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55화 (155/157)

155화. 결전 (6)

“혹시 장관님께서는 원자 폭탄에 대해서 들어보셨소이까?”

“···원자 폭탄 말입니까?”

비록 개발 도중에 수렁에 빠져서 헤매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독일도 1939년부터 지금까지 ‘우라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원자 폭탄 개발 계획을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리벤트로프 장관도 내가 꺼낸 원자 폭탄이라는 말에 그리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원자 폭탄이라··· 그러고 보니, 그런 엄청난 무기를 과학자들이 개발 중이라는 얘기를 예전에 몇 번 들었던 것 같군요. 뭐, 최근에는 거의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만.”

“바로 그거요. 현재 빌헬름 카이저 연구소에서 하이젠베르크 박사의 주도하에 개발 중인데, 만약 완성된다면 대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을 거라고 하더군.”

“대단하군요. 그건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만··· 그래서 그것이 이번 회담과 어떠한 관련이라도 있습니까?”

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되묻는 리벤트로프 장관의 모습에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아무래도 영미 연합국 놈들은 우리가 원자 폭탄을 거의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오.”

“그게 정말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나도 믿기 어렵지만 명백한 사실이오. 지난번 회담에서 미국 측 대표로 나온 조지 C. 마셜 참모총장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소만, 그때 슬쩍 떠보니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더군.”

“···제가 모르는 사이에 두 분께서 그런 대화까지 나누셨습니까.”

“일부러 몰래 만난 것은 아니오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군. 아무튼, 아무래도 저들은 저희가 개발한 V-2 로켓을 원자 폭탄의 운반수단이라고 멋대로 오해해서 잔뜩 긴장한 모양이더구려. 그래서 V-2로 런던을 공격한 것도 일종의 무력시위로 받아들여진 것 같소.”

“···후후, 이것 참. 연합국 놈들이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나 싶었더니 뒤에서는 이런 사정이 있었군요. 일이 제법 재미있게 돌아가는군요.”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비릿한 미소를 짓는 리벤트로프 장관을 바라보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조용히 넘어가서 다행이군. 리벤트로프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아냈느냐고 출처를 꼬치꼬치 캐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했을 텐데 말이야.’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원자 폭탄에 관한 문제는 한동안 나만 알고 있는 채로 넘어갈까 하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가 다음 회담에서 연합국 측 대표단이 원자 폭탄 문제를 대놓고 언급해버리면 내가 기껏 던져놓은 블러핑이 모두 들통나버릴 터.

그리고 이렇게 어렵사리 만들어진 강화의 기회마저도 모두 한순간에 어그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강화 협상의 책임자로 나설 리벤트로프 장관만큼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고 있어야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해서까지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지만 말이지.’

하지만 뭐, 어차피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것은 저쪽에서도 굳이 언급하지 않을 테니 지금은 이 정도만 말해둬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그리고 미국놈들이 언젠가 완성해낼 원자 폭탄은··· 전후에 하이젠베르크 박사를 닦달해서 어떻게든 따라잡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한 나는, 벌써부터 이 정보를 어떻게 써먹을지 궁리하며 신이 난 리벤트로프 장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내가 장관님께 전해드릴 말은 그게 전부요. 다음 회담에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구려.”

“하하,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은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기대하겠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내 등 뒤에서는 리벤트로프 장관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한편 그 무렵, 프랑스 북서부 코탕탱 반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세르부르 일대.

이곳에서는 현재, 몰려오는 독일군에 맞서서 연합군 병사들이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는 베이커 중대! 전방 1000m 킹 타이거 접근 중! 증원이나 공중지원 필요하다!”

“이미 셔먼 중대가 출발했으니,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젠장, 타이거도 아니고 킹타이거라고! 론슨 라이터 말고 퍼싱을 보내!”

“여기는 델타 중대, 전방에 판터 접근 중!”

“젠장, 판터 정도는 바주카로 처리하라고!”

그러나 이런 병사들의 분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합군 전선은 붕괴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몰려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 사방에서 몰려오는 독일군 중전차들이 미군의 셔먼 전차의 숫자와 비슷할 지경이었고, 일개 보병들조차도 화력과 숙련도 면에서 미군을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패튼이 물러난 뒤 상륙군 총사령관 자리를 이어받은 브래들리 중장은 지도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후··· 빌어먹을. 이제는 차라리 영국으로 연행되어 간 패튼 장군의 처지가 부러워질 지경이로군.’

아이젠하워의 명령을 거부하고 현지 사수를 고집하던 패튼은 이제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겨진 미군에게 별다른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전황은 기울 대로 기울어버린 데다가, 이제 와서 아이젠하워의 뜻대로 병력을 물리려고 해도 철수 작전을 시도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패튼 장군도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알았기에 무리한 철수 작전 대신 결사 항전에 희망을 걸어본 것이었겠지.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한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이곳, 유럽 전선은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그것을 수습하는 것이 지금 브래들리에게 주어진 임무였으니까.

‘후···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브래들리는 고개를 들어, 이미 무수히 많은 낙서와 흔적으로 더럽혀진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현재 연합군은 세르부르 항구의 파괴된 시가지를 중심으로 약 5개 사단이 밀집해 결사 항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

그나마 이마저도 파괴된 건물 잔해와 복잡한 시가지가 독일군 기갑부대의 진입을 막아주고 있기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뿐, 저들이 피해를 감수하고 밀고 들어오면 언제 함락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후후··· 이제는 지휘고 뭐고 고민할 거리조차 없군.’

그렇기에 이제 브래들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딱 한 가지 문제뿐.

그건 바로 병사들과 함께 항복할 것인가, 아니면 지휘부와 함께 탈출할 것인가였다.

“······.”

그렇게 브래들리가 고민하는 동안, 사령부의 참모장교들은 모두 말없이 그의 결단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브래들리의 앞에 놓여 있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가만히 지켜보던 브래들리는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상륙군 사령관, 브래들리 중장입니다.”

“드디어 받으셨군, 중장. 아직 무사한 것 같아 다행이오.”

수화기 너머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브래들리의 예상대로 역시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이었다.

“···예, 총사령관. 어떻게든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것도 얼마나 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군. 어쨌든 브래들리 중장, 어서 빨리 영국으로 돌아오시오. 전쟁에서 패하더라도 장수가 잡히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각하, 여기는 아직 5개 사단이 남아있습니다. 이들을 버리고 도주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 그들을 위한다면, 먼저 당신이 빠져나와야 하오.”

냉정한 얘기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이젠하워의 말이 옳았다.

브래들리와 같은 고위 장성급 지휘관이 독일군의 포로로 잡혀봤자 차후의 강화 협상이나 포로 교환에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는 데다가, 그가 먼저 빠져나와야 병사들도 항복할 수 있을 테니까.

“브래들리 중장. 이번 패배는 당신의 책임이 아니오. 그리고 패튼의 책임도 아니고, 몽고메리 원수의 책임도 아니지. 그러니 어서 돌아오시오.”

마치 책임을 각오한 듯이 초연한 아이젠하워 장군의 목소리에, 브래들리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각하.”

*****

그리고 그날 저녁 11시.

바다가 완전히 어둠에 잠겼을 무렵, 브래들리 중장은 항구에 미리 정박해 있던 HMS 아칸서스 구축함에 몸을 실었다.

브래들리가 배에 오르자, 갑판에 미리 나와 있던 함장이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HMS 아칸서스에 승선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각하. 짧은 시간이나마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네. 그럼 이 배로 포츠머스까지 가는 건가?”

“예. 항해 거리가 멀지 않아 독일놈들의 눈을 피하기 쉬운 구축함으로 모시기로 되었습니다. 대신, 출발한 직후에 호위 함대가 합류할 겁니다.”

“알겠네. 그럼 잘 부탁하지.”

“예!”

그렇게 브래들리 중장을 필두로 주요 지휘관들과 위급한 부상병, 그리고 소수의 프랑스인 협력자들까지 모든 인원이 탑승하자 HMS 아칸서스는 조용히 밤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항구로부터 거리가 충분히 멀어지자 함장의 허가를 받은 브래들리 중장은 갑판으로 나와 저 건너편의 세르부르 항구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시끄럽군.”

손목시계의 시침은 이미 새벽을 가리키고 있건만, 격전이 벌어지는 세르부르 항구는 밤조차 잊은 것처럼 시끄러운 포성과 화염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브래들리 중장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내일 오전 5시까지 세르부르 항구를 사수한 뒤 항복하라는 것.

그 명령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저곳에서는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무의미하게 죽어 나가고 있을 터였다.

이에 대해서 아이젠하워 대장은 그것이 브래들리의 잘못도, 패튼의 잘못도, 몽고메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과연 정말로 그러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브래들리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 그가 이 영국해협을 건너는 순간 이후로 영미 연합군은 두 번 다시 유럽 대륙과 독일에게 관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날의 퇴각은 아마도 브래들리의 패배로 역사에 기록되겠지.

“후··· 다 끝장나버렸군. 유럽 전선도, 그리고 이 빌어먹을 전쟁도.”

브래들리 중장은 아직도 포성과 섬광이 번쩍거리는 세르부르 항구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세르부르 항구 시가지에서 농성하며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하던 연합군 부대 3만 5천명이 차례대로 독일군에게 투항했다.

1944년 4월 17일, D-day부터 지금까지 무려 7개월간 끈질기게 버티던 서부전선이 완전히 종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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