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46화 (146/157)

146화. 미국, 그리고 영국 (2)

1944년 10월 3일.

프랑스, 파 드 칼레의 후방에 위치한 소도시 긴느.

이곳에서 멍하니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244대대 소속, 한스 오스터 상병은 부사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상병님,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뭐라도 보이냐?”

“아, 아닙니다. 그게··· 저희 대대는 어떤 부대인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런 신병의 물음에, 한스는 새삼스럽게 그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신병 때 이런 질문을 했었지.’

하긴, 이 녀석은 처음으로 부대를 배정받아 전입되었으니 여러 가지로 불안할 수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지금은 전시 중이니 언제 전투에 투입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지.

하지만 곧이곧대로 대답해주기 싫었던 한스는 괜히 심술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럼 네가 보기엔 우리 부대가 어떤 것 같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여기 배치될 때만 해도 다들 파 드 칼레가 격전지가 될 거라고 걱정했었는데, 아직까지는 별일 없고 말입니다.”

“그래. 왠지는 모르겠지만, 장교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연합군 놈들이 여기가 아니라 노르망디 쪽으로 갔다더군.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리 부대는 이렇게 후방에서 대기하면서 시간 죽이는 게 전부니까 말이야.”

“예! 감사합니다!”

그런 신병의 대답에, 한스는 피식 웃으며 다시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역시 오늘도 이 외딴 초소를 지나가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멍하니 시간만 죽이다가 평화롭게 끝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반쯤 졸고 있던 한스 상병은 갑자기 치직거리는 유선 전화기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 뭐야.”

“상병님, 통신이 온 것 같습니다.”

“중대 본부인가?”

이런 외곽 초소에 통신을 보낼만한 곳은 당연히 중대 본부밖에 없다.

하지만 근무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로 연락을 한단 말인가?

‘···설마, 연합군이 쳐들어와서 우리 부대가 투입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한스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125번 초소, 한스 오스터 상병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오스터 상병인가. 마침 잘됐군. 이제 곧 그곳으로 좀 특수한 차량이 지나갈걸세.”

“특수한 차량··· 말씀이십니까.”

“그래, 우리 중대 차량이 선두에 설 테니 쉽게 알아볼 수 있을걸세. 근무 똑바로 서고, 차량 행렬이 도착하면 곧바로 통과시키게.”

“옛! 알겠습니다!”

한스가 힘차게 대답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자, 옆에서 대화를 가만히 엿듣고 있던 신병이 입을 열었다.

“상병님, 무슨 일입니까?”

“글쎄다, 뭔가 특수한 차량이 여기를 통과할 거라더군.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근무 똑바로 서고 있어라.”

“예.”

신병과 자리를 바꾼 한스는 차량이 올 방향을 바라보며 철모를 제대로 고쳐 썼다.

‘그나저나 특수한 차량이라··· 무슨 신형 전차라도 오는 건가? 아니면 높으신 분들이 방문하는 건가.’

그러나 잠시 뒤, 초소 앞에 나타난 그것은 한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물건이었다.

제일 먼저 한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전차도 실어나를 수 있는 SS100 트랙터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트랙터가 아니라 그 뒤에 연결된 트레일러 위의 물건이었다.

그곳에는 길이가 최소 10m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원통 형태의 무언가가 실려있었다.

아니, 끝이 뾰족한 것을 보면 원통보다는 포탄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리라.

“상병님, 저게 도대체 뭡니까?”

“글쎄다. 저 모습만 보면 무슨 포탄처럼 생겼는데···.”

그렇게 두 사람이 멍하니 지켜보는 동안, 그 정체 모를 포탄을 실은 차량의 행렬은 계속해서 지나갔다.

그리고 한참 뒤, 무려 10여 대의 트레일러가 초소를 통과한 뒤에야 그 의문의 행렬은 끝이 났다.

그때부터 한스와 신병은 방금 전의 그 물체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역시 포탄이지 않겠습니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큰 포탄을 어떻게 발사해? 말이 안 되지.”

“그럼 상병님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세. 그래도 마지막에 보니까 날개가 달려있던데, 비행기 아니겠냐.”

“에이, 비행기였으면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겠지 말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논쟁은 비행기에서 비행선으로, 거기서 다시 연료 탱크, 잠수함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그러나 몇 시간째 계속되던 그 대화는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엄청난 굉음에 의해서 끝을 맞이했다.

“이 소리는···.”

“설마 적습인가?”

“상병님, 저기를 좀 보십시오!”

한스는 신병의 다급한 목소리에,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방금 전에 보았던 그 포탄이 불을 내뿜으며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다.

*****

그 무렵, 영국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

영국 정권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건물의 지하 벙커에서, 처칠은 수화기를 붙잡고 연신 노성을 내뱉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네들은 정녕 저 나치 놈들과 강화를 맺으시겠다는 말씀이시오?”

“후··· 정말 미안합니다만, 처칠 총리. 작금의 상황을 보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이미 서부전선의 전황은 독일군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단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럼 총리께서는 뭔가 다른 수라도 있으신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영국군도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일 텐데요.”

그런 루즈벨트의 대답에, 처칠은 말없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돈만 많은 졸부 놈들 주제에 감히 우리 대영제국을 이따위로 취급하다니.’

하지만 처칠은 그렇게 분노하면서도, 그 마음을 차마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영국의 모습은 대영제국 시절의 위상을 모두 잃어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심장, 런던은 이미 연이은 독일군의 공습으로 인해서 폐허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공습경보가 거리에 울려 퍼질 때마다 런던의 시민들은 방공호와 지하철로 숨어 들어가 추위에 떨고 있는 상황.

게다가 수년간 실시된 전시체제로 인해서 영국의 경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고, 이제 영국 시민들은 미국제 랜드리스 물자를 배급받아서 간신히 주린 배를 달래는 실정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영국 1군과 몽고메리 원수마저도 프랑스에서 전멸해버리는 바람에 현재 영국은 미국에게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젠장, 몽고메리 그 친구가 조금만 더 잘 버텨줬더라면··· 아니, 하다못해 살아남아서 돌아와 주기라도 했더라면···.’

하지만 이미 죽은 이를 원망해봐야 무엇 하겠는가. 그는 이미 명예롭게 전사했고, 이제 다음 일은 살아남은 이들이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처칠이 영국의 처지를 생각하며 한숨짓고 있을 때, 루즈벨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칠 총리. 내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미국은 이제 할 만큼 한 것 같습니다.”

“···뭐요?”

“사실 독일과의 전쟁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다른 대륙의 사정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이만큼 많은 피를 흘린 것만 해도 귀국과의 의리는 충분히 지킨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눈을 돌려, 소련을 한번 보십시오. 저 공산주의 놈들은 진즉에 발을 빼고 국력을 회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여기서 강화를 맺고 종지부를 찍읍시다.”

그러면서 루즈벨트는, 강화를 맺을 경우 영국의 안전만큼은 반드시 보장해주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수장으로서 무수히 많은 식민지를 경영해 본 처칠은 알고 있었다.

타국의 보장으로 인해서 유지되는 안보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좋든 싫든, 자국의 안보를 지킬 것은 자국의 국력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영국 육군은 프랑스에서 심대한 피해를 입고 탈출하는 바람에 고작 몇 개 사단 수준까지 쪼그라든 상황.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유럽 대륙을 석권한 독일과 도버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으로 지내려면, 경제와 국력을 회복하기는커녕 국방비로 엄청난 지출을 강요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던 해외 식민지들도 하나둘씩 떨어져 나갈 테고··· 젠장, 이래서야 언제까지고 미국이 주는 스팸이나 받아먹는 처지가 되겠군.’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영국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지금의 이 상황을 타개하고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처칠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럼 맨해튼 프로젝트는 어떻습니까?”

“···맨해튼 프로젝트? 하지만 총리께서도 아시다시피 그건 아직 개발 중이지 않습니까.”

“예, 하지만 일단 개발만 완료된다면 전세를 한방에 뒤집을 수 있지요. 그러니, 그때까지만 어떻게 시간을 벌 수는 없겠습니까?”

그런 처칠의 간청에 루즈벨트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지난번에 얼마 전에 보고를 받았을 때, 프로젝트가 완료되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이 걸릴 거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때까지 버티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럼 차라리, 강화 협상을 질질 끄는 것은 어떻습니까?”

“···협상을 말입니까?”

“예, 나치 놈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걸어서 시간을 버는 겁니다. 가령 예를 들면··· 프랑스를 분할해서 제2 정권을 세우겠다던가 말이지요.”

“흠···.”

이번에는 제법 길게 고심하는 루즈벨트의 모습을 보면서, 처칠은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리라 확신했다.

‘그래, 미국놈들도 유럽이 독일의 손에 떨어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독일을 견제하려면 우리 영국과 프랑스 같은 동맹국들의 입장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야.’

다만 한 가지, 이렇게 시간을 끄는 와중에도 저 빌어먹을 배신자 빨갱이 놈들이 국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 점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후, 좋습니다. 그럼 일단은 총리의 뜻대로 강화 협상을 진행해보겠습니다.”

“하하, 역시 영국과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구려. 이번 일은 결코 잊지 않겠소.”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물론이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감사드리오.”

어렵사리 미국의 양보를 얻어낸 처칠은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쿠구궁!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벙커의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적군의 공습인가?”

“아, 아닙니다! 레이더 반응도, 견시병의 보고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 충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각하.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처칠이 분노하고 있을 때, 잠시 뒤 정확한 목격 정보가 보고되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기둥 같은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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