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51화 (151/157)
  • 151화. 결전 (2)

    투콰앙!

    “으아악!”

    “저, 적 포탄 낙하!”

    “쏴! 일단 쏴 갈겨라!”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아침.

    미 37연대 소속, 루이스 일병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과 총성, 비명 소리를 들으며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의 발사 레버를 계속해서 잡아당겼다.

    “루이스! 다음은 저쪽 종탑이다! 창문 근처로 한번 긁어줘라!”

    “예!”

    루이스는 선임병의 지시대로 성당의 종탑을 향해 M2 브라우닝의 총신을 돌렸다.

    드르르르륵!

    양 엄지손가락으로 발사 레버를 누르자 요란한 발사음과 함께 엄청난 반동이 지친 팔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흙과 나무로 만든 낡은 종탑은 안에 있던 독일군과 함께 순식간에 산산조각나며 무너져 내려 버렸다.

    “종탑 클리어!”

    “후··· 잘했다. 빌어먹을 독일 놈들, 정말 끝도 없이 몰려오는군.”

    “상병님, 다음은 어디입니까?”

    “일단 대기해라. 이제 저놈들도 슬슬 물러나려는 모양이니까. 게다가 총열의 상태도 슬슬 한계인 것 같고 말이야.”

    그런 선임병의 말에, 루이스 일병은 잠시 발사 버튼에서 손을 떼고 전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방에서 몰려오던 독일군 병사들이 진창에 쓰러져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들이 타고 온 하노마그 장갑차는 옆구리가 찢어진 채 벽에 처박혀서 불타고 있었다.

    이는 모두 루이스 일병과 그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만약 이곳에 그들이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 가도는 진즉에 독일군에 의해 점거당해서 돌파되었으리라.

    하지만 이 엄청난 전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일병은 기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최근 며칠 동안 독일군은 진격이 막히면 그 2배, 3배에 달하는 전력을 투입해서 다시 공세를 펼쳐왔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1개 중대를 날려버렸으니, 다음번에는 최소 대대 수준이 몰려오겠군.”

    “···예. 50구경 탄약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글쎄. 이제 대충 300발 정도 남았을 거다. 뭐, 총열의 상태를 보면 그것도 다 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그럼, 일단 총열부터 교체해두겠습니다.”

    루이스 일병은 가죽으로 만든 벙어리장갑을 끼고서 붉게 달아오른 기관총 총열을 조심스럽게 잡아 들었다.

    ‘젠장, 이 짓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 지지가 않는군.’

    이미 수백, 수천 발의 탄환을 발사하며 가열된 총열은 측면에 부착된 손잡이만 잡아도 그 열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루이스는 그 뜨거운 쇳덩어리를 조심스럽게 빼내고서는 헛간의 한쪽 구석으로 가져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후··· 그럼 어떤 놈으로 교체를 한다.”

    일단 총열을 빼낸 것까지는 좋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루이스네 분대가 보유한 M2 브라우닝의 예비 총열은 모두 한계까지 혹사당해서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뒤틀리고 휘어져 있었던 것이다.

    분명 훈련소에서 듣기로는, 이런 총열로 총을 발사하면 총신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 크게 다칠 수도 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하던 총열은 방금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라서 식히고 있는 참이니까.

    “상병님, 저희 예비 총열은 언제쯤 교체해준답니까?”

    “탄약도 제대로 보급 안 되는데, 총열이 오겠냐. 됐으니까 고민하지 말고 아무거나 끼워! 어차피 그게 그놈이니까.”

    “···예.”

    루이스는 한숨을 내쉬며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총열을 집어 들었다.

    총열을 결합할 때 뭔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이 영 불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저 총열이 다 식을 때까지 독일군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러나 그런 루이스의 기대를 배반하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위에 시끄러운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적군이다! 적군이 온다! 전원 전투태세로 복귀하도록!”

    “루이스!”

    “예!”

    이에 짚단 더미에 누워 쉬고 있던 루이스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M2 브라우닝의 조준간을 움켜쥐었다.

    ‘제기랄··· 포신아, 제발 부탁이니 조금만 더 버텨다오.’

    그렇게 기도하며 전방의 가도를 노려보는 루이스의 눈앞에서, 저 멀리 무언가가 건물 모퉁이를 돌아 나오기 시작했다.

    “발사!”

    “으아아아!!”

    드르르르륵!

    다행히도 그의 브라우닝 중기관총은 별 탈 없이 12.7mm 50구경 탄환을 적의 머리통을 향해 쏟아내 주었다.

    카강! 캉!

    “···어?”

    그러나 저쪽에서 들려오는 피격음은 루이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빌어먹을, 전차다.”

    선임병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육중한 전차가 이곳을 향해 거대한 주포를 들이밀고 있었다.

    “루이스, 튀어!”

    콰앙!

    번뜩이는 섬광과 거대한 포성, 그리고 자신을 잡아당기며 고함치는 선임병의 목소리.

    그것이 루이스 일병이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

    “각하, 30연대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라 블랑슈 방면의 가도가 적군 기갑부대에 의해 돌파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멍청이들! 그럼 28사단은 어찌 되었나. 설마 가만히 있다가 포위당한 것은 아니겠지?”

    “그게··· 지난번 보고 이후로 제대로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그런 참모장의 보고에, 패튼은 작전 지도를 노려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디 하나 제대로 싸워주는 부대가 없구만.”

    1944년 11월 7일 현재, 코탕탱 반도의 미군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독일군에 의해서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곤란에 처한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왜냐하면, 첫째는 독일군이 기갑부대를 앞세운 양익 돌파에 나설 것이라는 패튼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고, 둘째로는 저들이 미군에 비해 압도적인 수의 병력을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했는데 저 독일놈들이 이런 소모전을 걸어올 줄이야. 젠장, 내가 너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나? 아니면 저들이 전격전을 내려놓을 만큼 전황이 완전히 기울어버린 것인가.’

    패튼은 독일군이 당연히 전격 전술을 사용하리라 생각해 기갑부대의 주요 돌파지점이 될만한 곳에 방어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그러나 그런 패튼의 기대와는 다르게 독일군은 모든 전선에 걸쳐서 동시에 반격에 나섰고, 이에 미군은 지대로 대응하지 못해 점차 패퇴하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군 병사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단순히 교전비로만 보자면 지금까지의 모든 전투와 비교해서 이번 전투의 미군이 가장 높은 효율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전 전선에 걸쳐서 끝없이 패배와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독일군이 미군에 비해 압도적인 수의 병력을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각하. 4사단, 8사단으로부터의 퇴각 요청입니다. 그리고 35사단도 병력의 손실이 너무 심해 이 이상은 현재의 위치를 사수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도망칠 궁리밖에 하질 않는군! 지금까지 몇 번이나 퇴각 요청을 들어줬는데, 여기서 또 물러나겠다는 말인가? 이제 모든 퇴각 요청은 불허하겠네! 죽든가 이기든가! 끝까지 싸우게!”

    그러나 그런 패튼의 호령에도 참모장은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각하. 현재 일선 부대들은 최소 1대0.8, 최대 1대1.4의 전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고가 올라왔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여기서 더 물러나 봐야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지 않은가?”

    지난 일주일간, 미군은 끝없이 밀려오는 독일군의 공세에 맞서며 계속해서 밀려나 현재는 꾸떵스에서 코랑탱까지 전선이 축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총합 17개 사단이던 병력은 12개 사단으로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약체화된 부대들을 긁어모은 것이어서 지휘 체계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황.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퇴각을 허가했다간 순식간에 전선이 붕괴되어 무너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설령 전술적으로 올바른 판단은 아닐지라도 현재 위치를 끝까지 사수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게다가 패튼에게는 또 한 가지, 나름대로 기대하는 수가 따로 있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게. 어떻게든 코탕탱 반도를 사수하기만 하면, 뒤이어서 도착할 증원 병력으로 다시 독일군을 몰아낼 수 있을 테니.”

    독일과의 강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연합군은 결코 프랑스의 상륙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젠하워는 그에게 계속해서 증원군을 보내줄 수밖에 없을 터.

    그럼 그 증원군을 계속 투입해서 몰려오는 독일군과 소모전을 펼치면 최소한 양패구상 정도는 만들 수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패튼이 생각한 노림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전화를 받던 참모장교 하나가 급히 패튼을 찾으며 말했다.

    “각하, 지금 아이젠하워 총사령관님께서 각하를 바꿔달라 하십니다.”

    “총사령관께서? ···알겠네.”

    이에 패튼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며 연락 장교에게서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전화 바꿨소이다. 나 연합군 상륙군 사령관, 조지 S. 패튼 중장이오.”

    “아, 패튼 장군님. 급히 전달해야 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 드렸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시오?”

    과연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이 그에게 급히 전해야만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패튼이 숨죽여 기다리는 가운데, 수화기 너머로 아이젠하워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최근 아군의 전황이 좋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장군의 방어 전략이 실패한 모양이더군요.”

    “후··· 그 부분은 드릴 말씀이 없소. 하지만 일전에 보고했듯이 증원 병력을 보내준다면···.”

    “예. 그 문제 말입니다만, 아무래도 증원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아이젠하워의 말에, 패튼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설마 독일과의 강화를 앞둔 지금, 유럽 전선을 포기하겠다는 말이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워싱턴 D.C.의 뜻은 그런 모양이더군요. 이쪽으로 승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병력을 물리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각하께서는 병력을 물리고 퇴각을 준비하십시오.”

    “······.”

    그 말을 끝으로 아이젠하워의 전화는 끊어졌다.

    그러나 패튼은 통화가 끝났음에도 한참 동안 전화기를 노려보다가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작전 지도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각하.”

    “참모장, 각 제대 사령관에게 다시 한번 전파하게. 퇴각은 절대 없다. 모두 현재 위치를 끝까지 사수할 것. 이상이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