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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50화 (150/157)
  • 150화. 결전 (1)

    1944년 10월 24일.

    영국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포츠머스.

    이곳의 유서 깊은 로열 네이비 해군기지에서,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대장은 정박하는 배들을 바라보며 한숨 쉬고 있었다.

    원래라면 런던의 연합군 총사령본부에 있어야 할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언제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르는 V-2 로켓 때문에 런던에서 여기 포츠머스로 연합군 사령부를 이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아이젠하워는 저 빌어먹을 신무기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독일놈들은 마치 그를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제부터 포츠머스에도 V-2를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 포츠머스의 해군 항구는 마치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상태였다.

    ‘후··· 이 빌어먹을 나치 놈들. 진짜 저 로켓 하나로 전쟁을 끝낼 작정인 건가? 정말 끝도 없이 날려대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또다시 V-2를 피해 사령부를 이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랬다간, 연합군 내부의 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곤두박질칠 테니까.

    그렇게 아이젠하워가 항구를 바라보며 자조하고 있을 때, 뒤에서 부관이 다가와 소식을 전했다.

    “각하, 항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방금 전, 연합군 상륙군 총사령관, 조지 S. 패튼 중장이 배에서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럼 천천히 올라오라고 전해주게나. 그리고 커피를 미리 두 잔 준비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당번병이 커피를 타오자 아이젠하워는 먼저 자리에 앉아서 패튼을 기다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그가 커피잔을 채 내려놓기도 전에 쾅쾅거리는 노크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총사령관, 나 왔소이다.”

    “어서 오십시오, 패튼 장군님. 항해로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좀 천천히 올라오셔도 괜찮았습니다만.”

    “아니, 그럴 수야 있나. 지금 전선에서는 우리 아들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패튼은 별이 세 개 박힌 철모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날에도 철모를 쓰고 오셨습니까.”

    “그래, 지금은 전시 중이니 말이오. 그래서 총사령관께서는 무슨 일로 나를 부르셨소? 솔직히 말해서 브래들리, 그놈에게 전선을 맡기고 오기는 좀 불안한데 말이오.”

    아이젠하워는 퉁명스러운 패튼의 반응에 쓴 웃음을 지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하하, 말씀을 좀 자중하시지요. 어쨌든, 지금 서부전선 말입니다만.”

    “음. 무슨 문제라도 있소?”

    “장군께서는··· 지금의 전선이 언제까지 유지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마치 패배나 후퇴를 염두에 둔 듯한 아이젠하워의 물음에, 패튼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총사령관. 지금 무슨 말씀이시오? 당연히 독일놈들이 패망할 때까지 싸워야 하지 않겠소?”

    “후··· 그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장군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작금의 상황? 뭐, 요즘 런던에 떨어진다는 저 장난감 같은 폭탄들 때문에 말이오? 그게 아니면, 우리 상륙군이 문제라는 거요?”

    “···둘 다입니다.”

    그런 아이젠하워의 말에, 패튼 중장은 속이 탄다는 듯이 싸늘하게 식은 커피잔을 집어 들고는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커피잔을 세차게 내려놓으며 아이젠하워를 향해서 노성을 터트렸다.

    “이보시오, 총사령관. 이제 와서 그딴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시오. 뭐? 우리 상륙군이 문제라고? 지금까지 내 병사들은 저 독일군을 상대로 놀라울 만큼 용맹하게 잘 싸워왔소!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네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영국놈들에게 브르타뉴 반도를 맡기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밀리지는 않았을 거요!”

    “······상륙군이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현재 전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보급의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항공 수송으로 부족분을 메우고 있지만, 이것도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흥! 전술적인 문제라면 걱정 마시오. 이제는 우리 미군 병사들도 독일군을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 역량을 쌓은 데다가, 노르망디의 보카쥬 지형은 방어자에게 유리하니 그리 쉽게 밀리지 않을 거요.”

    아이젠하워의 말대로, 현재 프랑스의 연합군이 독일군에 비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밀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튼 장군은 나름대로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수개월 전에도 독일군은 결국 코탕탱 반도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독일놈들은 자신들의 장기인 기갑부대를 앞세워서 전격전을 펼치려고 하겠지. 하지만 코탕탱 반도는 마을이 많고 지형이 복잡해서 저들이 기대하는 기동전을 펼치기 어려운 곳이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물량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까?”

    “그래도 상관없소. 어차피 저들이 노릴만한 목표는 몇 군데로 제한되어 있으니.

    우선은 오마하와 아브랑슈, 그헝빌을 잘라먹으려 하겠지. 그리고 그 다음은 꾸떵스와 생로고 말이야.”

    “예, 아마 그렇겠지요.”

    패튼의 입에서 생각보다 합리적인 계획이 흘러나오자, 아이젠하워는 설득을 멈추고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젠하워의 반응을 본 패튼 장군도 잠시 노기를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적의 공세지점이 뻔하다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소. 그 부분에 방어역량을 집중함과 동시에 강력한 기동 예비대를 편성해, 독일군 기갑부대를 반격해 섬멸하는 거요!”

    이것도 예전의 미군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했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에게는 독일군 기갑부대의 야수들과도 맞서 싸울 수 있는 M26 퍼싱 중전차가 있었으니까.

    “···그럼 보급의 문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항공 수송으로 보급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 부분도 다 생각해두었소. 내 영국놈들에게 물어보니, 과거에 준비하던 멀베리 항구가 아직 남아있다더군.

    이걸 완성시켜서 코탕탱 반도에 설치할 수만 있다면 장기적인 보급 문제도 해결되지 않겠소?”

    “흠···.”

    그런 패튼의 제안에 솔깃한 아이젠하워는 다시 한번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사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승산이 없다면 총사령관의 권한으로 과감하게 전선을 축소하거나 병력을 퇴각시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방금 패튼의 말대로라면 아직 충분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비록 전력이 열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패배가 결정된 것은 아니지. 때로는 1개 대대가 1개 사단을 막고 버틸 수도 있는 것이 전쟁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결과는 싸워봐야 아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아이젠하워는 고개를 들어 패튼을 바라보았다.

    “···장군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없소. 다만, 영국 친구들에게 멀베리 항구나 빨리 만들어달라고 전해주시오.”

    “알겠습니다.”

    *****

    그렇게 아이젠하워 대장과 담판을 지은 패튼 장군은 식사하고 가라는 제안도 만류하고서 곧바로 배를 타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리고 세르부르 항구의 연합군 상륙군 사령부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지휘관들을 불러 방어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럼 우선 1군부터 보고를 들어보도록 하지. 브래들리 소장, 현재 1군의 전력은 어떻게 배치되어 있소?”

    “예. 우선 1군의 담당 지역 중 가장 핵심적인 요지인 생로 인근에 4개 사단을 배치해 집중 방어 중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3개 사단은 베이유 방면을, 1개 사단은 후방에 예비대로 대기 중입니다.”

    사실 이런 브래들리의 대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교통의 요지이자 대도시인 생로를 적에게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러나 패튼의 생각은 브래들리와는 조금 달랐다.

    “쯧, 생로보다는 베이유 방면과 오마하 해변가에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하도록 하게.”

    “어째서입니까? 그런 외곽보다는 생로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건 맞네. 하지만 자네가 독일군 장군이라면 곧바로 생로로 직행하겠나? 아니면 외곽으로 우회해서 접근하겠나.”

    “···그럼 만약 독일군이 생로로 오면 어떻게 대처합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저들이 생로를 치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라면 지금의 전력으로는 어떻게 해도 막기 어려울 걸세.”

    “······.”

    사실, 이런 패튼의 작전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패튼은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독일군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공세를 취해왔으니까.

    ‘가장 취약한 부분에 기갑부대를 투입해서 전선을 돌파하고, 후속하는 보병부대로 구멍을 넓힌다.

    지금까지 독일군은 언제나 이런 방식을 취해왔었지. 그러니 이번에 저들이 노릴 곳은 생로가 아니라 베이유 방면일 터다!’

    그렇게 브래들리에게 재배치 명령을 내린 패튼은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미 2군 사령관, 호지스 소장을 바라보았다.

    “좋네. 그럼 다음으로 호지스 소장, 현재 2군의 배치 현황은 어떤가?”

    “예. 저희는 아브랑슈부터 생로까지 이어지는 가도를 사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해서, 현재 6개 사단이 전선을 따라 고루 배치되어 있으며 2개 사단이 예비대로 대기 중입니다.”

    “흠···.”

    그런 호지스의 보고에, 패튼은 지도를 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독일군은 아마 아브랑슈부터 그헝빌, 꾸떵스까지 차례대로 함락하며 올라올 터.

    하지만 그렇다고 측면의 방어를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랬다간 독일군이 약한 측면을 순식간에 돌파해서 남쪽의 집중된 전력을 한꺼번에 포위할 수도 있었으니까.

    ‘이쪽은··· 어쩔 도리가 없군. 최대한 병력을 유연하게 배치해서 독일군의 움직임에 맞춰 기동 방어를 펼치는 수밖에.’

    “좋소. 다만, 충분한 예비대를 준비하고 언제든지 병력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시오. 2군의 핵심은 기동성의 확보라는 점을 잊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패튼의 상륙군 사령부는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패튼의 집무실로 일선 부대의 보고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각하! 독일군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고 합니다!”

    “흥! 드디어 시작되었나. 그래, 그래서 놈들의 주공은 어느 쪽인가.”

    그러나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묻는 패튼에게, 참모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게··· 모든 방면에서 독일군이 몰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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