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브르타뉴 반도 방어전 (8)
“뭐? 몽고메리 원수가 사망했다고?”
1944년 9월 24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합군 총사령부.
이곳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부관의 갑작스러운 보고에 아연실색하며 되물었다.
“예. 방금 전, 생말로 항구에서 독일군의 포격에 휩쓸려 전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마 그럴 리가. 단순히 일시적으로 연락이 두절된 것은 아닌가?”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야전군의 총사령관이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사망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란 말인가?
분명 생말로 전투와 사령부의 이전 작업이 혼잡하게 전개되는 바람에 무언가의 착오가 생긴 것이리라.
그러나 이어지는 부관의 보고는 그런 아이젠하워의 기대를 산산히 무너뜨렸다.
“죄송하지만 각하, 몽고메리 원수를 수송하기 위해 정박해있던 HMS 힐러리가 그의 차량이 폭발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후······ 빌어먹을.”
그 말에 아이젠하워는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젠장, 그 꼬장꼬장한 양반이 이렇게 허무하게 전사할 줄이야···. 골치 아프게 되었군.’
지금과 같이 영미 연합군이 열세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몽고메리 원수가 사망한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버나드 로 몽고메리 원수는 일개 야전군 사령관이 아니라 영국군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번 일이 영국의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진다면, 안 그래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던 양국 간의 신뢰 관계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게 될 터.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합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그런 것을 고민할 처지가 아니지.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도 패주하는 부대를 추스르고 전선을 재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아이젠하워는 이내 고개를 들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참모장, 그럼 현재 영국 1군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금 지휘권을 쥔 것은 누구지?”
“죄송합니다만, 영국 1군 사령부의 인원들 대부분이 포격에 휩쓸린지라 아직까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예하 부대들은···.”
“예, 아마도 혼란에 빠진 채 각자의 위치에서 분투하고 있을 겁니다.”
이에 아이젠하워는 고개를 돌려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몽고메리의 죽음으로 인해 사령부가 부재한 현재, 영국 1군의 에하 부대들이 처한 상황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마지막까지 생말로 항구를 지키던 캐나다 3사단과 영국 3사단은 독일군에게 포위당한 채 마지막 저항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아니, 지금까지 올라온 보고들을 미루어보면 이미 전멸했거나 항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부관, 영국 3사단과 캐나다 3사단의 표식은 지도에서 제거하게.”
“···예.”
그리고 렌 방어선에서 좌익을 맡았던 30사단은 큰 피해를 입고 코탕탱 반도 쪽으로 패주하고 있었다.
이로써,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며 어렵게 진출했던 브르타뉴 반도는 완전히 연합군의 손을 떠나 버렸다.
‘젠장할···.’
하지만 30사단은 그나마 다른 부대와 비교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28사단과 합류해서 코탕탱 반도로 후퇴하면, 어쨌든 전멸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진짜 문제는 브르타뉴 반도에 남겨진 7만 명의 5개 사단이었다.
‘미군 11사단과 43사단, 그리고 영국군 53사단, 59사단, 제1공수사단인가. 아무래도 43사단을 구원하기는 어렵겠군.’
이중 포위망을 완성하기 위해서 가장 앞장서서 진격했던 43사단은 플로에르멜 남쪽에서 포위된 상황.
그리고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사단은 생 브리외 항구에 집결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다들 다수의 병력을 잃고 약체화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43사단을 구원하려고 나섰다간, 다른 부대들도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그럼 남은 문제는, 나머지 4개 사단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인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 브리외 항구를 사수하며 마지막까지 버텨볼 것인가? 아니면, 저들을 영국으로 탈출시키고 다음을 꾀할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쪽을 고르던간에 기다리는 것은 암울한 전망뿐이었다.
만약 버티는 것을 선택한다면 결국 천천히 소모 당하다가 전멸할 것이고, 반대로 퇴각을 선택한다면 브르타뉴 반도의 독일군이 이번에는 코탕탱 반도로 몰려올 테니까.
“으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젠하워는, 결국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좋아. 그럼 53사단과 59사단, 그리고 11사단은 생 브리외 항구를 통해서 영국으로 퇴각하도록 명령하게.”
“가, 각하! 그랬다간 코탕탱 반도의 1군과 2군이 다시 위험에 처할 겁니다!”
“···어쩔 수 없네. 지금 이 상황에서 영국군의 희생이 더 커졌다간, 영미 연합이 정말 결렬될지도 모른단 말일세.”
“······.”
사실, 아이젠하워도 이 결단이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목을 조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몽고메리 원수가 사망한 지금, 그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그 무렵, 생 브리외 항구에 위치한 영국 제53 웨일스 보병사단 사령부.
이곳에서 53사단장, 로버트 녹스 로스 소장은 밀려오는 보고와 적군의 공격, 그리고 패주하는 아군 부대들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사령관님, 158연대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해안 쪽 방어선이 돌파당했다고 합니다! 즉시 증원이 필요합니다!”
“각하, 71여단이 아군 59사단과 접촉했다는 보고입니다! 이곳으로 와 저희와 합류하겠다고 합니다!”
“가, 각하! 연합군 총사령부로부터의 직통 명령입니다! 59사단과 미 11사단, 그리고 저희 53사단의 병력은 지금 즉시 영국으로 퇴각하라고 합니다!”
“젠장할, 도대체 뭐야! 참모장, 1군 사령부와의 연락은 아직도 먹통인가?”
“예, 아무래도 이동 중 제반 사정으로 인해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보입니다.”
“후우···.”
온갖 혼란스러운 정보들 속에서, 로스 소장은 차례차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의 상급부대인 영국 1군 총사령부에서는 어제 오후에 이곳으로 사령탑을 옮기겠다고 연락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한창 해로를 통해 이동 중일 테니 연락이 안 되는 것도 그 때문일 터.
‘그러면 늦어도 내일쯤에는 이곳에 도착할 텐데··· 그럼 연합군 총사령부의 명령은 도대체 뭐지? 그사이에 뭔가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연합군 총사령부에서 사단 본부로 직통 명령을 보내다니.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게다가 그 내용은 무려, 이곳 브르타뉴 반도를 버리고 모든 병력을 퇴각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총사령부의 명령대로 병력을 이끌고 영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사령관님!”
“···젠장, 일단은 각 부대 모두 현재 위치를 사수하도록! 그리고 참모장, 지금 즉시 59사단 사령부에 연락해서 상황을 파악해보게!”
“예, 알겠습니다.”
결국, 이러한 혼란 속에서 로스 소장이 내린 결론은 바로 현상 유지였다.
지금은 아무런 상황도 파악할 수 없을뿐더러, 어차피 내일이 되면 몽고메리 원수께서 오셔서 지시를 내려주실 테니까.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로스 소장을 찾아온 것은 퇴각하는 11사단과 59사단의 패잔병들, 그리고 몽고메리 원수가 생 말로에서 전사했다는 비보뿐이었다.
“뭐요? 몽고메리 원수께서 전사하셨다고?”
“조용히 말씀하시오, 소장. 목소리가 너무 크시오.”
“···크흠.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마 원수 각하께서 사망하시다니···.”
그렇게 되묻는 로스 소장에게, 59사단장 루이스 라인 소장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몽고메리 장군께서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생말로 항구에서 병력을 지휘하신 모양이오. 그러다가 결국 적군의 포격에 당하셨다고 하더군.”
“그럼 설마··· 그것 때문에 연합군 총사령부에서 직통 명령이 내려온 겁니까?”
“그렇소. 아마 총사령부에서는 병력을 완전히 빼낸 다음 재편할 모양이더군. 그러니 어서 빨리 병력을 승선시켜야 하오.”
그러나 로스 소장으로서는 아직까지도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브르타뉴 반도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며 공세를 지속하라는 명령을 받았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후퇴하라는 명령이 내려오다니.
하지만, 일개 사단장에 불과한 그가 고민해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수밖에.
“···알겠소. 바로 배를 징발하겠소.”
“협조해주셔서 고맙소.”
그렇게 영국군의 세 번째 탈출작전이 시작되었다.
*****
“각하, 서부전선군으로부터의 전투 결과 보고서입니다.”
“고맙네. 거기 두고 가게나.”
“예!”
작전 과장이 물러난 뒤, 나는 책상으로 돌아가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역시 압승이로군.”
1944년 10월 1일 현재, 서부전선은 마치 3달 전의 모습으로 그대로 회귀한 것처럼 변해 있었다.
생말로 항구와 생브리외 항구까지 손에 넣으며 브르타뉴 반도로 깊숙하게 진출했던 영국 1군은 모두 격퇴되었고, 미 1군, 2군은 다시 코탕탱 반도로 밀려난 것이었다.
비록 3개월 전과는 달리 연합군의 숫자가 제법 많기는 했지만, 어차피 세르부르 항구의 수용 능력으로는 이들의 보급량을 감당해낼 수 없으니 오래 버티지 못할 터.
게다가 이번에는 동부 전선에서 속속 도착하는 증원군 덕분에 아군의 물량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만큼, 결코 질 리가 없는 싸움이었다.
“이제는 뭐, 내가 굳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모델과 롬멜 원수가 잘 해주겠지.”
정 미국이 우리와의 전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태평양 전쟁을 끝낸 다음에 다시 한번 상륙 작전을 감행할 수도 있겠지만, 유라시아에서 소련이 버티고 있는 마당에 그런 멍청한 짓을 벌이진 않으리라.
“···이걸로 끝이군.”
끝났다.
이제 이 빌어먹을 전쟁도, 독일의 패망이라는 악몽도 전부 끝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손을 뻗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국방군 총참모총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입니다.”
“파울루스 장군, 슈페어 총리입니다. 잠시 총리 관저로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내 물음에, 슈페어 총리는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그게, 연합군 측에서 협상 제의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