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45화 (145/157)

145화. 미국, 그리고 영국 (1)

1944년 10월 2일.

베를린, 빌헬름가 77번지에 위치한 국가 수상부 관저 앞에서 검은색 군용 차량 한 대가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각하.”

“수고했네. 용무가 끝나면 연락할 테니, 근처에서 쉬고 있게나.”

“예!”

부관과 함께 차에서 내린 나는 잠시 거리에 서서 국가 수상부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지난 7월, 소련과의 강화 협정을 이후로 처음 온 것이니 약 3개월 만인가.’

고작 3개월 만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수상부 관저의 모습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우선 벽을 타고 길게 뻗어있던 붉은색 하켄크로이츠 깃발들이 전부 철거되었고, 건물 앞을 지키는 경비병들도 모두 검은 제복의 친위대원에서 회녹색 군복의 국방군 병사들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총리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환대에 감사드리오.”

나는 수상부의 변화에 의아해하면서도 비서실장의 안내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슈페어 총리의 집무실에 도착한 나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늘 걸려 있던 하켄크로이츠와 히틀러의 초상화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각하.”

내가 자리에 앉자, 슈페어는 하던 업무를 얼른 마무리 지은 뒤 내 맞은편으로 다가와 앉았다.

“총리님께서도 많이 바쁘신 모양이군요.”

“하하하, 소련과의 강화를 체결한 이후로는 계속 이렇습니다. 무엇 하나 대충 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말입니다.”

소련과의 강화 협정 때문이라.

하긴, 지금까지는 군관구 제도를 통해 관리하던 아군의 점령지역이 이제는 정식으로 독일의 영토가 되었으니, 그 행정 처리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리라.

하지만, 3개월 전과는 크게 달라진 수상부의 모습을 보면, 슈페어가 바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까? 정말 수고가 많으시군요. 그건 그렇고, 수상부 관저의 모습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만.”

“···하하, 역시 눈치채셨습니까?”

“예. 경비를 서는 병사들이 저희 국방군 군복을 입고 있더군요.”

내 말에 슈페어 총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역시 참모총장님은 못 속이겠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최근 나치당 내부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말입니다.”

“···문제라면, 혹시?”

“예. 카를 항케를 필두로 한 친위대 소속 인사들이 지난번 강화 협정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슈페어 총리의 설명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우선, 일부 친위대 인사들이 나치즘의 이념을 내세워서 소련과의 강화 협정을 비난하고 나섰다는 것.

그리고 그 협정을 주동한 슈페어 총리를 비난하며 그를 총리직에서 끌어내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슈페어는 당내 핵심 인사들의 비난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여론은 종전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은 데다가,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저들과는 언젠가 한 번쯤 부딪혔을 테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래도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힘이 닿는 한에서는 협력하겠습니다.”

“하하, 말씀만이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만약의 경우에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만약의 사태에 대해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치당이 급부상했던 전후의 혼란기와는 다르게 이제 독일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안정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국과 강화를 맺고 모든 전쟁이 끝나면 전시체계도 수권법도 종결될 터. 그럼 나치 놈들이 아무리 전쟁을 부르짖어도 되돌릴 수 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일단락지은 슈페어 총리는 드디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가 본론입니다만. 사실 어제 저녁에 연합군 측에서 강화에 대한 협상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예. 그럼 저쪽이 제시한 요구 조건은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영국 1군이 패퇴하고 브르타뉴 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연합군은 아직 코탕탱 반도와 세르부르 항구, 그리고 2개 야전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만큼, 아군이 저들을 힘으로 몰아내려면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할 테니 그 반대급부로 무언가를 요구했으리라.

“사실 그 부분이 문제입니다만··· 저쪽에서는 프랑스를 분할 통치하자고 하더군요.”

“···분할 통치 말입니까?”

“예, 정확히는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지역을 힐양하고 샤를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정부의 영토로 인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만.”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그만한 영토를 내놓으라는 겁니까?”

얼마 전 연합군이 브르타뉴 반도까지 진출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 저들이 브르타뉴 반도를 되찾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는 대가로 자유 프랑스를 인정하고 브르타뉴를 내놓으라니, 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뭐, 그 대신에 연합군은 유럽 반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도 돌려주겠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연합군이 나가더라도 셔먼과 머스탱으로 무장한 자유 프랑스군이 대신 들어올 뿐입니다.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고 말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거절할 생각입니다만, 각하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흠···.”

슈페어 총리의 물음에 나는 잠시 연합군의 제안에 대해서 고민했다.

조건이야 어떻든 간에, 이렇게 강화를 제안해 왔다는 것은 저들에게도 종전에 대한 의지는 있다는 의미일 터.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왜 저런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단 말인가?

‘설마 이 상황에서 대역전극을 펼칠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무언가 믿는 수가 있는 건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가 오랫동안 그리 신경 쓰지 않던 문제가 갑자기 떠올라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원자폭탄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원자폭탄 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내년 7월일 터.

아직 1944년 말밖에 되지 않은 지금, 저들이 벌써 원자폭탄을 완성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만약 모종의 이유로 역사가 바뀌는 바람에 저들의 개발이 앞당겨졌다면··· 그래서 완성을 앞둔 지금, 마지막으로 강화를 제의하는 거라면?’

“······.”

“파울루스 장군? 왜 그러시오?”

“···아닙니다, 각하. 잠시 생각할 것이 조금 있어서 말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슈페어 총리의 부름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래,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고민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렇게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지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리님, 그 강화 제안은 거절하더라도 연합군과의 협상은 계속 이어나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협상을 해보자는 말씀이십니까? 의외군요. 장군께서는 연합군을 모조리 격퇴하고 끝내자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하하. 사실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만,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도 협상 자리에 동참하고 싶군요.”

“···원수께서 협상장에 직접 나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이례적인 일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

“예. 이례적인 일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런 파울루스의 요청에, 알베르트 슈페어는 순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외교라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결정할만한 문제가 아니다.

대표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복잡하게 해석되고 이로 인해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입장이 갈리는 것이 외교다.

그런데 천생 군인인 그가 외교장에 나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슈페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왠지 모를 기대감과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어쩌면. 파울루스 원수라면 뭔가 다를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파울루스 원수는 슈페어와의 약속대로 전쟁 이외의 영역에 대해서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그가 보여준 국제적 안목과 전략적 식견은 슈페어와 리벤트로프 장관마저도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파울루스 장군이 직접 외교장에 나가겠다고 말했다면, 이는 필시 무언가 계획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슈페어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좋습니다. 다만, 대사의 직책이 아닌 참석자 신분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외교 경험도 없는 제가 어찌 대사와 같은 중책을 맡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차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지요.”

“예,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파울루스 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를 한 뒤 돌아서서 나갔다.

슈페어 총리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뭔가 큰일을 벌려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

그날 저녁, 슈페어 총리와의 면담을 마치고 총참모본부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참모부 작전 과장, 마르크스 중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잘 왔네. 늦은 시간에 불러서 미안하군.”

“하하, 아닙니다. 전시 중의 군인에게 퇴근이 따로 있겠습니까. 그래서 무슨 일로 호출하셨습니까?”

그렇게 너스레를 떠는 마르크스 중장에게, 나는 미안함을 감추며 말을 꺼냈다.

“현재 V-2 로켓의 실전 배치는 얼마나 진행되었는가?”

내 물음에, 마르크스는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입을 열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현재 생산된 V-2 로켓들은 모두 서부 전선군 예하의 포병 연대에 배치된 상태입니다.

작년 말부터 테스트 발사를 도맡아 하던 3개 대대가 그대로 완성된 로켓을 인수했으니, 명령만 내리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발사할 수 있을 겁니다.”

“흠, 그런가.”

작전과장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개 포병대대가 준비되었을 정도라면 현재 실전 배치된 로켓이 최소 수십 발은 될 터.

그 정도 수의 V-2 로켓이라면 런던에 있는 연합군 놈들을 깜짝 놀래켜 주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좋네. 그럼 지금 당장 서부 전선군 사령부에 연락하게. 내일 아침, V-2 로켓을 발사해서 런던을 타격하라고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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