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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42화 (142/157)
  • 142화. 브르타뉴 반도 방어전 (6)

    “가, 각하! 지금 독일군 기갑부대가 이곳을 향해서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독일군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부관의 다급한 목소리에, 몽고메리는 얼빠진 듯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방금 전 저 멀리서 울려 퍼지던 포성 소리는 아군의 오사가 아니라 독일군 기갑부대의 것이었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곳에서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부관이 계속 재촉하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몽고메리는 간신히 정신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 대신, 혼란에 빠진 사령부를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가, 각하···!”

    “진정해라! 지금 당장 코앞에 독일놈들이 들이닥친 것도 아니지 않나! 참모장, 지금 당장 통신망을 가동해서 인근 부대의 상황을 확인하도록!”

    “예!”

    몽고메리가 침착하게 명령을 내리자, 참모장교들도 이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할만한 정보들이 모였다.

    “각하, 캐나다 3사단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금일 오전 시작된 독일군의 공세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디낭 인근까지 패퇴했다고 합니다!”

    “···뭐? 그럼 그동안 11사단과 30사단은 도대체 무얼했단 말인가?”

    “그것이, 다수의 기갑부대가 순식간에 전선을 돌파하는 바람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수의 보병들도 후속한 것으로 보아 기존에 배치되어 있던 병력이 움직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모장의 보고를 들으며, 몽고메리는 작전 지도 위에 펼쳐진 전황을 살펴보았다.

    ‘···젠장, 보고를 들으면서도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저기를 돌파당했던 것인가.’

    이번에 독일군이 공세를 취한 지점은 바로 렌 외곽을 둘러싼 방어선 일대.

    저 일대의 방어선은 아군도, 적군도 모두 다수의 병력을 포진시키고 굳건히 지키던 곳인지라 설마 저기를 노리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장소였다.

    그런데 저 방어선을 단 하루 만에 돌파당한 데다가 인근의 부대들도 반격조차 시도해보지 못했다니.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아무래도 독일놈들이 엄청난 규모의 병력을 숨겨두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것도 1~2개 사단이 아니라 최소 군단 규모를 말이야.’

    하지만 이제와서 깨달아봤자 너무 늦었다.

    디낭에서 생말로까지의 거리는 고작 20여km에 불과한 데다가, 영국 1군은 이미 모든 예비전력을 브르타뉴 반도 포위 작전에 투입해버린 직후였으니까.

    “후··· 지금 디낭을 방어 중인 부대는 어디인가?”

    “현재는 패퇴한 캐나다 3사단과 영 3사단이 함께 독일군의 진격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각하! 이대로 가다간 저희 영 1군 사령부마저도 적의 사정권 안에 들어갈 겁니다!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부관의 말대로, 생말로 항구를 버리고 퇴각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네.”

    “···각하!”

    “이곳 생말로는 연합군의 보급을 책임지는 핵심 거점이네. 만약 이곳을 잃어버리면 우리 영 1군뿐만 아니라 미 2군마저도 위험해질걸세.”

    현재 연합군이 확보한 항구는 총 세 개로, 세르부르와 생 말로, 생 브리외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 세르부르 항구는 미 1군의 보급만으로도 벅차고, 생 브리외 항구는 아직 전장과 너무 가까워서 제대로 물자를 하역하기 어려운 상황.

    그렇기에 생 브리외 항구를 잃게 된다면 연합군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보급 부족에 시달리게 될 터였다.

    게다가 몽고메리에게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지난번에 이어서 이번에도 또다시 패주하게 된다면 우리 영국군은 정말로 끝장이다. 이번만큼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게 되더라도 끝까지 버텨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 방어에 투입할 예비전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영국 1군의 휘하에 배치된 부대는 제1 공수사단을 포함해 총 8개 사단뿐.

    이 중 53사단은 생 브리외 항구를 지켜야 하니 움직일 수 없고, 렌 방어선 일대에 배치된 4개 사단은 이미 독일군에 의해서 돌파당하는 중이었다.

    그럼 남은 것은 브르타뉴 반도를 포위하고 있는 59사단, 43사단과 제1 공수사단뿐인데 이들을 움직이면 어렵게 형성한 포위망이 무너질 터였다.

    ‘···아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포위망은 포기한다고 쳐도, 저 녀석들이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게다가 반 항구를 압박하고 있는 43사단은 무리하게 진격한 만큼 병사들이 많이 지치고 소모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퇴각을 시도했다간 도리어 적에게 추격당해서 피해가 커지리라.

    “후··· 어쩔 수 없군. 그렇다면···.”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기 시작했다.

    따르르르릉-.

    “······.”

    몽고메리는 시끄럽게 울어대는 전화기를 잠시 노려보다가, 체념한 듯이 집어 들었다.

    “영국 1군 사령부, 몽고메리 원수요.”

    “예, 원수 각하. 아이젠하워입니다.”

    “총사령관이셨구려. 그래서, 무슨 일이오?”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렌 방어선이 돌파당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소식이 빠르구려. 사실이오.”

    “그럼 생말로 항구는 지킬 수 있겠습니까?”

    “······별 수 있겠소. 지켜야지.”

    마치 체념한듯한 몽고메리의 대답에, 수화기 너머에서는 난감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 어쩌실 생각입니까.”

    “캐나다 3사단과 영 3사단을 생 말로까지 퇴각시키겠소. 그리고 구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거지.”

    만약 영국군이 생말로 항구에 틀어박혀서 결사 항전을 한 끝에 독일군의 공세를 버텨낸다면, 그리고 그동안 미 2군이 우리를 구원해준다면.

    그럼 생말로 항구를 사수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몽고메리의 계획이었다.

    “어떻겠소?”

    “···어렵군요.”

    그런 몽고메리의 물음에, 아이젠하워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제 연합군에게 남은 희망은 그것뿐이었기에, 결국 아이젠하워도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패튼 장군에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구원에 나서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부탁 좀 드리겠소.”

    그렇게 아이젠하워와의 전화를 끝낸 몽고메리 원수는 창가로 다가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후··· 설마 이 내가 패튼을 기다리는 꼴이 될 줄이야.”

    사실 몽고메리도 그의 작전이 그다지 승산이 높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영국군과 캐나다군 병사들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런 그가 바라보는 창밖의 저 머나먼 곳에서는 여전히 독일군의 포성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그 무렵, 디낭 외곽의 어느 평야.

    “방향 3시, 거리 700! 깃발 달린 셔먼부터 날려버려라!”

    “발사!”

    이곳에서 171호 판터 전차장, 카를 프란츠 중위는 영국군 셔먼 부대를 철저히 유린하고 있었다.

    “중위님. 어차피 전부 단포신인 것 같은데, 좀 더 접근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가 옆 부대 놈들한테 다 빼앗기겠습니다.”

    “발츠, 영국놈들의 위장술을 우습게 보지 마라. 여기서는 저렇게 보여도 어디에 파이어 플라이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에이, 중위님은 걱정이 너무 과하십니다. 동부전선에서야 저희가 몸을 사려야 했지만, 이 동네에서는 판터도 사실상 중전차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흠···.”

    포수인 울리히 발츠 병장의 말에, 프란츠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하긴, 프란츠가 듣기에도 미국놈들의 신형 중전차나 파이어 플라이 같은 놈들은 모두 지난번 공세에 투입되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도 괜찮지 않겠는가.

    “좋다! 그럼 다음번에는 우리가 선두에 서기로 하지. 막스, 전차 전진!”

    “예! 전차 전진!”

    그렇게 프란츠의 판터 전차가 진격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전차가 하나 나타났다.

    “중위님!”

    “잠깐. 저건 아군 전차다. 지나가도록.”

    “···그러고 보니, 저게 그 쾨니히스 티거인 모양이군요. 저는 처음 봤습니다.”

    “그러게. 우리 판터랑 비슷하게 생겼군.”

    그러나 그것은 적 전차가 아니었다.

    아마 중전차 대대 소속의 쾨니히스 티거 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투입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보고서 지나치려고 할 때였다.

    콰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선행하던 프란츠 소대의 판터 한 대가 불타올랐다.

    “적습입니다!”

    “어, 어디냐!”

    “···젠장할. 아마 저 녀석일 거다.”

    프란츠는 싸늘한 시선으로 방금 전의 그 쾨니히스 티거를 노려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분히 미리 눈치챌 수 있는 일이었다.

    중전차 부대가 따로 투입되는 일이 잦다고는 해도, 이는 방어전일 때의 얘기다.

    그런데 적진의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쾨니히스 티거가 홀로 움직이고 있다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제기랄··· 완전히 말려들어 버렸군.’

    그러나 이제와서 눈치채 봤자 이미 늦었다.

    현재 아군 전차와 적의 거리는 약 700.

    이 거리에서 쾨니히스 티거의 150mm 경사 장갑을 관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몸을 피하자니, 엄폐할 만한 장애물이 전무한 상황.

    게다가 바로 옆에서는 격파된 판터에서 아군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탈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버리고 우리끼리만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젠장, 발츠! 일단 쏴!”

    “예? 하, 하지만···.”

    “아무 데나 일단 쏴라! 이대로 죽을 거냐!”

    “아, 알겠습니다!”

    발츠가 적 전차를 조준하는 동안, 프란츠는 식은 땀을 쥐면서 페리스코프 너머로 쾨니히스 티거를 노려보았다.

    과연 발츠가 저 괴물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아마 어렵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발츠를 믿어보는 수밖에.

    “발사!”

    투콰앙!

    익숙한 포성과 함께, 판터의 75mm 철갑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리고 쾨니히스 티거에 닿은 철갑탄은 그대로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젠장.”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쾨니히스 티거의 엔진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국군 병사들이 뛰쳐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러나 프란츠는 기관총을 발사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프란츠의 판터가 가만히 서 있자, 쾨니히스 티거의 옆에서 4호 전차 한 대가 나타나서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이, 프란츠! 잘 지냈나?”

    그 4호 전차의 해치에 서서 손을 흔드는 이는 바로, 프란츠의 이전 전차장인 게르트 하버 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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