웨이와 덴마크,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진즉에 독일에게 점령당해서 국가판무관부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해 스웨덴은 비록 독일과의 협조를 이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무장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고 지리적으로도 양국에게 모두 가까웠다.

    그렇기에 독일로서는 소련에 이어 연합국과 협상할 때에도 이곳 스웨덴 외에는 마땅히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연합국 놈들과 담판을 짓고 나올 테니까 말이지.’

    리벤트로프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연합국 대표단이 기다리는 협상장 안으로 힘차게 발을 디뎠다.

    *****

    “독일 측 대표, 리벤트로프 장관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이런, 드디어 주인공께서 등장하셨군.”

    “하하하, 다들 먼저 와 계셨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리벤트로프 장관이 회의실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이미 미국과 영국 측 대표가 먼저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벤트로프는 테이블의 상석 오른편, 미국 측 대표의 맞은편 자리로 걸어가 그곳에 앉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목상 중재를 맡은 스웨덴 대표단이 독일 측의 옆자리에 앉자 본격적으로 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럼 인사치레는 됐으니, 가타부타할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오.”

    “예, 좋습니다. 그럼 사전 협의에 대한 내용 확인부터 하지요.”

    “좋소, 먼저 시작하시오.”

    사실, 오늘 협상은 이 자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실무진들 간의 사전 접촉을 통해서 대부분의 협의를 끝낸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협의 내용을 최종 확인하고 마지막 남은 문제들을 결론짓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역시 전후 각국의 영토 문제를 확정 짓는 것이었다.

    “···그럼 당신네들은 지금 독일군의 점령지를 전부 자국 영토로 삼겠다는 말이오?”

    “하하, 그럼 설마 대사께서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점령지를 포기하라고 말씀하려는 것입니까?”

    “끄응···.”

    “그리고 당신들께서는 지금 연합군이 불법 점거 중인 비시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지들을 모두 돌려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령 북아프리카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딱히 이견의 여지가 없는 수준이었다.

    왜냐하면, 연합군은 현재 유럽 대륙에서 완전히 퇴출당하는 바람에 무엇 하나 협상에 내놓을만한 카드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루즈벨트가 유럽 전선을 포기하고 태평양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겠다고 결정한 탓에, 연합군은 북아프리카의 점령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코델 헐 국무장관은 한걸음 물러서며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좋소. 그럼 현재 독일이 점령한 유럽 대륙의 점령지를 모두 정당한 영토로 인정하겠소. 그리고 비시 프랑스 정부와 그들의 식민 영토도 인정하지. 그 대신 조건이 있소.”

    “예, 어디 한번 말씀해보시죠.”

    “우선, 당신들도 영국령 지브롤터와 이집트를 인정하시오. 그리고 이후 당신들이 영국령을 공격할 경우, 이는 우리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겠소.”

    “뭐, 어렵지 않군요. 하지만 몰타와 크레타는 못 돌려드립니다.”

    “···쯧, 알겠소이다.”

    그런 리벤트로프의 말에 영국 측 대표단은 썩은 표정으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영미 연합군과 독일 간의 전쟁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

    1944년 12월 15일.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약 5년 만에, 드디어 모든 전쟁이 끝나고 유럽 대륙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에 독일 전역의 라디오에서는 언제나 슈페어 총리의 종전 및 승리 연설이 흘러나왔고, 마을의 거리는 귀향하는 군인들과 환호하는 주민들로 매일같이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이런 광경이 모두에게 즐겁고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나처럼 도로 한복판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영 인파를 맞닥뜨린 경우에게는.

    “···이런. 죄송합니다, 각하. 동부 발 수송 기차가 방금 막 역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병사들과 환영객 때문에 한동안은 꼼짝도 못 할 것 같습니다.”

    “하하, 어쩔 수 없지. 지금까지 고생한 장병들인데, 이 순간을 마음껏 만끽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약속 시간까지는 제법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가시게.”

    “예. 그럼 라디오라도 틀어드리겠습니다.”

    “···그건 사양하겠네. 요즘 라디오를 틀어봐야 총리님의 목소리밖에 더 나오겠는가?”

    “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그렇게 나는 도로변에 차를 세운 채 베를린 역에서 쏟아져나오는 인파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역시, 운전병의 말대로 역에서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회녹색 국방군 군복을 입은 장병들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낡고 닳은 군복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광을 낸 군화에 가슴팍에는 번쩍이는 훈장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각양각색의 이들 누구나 너나 할 것 없이 가족, 연인, 친구와 얼싸안고 함박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나는 푹신한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댄 채 그런 베를린의 평화로운 풍경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끝났군.’

    그래, 드디어 이 빌어먹을 전쟁이 끝났다.

    더 이상 내 조국 독일은 전범국도, 분단국도, 패전국도 아니다.

    우리는 피 흘려 싸운 대가로 결국 승리를 쟁취했으며, 영광과 미래의 번영을 손에 넣었다.

    앞으로 독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나는 누구에게나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독일의 원수로서, 그리고 참모총장으로서 주어진바 자신의 소임을 다 했노라고.

    그렇게 내가 여운에 잠겨 있을 때, 운전병의 목소리가 나를 상념에서 깨웠다.

    “아, 이제 슬슬 사람들이 줄어드는군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다시 출발한 차량은 아직 혼잡한 인파를 헤치고 천천히 도로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차량은 눈에 익은 건물 앞에서 멈춰섰다.

    그곳은 바로, 베를린 빌헬름 가 77번지에 위치한 국가 수상부 관저였다.

    “그럼 저는 근처의 적당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차에서 내린 나는 잠시 그 앞에 서서 국가 수상부 관저를 올려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나를 불렀을지 한번 들어가 볼까.’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비서실장으로 보이는 이가 갤러리까지 마중 나와서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를 따라 2층의 집무실로 올라가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슈페어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마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무래도 제가 늦은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오는 도중에 역 앞에서 길이 막혀서 말입니다.”

    “하하, 요즘 베를린 역 근처는 난리도 아니지요. 이 도시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서 싸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한동안 별 의미 없는 담소를 나누다가, 나는 슈페어 총리를 슬쩍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용무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하, 이것 참. 어쩌다 보니 제가 각하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았군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제 전쟁도 끝났는데, 제가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남는 것이 시간이지요.”

    그런 내 대답에, 슈페어 총리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마 예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사실 그 문제 때문에 각하를 불렀습니다.”

    “···그 문제라니, 무슨 문제 말입니까?”

    “각하께서는, 현재 독일의 정치 현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슈페어 총리의 뜬금없는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치에 대해?’

    독일의 정치는 1933년, 수권법이 재정된 이래로 지금까지 나치당의 일당독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1943년에 내가 히틀러를 암살하면서 잠시 정국이 혼란에 빠지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슈페어가 총리직에 앉으며 기존의 체제가 유지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히틀러의 폭주를 막고 독일의 패망을 피하고자 했을 뿐, 독일의 정치에 관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총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군요. 저는 일개 군인일 뿐,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군인은 정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법이지요.”

    “그렇습니까? 그건 뜻밖의 말씀이군요. 저는 각하께서도 당연히 당면한 정국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시리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당면한 정국··· 말입니까?”

    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슈페어는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 이건 조금 조심스러운 얘기입니다만, 현재 나치당에서 당내분파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당내분파라면··· 설마.”

    “예, 맞습니다. 카를 한케, 그 양반이 드디어 반기를 든 것이지요. 그래서 각하께 드리는 말입니다만.”

    알베르트 슈페어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원수 각하께서 다음 대통령 선거에 한번 나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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