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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52화 (152/157)

152화. 결전 (3)

“이미 워싱턴 D.C.로부터 승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병력을 물리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각하께서는 병력을 물리고 퇴각을 준비하십시오.”

“······.”

그 말을 끝으로 아이젠하워의 전화는 끊어졌다.

그러나 패튼은 통화가 끝났음에도 한참 동안 수화기를 움켜쥔 채 작전 지도를 노려보았다.

‘뭐? 승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병력을 물리라고? 빌어먹을···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인 놈들이 제멋대로 떠들어대는군.’

백번 양보해서 지금 유럽 전선을 포기하겠다는 것까지는 좋다.

사실 그 결정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패튼이 모르는 어떤 정치적 이유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 병력을 물리고 퇴각을 준비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현재 노르망디 일대에 배치된 연합군 병력은 무려 2개 야전군, 총 12개 사단에 달한다.

그런데 이런 대군을, 그것도 그냥 육로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바다를 건너서 영국까지 퇴각시키라니.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하겠는가?

‘그 잘나신 영국군 놈들도 소드 해안과 생 브리외에서 철수 작전을 시도하다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었지. 그나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됭케르크 철수 작전도 사실 프랑스군 3만4천 명이 끝까지 후방을 엄호해줘서 겨우 가능했던 거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투입된 연합군 상륙군의 규모는 됭케르크 당시의 영국군과는 비교가 불가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이 지휘 체계가 무너진 채 속수무책 패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섣불리 퇴각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전선이 무너져 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워싱턴 D.C.에서 펜대를 굴리고 있는 높으신 분들은, 그리고 영국에서 탁상공론만 펼치고 있는 아이젠하워는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병력을 물리고 퇴각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거겠지.

그렇다면 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험을 무릅쓰고 명령대로 퇴각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각하.”

참모장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패튼은 결단을 내리고 지시를 내렸다.

“참모장, 각 제대 사령관에게 다시 한번 전파하게. 퇴각은 절대로 불허한다. 모두 현재 위치를 끝까지 사수하도록. 이상일세.”

그런 패튼의 지시에 참모장은 깜짝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각하,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은 이게 최선일세.”

그러나 변함없는 패튼의 대답에, 참모장은 돌아서서 각 제대 사령부에 그의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패튼은 내심 각오를 다지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그가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

1944년 11월 10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서부 전구 총사령부.

아군의 공세가 재개된 지 약 2주가 지난 지금, 나는 파리를 다시 방문해 클루게 원수로부터 전황의 추이를 보고받고 있었다.

“···해서, 현재 아군은 르세부터 코랑탕까지 진격한 상태요. 이제 세르부르 항구까지는 고작 40km도 남지 않았지.”

“르세부터 코랑탕이라··· 일전에 연합군이 아군의 공세를 막아냈던 그 방어선이군요.”

“하하,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그때와는 다르게 적들은 패퇴하고 있고, 아군은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나는 클루게 원수의 호언장담에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현재 적들은 패잔병들을 긁어모은 8개 사단에 불과한 데에 반해, 아군은 동부전선에서 도착한 베테랑 부대가 20개 사단이나 투입된 상황.

게다가 이것도 코탕탱 반도의 폭이 30k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20개 사단밖에 투입하지 못한 것일 뿐, 후방에는 훨씬 더 많은 예비대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 정도의 전력 차라면 굳이 내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낙승이겠군. 하긴 모델과 롬멜이라는 명장에게 충분한 수의 베테랑 부대를 쥐여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지.’

사실 지금 저 코탕탱 반도에서 연합군을 지휘하고 있을 패튼 장군도 충분히 명장이라고 불릴만한 인물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우선 영국군의 전멸 때문에 연합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3개의 항구 중 2개가 날아가 버린 데다가, 압도적인 전력 열세의 상황에서 방어전을 치르느라 그의 특기인 기동전도 선보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병사들의 숙련도나 무장 상태도 슈투름게베르와 쾨니히스 티거로 무장하고 소련군을 상대하다 온 아군이 우세했고, 심지어 이들을 움직이는 지휘관마저도 독일군 중 최고의 명장이라 손꼽히는 두 사람이었다.

‘뭐, 패튼 장군이 퇴각이 아니라 항전을 택한 것은 조금 뜻밖이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반전이 없다면 패배를 피할 수는 없을 터.’

그렇게 판단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서부 전선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저는 각하께서 잘 마무리해주시리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러자 클루게 원수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소. 그럼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오? 시간이 괜찮다면 전선 시찰이라도 같이 가시면 좋겠소만.”

전선 시찰이라.

하긴, 집무실에 앉아서 지도만 보는 것보다는 직접 전선에 나가서 전장의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 좀 더 확실하리라.

하지만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정도라면 제가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별 탈 없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베를린으로 돌아가서 다른 업무를 보겠습니다.”

“그렇소?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려. 하긴 파울루스 원수는 바쁘신 몸이니까 말이오.”

“하하, 아닙니다. 일선에서 부대를 지휘하시는 사령관님들만 하겠습니까.”

그렇게 덕담을 주고받으며 내가 슬슬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클루게 원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전부터 파울루스 장군에게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소만.”

“···무엇입니까?”

“당신은··· 전쟁이 끝난 뒤에 도대체 어쩌실 작정이오?”

나는 갑작스러운 클루게 원수의 물음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전쟁이 끝난 뒤라니··· 그것은 결국 정치인들이 결정지을 일이 아니던가?

아무리 총참모총장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내가 직접 관여할만한 주제는 아닐 터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그것은 저희 군인들이 아니라 정치가들이나 생각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클루게 원수는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여전히 날카로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장군께서도 당연히 아시겠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서 대중적으로 이름을 날린 군인이 여럿 있지. 가령 예를 들면, 롬멜 원수나 만슈타인 원수. 그리고 당신, 파울루스 원수까지 말이오.”

“······.”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들 중 가장 정치 권력에 가까운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이라 생각하오만.”

그런 클루게 원수의 지적에,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히틀러를 암살하기 전까지는 그자와, 그리고 그 이후로는 슈페어 총리와 밀월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으니까.

아마 제3자인 클루게 원수가 보기에는 내가 정치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뭐,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완전히 오해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지.’

그렇게 내가 쓴웃음을 짓고 있자, 클루게 원수가 다시 한번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묻겠소이다. 당신은 이 전쟁이 끝나면 어쩌실 생각이오? 혹시 군복을 벗고 선거에라도 나서실 거요?”

나는 그런 클루게 원수의 눈을 마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

그 무렵, 코탕탱 반도의 연합군은 점차 종말을 향해서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각하, 30사단 사령부로부터의 전언입니다. 현재 카트빌 인근에 고립되었음. 더 이상의 항전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항복함. 이상.

그리고 35사단과 79사단의 잔여 병력이 발로니스 방어부대에 합류했습니다.”

“그럼 레 삐유 방면은 어떤가. 아직 버텨주고 있는가?”

“레 삐유의 4사단 사령부는 얼마 전부터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다만, 5사단으로부터 별도의 보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버티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후··· 빌어먹을.”

계속해서 이어지는 암울한 보고에 패튼 장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연합군 상륙군은 명목상 6개 사단, 약 7만 5천여 명까지 줄어든 채로 코탕탱 반도의 북쪽 끄트머리까지 몰려난 상황.

이제는 패튼이 머무르고 있는 이 상륙군 사령부마저도 공습과 포격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한계까지 몰린 상태였다.

“각하, 이제는 상륙군 사령부만이라도 영국으로 이전해야 합니다. 어서 자리를 피하시지요.”

“흥! 지금까지 부하들에게 항전을 명령해놓고서 나 혼자 도망치라고?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웃기는 소리 말게!”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패튼은 결코 홀로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고집도 헌병대와 함께 상륙군 사령부를 방문한 한 남자에 의해서 결국 끝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의 정체는 바로 미 1군 사령관, 오마 브래들리 소장이었다.

“···브래들리 소장. 여기는 무슨 일인가.”

“죄송합니다, 각하. 각하를 긴급 체포하라는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의 명령입니다.”

긴급 체포 명령이라.

아마도 총사령부의 퇴각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항전을 지시한 것 때문이겠지.

하지만 패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며 브래들리에게 되물었다.

“긴급 체포?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사령관을 체포한단 말인가?”

“각하께서도 아실 텐데요. 어째서 아이젠하워 대장의 퇴각 명령을 무시하신 겁니까?”

그런 브래들리의 말에, 패튼은 잠시 침묵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젠하워 총사령관과 한 번만 연락하게 해주게. 내 다 설명하겠네.”

“알겠습니다.”

잠시 뒤, 브래들리가 가져온 수화기를 받아든 패튼은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며 애써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아이젠하워 총사령관, 나 패튼이오.”

“예, 장군.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내 다 설명하리다.”

그리고 패튼은 일련의 사정을 모두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간 상륙군이 처해 있던 상황과 어째서 그들이 퇴각 명령을 따를 수 없었는지. 그리고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유럽 전선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그러나 그 모든 설명을 들은 아이젠하워는 곧, 어째서 워싱턴 D.C.가 유럽 전선을 포기하고 독일과의 전쟁을 끝내기로 결정했는 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후··· 패튼 중장. 장군께서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비밀리에 개발 중인 원자폭탄을 저 독일놈들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평양 쪽에서도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지난번에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한 소련군이 관동군을, 그러니까 만주에 있는 일본군을 전멸시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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