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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43화 (143/157)
  • 143화. 브르타뉴 반도 방어전 (7)

    “다행히도 노획된 전차가 맞았군. 솔직히 아까 격파하면서도 좀 불안했거든.”

    “빌어먹을 토미 놈들이 국적 표시도 안 지우고 그대로 끌고 나왔나 보군요. 이거 따지고 보면 전쟁법 위반 아닙니까?”

    프란츠와 하버 상사는 격파된 쾨니히스 티거를 올려다보면서 투덜거렸다.

    그들의 말대로, 영국군의 쾨니히스 티거 포탑 측면에는 독일군을 상징하는 철십자 마크가 그려진 채 그대로 있었다.

    아마도 본국으로 가져가려고 했다가 전황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다급히 투입한 것이리라.

    “···그나저나, 방금 전에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상사님이 아니었으면 제 판터 전차도 이렇게 고철이 되었을 겁니다.”

    “하하하, 무슨 소리냐. 전장에서는 서로 돕고 도움받는 거지.”

    “그런데 상사님께서는 언제 프랑스에 오셨습니까? 저는 당연히 동부 전선··· 아니, 국경선 어딘가에서 복무하고 계시리라 생각했습니다만.”

    프란츠가 하버 상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려 2년 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였다.

    그때 파울루스 원수로부터 사관 후보생으로 추천받았던 프란츠와는 달리, 하버 상사는 부상이 심해서 후방으로 이송되었던 것이다.

    “나? 나야 뭐, 그 후로 레닌그라드 일대의 46사단으로 재배치되서 아군이 퇴각할 때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거든. 그래서 난 제법 빨리 돌아온 편이지.”

    “정말입니까? 저도 2차 레닌그라드 전투 때, 포위망 돌파 작전에 참가했었는데 말입니다. 상사님이 안에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군요.”

    “하하하. 아니, 포위망이라고는 해도 발트해를 통해서 보급은 다 받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지킨 것도 다 소용이 없어졌지. 결국은 소련 땅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야.”

    “···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하버 상사의 말에, 프란츠는 몇 주 전 부대에서 본 독소 평화 협정에 관한 소문을 떠올렸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우리 독일 측이 많은 영토를 양보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고 했었지.

    이러한 조약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 병사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지만, 서부전선에서 복무하던 프란츠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 노르망디 일대는 끝도 없이 몰려오는 연합군에 의해서 아군이 계속 밀려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하버 상사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는 프란츠의 171호 판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프란츠. 너 판터 전차장이 된 모양이구만.”

    분명 이 녀석은 티거와 같은 중전차가 타고 싶다고 사관 후보생에 지원했을 텐데, 어째서 중형전차인 판터를 타고 있단 말인가?

    그런 하버 상사의 물음에, 프란츠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사실 중전차 대대로 갈 수도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사정? 뭐, 전황이 악화되서 강제로 차출되기라도 했나?”

    “그런건 아닙니다만··· 그때 교관님이 신형 전차랍시고 판터를 추천하셔서 말입니다.”

    그렇게 프란츠에게 일련의 사정을 전해 들은 하버 상사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정말 웃기는군. 그래서 속아 넘어갔다고?”

    “아니,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좋아 보였단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팔랑귀인 것 아니냐.”

    “하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뭐, 이 녀석도 정이 들어서 마음에 들고 말이죠.”

    “그래.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면 된 거지. 그래서 넌 전쟁이 끝나면 이제 어쩔 셈이냐.”

    하버 상사의 말에, 프란츠는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쟁의 끝이라··· 벌써 이런 날이 온 건가.

    하긴, 가장 강적이었던 소련과의 전쟁도 결국 끝맺었으니, 남은 영미와의 전쟁도 그리 길게 가지는 않으리라.

    “···모르겠습니다. 일단 고향으로 가서 일거리를 찾아봐야죠. 뭐, 기사 철십자 훈장까지 받았으니 어디 한군데는 자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냐. 난 차라리 우크라이나로 가서 농부나 할 생각이다. 참전 용사들한테는 땅도 나눠준다고 하니, 거기서 미인 아내도 얻고 마음 편히 사는 거지.”

    “하하. 확실히, 거기서 농사지으면 굶어 죽지는 않겠군요. 저도 일 없으면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두 사람의 대화는 프란츠네 무전수에 의해서 결국 끝이 났다.

    “중위님, 집결 명령입니다! 지금 당장 격파된 판터를 견인해서 후송하라고 합니다!”

    “···이만 가봐야겠군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나도 슬슬 가봐야겠군.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

    “저야말로. 무운을 빌겠습니다, 상사님.”

    “그래, 살아서 다시 보자고.”

    경례 대신 힘차게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가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몽고메리 원수가 기다리고 있는 생말로 항구였다.

    *****

    그 무렵, 생 말로 항구에 위치한 영국 1군 사령부.

    이곳에서 몽고메리는 연일 악화되어 가는 전황 보고를 들으며 침음을 삼키고 있었다.

    “···해서, 현재 독일군은 생말로 항구로부터 10km 거리까지 도달한 상태입니다. 이제 생 말로는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빌어먹을···.”

    현재 생 말로 항구의 영국 1군 사령부가 처한 상황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항구는 다수의 기갑전력을 보유한 독일군 부대에 의해서 포위된 반면, 이들을 막을 전력은 패퇴한 캐나다 3사단과 영국 3사단을 합쳐서 2만 명이 채 안 되는 상황.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전선이 10km 거리까지 다가오는 바람에 도심의 외곽까지도 독일군 포병의 사정거리 안에 놓여 버렸다는 것이었다.

    쾅! 쾅!

    “적 포탄 낙하! 동부 지구다!”

    “···이번에는 또 어디인가.”

    “르 폰트 로베흐 쪽입니다. 아군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

    도시의 외곽은 이미 포탄 세례에 의해서 폐허가 되어버렸고, 항구 쪽의 건물들도 더 이상은 안전하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방어선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더 물러났다간 그 다음에는 몽고메리의 사령부 위로 포탄 세례가 떨어질 테니까.

    “참모장, 패튼 장군과 영국군 부대들은 얼마나 왔는가?”

    “그것이··· 패튼 장군은 독일군의 반격이 거세서 돌파에 실패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희 영국군 부대들도 생 브리외와 플로에르멜 일대에 묶여서 격전을 치르고 있는지라···.”

    참모장의 암울한 보고에 몽고메리 원수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체면불구하고 미군에게 도움을 요청한 데다가 어렵게 성공시킨 브르타뉴 반도 포위망마저 포기했건만, 그래도 결국 생 말로를 사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인가.

    “각하···.”

    그런 몽고메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참모장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가 이 말을 꺼내면 몽고메리가 불같이 화를 낼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어떠한 질책을 받더라도 이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각하,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이번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

    “그러니 지금은 물러나셔야 할 때입니다. 우선 자리를 피하고,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참모장의 각오와는 다르게, 몽고메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피한다고? 도대체 어디로 피하란 말인가? 이미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우선 사령부를 이끌고 생브리외로 가시지요. 그리고 그곳조차 위험해지면 영국으로 물러나시면 됩니다. 저희 영국군은 끝까지 버티는 집념 하나로 지금까지 저 막강한 독일놈들과 맞서 싸워왔지 않습니까!”

    그런 참모장의 말에, 몽고메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사령부를 둘러보았다.

    하긴, 참모장의 말이 옳다.

    자신은 이 사령부를 이끌고 트리폴리에서 엘 알라메인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퇴각하면서도 끝끝내 버텨서 이집트를 사수해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해 패배를 각오하다니.

    ‘그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설령 여기에서 쫓겨나 영국까지 물러나게 되더라도, 그래도 다시 한번 도전하면 된다!’

    그렇게 몽고메리가 각오를 다졌을 때, 참모장교 하나가 그의 집무실로 뛰어들어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가, 각하! 어서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현재 독일군 기갑부대가 시가지로 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하!”

    “···알겠네. 지금 당장 중요 서류만 챙겨서 퇴각을 준비하도록. 그리고 참모장, 자네는 로열 네이비에 연락해서 수송선을 준비하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몽고메리의 결단이 떨어지자, 그의 참모 장교들은 숙달된 솜씨로 빠르게 사령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반드시 챙겨야 할 1급 기밀 서류들과 지도들을 하나의 박스에 넣어서 봉해버리고, 나머지 서류와 집기들은 마당에서 빠짐없이 불태웠다.

    그리고 처분해서는 안 되는 짐과 장비들만을 따로 빼내서 몇 대의 트럭에 나눠 실기 시작했다.

    몽고메리는 한켠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왠지 모를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결국 이번에도 이렇게 물러나는군.’

    이번에 물러나면 언제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어쩌면 그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고메리는 철수 명령을 내린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서 고집을 부리다가 자신이 생포되기라도 했다간 영국 1군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릴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설령 패배하더라도 깔끔하게 물러나서 후퇴를 지휘하는 것이 사령관의 책무이리라.

    “각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좋네. 그럼 바로 출발하기로 하지. 그리고, 레니 소장.”

    “예, 각하.”

    몽고메리의 호명에 영국 3사단장, 토마스 고든 레니 소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자네에게는 어려운 임무를 맡기게 되어 미안하네. 우리가 떠나면 곧바로 병사들을 이끌고 항복하게나.”

    “아닙니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고맙네.”

    그렇게 모든 채비를 갖춘 몽고메리 원수는 차에 올라타고 항구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차창 밖으로, 항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로열 네이비의 수송선 한 대가 보였다.

    “후후··· 결국은 이렇게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신세인 건가. 비참하군···.”

    투콰앙!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앞에서 거대한 포성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몽고메리를 태운 차량은 하늘로 날아올라서 크게 한 바퀴 회전한 뒤, 바다에 처박혀 버렸다.

    영국을 상징하던 명장, 몽고메리가 사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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