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47화 (147/157)
  • 147화. 미국, 그리고 영국 (3)

    1944년 10월 5일.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조지. C. 마셜 참모총장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런던이 공격받고 있다니?”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각하. 현재 독일군의 비행체에 의해서 런던의 가옥과 거리가 파괴되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비행체? 그럼 공습이란 말이오? 하지만 런던의 제공권은 우리 연합군이 확보하고 있을 텐데?”

    “그게··· 저도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만, 보고에 따르면 거대한 원통형의 폭탄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원통형 폭탄이라.”

    그런 루즈벨트의 반응처럼, 사실 보고를 하고 있는 마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도 이 보고서의 내용은 조금 신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런던의 연합군 총사령부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마셜은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나갔다.

    “예, 제 추측으로는 아마 지난번에 보고되었던 V-1 비행폭탄과 유사한 병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V-1? 그거라면 진즉에 대처법을 마련하지 않았소? 이제는 런던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부분 격추 가능할 텐데 말이오.”

    “V-1은 그렇습니다만, 이번 것은 조금 다릅니다. 보고에 따르면 낙하 시의 속력이 원체 빠른 탓에 관측하고 격추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흠···.”

    V-1처럼 스스로 날아오는 비행폭탄에, 낙하 속도가 빨라서 격추조차 불가능하다라.

    이런 황당무계한 보고에, 잠시 고민하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저 독일놈들이라면 무엇을 만들어내도 이상하지 않지. 게다가 지금 내가 신경 쓸 것은 그 무기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럼 영국의 반응은 어떻소?”

    “···적어도 처칠 정권은 계속해서 항전을 부르짖고 있습니다만, 영국 시민들의 분위기는 굉장히 절망적입니다.”

    그런 마셜의 대답에, 루즈벨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영국 시민들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원정에 나선 영국군은 전멸한 데다가 영국의 영웅인 몽고메리는 전사하고, 시민들에게는 스팸 통조림과 스탠 건을 나눠주면서 런던은 저런 신무기에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있었으니까.

    ‘이래서야 맨해튼 프로젝트가 완료되기 전에 처칠 정권이 먼저 무너질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프랑스에 상륙한 연합군이 모두 전멸하던가.’

    그렇다면 이번 강화 협상에서 미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처칠이 제안했던 것처럼 최대한 시간을 끌 것인가? 아니면, 영국을 배신하더라도 독일과의 전쟁을 끝낼 것인가.

    ‘···도무지 모르겠군. 무엇이 정녕 미국을 위한 길인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루즈벨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는 자신의 앞에 선 조지. C. 마셜 참모총장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각하?”

    “그러고 보니 이번 강화 협상에 독일 측 장군이 한 명 참석한다고 하지 않았소?”

    “예, 그렇습니다. 독일군 총참모총장인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가 참관인으로서 협상에 참석한다고 하더군요.”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마셜은 의아해하면서도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비록 대사의 자격은 아니라지만 장군이, 그것도 육군 원수가 직접 협상장에 나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외무부 측에서 제법 고심하고 있다고 들었었다.

    ‘뭐, 그렇다곤 해도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지.’

    그렇게 가볍게 흘려넘기는 마셜 장군에게 루즈벨트는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흠··· 그렇다면 마셜 장군도 협상장에 나가시는 것이 어떻소?”

    “···제가 말입니까?”

    “그렇소. 저쪽에서 장군이 나왔다면 우리도 장성을 보내는 편이 타당하지 않겠소.”

    그런 루즈벨트의 말에, 마셜은 순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아무리 외교에서 의전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애당초 먼저 관습을 깨트린 것은 저쪽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기에 맞춰서 굳이 장성을 보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마셜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저들이 어떤 의도로 원수를 참관시킨 것인지도 신경 쓰이고 말이지. 그러니, 마셜 장군께서 직접 가셔서 파울루스 원수와 한번 접촉해보시오.”

    “···알겠습니다.”

    *****

    “이쪽입니다, 각하.”

    “알겠소. 금방 가리다.”

    1944년 10월 12일.

    강화 협상에 참석하기 위해서 스웨덴의 예테보리에 방문한 나는 리벤트로프 외무장관을 따라서 호텔로 들어섰다.

    우리가 안내를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자, 긴장된 분위기와 함께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쏟아졌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더니, 그 말대로구려. 오늘은 잘 부탁드리겠소이다.”

    “하하하. 어차피 오늘 협상의 책임자는 저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하께서는 가만히 계시다가 필요할 때만 나서 주십시오.”

    “장관의 배려에 감사드리오.”

    그렇게 우리가 협상장으로 들어서자, 먼저 자리에 와 있던 영국, 미국 측 대표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대표단 중에 딱 한 사람, 이질적인 복장을 한 이가 하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독일군 총참모총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미합중국의 육군 참모총장, 조지 C. 마셜 대장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각 잡힌 군복 차림을 보고서 연합군 장성일 줄은 예상했지만, 설마 그 유명한 마셜 장군이 왔을 줄이야.

    ‘···아니, 이쪽에서 내가 나왔으니 저쪽에서도 참모총장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그렇게 모두가 자리에 앉자, 리벤트로프와 헐 외무장관의 주도로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자리에서 나와 마셜이 나설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사정이 급한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빨갱이 놈들은 국력을 회복하고, 일본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부활한 소련은··· 결코 영미의 친구가 아닐 겁니다.”

    “맞는 말씀이시오. 하지만 장관께서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 것 같군. 바로 우리 영미보다 당신들 독일이 소련과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오.”

    “후···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미국은 소련이 일본을 집어삼키게 놔둘 생각입니까? 그랬다간 미국 청년들이 지금까지 태평양에서 흘린 피가 다 허사가 될 텐데요.”

    “흥! 걱정해주셔서 고맙소만, 우리 연합군은 유럽 전선을 지속하면서도 동시에 일본을 박살낼 수 있소.”

    “글쎄요, 요즘 런던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만.”

    “뭐요? 지금 말 다 했소?”

    처음에는 강화 조건 협상으로 시작했던 양측의 대화는 서로의 양보를 촉구하면서 점점 더 빈정거림과 야유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분위기가 고조되어 협상이 파국에 이르려고 할 무렵.

    “후··· 두 분 다 잠시 쉬면서 머리를 식히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알겠소이다.”

    “좋습니다. 그럼 1시간 뒤에 다시 뵙지요.”

    강화 협상은 보다 못한 스웨덴 측의 중재에 의해서 잠시 중단되었다.

    *****

    “후··· 힘들군.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도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1시간 동안 주어진 휴식시간.

    리벤트로프 장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호텔의 베란다로 나온 나는 바깥바람을 쐬며 고개를 떨궜다.

    “하하하. 원수 각하께서도 피곤하신 모양이군요.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예기치 못했던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깜작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방금 전에 악수를 나누었던 미합중국의 참모총장, 조지 C. 마셜 장군이 서 있었다.

    “···아아, 마셜 장군이셨군요. 장군께서도 쉬러 나오셨습니까?”

    “예, 그렇지요. 그리고 사실, 원수 각하께도 용무가 있어서 말입니다.”

    “저에게 말씀이십니까?”

    깜짝 놀란 듯이 반문하긴 했지만, 사실은 나도 마셜이 접근해오리라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 자리를 옮기실까요?”

    “예, 제가 미리 방을 잡아두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지요.”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마셜의 안내를 따라서 준비된 별실로 이동했다.

    사실, 도청이나 기타 문제를 생각하면 상대가 준비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크게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내가 마셜에게 할 말은 사실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었으니까.

    “좋군요. 그래서, 저를 이렇게 따로 불러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내 의뭉스러운 물음에, 마셜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각하, 여기에 듣는 귀는 저희 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슬슬 솔직하게 말씀해주시지요. 군인이신 각하께서 이번 회담에 참석한 이유를 말입니다.”

    “···역시 그게 목적이셨군요.”

    여러 번 확인했듯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마셜의 목적은 내 진위를 확인하는 것뿐일 터.

    그렇다면 좋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온 목적도 저들에게 비밀리에 말을 전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꺼낸다.’

    잠시 커피잔을 기울이며 고민하던 나는, 이내 마셜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하나씩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지금 당신들의 목적은 강화가 아니라 시간을 끄는 것이지요?”

    그런 내 말에, 마셜의 눈빛이 한순간 크게 흔들렸다.

    “···각하께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만약 그럴 작정이었다면 저희가 협상장에 나오지도 않았겠지요.”

    “글쎄요. 그건 아니지요. 유럽 전선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유지하려고 강화에 관심 있는 척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니, 이 얘기는 일단 미루어둡시다.”

    괜히 이런 실랑이가 길어졌다간 곤란하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하는 거니까.

    “이런 자리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사실, 우리 독일은 당신들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아까부터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확실하게 말씀해주시지요.”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담담한 듯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마셜 대장의 눈동자를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네 연합군이 비밀리에 진행 중인 무기 개발 계획.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 말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