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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48화 (148/157)
  • 148화. 맨해튼 프로젝트 (1)

    “당신네 연합군이 비밀리에 진행 중인 무기 개발 계획.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 말입니다.”

    “······!”

    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 두 사람이 앉은 이 작은 방에는 무거운 정적과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셜 장군은 곧바로 표정을 숨기며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그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만.”

    하지만 그렇게 답하는 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동요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마셜의 반응에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참모총장님, 정말로 이러시기입니까? 좀 너무하시는군요. 방금 전에는 서로 솔직하게 말하자고 하시더니.”

    “···글쎄, 나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오.”

    역시 이런 대응인가.

    하긴, 지금 마셜의 입장이라면 일단 입을 다물고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으리라.

    ‘자, 그럼 어디까지 미끼를 던져야 하나.’

    내가 이 자리에 나온 목적은 첫째로 미국과의 강화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저들의 원자폭탄 개발을 방해하는 것.

    그렇다면, 저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최대한 자극해야만 한다.

    ‘···사실 우리 독일도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그 공포를 말이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마셜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오펜하이머 박사님께서는 잘 지내십니까?”

    “······!”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폰 노이만, 그리고 리처드 파인만까지. 다들 연구는 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나중에 안부나 한번 전해 주십시오.”

    줄줄이 나열되는 이름에 마셜 장군은 크게 당황하며 사색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그는 이내 포기한 것처럼 한숨을 푹 내쉬면서 피곤한 목소리로 나에게 되물었다.

    “후, 그걸 어떻게··· 아니,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글쎄요. 당연하지만, 그건 저희도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이 만들려고 하는 그 엄청난 폭탄에 대해 우리 독일 제국도 관심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타이밍 좋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나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마셜 장군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모양인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된 모양이군요.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장군께서는 조금 나중에 나오시지요.”

    “···알겠습니다.”

    나는 그런 마셜을 자리에 남겨두고 방문을 나섰다.

    이제 강화 협상이 다시 시작될 시간이었다.

    *****

    “···후, 좋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서로의 입장표명부터 시작하실까요?”

    “알겠소이다. 이번에는 그쪽의 발언부터 먼저 시작하시오.”

    “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우선···”

    1시간의 휴식 끝에 재개된 강화 협상.

    이곳에서, 휴식시간 동안 칼을 갈고 온 양측 협상단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공방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국의 국운이 걸린 이 중요한 협상 자리에서, 마셜 장군은 오가는 말을 단 한마디도 머리에 담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그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파울루스 원수와 나누었던 말들이 끝없이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폰 노이만, 그리고 리처드 파인만까지. 다들 연구는 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당신들이 만들려고 하는 그 엄청난 폭탄에 대해 우리 독일 제국도 관심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실 박사들의 이름을 나열했을 때까지만 해도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지만, ‘엄청난 폭탄’이라는 말이 나온 이상 이는 결코 우연이나 지레짐작일 리가 없었다.

    역시 독일놈들은 우리 미국이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독일 놈들은 우리가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도 독일에서 망명 온 저명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의 편지 덕분에 시작된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역으로, 저들도 우리가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내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들이 군사 기밀의 영역에 있는 정보까지 알아냈다는 거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작전명부터 시작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연구진들의 이름까지.

    뭐, 오펜하이머나 닐스 보어, 페르미 같은 이들은 워낙에 거장으로 이름이 높은 사람들이니 그렇다고 쳐도, 리처드 파인만과 폰 노이만은 어디 알려질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사실 마셜조차도 그동안 보고서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던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인데, 독일측이 이들을 알고 있다니.

    그 말인즉슨, 우리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들이 속속들이 독일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그렇다면,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척되면 진척될수록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도 빨라진다는 의미가 아닌가! 빌어먹을···.’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마셜은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남자,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지금까지 입을 닫고 대화를 경청하기만 하던 파울루스 원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V-2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군요. 장관님께서는 저희의 로켓 공격이 무의미하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그런 장난감 따위, 몇 발이 떨어지든 우리 대영제국의 항전 의지가 꺾이는 일은 없을 거요!”

    “정 그러시다면 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겠군요. 저희가 마음만 먹으면, 런던을 한 번에 날려버릴 폭탄을 실어 날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 파울루스의 말에, 영국과 미국 측 대표단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뭐요? 런던을 한 번에 날려? 하하하, 원수각하 께서 대단한 허풍을 치시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폭탄이 있다면 진즉에 날리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나 이들의 비웃음에도 빙그레 웃고 있는 파울루스 원수의 모습을 보면서, 마셜 장군은 속으로 식은 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이 거의 완성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

    그렇게, 그날의 강화 협상은 양측 모두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채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회담이 끝난 뒤, 미국과 영국, 캐나다를 비롯한 맨해튼 프로젝트 참가국들은 거대한 후폭풍에 휘말리고 있었다.

    “뭐요? 독일 놈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눈치채고 있었다고?”

    “예, 심지어 대충 계획을 눈치채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연구에 참여한 개발진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프로젝트 관계자 중에 독일 첩자가 있지 않고서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빌어먹을. 그럼 저들도 우리 이상으로 원자폭탄 개발이 진척되어 있겠군.”

    “예. 게다가 그날 파울루스 원수의 발언으로 미루어보면, 개발이 거의 끝나서 완성에 가까운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셜 참모총장의 보고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일단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해야 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하지만 독일이 원자폭탄의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우리도 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소?”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보가 모두 새어나가고 있는 지금,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속했다간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전에 먼저 내부에 있을 독일의 첩자를 색출해내야 합니다.”

    그 말에, 루즈벨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어쩔 수 없군. 그 건은 참모총장께 일임하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가려는 마셜에게 루즈벨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참. 나가는 길에 외무장관을 좀 불러달라고 전해주시겠소?”

    “예. 물론입니다, 각하.”

    그렇게 집무실에 혼자 남겨진 루즈벨트는 휠체어를 움직여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해낸다면··· 게다가 그걸 예의 V-2에 실어서 날려 보낸다면···.’

    현재 런던 시내를 주야장천 때리고 있는 V-2 로켓은 아직도 마땅히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 당국은 V-2를 격추하기보다는 잘못된 장소를 노리도록 첩보전을 펼치는 것이 고작인 상황.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재래식 폭탄보다 수천 배, 수만 배나 강력한 원자폭탄을 투발한다면, 과연 영국은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저 V-2가 개량되어서 다음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닿게 된다면?

    그렇게 루즈벨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저편에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통령 각하, 헐 외무장관이 방문했습니다. 들여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여보내게나.”

    그리고 잠시 뒤, 헐 외무장관이 집무실로 들어오자 루즈벨트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장관. 혹시 내가 왜 불렀는지는 들으셨소?”

    “아닙니다, 각하. 하지만 대강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 루즈벨트의 물음에, 헐 외무장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긴, 그가 강화 협상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뒤에서는 그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으니 그의 기분도 결코 유쾌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만약 독일이 정말로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를 연합국에게 비공식적으로 알렸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얘기가 빠르군. 좋소, 그럼 장관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글쎄요. 저는 군인도 과학자도 아니어서 그 원자폭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독일의 의도는 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아마도 시간 끌지 말고 강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는 독일 놈들의 손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모양이군.”

    강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라니.

    사실 현재 시점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영국을, 아니 항전을 부르짖는 처칠 내각을 내치라는 것.

    ‘독일과의 강화라···.’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맨해튼 프로젝트마저 다 들통나버린 지금, 미국이 전쟁을 지속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결국, 루즈벨트는 헐 외무장관을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 그럼 독일과의 강화 협상을 다시 한번 추진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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